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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8화 (548/651)

제548화: 아마존의 비명(1)

하지만 파울리뉴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긴 했으나 미친 개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손목을 잘라 버린 사내의 칼 솜씨 때문이다.

어떻게 빤히 눈을 뜨고 있는데도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칼을 휘두른단 말인가.

더욱이 손목의 뼈까지 절단된 표면은 잘린 두부처럼 말끔했다.

“사람들은 날 더러 사막의 흑새라고 하죠.”

“아아!”

순간 파울리뉴는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괴성을 토한다.

너무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꼼짝을 하지 않고 권총수를 바라보았는데 입을 벌리며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비는 피할 수 없다는 브라질속담이 있던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은 절대 내 손에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협조해라.

그윽!

파울리뉴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러더니 한순간 눈을 빛냈다.

“더글라스가 실종 되었소?”

한 마디로 사막의 흑새 당신 작품이냐는 질문이다.

권총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곧 안전한 미국 시민이 되어 살아갈 것입니다. 물론 코만도에서 그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미국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 역사는 오래되었다.

동서냉전이 한참이던 19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CIA는 KGB 옛 소련 정보국 요원들의 미국 망명을 촉구하고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FBI는 마피아를 비롯한 폭력 조직이 증인을 보복 살해하는 사건이 잇따르자 프로그램 제작에 나선 것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조직범죄규제법을 제정해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조직범죄를 고발하는 증인과 가족을 철저히 보호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덕분에 증인보호프로그램 대상자가 증언한 사건의 유죄 판결률은 일반 사건보다 훨씬 높아졌다.

증인보호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증인과 가족은 범죄 조직의 협박과 보복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이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경비가 지급된다.

그 뿐 아니다.

가족 수와 이주하는 지역의 물가 등을 고려해 산정된 생활비도 지원한다.

놀라운 건 증인보호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노동은행’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노동은행을 통해 증인 능력에 맞는 새 직장을 주선하고, 원하면 성형수술도 지원한다.

증인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모든 걸 바꿔 버리는 그야말로 새로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파울리뉴의 입이 열리지 않는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권총수는 충분히 이해했다.

배신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범죄조직을 내 직장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감비노 패밀리의 비밀을 폭로한 마피아 고위간부 한 명은 증인보호프로그램의 적용을 받으며 신변안전을 보장 받았지만 끝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음지에서만 오랫동안 살아오다 보니 양지생활에 적응을 못한 것이다.

마치 치열한 전쟁을 경험한 군인이 제대하고서도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과 비슷했다.

지금까지는 권총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양지는 권총이 아닌 마음으로 소통을 해야 했다.

일이 뜻대로 안되면 총으로 해결 보던 습관이 끝내는 자살로 몰아간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배신보다는 과연 자신이 일반사람들의 생활에 적응할 자신이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결국 파울리뉴의 긴 한숨이 이어졌다.

“좋습니다. 내가 FBI에 협조할 때 어떤 방법으로 보호를 받는지 설명을 부탁하겠소.”

오민철이 씨익 웃었고, 권총수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는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관중은 대략 일만여 명 되었는데 홈팀 보타포구와 원정팀 빌라노보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후반 중반 정도 흘렀는데 리우를 연고지로 하는 보타포구가 1대0으로 앞서고 있다.

“재미없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오민철이 하품을 했다.

“2부 리그잖아.”

“축구는 뭐니 뭐니해도 군대 축구지. 너 죽고 나죽는 이판사판 개판 축구.”

오민철의 축구 실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외인부대 훈련소시절 휴일이면 소대별로 축구시합을 했는데 오민철은 단연 돋보였다.

물론 권총수도 못하는 축구는 아니지만 오민철은 볼을 다루는데 거의 선수급이었다.

특히 스피드가 좋아 치고 들어가면 거의 막지를 못했다.

“그때가 좋았지. 팀별 축구 시합을 하여 우승한 팀에게는 4박5일 포상 휴가를 줬는데.”

축구를 보며 불현듯 707시절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때 우리 팀이 우승하면서 마흔세 골을 넣었던가.”

스윽!

그 말에 권총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니다. 결승전에서 우리가 이글 팀을 상대로 마흔네 골을 넣고 이겼다.”

“형! 작작해라.”

홱!

오민철이 매섭게 노려본다.

“이게 봐줬더니 형한데 못하는 말이 없어. 작작?”

“무슨 축구에서 마흔네 골을 넣냐고? 농구야? 아무리 군대축구라고 해도 그렇지.”

“너 군대 가봤어? 외인부대 이런 것 말고 한국군대 가봤냐고?”

“또 뭔 말을 하려고 군대갔냐고 물어봐. 뻔히 알면서.”

“그래서 임마 모르면 가만히 처듣고 있기나 하라고. 니가 군대 축구에 대해 뭘 알아?”

“한국군대는 아니지만 프랑스 군대에서는 해봤잖아.”

“한국 군대와 프랑스 군대의 축구에서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군대에서 축구는 곧 전투야.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뭐야? 체력 아냐. 프랑스 군대 축구는 전 후반 30분씩 뛰지만 우리 707축구는.”

오민철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때 1대0으로 이기고 있던 홈팀 보타포구가 추가골을 넣으며 스코어는 2대0이 되었다.

“707 축구는 전반 오전, 후반 오후야.”

“뭐?”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아침 8시에 시작해 12시에 끝나지. 한 시간 쉬고 1시부터 시작해 5시에 후반전이 끝나.”

“그래서 정확히 전반에 22골 후반에 22골, 이상 마흔네 골.”

“알았어. 믿어줄게. 조금만 더 지나면 전반 올해, 후반 내년이라고 하겠네?”

“너 지금 이 형의 말을 의심하니?”

“믿어. 믿습니다. 할렐루야.”

권총수가 양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이 자식이 정말.”

“믿는다는데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멘.”

권총수는 인상을 쓰며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이곳에 나타난 건 한 사람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세르지뉴가 보타포구의 구단주라는 것이었다.

그가 구단주라면 보타포구 팀은 코만도 조직 소유라는 것이 된다.

파울리뉴는 자신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고 했다.

브라질 언론을 보면 보타포구 구단의 모기업이 판토스라는 건설회사였다.

결국 판토스라는 굴지의 건설사 역시 코만도가 최대 주주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두 사람은 본부석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구단 직원들과 앉아 있는 세르지뉴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축구가 끝나면 그도 움직일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

삐이이익!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홈팀 보타포구가 원정팀 빌라노보를 2대0으로 물리쳤다.

본부석에 앉아 있던 마흔살 가량의 정장을 한 사내는 주위 구단 직원들과 악수를 하면서 승리를 축하했다.

그리고 곧장 경호원 두 명을 대동한 채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는데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세르지뉴였다.

흰색 혼다SUV 한 대가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세르지뉴와 경호원들이 탄 차량이다.

두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포드 익스플러가 혼다를 미행하고 있었다.

차는 경기장을 빠져나와 리우 외곽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길 아래로는 아름다운 리우의 해안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바다는 요트를 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차는 해안도로를 달려 시내를 완전히 빠져나간 뒤 국도로 진입했다.

“어딜 가는 거지?”

오민철이 운전을 하며 궁금한 듯 중얼 거린다.

“여기가 97번 도로니까 쭈욱가면 브라질 고원으로 가는데.”

그렇게 10여분 달리던 혼다 SUV는 샛길로 빠져 달렸는데 1킬로 정도 들어가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나무들 사이로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낮추고 부지런히 보았는데 경비행기도 한 대 대기하고 있었다.

“세워봐!”

오민철은 재빨리 우거진 나무 뒤에 차를 세웠다.

딸칵!

권총수가 내렸고 오민철도 따라 내린다.

두 사람은 길을 버리고 숲을 이용해 활주로 쪽을 향해 걸어갔다.

활주로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단층건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사무실을 나온 두 명의 사내가 차에서 내려 다가온 세르지뉴와 악수를 나눴다.

“축하드립니다. 보타포구가 이겼더군요.”

사내의 축하에 세르지뉴는 빙긋 웃는다.

“바로 가자구.”

한 사내가 경비행기를 향해 걸어갔는데 조종사로 보였다.

사내는 문을 열고 들어가 조종석에 앉아 곧장 시동을 걸었다.

두 명의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세르지뉴는 경비행기를 향해 걸어갔다.

가장 먼저 세르지뉴가 올랐고 이어 경호원 둘이 타면서 문이 닫혔다.

“야 어떻게 좀 해봐!”

나무 뒤에 숨은 오민철이 다그쳤다.

하지만 권총수는 꼼짝도 하지 않고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는 경비행기를 바라보았다.

비행기는 점차 속도를 높이더니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권총수는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탁!

오민철은 재빨리 권총의 이상 유무를 살폈다.

사무실에는 조금 전 두 명의 사내 중 조종사를 제외한 다른 한 명이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화면에서는 축구 중계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어딜가든 축구였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내가 깜짝 놀란다.

이곳은 관광객들을 위한 랜탈 항공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 말고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사내와 마주 앉았다.

그 사이 오민철은 사무실 벽에 걸린 여러 가지 지도를 살피고 여기저기 서랍을 열어 보기도 했는데 사내는 불쑥 물었다.

“경찰이오?”

“아닙니다.”

오민철은 빙긋 웃으며 계속 뒤졌다.

“그럼 뭔데?”

사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권총수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앉아요.”

권총수의 손에서 무형의 경기가 뻗어나가 일어서려는 사내를 주저 앉혔다.

털썩!

강제로 주저앉은 사내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으나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눈이 커졌다.

몇 번을 시도해도 일어설 수가 없다.

급기야 사내는 두 손으로 양쪽 어깨를 쓰다듬었다.

혹시 자기 어깨에 뭔가 무거운 짐이라도 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동작이었다.

“설마!”

침입자가 마술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권총수는 밝게 웃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묻는 말에 차분히 대답을 하면 아무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때는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는 경고였기에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십니까?”

일어나야 한다.

서랍에 권총을 쥐려면 기어이 일어나야 하는데 도대체 꼼짝을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으아...’

급기야 사내의 얼굴로 땀방울 한 개가 미끄러져 내린다.

‘죽을 수도 있다’

오랜 뒷골목 경험은 자신이 지금 굉장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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