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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60화 (560/651)

제560화: 마주선 두 사람(2)

총을 차에 두고 왔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해서는 총을 신체에서 떼어 놓으면 안 된다는 둥가의 말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펠리팡?”

“왜 이러는 거요? 난 실바란 말이오.”

이제 살길은 자신이 펠리팡이 아닌 실바라는 걸 악착같이 강조하는 것 말고는 없다.

여기서 포기하거나 밀리면 죽는다는 걸 알고 실바는 더욱 핏대를 높였다.

“펠리팡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난 실바요. 믿기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지갑에서 운전 면허증을 꺼냈다.

“얼마든지 보시오. 여기 내 이름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똑똑히 보란 말이오.”

아라나 경위는 운전면허증을 받아 보았다.

운전면허에는 실바라는 이름이었다.

“사람 잘못 보았소. 물론 나와 많이 닮았다면 착각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씨익!

아라나 경위가 웃었다.

실바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알 수 있었는데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뛴다.

아라나 경위가 갑자기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술상자를 놓을 때 맨 아래 놓는 받침목들이 쌓여 있었는데 그중 한 개를 들어 올려 힘껏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꽈직!

받침목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아라나 경위는 얇은 판자가 아닌 바닥을 지지하는 두툼한 각목을 거머쥐었다.

탁탁!

바닥에 두어번 두들겨 본 뒤 다가왔다.

“펠리팡씨?”

“아니오!”

휘이익!

각목이 떨어졌다.

실바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막았는데 비명을 질렀다.

“억!”

오른팔을 내렸는데 힘을 쓰지 못하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했다.

각목을 맞은 부위의 뼈가 부러진 것이다.

“펠리팡이지?”

“아니라니까!”

빠아악!

이번에는 왼손으로 막으려다 또 부러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재빨리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각목보다 더 빠를 수는 없었다.

머리는 피했으나 왼쪽 어깨가 맞았다.

투툭!

본인이 아닌 구경하는 오민철의 귀에도 분명히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뼈도 나갔군.”

오민철이 싱긋 웃었다.

어깨뼈는 단순히 팔을 지지하는 뼈만이 아니다.

몸의 중심을 잡는데 굉장한 중요 역할을 하는데 실바가 휘청거린다는 건 뼈가 부러졌고 그쪽으로 힘을 쓸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아라나 경위는 계속 펠리팡이라고 불렀고 실바는 아니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각목으로 후려쳤는데 실바는 점점 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펠리팡이 맞다고 하는 순간 죽는다는 걸 실바는 알고 있었다.

이렇게 아니라고 나간 이상 죽어도 펠리팡이 누군지 모른다고 해야 한다.

초지일관(初志一貫)이다.

빠악!

컥!

퍼퍽!

억!

빠아아아!

이번에는 각목이 머리통을 정면으로 후려쳤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실바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술박스가 쌓인 구석으로 넘어지더니 주저 앉았다.

“어어억! 난 실바요. 나...난 실바, 고향은 상파울루 마농가 9번지...”

파팟!

자신이 펠리팡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고향을 말했는데 그 순간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끝났군.”

오민철이 돌아본다.

무슨 뜻이냐는 시선인데 권총수는 가느다랗게 웃었다.

“펠리팡인지 아닌지만 대답하면 되는데 굳이 주소까지 말을 왜 하냐고.”

“조금이라도 진심이라는 걸 인정 받으려는 것 아냐?”

“아라나 경위는 이름을 물었지 주소는 묻지 않았어. 그런데 주소까지 말했다는 건 펠리팡의 주소와 비교해 보라는 것 아냐. 형 같으면 누군가 권총수가 맞냐고 두들겨 패면 아니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주소까지 말하겠어?”

“주소는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줄 결정적 증거는 아니지. 확인 불가하니까.”

“실바는 자신이 펠리팡이라는 걸 고백한 꼴이야. 고향 주소까지 바꿨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한 거지. 바꾸지 않았다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주소를 조사하는 건 아라나 경위

몫이지 자기 입으로 떠들 것 없는데 스스로 말했어.”

퍼퍽!

아라나 경위가 옆에 놓인 술박스 한 개를 뜯었다.

까샤샤 한 병을 꺼내더니 상표를 살피는데 50도라는 글씨가 보인다.

딱!

마개를 따더니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신다.

“커어!”

무척 독한 듯 트림을 하며 이마를 찡그렸다.

그러더니 손에 들린 술을 주저앉아 있는 실바의 머리에 붓기 시작했다.

콸콸콸!

실바의 머리와 어깨는 순식간에 술로 젖었다.

마지막 남은 방울은 자신이 다시 마시고 빈병을 한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 아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화아악!

실바의 눈이 커졌다.

알콜도수 50도면 기름처럼 불이 붙는다.

아라나 경위는 실바의 몸에 불을 붙이려는 것이다.

“펠리팡!”

“시...실바!”

딸칵!

라이터를 켰다.

50도면 휘발성이 강하다.

즉각 몸에 붙는다.

기름이나 알콜을 이용한 불길은 좀체 꺼지지도 않는다.

아라나 경위는 단순히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실바가 펠리팡이라는 걸 확신하고 태워 죽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묻지. 너 펠리팡이지?”

아라나 경위의 눈이 고요하다.

차라리 분노하고 흥분하여 번득이는 눈빛은 무섭기라도 하지만 지금처럼 너무 단정하듯 잔잔하면 가슴이 짜릿해진다.

그건 반드시 불을 지른다는 신호였다.

“시...실, 맞소.”

실바라고 하려다 라이터를 쥔 아라나 경위의 손이 몸으로 다가오자 실바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펠리팡이오. 으으으!”

“다시 말해봐. 펠리팡이냐?”

실바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금니를 물고 있었는데 시선은 여전히 켜져 있는 아라나 경위의 라이터에 멈춰 있었다.

이번 대답이야 말로 생사를 결정한다.

확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앞선 대답은 두려움에 뱉어낸 거짓말이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꿀꺽!

침을 삼킨다.

아라나 경위를 바라보는 눈이 붉게 충혈 되었는데 자신의 삶이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했다.

“내가 펠리팡이오.”

한숨처럼 내뱉은 실바가 잠시 눈을 감았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는데 마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사람처럼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눈을 뜬 실바는 말을 이었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꾼 것도 맞소.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당신의 아내를 뒤에서 밀었소. 넘어진 여자를 후진하며 한 번 더 깔아뭉갰지.”

아라나 경위의 눈자위가 실룩거렸다.

멀쩡한 사람을 뒤에서 친 것도 가슴 아플텐데, 확인사살 하기 위해 후진하여 다시 한 번 뭉갰다는 건 너무 잔인했다.

“다시 말하겠소. 난 펠리팡이오. 아라나 경위 당신 아내를 죽였소.”

이제는 펠리팡이 된 실바는 눈을 감아 버렸다.

모든 걸 포기한 얼굴이었다.

슥!

아라나 경위는 들고 있던 라이터를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옆에 차고 있는 권총을 뽑았다.

‘자선이군’

그걸보며 오민철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불에 태워 죽이는 것보다 총으로 간단하게 사살하는 것이 펠리팡의 입장에서는 편할 일이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야말로 죽는 자의 최고 바람 아니던가.

타앙!

총소리가 울렸다.

총알은 정확히 펠리팡의 이마를 관통했고 주르륵 소리를 내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쿵!

펠리팡은 옆으로 쓰러졌다.

아라나 경위는 죽은 펠리팡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기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얼굴이다.

오랜시간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펠리팡을 쫓는데 모든걸 바쳤다.

근무에 소홀하는 바람에 친구들은 모두 한두 계급 더 진급을 하고 영전을 했지만 자신은 제자리였다.

어쩌면 옷을 벗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런데...

그토록 증오하고 단 한시도 분노를 풀어 헤쳐본 적이 없는 원수를 죽였는데 무거운 이 가슴은 무엇인가.

오민철이 권총수를 흘긋 보더니 아주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난 저 기분을 알 것 같아’

권총수가 돌아본다.

오민철은 다시 아라나 경위를 보며 아주 작게 입을 열었다.

‘진짜 좆같지. 원수를 죽였으면 속이 후련하고 십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그런 황홀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찌뿌둥하면서 이상해.’

오민철은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를 죽인 적을 추적했다.

오민철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품을 더욱 많이 물었는데 그건 그만큼 비렌드라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벌어들인 돈으로 조국 네팔의 아이들 교육사업에 보낼 만큼 열정적인 사내였다.

교육만이 네팔이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항시 말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비렌드라가 죽고 너무 슬퍼 입맛을 잃었다.

그리고 끝내 탈레반들을 찾아 죽였다.

그런데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복수가 끝나자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복수는 했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비렌드라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아라나 경위 또한 그럴 것이다.

당분간은 허무함에 빠져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

소문은 빠르다.

다른 사람도 아닌 프레드의 친위대 레드베저의 우두머리가 운영하는 클럽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내용이 뉴스에까지 보도가 되었다.

물론 권총수는 자신이 저지른 일임을 숨기지 않았고 일부 브라질 언론에서 사막의 흑새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음성 전쟁, 즉 정체를 숨기고 은밀하게 접근하여 제거한 뒤 사라지는 게릴라식 전술이었다면 이제는 전면전이다.

유리한 쪽은 코만도였다.

워낙 많은 조직원들을 거느리고 있고 주위 민간인들까지 그들 편이다.

성탄절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그들을 싫어하는 브라질 사람들은 없다. 특히 빈민가 파벨라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재림 예수의 가치를 갖고 있었다.

거기다 사막의 흑새를 발견하거나 있는 곳을 신고한 사람에게 백만달러를 지불하겠다는 현상금이 걸렸다.

“커피 맛이 확실히 좋네.”

권총수와 오민철은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신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다른 곳도 아닌 둥가의 업소인 클럽 맞은편 노천 카페였다.

오늘로 벌써 닷새째다.

권총수는 변체환용으로 원래 모습을 바꿨는데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좀 더 늙어 보이는 칠십의 노인이었다.

오민철 또한 두꺼운 뿔테 안경을 낀 마흔 중반으로 보였다.

지금 골목 노천카페에 손님중 절반 이상이 둥가의 부하들이거나 지원 나온 코만도 조직원들이다.

언젠가는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 전략이다.

‘오늘도 쉰 명은 넘을 것 같군’

권총수는 혼잣말을 흘렸다.

싸락!

싸라락!

권총수 오른손이 아래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는데 쇳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오기 전 저 아래 철물점에 들러 15센티 가량의 길이를 자랑하는 나사못 일 백여 개를 구입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전쟁에서 총기를 사용할 때와 무성무기를 사용할 때가 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작전은 완전해지지 않는다.

수많은 총을 갖고 있는 사내들이다.

우선 탁자 하나를 건너 뛰어 앉아 있는 세 명의 사내만 해도 탁자 밑에 AK를 숨겨 놓고 있었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총보다 적엽비화의 수법으로 날리는 암기가 살상력이 탁월하고 효과를 보인다.

“오늘도 안 올 모양인데.”

두 사람이 기다리는 건 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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