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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4화 (564/651)

제564화: 오래된 용병(2)

둥가의 입을 통해 그려낸 저택 지도였다.

몇 번을 수정하고 다듬었는데 오민철은 계속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린다.

외인부대시절 아주 드물지만 계획에 없는 급작스런 작전에 투입될 때가 있다.

그럴 때 건네받는 것은 공격지점의 지도가 아니라 정찰대가 그려온 스케치 정도가 정보의 전부다.

외인부대 훈련과목에 지형 지세를 보고 빠르고 정확하게 스케치 해내는 과정이 있는데 권총수는 단연 앞섰다.

교관의 설명만 듣고서도 거의 99퍼센트 일치할 만큼 지도를 완성한다.

그러나 지금 그린 지도는 이상했다.

나쁜 의미의 이상함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너무 놀라웠다.

지도를 보면 담장 주위로 온통 지뢰밭이고 정원 곳곳에 부비트랩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밭이었다.

외부에서 들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지가 무슨 적 지휘관이야?”

오민철이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하지만 오민철과 캐인 둘 모두 이런 곳을 어떻게 들어가냐는 따위의 걱정이나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다.

권총수는 땅을 밟지 않고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염려하는 건 프레드의 동선이다.

러시아에서처럼 우두머리가 자신만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 도주한다면 일은 커지고 해결이 장기화 될 수가 있다.

쫓기는 사냥감처럼 무서운 건 없다.

그들은 어차피 이파사판이라고 생각하여 거리낌 없이 만행을 저지른다.

더욱이 우두머리가 쫓기는 걸 알고 있다면 브라질 각지에 흩어져 있는 코만도 조직원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아이티처럼 갱들이 국가 정치에 개입하듯 한 지역의 주민들을 인질로 잡고 브라질 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그런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프랑스나 러시아에서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국민을 인질로 충분히 삼고도 남는다.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두목이 사망하면 새로운 주인이 누가 될 것인지, 그리고 그 자리를 놓고 언더보스들끼리 합종연횡이 이뤄지면서 오히려 조용해진다.

조직이 잠시 흔들리고 있는 만큼 굳이 경찰을 부르는 사고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개 구멍이 없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 그게 문제인거야.”

오민철 역시 고민이 많은 얼굴이었다.

그렇다.

하루도 쉬지 않고 코만도와의 전쟁에 대한 기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각국의 치안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범죄조직들도 이번 전쟁을 예의 주시하는 것이다.

두목을 놓친다면 더욱 강한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무조건 백퍼센트다.

그 공격이 권총수 자신이 아닌 애꿎은 시민일 가능성이 높아 두려운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번 작전은 무조건 실패다.

고민은 이어졌다.

거대 범죄 조직의 두목이 대문만을 이용하여 드나들지는 않을 것이다.

경찰의 급습을 대비해 또 하나의 출구를 준비해 놓았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권총수의 판단이었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제 오후 4시다.

도주로 탐색은 밤이 좋다.

주위가 고요할수록 천리지청술은 멀고 깊숙한 곳에서 발생하는 소리까지 탐지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이잉!

캐인의 전화가 울렸다.

캐인은 액정을 한 번 보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존!”

아는 사람인 듯 캐인은 이름을 붙었다.

이후 캐인의 표정이 조금씩 진중해지더니 듣기만 했다.

“잠깐!”

기다리도록 한 다음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조금전 포르가미 이름으로 하와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고 하는군요.”

FBI에서 프레드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었다.

“포르가미라고 하면 프레드와 산다는 영계아냐?”

오민철은 자신도 모르게 영계라고 한 자신의 표현에 히죽 웃는다.

“여자!”

권총수는 이마를 약간 찌푸렸다.

프레드의 아내 사랑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미스 브라질 선 출신이라는 미인이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의 신체 한 부분이 보통 여자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구조라고 했다.

“갑자기 여자가 하와이를 가는 이유가 뭘까?”

권총수는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사냥감에 그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전혀 잡을 생각도 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한 가지 전략은 짜 놓고 있었다.

프레드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여자라면 상당한 무게가 나간다고 봐야 했다.

즉 무슨 일이 생기면 히든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다.

인질극을 벌이는 아들을 찾아와 호소하는 어머니 같은 역할 말이다.

프레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포르가미의 말을 듣는다.

두 대의 차량이 공항주차장에 멈췄다.

조수석 사내가 재빨리 내려 뒷문을 열어주고 청바지에 진한 블루 계열의 자켓을 걸친 포르가미가 내렸다.

붉은색 별이 새겨진 야구모자를 눌러썼고 선글라스를 끼었으나 그녀의 미모는 금세 두드러졌다.

뒷 차에서 내린 세 명의 사내들이 재빨리 그녀의 에워싸며 공항 청사를 향해 걸어갔다.

운전사와 조수석에서 내린 사내까지 합한 다섯 사람의 호위를 받으며 걷는 포르가미의 걸음걸이는 도도했다.

“공항입니다. 지금 막 도착했죠.”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 안에 두 명의 백인남자가 있었는데 그중 조수석에 앉은 워커가 핸드폰으로 보고를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워커는 운전석에 있는 동료를 향해 말했다.

“가자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까지 분명하게 확인하라는 캐인의 지시였다.

워커와 동료 피펜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 포르가미 일행을 따랐다.

어둠이 짙어 오기 시작했다.

리우 외곽 이파네바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로 웅장한 저택 한 채가 있다.

저 아래 대서양의 파도가 절벽을 때리며 쿠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오늘따라 바람이 거칠었고 구름이 몰려드는 것이 비가 올 모양이었다.

끼이익!

저택에서 백여 미터 앞으로 절벽을 끼고 도는 리우 외곽도로 990번이 나타난다.

도로 곳곳에 위험이라는 글씨와 함께 휘날리는 풍선 표지판이 서 있었다.

즉 바람이 거세게 불어 올라오는 곳으로 서행하라는 뜻이었다.

끼이익!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길가 숲속에 멈췄다.

약간 평평한 공간이 있는 곳인데 왼쪽으로 보이는 대서양의 파도가 갈수록 높아오고 있었다.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차 안에는 권총수와 오민철이 앉아 있었다.

“이런 날이 우리에겐 더 좋은 것 아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힘든 길을 두 사람은 포장길처럼 걸어왔다.

사람들에게 악천후는 경계와 위험의 상징이지만 소리없이 다가가 흔적없이 적의 목을 치고 나왔던 두 사람에게는 작전을 돕는 지원부대인 셈이다.

딸칵!

권총수가 담배를 피워 물고 유리를 조금 내린다.

990번 해안도로 일대에 강풍경보가 발효중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지나가는 차량들은 급속히 줄어들더니 20여분 정도 지나자 도로는 조용해졌다.

후우!

권총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운다.

“아무리 봐도 갈 곳은 바다뿐이겠는데.”

완전한 절벽이며 암석지대이다.

단단한 바위층으로 되어있다고 하여 도주할 수 있는 지하 통로를 만들지 못할 것도 없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후두둑!

마침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금방 살펴보고 올 테니까 차에 있어요.”

“혼자 간다고?”

“바람에 비까지 오는데.”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딸칵!

권총수는 차문을 열고 내렸다.

파파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권총수의 몸 30센티 정도의 거리에서 튕겨나가고 있었다.

무형의 호신강기에 의해 비가 몸으로 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휘익!

권총수는 단번에 몸을 날리더니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말 그대로 폭풍우였다.

절벽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부러질 듯 휘어지고 있었지만 권총수는 꼿꼿하게 툭 튀어나온 바위아래 몸을 멈췄다.

좌측으로 있는 저택이 올려다 보일 정도로 더 낮은 곳이다.

주위를 일단 육안으로 살핀 뒤 내공을 이용해 오감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절벽을 울리는 파도소리와 송곳처럼 몸을 때리는 바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권총수는 고요함에 빠졌다.

스으으!

그리고 허공에 몸을 띄우고 천천히 저택 아래 부분의 절벽과 혹시라도 바다로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놓은 계단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걷지도 않는다.

공중에 떠있지만 땅을 밟고 있는 듯 움푹 패이거나 동굴 따위로 의심되는 곳은 다가가 살피고 직접 만져본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법인데 입신지공(入神地空)이라고 했다.

내공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공중과 땅의 구별이 무의미해 진다는 뜻이다.

비도 맞지 않고 바람에 옷자락도 펄럭이지 않는다.

두 번을 왔다갔다하며 살폈지만 특별한 도주로로 의심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스으으!

권총수는 몸을 띄워 저택 담장근처까지 올라갔다.

CCTV각도를 피할 수 있는 곳쯤에서 멈추고 청각을 끌어 올렸다.

빗소리 속에 두런거리는 음성이 들린다.

좀 더 내공을 높였다.

그러자 정확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 바람이 엄청난데, 눈을 뜰 수조차 없어.”

목소리에 약간의 울림이 느껴진다.

그건 비바람을 피해 초소나 아니면 작은 건물 안으로 피해 있다는 뜻이었다.

파파!

갑자기 권총수의 몸이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이어 나타난 곳은 승용차가 있는 곳이었다.

“어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권총수를 보며 오민철이 긴장의 눈빛으로 본다.

“특별한 점은 없는데.”

권총수는 잠시 이마를 찡그리더니 오민철을 돌아보았다.

“오늘 쳐버릴까?”

흠칫!

오민철은 깜짝 놀랐다.

“지금?”

“지금, 우리에게 상황이 좋잖아.”

오민철은 바깥 날씨를 살피듯 보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것.”

전쟁은 현장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항상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거친 뒤 실행에 옮겨야 한다.

계획없이 덤벼들었다가 적을 죽이면 상관없지만 이쪽이 타격을 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공격 제의는 올바르지 않다는 걸 오민철도 알고 있지만 반대하지 않은 건 권총수의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권총수는 지금이야 말로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 분명했다.

오민철은 트렁크를 열었다.

길다란 진한 국방색 총열과 두툼한 몸통과 삼각대가 보인다.

M2A1브라우닝 중 기관총이다.

무게 27킬로짜리 M2기총형으로 지상에서는 가장 위력을 보이는 지원화기이다.

갑작스런 자신의 브리우닝 기관총 요청에 캐인은 눈을 크게 떴다.

M2A1은 미군 제식기관총이며 경찰이나 FBI에서는 쓸 수가 없고 필요하면 국방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거듭되는 권총수 요청에 미국방부는 총기 유출을 허용했다.

“우리 총만?”

그러면서 오민철은 골프가방을 꺼내려고 했다.

날도 이런데 필요하겠냐는 뜻이다.

“쓸데가 있어서 준비한 총이야.”

권총수는 총열을 몸통에 끼우고 삼각대를 도로 아스팔트에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총을 얹는다.

그 사이 오민철은 골프채 가방을 열었는데 소총이 나왔다.

소총의 길이가 상당히 짧았다.

프레드 체포 작전을 대비해 FBI에서 제공한 벨기에의 총기 명가 에르스탈사가 제작한 SCAL( Special Operation Forces Combat Assault

Rifle:특수부대용 돌격소총)이었다.

탁탁!

두 사람은 30발들이 탄창을 끼우고 안전장치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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