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3화: 오래된 용병(1)
건장한 체격이다.
맞으면 죽을 것 같은 파워 실린 주먹이다.
“네그레도 중사.”
바로그때 무거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네그레도는 깜짝 놀라며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호텔문은 닫혀 있다.
그런데 입구에 권총수가 우뚝 서 있었다.
네그레도는 망설이지 않고 침대 머리맡에 놓아 둔 권총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탁!
오른손이 권총을 쥐는 순간 싹뚝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엄청난 열기가 손목을 감고 돌았다.
“헉!”
소스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네그레도는 부르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자신의 손목이 깨끗하게 잘려 나가버린 것이다.
권총을 쥔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는 네그레도는 눈을 깜빡 거렸다.
꿈인가 싶은 모양이다.
워낙 놀라 아픈지도 모르고 잘린 손목을 한참 보던 네그레도는 고개를 돌렸다.
“옷을 입으시죠.”
권총수의 말에 여자는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실내를 스윽 한 번 훑더니 텔레비전이 놓인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마주 앉아 맥주 한 잔 해본 기억도 없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사...사막의 흑새.”
권총수가 조명 스위치를 켜자 네그레도는 놀랐다.
“그 바닥에서는 은퇴한 것입니까?”
네그레도는 진정하기 위해 애썼다.
상대는 누구도 두려워하는 사막의 흑새다.
“마약 전과가 있어 받아 주지 않더군.”
“그렇죠. 알콜 마약 도박 중독자는 절대 채용하지 않죠. 그들은 가끔 금단현상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에게 총구를 겨누니까.”
“토레스를 잠깐 불러 내주겠소?”
네그레도는 움찔했다.
뉴스에는 많이 감춰졌으나 사막의 흑새가 코만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와중에 토레스를 불러내달라는 건 그를 죽이겠다는 뜻이다.
“내가 직접 찾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또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야 할 것이고.”
전장에서 자비는 금물이다.
비무장 상대를 죽이는 건 살인이지만 그렇지 않은 적을 향한 방아쇠는 정당방위이고 순수한 전쟁으로 인식된다.
권총수가 들어가면 토레스의 부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권총수에게 이곳 리우는 전장이다.
그들을 죽이는 건 아주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말속에는 이제 필요 없는 살인은 가급적 자제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일이면 불러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옆구리에 꽂아 놓은 권총을 잡았다.
“불러내지.”
네그레도가 재빨리 말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권총을 뽑으려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었다.
‘죽음의 위기를 자꾸 겪어 본 사람일수록 죽음을 더욱 두려워한다’
블랙워터(자금은 아카데미)창업자 프린스가 사석에서 자주 내뱉는 말이다.
혹독한 전쟁을 치루면서 살아남은 사람일수록 죽음의 공포를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지금 네그레도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권총수는 그런 점을 알고 권총을 뽑을 것처럼 했을 뿐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잘 아시죠?”
권총수가 빙긋 웃는다.
“호텔 뒤로 돌아가면 카타르시스라는 작은 바가 있더군요. 할 얘기가 있다면서 그곳에서 보자고 하면 됩니다.”
파파팟!
잘린 팔목에서 계속 피가 떨어졌는데 손목이 뜨끔하더니 피가 멈췄다.
“일을 빨리 처리할수록 잘린 손을 다시 당신 손목에 붙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이식수술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그레도는 핸드폰을 이용해 토레스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바(BAR)는 낡고 비좁았다.
더욱이 자정이 넘은 시간이어서 손님이라고는 구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남자 둘이 전부였다.
주인은 나비넥타이를 맨 육십이 넘은 뚱뚱한 사내였는데, 컵을 닦고 있었다.
네그레도는 커피 한 잔을 놓고 앉아 있었고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토레스가 나타났는데 예상대로 두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절친일지라도 야심한 시간에 만나자는데 의심과 경계를 늦출 토레스가 아니었다.
그가 현재의 자리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건 누굴 만나든 의심부터 하는 습성 때문이었다.
“어쩐 일인가? 중요한 얘긴가? 사막의 흑새가 어디 숨이 있는지 안다는 얘기면 더욱 좋고.”
파팟!
그때 뭔가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토레스는 고개를 돌렸는데 탁자 하나를 띄고 앉아 있는 두 명의 부하가 서로 탁자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놀라운 건 엎어진 두 사내의 목덜미에 천장의 조명을 받아 은색의 빛이 얼룩 거렸다.
못이었다.
두 부하의 뒷덜미에 못이 박혔는데 망치로 때려 박은 듯 대가리까지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클럽에서 사용하지 못했던 못을 두 부하에게 쓴 것이다.
두 부하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은 듯 움직여 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잘 안 되는 듯 꼼지락 거리기만 했다.
휘익!
위험을 직감하고 차고 있던 권총을 뽑으려던 토레스는 홱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죽!
처음에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참을 올려다보던 토레스는 비로소 누군가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신음을 흘렸다.
“사...사막의 흑새.”
권총수는 네그레도를 향해 말했다.
“지금 밖에 택시가 있을 것이오. 그걸 타고 곧장 병원으로 가면 살릴 수 있습니다.”
네그레도는 두말 않고 뭔가 묵직한 물건을 들고 달려 나갔다.
다다닥!
네그레도가 사라지고 권총수는 움켜쥔 토레스의 손을 풀어 주었다.
토레스는 재빨리 권총을 쥐려고 했으나 이미 권총수의 손으로 옮겨져 있었다.
툭!
탄창 멈치를 눌러 탄창을 꺼내더니 공중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약실에 있는 한 발이 발사된 것이다.
탁!
그리고 빈 권총을 건네준다.
토레스는 뒤쪽 탁자에 죽은 부하들 권총을 떠올렸다.
그걸 확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건 무리였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을 만나 죽이고 쫓기고 했지만 칼도 아닌 못을 이용해 살인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것도 찌르는 것이 아닌 던져서 저토록 깊숙하게 박아 넣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몸에 칼이 쉽게 박힐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복부를 노리는 것인데 힘들이지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역량으로는 권총수를 상대할 수 없다.
차라리 긴장을 풀고 차분해져야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침착해야 어떤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
부하들에게 이곳을 간다고 했으므로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찾아올 것이다.
그때, 그때까지만!
“이상하군. 당신을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 볼 것이 많았는데 이렇게 마주 앉으니 갑자기 할 말이 없습니다.”
슈우우!
권총수의 오른손바닥이 앞으로 쭈욱 뻗어 나갔다.
슥!
그런데 손바닥에서 또 한 개의 손바닥이 빠져나오는가 싶더니 토레스 면전을 그대로 찍었다.
빡!
정확히 찍었다.
토레스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는데 얼굴에 한 마리 용이 선명하게 문신하듯 새겨져 있었다.
소림의 보리옥룡인(菩提玉龍印)이었다.
단순히 용 문양 하나가 새겨진 듯 보이지만 머릿속은 이미 가공할 극양의 내력으로 인해 완전히 잿더미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맞춰 나비넥타이를 맨 주인이 다가왔다.
“수고 좀 해주시오.”
“염려 마십시오.”
권총수가 사라지자 주인은 장의사에 전화해 시신 세 구의 처리를 요청했다.
그리고 30분이 채 안되어 세구의 시신은 장의사내들에 의해 깨끗하게 치워졌다.
***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걸 느꼈다.
4년전 아편 구입을 위해 아프카니스탄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탈레반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얘기가 잘되었고 카불 호텔에서 성대하지는 않았지만 조촐하고 짧은 파티까지 열었다.
탈레반의 간부들이기 때문에 언제 누가 신고를 하여 미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이사하듯 뭐든 빨리 끝내고 자리를 떠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는데 그날도 그들은 먼저 일어났다.
그런데 탈레반이 떠나고 이십여분 정도 지나 일단의 사내들이 AK를 쏘며 들이닥쳤다.
러시아 마피아였다.
어느 범죄 집단이건 신생 조직은 거칠고 무자비하다.
자신들의 이미지를 그 시장에 뿌려야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잔혹하게 나가는 것이다.
그날 호텔 파티장을 급습한 이들은 러시아 극동 마피아 야쿠트파였다.
생긴지 3년이 채 안됐지만 이미 그들의 잔인함은 널리 퍼졌고 자신들이 눈여기고 있던 아프카니스탄 아편을 코만도가 점유하려 들자 습격을 한 것이다.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당시 일곱 명의 부하들이 사망했고 자신도 그들의 손에 거의 붙잡힐 뻔 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소식을 들은 탈레반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두려움이 슬슬 살아나고 있었다.
“꿀꺽!”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세 잔째 마시고 있다.
나이트가운 차림으로 커피를 마시던 프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었다.
정원 곳곳에 AK를 든 경호원들이 있었다.
싸움에서 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종류가 다르다고 했다.
싸움에서 진다는 두려움은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감정은 공포다.
그런데 어제 밤부터 죽음을 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한곳이 묘하게 울렁 거린다.
“빌어먹을!”
스스로가 못마땅한 듯 버럭 소릴 지른다.
몇몇 경호원들이 놀라며 돌아보았다가 이내 할 일을 계속했다.
그때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사박사박 들렸다.
아내다.
브라질 미인대회에서 선(善)출신인 포르미가였다.
프레드와 나이차니는 22년이다.
본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오 년전 새로 맞아 들였다.
포르미가가 다가와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았다.
“걱정 있군요?”
흔히들 녹아내리는 목소리라고 한다.
자신 또한 포르미가의 물기 젖은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며 잠자던 본능까지 깨어내기도 한다.
그런 포르미가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아 준다.
“미가!”
허리를 감고 있는 포르미가의 손을 떼고 돌아섰다.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행이란 말에 포르미가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럽게 웬 여행이냐는 뜻인데 프레드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보름에서 한 달 동안만 잠시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좋겠구나. 하와이 여행가고 싶어 했잖니. 이 틈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포르미가의 눈이 동그래졌다.
단지 젊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게도 포르미가는 신체적으로 명기(名器)를 갖고 있었다.
만 명에 한 명 정도 있을까 말까 한다는 몸.
중세시대에는 잠자리에서 남자를 죽인다고 하여 명기를 갖고 있는 여자를 마녀로 부르기도 했다.
탄력 좋은 고무처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를 스스로 조이고 넓히며 강하게 흡착한다는, 말로만 듣던 명기에 프레드는 영혼을 빼앗기는 쾌감을 느낀다.
“가거라.”
그녀가 다칠까봐 잠시 피해 있으라는 뜻이다.
“싫어요.”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같이 가면 갈거에요. 나 혼자는 안가요.”
토라진 표정에 프레드는 길게 한숨을 내 쉬며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