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8화: 전쟁 기술자(3)
이번에도 관광객들인 듯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떠들었다.
“우리도 그만 들어가죠?”
오민철이 입을 열어 말했고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엇!”
그런데 막 일어나는 권총수를 바라본 아라나 경위가 소스라쳤다.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권총수가 예순 가까운 주름살 있는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꿀꺽!
믿어지지 않는지 침을 삼키며 한참을 보고 있자 오민철이 피식 웃었다.
“총수 얼굴이 알려져 있어 잠깐 변장 좀 한 건데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아니, 변장을 했다면 얼굴에 뭔가를 칠하기도 하고 가발도 쓰고 해야 하는데.”
같이 차를 마시고 있던 권총수는 그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경위님께서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강호에서는 변체환용이라고 하죠.”
“변체환용?”
“헐리우드 배우들이 변장하는 건 이에 비하면 촌스럽죠. 강호는 그런식의 변장을 하지 않습니다.”
오민철은 마치 자신이 강호의 절정고수나 되는 듯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강호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머나먼 곳이죠.”
권총수는 고개를 돌리고 피식 웃었다.
괜히 오민철의 눈에 띄이면 자신을 무시했다고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장을 한다는 것인지?”
“그냥 합니다.”
“그냥?”
이해를 못하는 얼굴이다.
어떻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수 있단 말인가.
“내공이라는 것으로 합니다.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자 그만 가죠.”
더 이상 설명하기가 난감한 듯 오민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클럽을 향해 걸어갔다.
아라나는 걸어가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오후 5시 30이다.
그런데 클럽은 말 그대로 뜨거웠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두 사람 죽이는데.”
오민철이 플로워에서 춤을 추고 있는 남녀 한 쌍을 가리키며 말했다.
“탱고죠.”
아라나가 말했다.
“저 두 사람 아주 유명합니다.”
두 남녀는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서 현란한 발동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로는 격렬했다가 때로는 바닥을 스치며 서로를 당기고 미는데 마치 밀려 왔다 밀려가는 물결과 같았다.
춤이지만 에너지가 넘쳤고 통통 튀며 플로워를 누비는 두 사람을 향해 사방에서 박수와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
오민철도 진심으로 감탄한 듯 박수를 쳤다.
“잘 춘건 잘 춘다고 해야지.”
더욱 힘차게 친다.
한편 아라나 경위의 눈은 바쁘다.
많은 사람을 살피고 검색하듯 지켜봤으나 아내를 죽인 펠리팡은 보이지 않았다.
권총수 역시 둥가로 추정되는 인물을 찾지 못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다.
얼마나 흘렀을까.
흘긋!
권총수는 시계를 봤는데 어느덧 밤 아홉시가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 손님들 또한 빠르게 물갈이가 되고 있었다.
낮에 들어왔던 관광객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떠나고 지금은 현지인들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었다.
스윽!
그때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민철은 어디 가느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권총수는 사람들을 헤치고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클럽 입구 오른쪽으로 작은 복도가 있고 오른쪽으로 꺾였다.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여 들어가자 화장실이 나타났는데 여자용이 앞서 있었고 남자용은 안쪽이다.
권총수는 남자용쪽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대변을 볼 수 있는 공간과 소변기 사이가 상당하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 있었다.
흡!
흐흐흡!
뭔가 빨아 드리는 소리인데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코카인이다.
손바닥과 작은 종이 위에 코카인 가루를 놓고 백달러 짜리 지폐를 둥글게 말아 빨대를 만든 뒤 코에 대고 흡입하는 것이었다.
일부는 아예 플라스틱 빨대를 이용했다.
권총수는 눈을 좁혀 살핀다.
그리고 사람들속에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주 작은 봉지에 든 흰 가루를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고 있었는데 클럽 종업원이었다.
종업원이 손님들을 상대로 코카인 장사를 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 화장실까지 찾아와 태연하게 코카인을 사가지고 돌아가기도 한다
권총수는 아무말 없이 소변기 앞에 서서 사내를 흘긋 거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물건을 구한 사람들이 썰물처럼 화장실을 벗어났다.
일부는 화장실에서 곧장 흡입했고 일부는 가지고 나간 것이 자기 자리에서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도 하나 주시죠.”
권총수가 종업원 앞을 막으며 물었다.
“얼맙니까?”
종업원 사내는 씨익 웃으며 갖고 있던 백달러 지폐 한 장을 들어 올렸다.
봉지 하나에 백달러라는 것이다.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백달러 한 장을 건네주고 코카인이 든 봉지를 받았다.
“이름이?”
갑자기 이름을 묻자 사내가 권총수를 위아래로 훑었다.
“라모스.”
권총수는 갑자기 지갑을 꺼내더니 가득 들어있는 미화 백달러짜리를 꺼냈다.
대략 삼사십 장은 되어 보이는 거액에 라모스 눈이 커졌다.
“그 만큼 사려면 여기서는 안돼.”
들고 있는 돈만큼 코카인을 사려고 하는줄 아는 것 같았다.
“코카인이 아니고, 사람 한 명 찾는데 협조하면 수고비로 줄수 있죠.”
파팟!
예상못한 제의에 라모스의 눈이 커졌다.
“누구?”
권총수는 맑게 웃음을 지었다.
“펠리팡.”
권총수의 주먹 가득 쥐어있는 지폐에 한껏 고조되었던 라모스의 흥분이 순식간에 가라 앉으며 얼굴이 싸늘해졌다.
“펠리팡이 누구요?”
권총수는 환하게 웃었다.
“있잖습니까? 그때가 언제였더라 거 뭐냐 자기를 잡아 넣은 경찰관에게 앙심을 품고 아내를 차로 밀어 버린 사람, 그 사람 이름이 펠리팡 아닙니까.”
사내는 권총수의 위 아래를 한번 훑더니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들어 본 것 같기는 한데 일단 날 한 번 따라와보시오.”
라모스는 앞장서서 화장실을 걸어나갔다.
그러더니 클럽 맨 오른쪽 통로를 이용해 걸어갔다.
통로 끝, 안쪽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에 한 명의 사내가 서 있는데 그곳에서 종업원들이 술을 가지고 나왔다.
보나마나 주방 겸 술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입구의 사내는 아마 술이 취해 들어 올 수도 있는 손님을 제지하기 위해 서 있을 것이다.
라모스는 입구의 사내를 향해 아는체를 했다.
그러자 입구 사내가 눈짓으로 뒤를 따라오는 권총수가 누구냐는 듯 묻는다.
권총수는 뒤에 서 있기 때문에 앞서가는 라모스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라모스가 사내를 향해 야릇하게 웃는다는 걸 충분히 알아차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주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라모스는 곧장 들어갔는데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예상대로 술 창고였다.
각종 술들이 박스 가득 쌓여 있었으며 오른쪽으로 아파트 경비실 보다 조금 더 작아 보이는 사무실에 두 사내가 앉아 있었다.
필시 술의 재고를 관리하는 직원들일 것이다.
창문을 통해 라모스와 권총수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문을 열고 나왔다.
라모스는 직원들 사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누구냐 넌?”
조금전 화장실에서의 표정은 찾아 볼 수 없다.
라모스는 권총수를 보며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짓더니 동료들 더러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펠리팡을 찾는 분이셔.”
펠리팡이라는 말에 사무실에서 나온 두 사내가 흠칫 놀란다.
딸칵!
그때 들어온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에스라는 사내가 창고 문을 밖에서 잠가 버린 것이다.
“이봐, 경찰 같아 보이지는 않고 펠리팡은 왜 찾아?”
이제 자신들 페이스로 여기는 표정이다.
권총수는 육십의 노인으로 변장을 했다.
그래서인가 사내들은 총을 쥔다든가 하며 만약을 대비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툭!
권총수는 옆에 쌓여 있는 박스를 열었다.
브라질의 전통 술 까샤샤가 들어 있다.
그중 한 병을 꺼낸 권총수는 술병을 살폈는데 38도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왜? 한 잔 하실라고?”
라모스가 낄낄거린다.
퍼억!
말리고 피하고 할 틈도 없었다.
라모스의 머리에서 피와 술이 같이 흘러내렸다.
라모스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자 권총수는 술 한 병을 다시 꺼내 재차 후려쳤다.
뻐억!
불과 2,3초도 되지 않은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라모스는 휘청하더니 쌓여 있는 술 박스더미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이 새끼가!”
사무실에서 나온 두 사내중 한 명이 주먹을 뻗어왔다.
휘익!
권총수는 마주 주먹을 뻗었는데 백보신권이었다.
뻐퍼억!
두 주먹이 부딪치며 사내는 절박한 비명을 터뜨렸다.
“크흑!”
손목뿐만이 아니라 오른팔 전체가 부서졌다.
주먹에 실린 강력한 내공이 사내의 오른팔을 완전히 아작 내버린 것이다.
홱!
마지막 사내가 재빨리 돌아섰는데 그대로 멈춰섰다.
사무실에 두고 온 총을 가지러 가려는 것이었는데 권총수가 마혈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권총수는 라모스를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충격이 큰 듯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우당탕!
권총수는 옆에 있는 술 박스 몇 개를 밀어내 버리고 의자 높이 정도된 상자위에 주저앉는다.
“라모스씨!”
권총수는 나직한 목소리로 불렀다.
“언뜻 봐도 펠리팡은 클럽에 없는 것 같은데 지금 어디있습니까?”
라모스는 고개를 들어 권총수를 노려 보았다.
권총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외인부대 가면 백병전술이라는 과목을 배우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죠. 눈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아직 투항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부우욱!
깔고 앉은 박스 측면으로 손을 찔러 넣더니 손에 잡힌 술병 하나를 꺼낸다.
움찔!
라모스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하지만 박스 더미가 등뒤에 가득하여 물러설 수가 없다.
퍼퍼퍽!
이번에는 술병이 깨지지 않았다.
같은 술병에 맞아도 깨지지 않으면 더 아프고 상처가 깊어진다.
권총수는 내공으로 술병이 깨지지 않도록 막으며 라모스 머리를 찍었는데 마치 쇠몽둥이 같았다.
커억!
라모스는 끝내 피거품을 토하며 엎어졌다.
창고에 잠시 침묵이 감돈다.
오른팔 뼈가 산산이 부서진 사내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상하좌우로 움직인다.
손목만 부러졌다면 움직일 수가 있다.
부러진 부위만 조심하면 크게 거추장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마치 칼로 다져 놓은 듯 뼈가 산산조각이 나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팔을 늘어뜨리는 것 뿐이었다.
“크흐흐!”
힘겹게 움직여 보려는 순간 칼로 찌르는 듯 아파온다.
부서진 조각들이 서로 충돌하며 온 몸이 찌릿찌릿해 오기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팔을 늘어 뜨린 채 있는데 이번에는 권총수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움찔했다.
“당신이 좀 도와 주시겠습니까? 펠리팡의 행방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더니 고개를 다시 라모스에게 돌렸다.
기절했던 라모스는 조금씩 깨어나 꿈틀대고 있었다.
“전쟁에서 붙잡힌 포로는 인권을 보장 받을 권리가 있지만 뒷골목은 그런 것 없다고 들었소.”
권총수가 쓰러진 라모스 얼굴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빠아악!
강력한 충돌음이 울리며 라모스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손바닥은 3센티 정도의 깊이로 파고들어 새겨졌는데 라모스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졌다.
덜덜덜!
사내는 팔이 아파서 떨고 충격에 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