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5화 (565/651)

제565화: 침투(1)

사흘 전 이미 훈련 사격은 마쳤다.

이어 작은 박스 하나가 나왔는데 뚜껑을 열자 M67미군 제식 세열수류탄이 나타났다.

달걀처럼 두꺼운 박스지로 칸막이가 되어 하나씩 들어있었는데 모두 열 발이었다.

열 발을 들어내고 종이를 걷어내자 또 한 층의 칸이 나타났고 역시 수류탄 열 개가 들어 있었다.

수류탄의 용도는 여러 가지로 사용될 것이다.

슥!

권총수는 미리 준비해 온 듯 콘솔박스에서 검정색 벨트백을 꺼내더니 수류탄을 담기 시작했다.

모두 열다섯 방을 담더니 허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나머지 다섯 발은 오민철이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훌쩍!

권총수가 조립된 무거운 브라우닝을 어깨에 둘러멨다.

“내가 멜까?”

오민철이 묻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오민철은 자칫 걸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을 앞에 두고 농담을 건넨다.

숱한 전쟁을 치른 자의 여유이기도 했지만 형으로서 권총수 마음을 더 풀어주려는 배려다.

“정말?”

메지 못할 건 없으나 오민철에게 27킬로는 무겁다.

그것도 쇳덩이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내 지시만 따라 움직여.”

“걱정 마!”

권총수는 멀쩡했으나 오민철은 쏟아지는 폭우에 금세 젖어 버렸다.

처벅처벅!

빗물이 아스팔트길을 냇물처럼 가로질러 흘러가고 있다.

두 사람은 차량통행이 없는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입구 못 미쳐 숲으로 들어갔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CCTV가 찍고 있을 것이다.

오른쪽 절벽으로부터 파도소리가 강하게 들려온다.

두 사람은 나무사이를 빠르게 걸어갔다.

저택의 담장이 보이고 경비실 건물도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저택 입구에 도착한 권총수는 대문 앞을 향해 설치된 CCTV를 발견했다.

CCTV 각도를 보아 도로 끝까지 한 화면에 잡고 있는 듯 보였다.

권총수는 주위를 한번 더 살핀 뒤 오민철 곁으로 다가왔다.

탁!

오민철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대로 솟구쳐 올랐다.

CCTV 사정거리를 벗어난 높이에 이르자 천천히 나뭇잎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담장 안으로 들어간 권총수는 정문 경비실에 바짝 붙어 내려섰다.

사방이 지뢰밭이고 부비트랩이기 때문에 함부로 밟거나 행동하면 안 된다.

‘셋!’

경비실에 모두 세 명이 있다.

각기 호흡의 길이와 강도가 다른 세 개의 숨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은 폐활량에 따라 호흡의 차이가 있는데 권총수의 내공은 그 정도까지도 알아차려 낸 것이다.

권총수는 브라우닝을 한쪽에 내려놓고 문을 향해 다가섰다.

투투툭!

닫힌 철판으로 된 경비실 문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그런데 지켜보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철판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오민철은 워낙 단단한 철판이다보니 지력이 튕겨 나온 것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스윽!

권총수는 문을 열고 경비실로 들어섰다.

뒤따라 들어선 오민철의 눈이 커졌는데 권총수의 전음대로 세 명이 있었다.

셋 모두 AK를 들고 있었는데 두 명은 의자에 앉아있고 한 명은 서 있었다.

눈동자가 움직이고 놀라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마혈만 제압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조금전 철판을 향해 지력을 날렸을 때였다.

철판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에 있는 세 사내의 마혈이 제압된 것일까

격공지(隔功指)다.

눈 앞의 물체를 때리는 것 같지만 그 너머에 있는 대상을 공격하는 차원 높은 공격이다.

손바닥이면 격공장이고 주먹이면 격공권으로 불린다.

어떤 특별한 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공이 반로환동에 접어들면 펼치는 수법이다.

반로환동 이전에도 시전할 수는 있으나 앞선 표적이 깨지거나 문제를 일으켜 뒤에 숨어 있는 적에게 발각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권총수는 소리도 없었고 철문 안에 있는 세 사내를 제압한 것이다.

“사...사막의 흑새.”

서 있는 사내가 권총수를 발견하곤 놀란다.

탁!

오민철이 빙긋 웃으며 사내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아보는 걸 보니 총수 얼굴을 열심히 외운 모양이군요.”

사내들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당장 몸을 돌려 총으로 갈겨 버리고 싶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딸칵!

권총수는 벽 쪽으로 붙은 길다란 벤치 의자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쪽 벽으로는 집 주위를 지켜볼 수 있는 커다란 CCTV 화면이 걸려 있었다.

바람이 불고 쏟아지는 폭우 말고는 어디에서 사람이 침입하고 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대답하든 괜찮습니다. 내가 던지는 질문에 성의껏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비원들은 모두 몇입니까?”

순간 세 사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건 당혹스러움이면서도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고 의지였다.

권총수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약간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앉아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대답이 없다는 건 말해줄 수 없다는 건가?”

오민철이 서 있는 사내의 등을 툭 치며 바라보았다.

스윽!

그때 권총수가 오른손을 품속에 집어넣더니 30센티 정도 되는 회칼을 꺼냈다.

회칼은 경비실 천장에 있는 전등빛을 받아 번쩍 거렸다.

“미국에는 이런 칼이 드문데 브라질에는 매우 많더군요.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일본계 브라질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걸 회칼이라고 하죠.”

권총수는 칼날을 살폈다.

“생선의 살을 발라낼 때 사용하는데 칼이 두 번 가면 육질의 맛이 떨어집니다. 한 번에 그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예리합니다.”

쉬익!

천장에 전등이 있으나 그보다 훨씬 강한 섬광이 피어났다.

세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는데 너무 눈이 부셨기 때문이다.

칼에 강한 내공이 들어가 휘둘러지기 때문이다.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악!

세 사내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그러다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발견하고 소스라쳤다.

놀랍게도 서 있는 사내의 오른쪽 귀였다.

뚝뚝!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경비실에 울린다.

“으으!”

사내는 고통스러운 듯 눈동자가 미친듯이 굴렀다.

“다시 묻습니다. 경비원들 숫자와 초소의 위치를 말씀해 주실분?”

이번에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촤악!

또다시 번개가 쳤고 뭔가 바닥에 떨어졌다.

“으으으!”

오른쪽 귀가 잘린 사내의 입에서 재차 비명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왼쪽 귀가 떨어진다.

꿈틀!

그때 오민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 명이므로 한 명씩 골고루 귀를 잘라내야 공평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하므로 셋 모두에게 굉장한 압박이 되고 누군가 참을성 부족한 이가 입을 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권총수는 서 있는 사내의 양쪽 귀를 잘랐다.

“대답할분 없습니까?”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경비실에 벼락이 쳤다.

양쪽 귀를 모두 잘린 사내가 움찔했다.

왼쪽 손목이 뜨끔했는데 뜨거운 쇠붙이에 슬쩍 닿았을 때 느끼는 정도의 감촉이다.

툭!

하는 소리에 눈을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꼼짝 않던 고개가 자연스럽게 숙여지면서 바닥이 정확하게 보였다.

권총수가 사내의 마혈만 풀어 준 것이다.

화악!

사내의 눈이 커졌다.

바닥에 금팔찌를 차고 있는 손이 보인다.

분명 자신의 것이다.

“으아, 빌어먹을!”

재빨리 왼손을 보자 조금 전까지 붙어 있던 손목이 없다.

“내...내손이...으으!”

귀가 잘릴 때와는 전혀 다른 비명이고 반응이었다.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권총수의 입이 다시 열렸다.

“또다시 질문 들어갑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초소와 경비원의 숫자.”

그때 양쪽 귀와 손목이 잘린 사내의 시선이 두 동료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졸지에 장애인이 되면서 엄청난 고통과 싸우고 있는데 두 동료는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는 듯 서 있기만 했다.

이건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의리란 같이 싸우고, 죽을 땐 같이 죽는 것이다.

두목 프레드가 항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우린 가족이다. 여러분들중 가족이 위험에 처하면 구경만 하고 있겠는가. 아마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족을 지키려 할 것이다. 가족은 그런 관계다.’

그런데 다른 두 동료는 아무 말도 않는다.

자신을 위기에서 구출해줄 마음이 있는 한건지 남의 일처럼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우욱!

순간적으로 아랫배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끄어억!”

사내의 입술을 비집고 분노의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건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는 뜻이었다.

“초소는.”

사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민철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제서야 권총수의 계산을 읽어 낸 것이었다.

‘한 명만 집중 공격을 한다’

자신만 계속 다치는데 반해 다른 동료들이 멀쩡하면 칼질을 한 권총수가 미운 것이 아니다.

지켜보는 동료들이 얄미운 것이다.

즉 비록 말은 서로 주고 받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감정의 충돌을 일으키려는 일종의 격장지계(激將之計)인 셈이다.

사내는 초소의 위치와 경비원의 숫자를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내는 그만하라고 하려는 듯 입을 반쯤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자신들은 멀쩡하고 동료는 귀가 잘리고 손목 하나가 날아갔다.

그런 동료에게 배신하지 말라고 말한다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이었다.

“솔베스라고 했소?”

다친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제외하고 오늘 이 저택 안에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푸슉!

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총수는 소음기가 달린 글록19를 뽑아 두 사내를 제거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은 내가 일차로 위험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 청소를 해야 할거야.”

“그러지.”

권총수는 수류탄을 든 가방을 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폭풍 속으로 몸을 날렸다.

권총수는 일단 수류탄을 지뢰가 매설되고 부비트랩이 설치된 곳에 정확히 던져 넣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땅속에 묻힌 지뢰가 연이어 터졌고 부비트랩 역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경비초소에 비바람을 피해 있던 사내들이 폭발소리에 놀라 일제히 초소 밖으로 뛰쳐나왔다.

두두두두!

기다렸다는 듯 오민철의 SCAL 돌격 소총이 불을 뿜었다.

사내들은 제대로 응사 한번 해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지뢰를 매설한다거나 부비트랩 설치는 나쁜 전략이 아니었다.

야전도 아닌 도시에서 누구든 몰래 저택을 들어오려면 지뢰와 부비트랩에 백프로 걸리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안에 있는 경비원들이 마냥 안전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초소와 들어가고 나오는 길이다.

모든 초소를 둘러싸고 지뢰와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있어 만약 지금처럼 폭발을 일으켰을 때였다.

한두 개도 아닌 열 개 가까운 초소를 시멘트 건물로 지을 수는 없다.

최대한 정원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짓다 보니 당연히 헐렁한 합판이나 가벼운 양철지붕 정도다.

폭발을 피해 바깥으로 나온 사내들은 오민철의 총에 정확하게 노출되었다.

권총수는 폭발을 일으켜 강제로 그들이 둥지에서 총구 앞으로 달려 나오게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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