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1화: 바람의 구멍(1)
금방이라도 한 대 갈길 듯 보더니 중얼거렸다.
“감히 날 뭘로 보고.”
권총수는 고개를 돌리며 빙긋 웃는다.
오민철은 고개를 돌린 권총수를 잡아먹을 듯 하더니 표정을 풀었다.
집에서도 가끔은 오민철을 생각한다.
그를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오고 마음이 가벼워 지는 것이다.
오민철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욕심을 모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며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는다.
어려운 시절을 떠올리며 절약하고 또한 자선을 행한다.
알게 모르게 주위의 많은 사람을 돕는걸 알고 있었다.
그런 오민철이 언젠가 부터는 잘 아는 형이 아니라 진짜 피를 나눈 형처럼 느껴진다.
쿵!
비행기가 풀밭에 내려앉았다.
활주로가 아닌 좀 넓은 공터이기에 비행기는 전복될 듯 흔들렸다.
덜컹!
우당탕!
제3공장이 있는 콰우라울에 코만도가 닦아 놓은 활주로가 있지만 그곳에 앉을 수는 없었다.
비행기가 그곳까지 날아가면 금세 정체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좌우로 기우뚱거리고 전후로 흔들리며 비행기는 멈췄다.
“후유!”
조종을 한 토스탕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콰우라울을 가면서 상당이 넓은 자연발생적인 공터이고 잘하면 착륙도 가능하다는 생각은 했었으나 직접 이런 날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가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캐인과 오민철의 옆구리에 묵직한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평소처럼 행동하면 됩니다. 아직까지 토스탕씨의 변절을 조직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까요. 혹시 오스발두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모른다고 하십시오.”
토스탕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계획이라면 내일 아침이면 작전이 끝나 연락이 갈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약속은 아직 할 수 없으니 기다려 주시죠.”
“그러죠. 행운을 빕니다.”
토스탕은 세 사람과 굳은 악수를 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공터를 달리기 시작했고 다행히 사고 없이 떠올랐다.
세 사람은 비행기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도를 통해 거리를 계산한 결과 이곳에서 제5공장이 있는 콰우라울까지는 15킬로 정도 떨어졌다.
중동 지역이라면 넉넉잡고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거리지만 열대우림이다.
지형이 험악하고 울창하다.
또한 어떤 맹수를 만날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사사삭!
세 사람은 숲을 헤치며 달려갔다.
밀림으로 강력한 엔진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좁은 수로의 물살을 헤치며 모터보트 한 척이 나타났다.
보트에는 군복차림을 한 군인 열여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일제히 바짝 엎드려 강가를 살폈다.
배는 조금씩 속도를 줄였고 맹그로브 숲이 빼곡한 강가에 조심스럽게 멈췄다.
군인들은 신속하게 배에서 내렸고 보트를 떠내려가지 않도록 나무에 묶었다.
군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밀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말없는 이동이다.
누구도 떠들거나 하지 않았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십 분간 휴식.”
어깨에 대위계급장이 걸린 우두머리 데드암의 지시에 군인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군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데드암은 품속에서 접힌 지도 한 장을 꺼내 펼쳤다.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이토록 무자비하게 얽히고 설킨 밀림 속에서는 어떤 교신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독도법을 숙달하고 별자리와 나무의 성장상태로 방향과 지점을 찾는 것을 숱하게 훈련한다.
“30분!”
데드암은 혼잣말처럼 뱉어내며 지도를 다시 접어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가 갖고 있는 물통을 꺼내 물을 마신다.
데드암 대위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팀원들을 스윽 훑어본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휴식 끝! 이동!”
팀원들은 묵묵히 다시 일어나 밀림을 헤치며 사라졌다.
삼십분에서 2분 모자란 이십팔 분만에 도착했다.
네이비 씰 제4팀 찰리 소대장 데드암 대위는 수백 개의 밧줄이 엉겨붙은 것 같은 커다란 무화과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전방을 살폈다.
나무 사이로 멀리 작은 건물이 보였다.
단층짜리 건물 두 채였는데 데드암 대위는 자신이 설명들은 정보와 거의 어긋남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쪽으로 있는 조금 작은 건물은 필시 먹고 자는 숙소일 것이다.
오른쪽 길게 뻗어지어진 건물이 코카인을 제조하는 공장이라고 짐작하며 한참을 살펴보았다.
“스무 명을 절대 넘지 않는 인원이라고 하지만 놈들은 마약조직원들이다.”
소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어떤 적들보다 더 강력하게 저항하는 부류임을 명심하고 생포보다는 사살에 집중한다. 이상 질문?”
소대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데드암 대위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작전시간까지는 20여분 정도 남았다.
약속된 시간에 동시에 치기로 되어 있다.
빨라도 안 되고 늦어도 안 된다.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건 냄새였다.
표현할 수 없는 악취에 세 사람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더러운 냄새 속에서 눈부신 흰색의 코카인이 나온다니.”
오민철이 믿어지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거의 온 것 같은데.”
선두의 권총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전방을 살폈다.
하지만 워낙 숲이 우거져 보이지 않았는데 일반인의 후각에까지 코카인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악취가 맡아진 걸 보면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대기!”
그리고 나서 권총수는 나무사이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소리도 없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빽빽한 나무사이를 이동하는 권총수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금방이라도 나무와 바위에 충돌할 것 같았지만 극성에 오른 불영보는 결코 그런 불상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때로는 연기처럼, 때로는 바람처럼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가던 권총수의 걸음이 멈췄다.
100여미터 전방에 창고처럼 보이는 상당한 크기의 단층 건물이 있고 측면으로 200여미터 떨어져 또 하나의 단층 건물이 있었는데 크기가 조금 작다.
권총수는 감각을 끌어 올렸고 인기척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열일곱!’
자신의 감각이 찾아낸 건물 속 인원은 모두 열 일곱 명이었다.
물론 정확한 숫자라고 확신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감각을 벗어난 어딘가에 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갖고 작전에 임해야 한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형 와도 돼.’
권총수는 한손에 들고 있던 M4를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시작했다.
캐인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총기인데 상태 점검을 위해 딱 한 번 쏴 보았다.
권총수가 총기를 살피고 있을 때 오민철과 캐인이 다가왔다.
“상당이 큰데.”
오민철은 대뜸 놀랐다.
캐인 역시 눈을 크게 떴다.
길도 없다.
오로지 항공편 말고는 접근할 수 없는 이런 곳에 지어놓은 공장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몇 명이야?”
오민철이 물었다.
“열일곱인데 한두 명 더 늘어날 수도 있어.”
권총수는 그렇게 말했지만 오민철은 웃고 말았다.
아직까지 권총수의 능력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다만 권총수는 항상 사실보다 모든 걸 조금 더 부풀렸다.
그건 작전을 벌이는 동료나 팀원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더욱 높이도록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리더십이었다.
권총수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아직 약속된 공격시간이 되려면 오 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척!
권총수는 바위에 앉았고 오민철도 털썩 주저 앉았지만 캐인은 그냥 서 있었다.
“앉아요. 뱀에 물릴까봐?”
오민철이 히죽 웃는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만들려는 것이다.
캐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뚫고 올라온 바위에 앉았다.
“캡틴!”
좀체 말이 없는 캐인이 입을 열었다.
권총수는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는데 캐인은 무척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무공을 창안한 사람은 누굽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권총수는 멈칫했다.
“강호의 무공을 가장 먼저 만들어낸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오민철까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그 점이 매우 궁금했다.
권총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이십여 초 그렇게 있더니 캐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강호 무공의 시작은 소림이라고 하죠.”
소림사라는 말은 비록 미국인이지만 귀에 아프게 들었다.
중국 영화를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찰이며 그곳 승려들의 무술은 상당했다.
“그럼 소림 무공의 시작은 누군데?”
이번에는 오민철이 질문했다.
권총수는 담담히 말했다.
“달마대사지. 갈대 잎을 타고 장강을 건너와 소실봉에 터를 잡고 제자들을 길러내기 시작했어. 소림을 세운 건 발타선사(跋陀禪師)지만 무공을 뿌리내린 건 달마지.”
“달마대사가 중원 사람이 아니라던데?”
“맞아. 그는 인도 사람이지. 소림을 세운 발타선사도 인도 사람이고, 부처가 어디 사람이야. 인도아냐. 당연히 중국보다 불법과 도력에 뛰어난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지. 그리고 요즘말로 하면 전도를 하기 위해 석가의 제자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달마와 발타 모두 그런 사람중 한 명이고.”
캐인이 또 다시 뭔가 질문을 하려들자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얘긴 이쯤에서 멈추자는 뜻이다.
사실 지금 캐인은 완전히 권총수에게 빠져 있었다.
그건 행동에서 먼저 드러났다.
처음과 달리 이제는 권총수의 명령에 순응하고 분명하게 의견을 받아들인다.
자신은 절대 권총수의 능력에 근접할 수 없다는 것을 승복한 것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패한 수컷은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권총수를 리더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서 권총수가 보여주는 강호의 무공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사사삭!
권총수가 앞장을 섰다.
공장 건물과는 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공장을 짓기 위해 나무들을 베어냈지만 키 작은 잡목이나 넝쿨 식물들은 그대로였다.
거기다 곳곳에 베어낸 나무를 쌓아 놓고 방치한 바람에 공장으로 접근하는데 좋은 엄폐물이 되어 주었다.
일행은 공장 가까이 접근했다.
부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자 오민철이 바라보는데 무슨 소리냐는 질문이다.
마치 소형 헬기가 날아갈 때와 같은 소리였는데 권총수의 전음이 두 사람 귓가에 들렸다.
‘환풍기야. 코카인 제조과정에서 독한 냄새가 나오는데 그걸 밖으로 배출 시키는 거지’
공장과의 거리는 30여 미터쯤 되었다.
사삭!
다시 몇 걸음 이동하던 권총수가 갑자기 멈춰섰다.
돌연 거울에 반사된 빛이 눈을 부시게 하듯 짧은 순간 뭔가 시야를 건든 것이다.
“멈춰!”
권총수는 두 사람을 제지한 뒤 내공을 끌어 올렸다.
안력을 돋우어 우거진 숲을 살피던 권총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설마 부비트랩?”
오민철도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선 뒤 조심스럽게 쭈그리고 앉았다.
지면에서 30센티 정도의 높이로 투명한 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권총수는 줄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오른쪽으로 2미터 정도 되는 곳에 팔뚝 굵기의 조그만 산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밑둥 근처에 투명한 줄이 묶여 있다.
“RGN.”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