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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57화 (557/651)

제557화: 전쟁 기술자(2)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한 대의 혼다 SUV와 두 대의 벤츠가 들어섰다.

세대의 차는 나란히 주차를 했고 문이 열리며 사내들이 쏟아져 내렸는데 모두 11명이었다.

우두머리 아일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직 있나? 좋아.”

통화는 아주 간단했다.

“다시 한 번 장비들 살펴.”

사내들 손에는 전부 AK가 들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30발짜리 바나나형 탄창이 꽂혀 있었다.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사흘 전 아일톤은 부하로부터 말 한 마디를 들었다.

실로 우연이었다.

“그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이 어딜까 생각해 봤습니다. FBI라면 비밀 안가가 있겠지만 사건 의뢰를 받은 제3의 인물들인데 쉽게 안가를 제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안가는

응급처치 식의 잠시 거점이자 거처일 뿐 장기투숙이란 형태의 먹고자는 숙식은 불가능하죠.”

전문가적 안목으로 뱉어내는 말은 아니었지만 사리에는 맞았다.

“그래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네까짓게 뭘 알겠느냐 싶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랬는데 부하의 입에서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미우 시내 호텔을 뒤지는 것입니다. 사막의 흑새 정도 되면 싸구려 호텔을 이용하지는 않겠죠.”

아일톤의 눈이 더욱 커졌다.

“놈의 얼굴이 인쇄된 종이를 미우 특급호텔마다 돌리는 겁니다. 우리가 협조를 요청하는데 어떤 놈이 거절을 하겠습니까?”

아일톤은 이마를 잠시 좁혔다.

뭔가 겉으로는 허술하게 들린다.

그러나 생각해 볼수록 단순하면서도 이보다 더 분명한 작전은 없어 보였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다.

권총수의 얼굴 사진을 복사하여 팩스로 보내버리면 간단하게 끝난다.

리우 관광을 안내하는 책자에는 각 호텔의 팩스번호가 모두 나와있기 때문에 잠깐이면 될 일이었고 코만도의 이름으로 보내면 건성으로 대답할 곳은 없다.

모두 세 군데 호텔에서 권총수와 닮은 용의자가 투숙했다는 말에 출동했는데 두 곳은 닮긴 했지만 아니었다.

이제 이곳이 마지막이다.

지금 통화에서 호텔 직원으로부터 체크 아웃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쨍!

하는 지하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더니 정장을 한 호텔 직원이 나타났다.

아일톤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온 호텔직원은 두 장의 카드를 건네고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투숙하고 있는 객실 키였다.

“가자, 808호 809호!”

이른 새벽이기 때문에 주차장은 조용했고 엘리베이터도 텅 비었다.

그러다 보니 사내들 모두 총을 숨긴다거나 주위를 경계하지도 않았다.

덩치 좋은 열한명이 한 번에 탈 수가 없어 두 대의 엘리베이터로 나눴다.

아일톤은 손에 권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여섯명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AK를 한손에 쥐고 어금니를 문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지금 코만도는 굉장히 어수선하다.

일곱개의 공장이 모조리 파괴되어 당분간 코카인 사업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신속하게 제조시설을 다시 짓는다고 해도 일 년은 걸린다.

육개월이면 충분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주택가나 시내에서 가까운 곳일 때 가능한 일이다.

마약 제조 공장의 가장 단점은 심한 악취다.

냄새 때문이라도 위험할 뿐 아니라 수상한 사람들이 자꾸 출입을 하면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글속에 짓는다면 자재를 옮기고 수송하는데만 몇 달은 걸린다.

쨍!

8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일행이 내렸는데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행히 바닥이 양탄자가 깔려 있어 발자국 소리를 더욱 죽여 주고 있었다.

옆에 있는 2호기가 지하 2층에서 막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2호기도 멈췄고 다섯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하피나?”

아일톤은 2호기에서 내린 사내를 향해 말했다.

“넌 809호, 사막의 흑새에게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놈이 있어. 그 놈을 맡아.”

하피나란 사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808호를 친다.”

사내들이 조용한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양손에 AK를 쥐고 복도를 걸어가는 사내들 온 몸에서 살기가 쏟아졌다.

모두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걸었는데 객실 번호를 살피기 위한 동작이었다.

805호가 나왔고 이어 806호가 나타났다.

객실 번호가 가까워질수록 사내들은 더욱 긴장했으며 누군가는 마른침을 삼켰다.

807호에 이어 808호가 나타났다.

스윽!

앞서가던 아일톤의 왼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권총을 쥔 오른손은 앞으로 계속 진행을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809호를 공격할 하피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사내들이 살금살금 다가간다.

한쪽이 시끄러워지면 다른 한쪽이 눈치를 채고 도망칠 수 있다.

즉 동시에 쳐야한다.

하피나가 이쪽을 향해 문을 열 수 있는 카드를 들어 보인다.

그건 준비가 됐다는 뜻이었다.

아일톤 역시 왼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벽에 붙은 단말기에 접촉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일톤은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리자 문은 힘없이 열린다.

커텐까지 짙게 쳐진 객실은 캄캄했다.

센서가 있어 사람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켜지는 입구 천장의 불도 켜지지 않는다.

아일톤은 하늘까지 돕는다고 자평했다.

사사삭!

사내들이 아일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맨 선두의 사내는 뭔가 발목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그가 세상에서 느끼는 마지막 감촉이었다.

쾅!

콰가강!

누구도 예상 못한 대폭발이었다.

거의 같은 시간 옆 객실에서도 쿠쿵하는 소리가 들리며 건물이 흔들린다.

일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폭발의 여운은 한동안 이어졌다.

특히 옆방객실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은 속옷차림으로 뛰어 나왔는데 문이 떨어져 나가고 난장판으로 변해버린 808호와 809호를 바라보았고, 일부는 192에 신고를 하며 폭발 소식을

전했다.

화라락!

자욱한 먼지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붉은 빛이 번쩍 거린다.

전기 기구에서 합선이 생기며 불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불을 끄려 하지 않고 비상계단을 이용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경찰이 출동하고 구급차들이 몰려들었다.

호텔은 다른 투숙손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지만 소용 없었다.

모두가 그만 체크아웃 하겠다는 것이다.

딱 두 명의 관광객만 남고 투숙했던 손님 전원이 다른 호텔로 가버렸다.

가지 않은 두 명은 에콰도르에서 온 지배인의 친척이었다.

조카의 체면을 생각하여 가지 않은 건데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쳐죽일 코만도 새끼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장은 엄청난 날벼락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직원중 한 명이 그들과 내통하여 오늘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사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피난가는 투숙객과 폭발소리에 몰려든 구경꾼들 틈에 숨어 지켜보고 있었다.

시신들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는데 부상자는 단 두명이고 아홉명은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경찰들의 무전소리를 들었다.

“형.”

권총수는 오민철을 불러냈다.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가지고 내려온 캐리어를 끌고 아직 해가 뜨지 않는 리우시내로 걸어 들어갔다.

드르르!

캐리어 바퀴소리가 크다.

엄청난 사고에도 브라질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그만큼 사람이 죽고 무언가 터지는 일이 일상이라는 의미였다.

아홉에 이어 부상을 입은 두 명까지 조금 전 숨졌다는 라디오 뉴스를 접한 권총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이곳은 그 유명한 노천카페가 몰려 있는 리우의 명소중 한 곳인 아르꾸 지 떼찌스(Arco do Teles)였다

“왜 웃어?”

거리 곳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웃는 오민철에게 물었다.

“갑자기 중학교 사회선생님이 생각나서.”

“중학교 사회 선생님?”

오민철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 놓았다.

“1학년인가 2학년인가 정확하지는 않고 무슨 말을 하다 브라질 얘기가 나온적이 있어. 아 그때가 무슨 월드컵이 열렸다. 그래서 브라질 축구 얘기가 나왔지.”

오민철은 다시 한 번 북적이는 사람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브라질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들 같이 부지런하지 못하다고 했어. 그래서 누군가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는데.”

오민철은 덤덤한 얼굴이다.

“먹을 것이 지천이니 땀흘려 농사짓고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지금 보니 완전 개소리였어. 이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모든 걸 철저하게 우리 관점에서 보고 판단한 거지.”

차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노는 것이 아니라 야간 작업을 끝내고 온 근처 노동자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르치는 선생의 입에서 그런 무책임한 말이라면 굉장히 문제적인 발언인데.”

“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오른쪽 1시 방향 골목 건너편에 있는 ‘자르딘 에르모소’라는 간판을 보았다.

아직 오전 9시를 막 넘은 시간이기 때문에 간판의 불은 꺼져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노천 카페가 몰려 있는 골목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3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이쪽의 클럽들은 일찍 문을 연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두 사람이 점심으로 불러진 아랫배를 만지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아라나가 다가왔다.

부지런히 온 듯 이마에 땀이 맺혔다.

“오는데 사고가 나서 말이오. 차를 정비소에 맡겨 놓고 오다보니 이해 하십시오.”

“아닙니다. 아직 시간 넉넉한데요 뭘.”

오민철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더니 자신들이 사용하는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와 아라나 앞에 놓는다.

“고맙소.”

아라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허리를 곧게 폈다.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군요.”

아라나가 맞은편 클럽을 보며 말했다.

그의 눈이 타오른다.

그건 아내를 죽인 범인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복수욕이었다.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아라나가 합석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일제 렉서스 SUV가 다가와 멈추고 세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클럽으로 걸어갔고 잠시 후 간판에 불이 켜지면서 영업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일찍 문을 열긴 해도 본격적인 손님은 해가 지면서 들어온다고 아라나가 말해주었다.

지금 들어가는 손님들 대부분은 브라질을 찾아온 관광객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취약한 브라질 치안을 걱정하여 밤이 아닌 낮에 클럽 구경을 하고 즐기며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아라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노천 카페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어나더니 클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뭐야. 저 사람들 모두 관광객이라는 건가?”

“브라질은 백인이나 아시아계 관광객 보다는 같은 남미쪽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일단 언어 소통에 큰 문제가 없고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이죠.”

한 무리의 거리 사람들이 클럽으로 사라지면서 잠시 뜸해 보이던 카페 거리는 채 30분도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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