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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59화 (559/651)

제559화: 마주선 두 사람(1)

어쨌든 라모스의 죽음은 사내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펠리팡의 행방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당신도 이렇게 죽는다’

딸칵!

권총수가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더니 불쑥 내민다.

사내는 순간적으로 흡연 욕구가 생겼지만 주춤 거렸다.

“피워요.”

권총수가 담배를 던졌다.

“으허허허!”

사내는 또다시 기겁하며 온 몸을 떨었다.

지금 담배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고 있다.

뚝!

더욱 놀라운 건 자신이 왼손을 뻗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멈췄다는 것이었다.

꾸울꺽!

마른침을 삼킨다.

과연 잡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저 담배속에 무슨 함정은 없을까.

딸칵!

그때 권총수는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걸 보고서야 사내는 손을 뻗었는데 결코 담배에 어떤 살의를 담지는 않았음을 확인했다.

담배를 받아 입에 넣고 빨아 당기자 독한 연기가 목구멍을 지진다.

말보로 레드였다.

담배가 한 모금 들어가자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면서 마음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살아남은 동료 하나는 등을 돌린 채 석상이 되어 버렸는데 필시 권총수가 어떤 제재를 가했음이 분명했다.

“으와헙!”

담배를 피우던 사내가 또다시 놀란다.

권총수의 얼굴이 본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사...사막의 흑새.”

원래 얼굴은 단번에 알아본다.

권총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펠리팡은?”

“지금 여기에 없소. 10시쯤 돌아 올 것이오.”

채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했다.

그건 완전히 저항을 포기하고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완전한 항복이었다.

권총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곳 클럽의 사장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둥가는 보스 프레드의 친위대장이다.

사막의 흑새가 둥가를 찾는다는 건 죽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둥가 역시도 지금 리우 시내를 이 잡듯 뒤지면서 사막의 흑새를 쫓고 있다.

“흐음”

사내는 한숨을 쉬었다.

주인이 있든 없든 여긴 둥가의 둥지다.

그런데 적이 둥지로 들어왔다는 건 지휘부가 점령당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지휘관은 잠깐 외출하여 있지 않지만 영토는 완전히 점령당한 꼴이었다.

패색이 보인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둥가가 앞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진행되는 전황 자체가 그에게 완전히 불리하다.

“그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권총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내의 대답에서 거짓이 없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들르기는 합니다.”

권총수는 밖에 있는 오민철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 방쪽 통로를 따라 오면 술 창고가 있어. 입구에 떡대 한 명이 서 있는데 내가 묶어 놓을 테니까 신경 쓰지마. 그리고 아라나 경위님도 같이 와.’

입술만 달싹 거렸다.

누가 보면 습관적으로 입술을 삐쭉 거리는 것으로 볼 것이다.

이어 오른손이 닫힌 문을 향해 뻗어갔다.

쑤욱!

닫힌 문에서 작은 먼지가 떨어졌다.

탄지신통은 극양의 지력이다.

더욱이 반노환동의 경지에 다가선 심후한 내공이 더해지면서 웬만한 쇠는 녹여 버린다.

지력은 문을 녹이는 것을 넘어 뚫으면서 태워버리고 있다.

물론 흔적 없이 관통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자신의 무공을 감상하듯 지그시 바라본다.

지금쯤 입구에 서 있는 사내는 마혈과 아혈과 수혈까지 제압되어 오민철과 아라나 경위가 들어와도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통성명을 하지 않았군요. 사람들은 날 사막의 흑새라고 부르더군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지금까지 권총수의 태도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고 말투 역시 부드러웠다.

자신들을 포로 취급하며 무시한다거나 힘에서 월등히 우위에 있다는 걸 자랑하듯 야만적인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엄격할 만큼 예의를 차렸다.

차라리 욕을 하고 무자비한 폭력성을 드러낸다면 차라리 대응하기가 수월할 수도 있다.

어쩌면 예의가 분명하여 더욱 소름끼치는지도 모른다.

“카마초.”

정중하게 말했으니 자신도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딸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오민철과 아라나 경위가 들어섰다.

흠칫!

아라나 경위를 발견한 카마초가 깜짝 놀란다.

왜 권총수가 펠리팡을 찾는지 알아차린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코만도 조직에 막 들어왔을 때였다.

어느 날 조직이 시끄러웠고 나중 펠리팡이란 중간간부 한 명이 자신을 교도소에 보낸 경찰관의 아내를 차로 밀어 죽였다는 얘길 들었다.

그 경찰관의 이름이 아라나였고 지금 들어오고 있으며 복수에 눈이 뒤집힌 그를 몇 번 만나기도 했다.

즉 안면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한 놈 밖에 안 죽였네.”

오민철이 죽은 라모스를 내려다보았는데 카마초의 눈이 흔들린다.

죽은 사람을 보고서 한 놈 밖에 죽이지 않았다는 말을 태연하게 뱉어 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인구 십만명당 살인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브라질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지 못하고 들어 본 적은 없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아무리 갱단이라고 해도 굉장한 계산과 마음의 준비 없이는 어렵다.

‘얼마나 죽였을까?’

사막의 흑새는 용병이다.

즉 전장에서의 많은 사람을 죽였겠지만 이런 도심 속에서 저지르는 살인과는 환경이 다르고 이유가 틀리다.

카마초는 자신이 내일 아침 태양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위님 10시쯤 온다는군요.”

권총수는 아라나 경위에게 말해 주었다.

아라나 경위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아홉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펠리팡이 하는 일은 뭔가?”

아라나는 카마초 대신 마혈이 제압된 사내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내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려다 보니 당연히 지치고 땀을 흘리는 것이다.

“둥가를 대신해 이곳 클럽을 관리합니다. 또한 이곳 떼찌스 골목의 마약 유통을 맡고 있소.”

“자네, 내가 누군지 아나?”

“물론입니다. 아라나 경위 아닙니까?”

아라나 경위는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아나? 난 자네를 모르는데?”

“당신 인터뷰 장면을 보았소. 아내를 죽인 놈은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고 외치는 걸 말이오.”

언젠가 방송국에서 취재를 왔고 그는 기자의 질문에 분명하게 말했다.

‘범인은 절대 나와 공존할 수 없소’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됩니다. 내가 죽든 아니면 그 놈이 죽든 반드시 한쪽이 죽어야 모든 것이 끝날 것이오’

당시의 인터뷰가 방송되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비록 아라나 경위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방송 인터뷰에서 현직 경찰관이 노골적인 복수심을 드러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관도 사람이다.

복수를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그러나 그 인터뷰가 끝나고 몇 번에 걸쳐 코만도 조직으로 의심되는 총격을 받았다.

다행히 다치거나 죽지는 않았지만 아라나 경위는 펠리팡의 소행으로 단정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원한은 더욱 깊어진 것이다.

탁탁!

아라나 경위는 사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두 번 쳤다.

브라질 갱단에서 상대의 머리를 때리는 건 한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곧 죽여줄 테니 기다려라’

펠리팡과 사내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른다.

단지 같은 편이라는 건 아라나에게 충분히 죽이고 싶은 감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름이 뭔가?”

“보스케!”

“보스케, 지옥에서 보세.”

탕!

아라나 경위가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깜짝 놀랐다.

죽여서는 안될 만큼 선한 놈은 아니지만 이유가 뭐냐는 눈빛이었다.

“이놈은 나에게 거짓말을 했어. 난 이놈을 알아. 그런데 한 번 떠보기 위해 모른척 했지. 그랬더니 예상대로 거짓말을 술술 하는군.”

인터뷰 이후 모두 일곱 차례 공격을 받았는데 그때 세 번의 피습에서 보스케의 얼굴을 확인했다.

물론 그의 이름이 뭔지 어느 구역 소속인지 알지를 못해 찾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우연히 만난 것이다.

아라나 경위는 권총을 쥔 채 술박스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오민철은 길게 숨을 내쉬었는데 그건 아라나 경위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아내를 잃은 기분이 어떤건지 자신도 조금은 이해한다.

파리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랫도리가 후들거린다.

열시가 조금 넘어 차량 한 대가 클럽 앞에 멈췄다.

차는 빨간색 스포츠카였는데 정장을 한 사내가 내렸다.

길가에 어슬렁거리고 있던 두 명의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아는 체를 했고 가볍게 서로를 끌어 안았다.

수고하라는 듯 손을 들어보인 사내는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클럽에 들어가서도 사내는 바빴다.

여기저기서 아는체 하는 손님들이 많았고 일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실바!”

“오우 푸욜 오랜만이군. 가비 자네도 왔군.”

술을 마시는 사내들의 이름을 부르며 주방쪽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실바!”

“사에스, 오늘도 자네가 고생 하는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내 사에스의 제압된 혈도는 조금전 권총수에 의해 다시 풀렸다.

수혈이 제압되었다 풀렸기 때문에 사에스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덜컹!

스포츠카에서 내린 실바라는 사내는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세좋게 들어가던 실바의 걸음이 멈추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세 명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술박스를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두 구의 시신이 눈에 띄었다.

실바는 멈칫하며 눈을 깜빡 거렸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부하들이자 여기서 일하는 사내들이었다.

파팟!

그러다 그의 눈이 오른쪽 끝에 머물렀는데 번개가 치듯 크게 빛난다.

아라나 경위였다.

“이름을 실바로 바꿨다고?”

아라나 경위가 덤덤한 표정으로 묻는다.

“얼굴도 몰라 보겠군. 어서 오게 펠리팡!”

아라나 경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라나 경위는 천천히 걸어 실바라는 사내와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섰다.

“어떻게 잘 살았나? 얼굴도 좋고 옷도 고가의 브랜드로군. 제대로 출세한 모양이야. 하긴 내 아내를 죽였으니 조직에서 준 선물이 적지 않았을 거야.”

“당신은 누구요?”

실바는 아라나 경위를 처음 본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라나 경위는 깊은 시선으로 실바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아라나 경위를 모른다고 하면 그동안 나의 수고가 너무 초라해지지 않겠나? 자네가 자동차로 밀어버린 마르타의 남편인 날 모른다고 외면하면 말일세?”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오. 난 아라나가 누구고 마르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관심 없소.”

탕!

분노한 아라나 경위는 공중에 대고 권총 한 발을 발사했다.

클럽의 시끄러운 음악소리 때문인지 총소리를 구별하지 못한 듯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사에스라는 사내는 들어와 보지 않았다.

척!

한 걸음 더 다가간 아라나 경위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그래, 모른다고 하겠지. 그래야지. 고맙네. 자네가 계속 시치미를 떼야 게임이 더 즐겁지.”

다가오는 아라나 경위를 보며 실바는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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