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5화: 친위대장(2)
오민철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주 잘알죠. 제가 챙길테니 걱정 마십시오.”
오민철은 깡통과 깔고 앉아 있던 고무로 된 깔판을 둘둘 말아 들었다.
그야말로 미친 듯 먹는다.
걸식 병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왕성한 식욕에 권총수는 연신 감탄을 했다.
“옛날 보다 두 배는 더 드시는군요.”
“내가 걸린 걸식 병이라는 게 말일세.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이 먹게 된다네. 내 나이가 이제 칠십 초반인데.”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지금도 거지가 되어 먹지 못하고 있는데 갈수록 나이는 들어가고 먹을 수는 없으니 불안한 얼굴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했잖습니까? 오늘도 부지런히 구했기 때문에 날 만난 것이지요.”
“할렐루야.”
자르델 경감은 다시 소릴 내며 고기를 씹기 시작했다.
배가 불러 너무 기분이 좋다면서 흡족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스윽!
셋은 커피 잔을 놓고 앉았는데 권총수가 봉투 한 개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직접 보시죠.”
자르델 경감은 봉투를 쥐고 재빨리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눈이 커졌다.
“오, 놀라워라. 도대체.”
재빨리 봉투에 든 지폐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5,000달러입니다.”
봉투에 백 달러짜리 쉰 장이 들었다는 뜻이다.
티티틱!
자르델은 돈을 세는데 굉장히 능숙했다.
톡!
마지막 장을 소리내어 넘기면서 감동 가득한 시선으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쉰 장, 오천달러. 이게 꿈은 아니겠지?”
“경감님 부탁이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부탁인가. 섭섭하네. 편하게 말하면 되고 난 최선을 다해 도와주면 되는 것을.”
자르델 경감의 눈이 빛난다.
그건 이미 권총수의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 것인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오랜 경찰 생황에서 온 능숙한 육감이다.
“코만도 베르멜루 아시죠?”
자르델 경감의 눈이 좁혀지며 예상했다는 듯 마른침까지 삼킨다.
“알지. 나만큼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을 걸.”
이번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경찰에서는 그들이 근래에 등장한 20년이 안된 조직이라고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그 전에는 블랙 야드(검은 집)로 활동했었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자르델은 커피를 소리내어 마시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시에는 규모도 작았고 그다지 주목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사내가 등장하면서 브라질 갱단의 판도가 뒤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카니발의 폭우로 불리는 엄청난 학살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카니발 축제가 한참이던 3월1일.
당시 브라질 최대의 마약조직은 ‘하늘의 왕(The King of the sky)’이었다.
카니발 축제가 절정에 이른 3월1일 밤 하늘의 왕 우두머리 조르세와 휘하 심복 아홉 명은 대서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 ‘어 영 히얼(A young hill)’에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카페는 이층이었다.
카페 일층은 일반 손님들이었고 2층은 하늘의 왕 조직원들만 있었다.
밤 여덟시 10분, 때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검정색 우비를 걸친 사내가 카페에 들어섰다.
그는 2층을 오르지 못하게 막는 종업원의 숨통을 칼로 끊어 버리고 올라가 수류탄 두발과 AK자동소총을 난사했다.
그 안에는 때마침 하늘의 왕 조르세로부터 뒷돈을 받는 정치인 두 명도 있었는데 같이 죽었다.
사망자는 조르세를 포함한 모두 열여섯 명.
자르델 경감은 잠시 말을 끊었다.
“재밌나?”
침까지 삼키며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 오민철에게 물었다.
오민철은 생긋 웃는다.
“재밌죠. 불구경 쌈구경이야 말로 확실한 흥행 보장이죠.”
“그런데 말이야. 당시 그 엄청난 일을 해낸 검정색 우비를 입고 들어온 사내를 아는 사람이 없어.”
“뭡니까 그럼? 범인이 설마?”
“미제사건으로 남았지. 범인이 누군지를 알아야 잡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어쨌든 그 사건 이후 크고 작은 마약조직이 하나로 통합하고 뭉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슬그머니 코만도 베르멜루가 나타나더군.”
“혹시 그 범인이 지금 코만도의 보스 프레드?”
“그렇다고 보네. 내가 당시 카페 학살사건 수사팀 중 한 명이었으니까. 정년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을 텐데.”
자르델 경감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까 누구라고 했지?”
“세르지뉴.”
“그 이름이 어디서 나온 줄 아나. 카페 ‘젊은 언덕’ 학살사건을 추적하면서 나왔지.”
“그렇다면 세르지뉴가 당시에도 뒷골목 쪽에서는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혹시 세르지뉴가 하늘의 왕 우두머리의 심복?”
“그건 아니고.”
자르델은 오민철의 말을 자른다.
“어쨌든 우린 하늘의 왕 조직부터 파헤쳤지. 그 와중에 세르지뉴란 친구가 발견된 걸세.”
“뭐였습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기술자였네. 단연 그 방면에 최고였어.”
“어떤 기술?”
“코카인 제조.”
자르델 경감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코카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갑작스런 질문에 권총수는 움찔했다.
코카인이 마약중 하나라는 것만 알았지 사실 구체적인 성분이나 일 년에 거래되는 총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코카인은 아주 오래전 옛날부터 아마존이나 남미의 정글에서 자라는 코카식물이라는 흔한 관목에서 추출되었다.
정글속 원주민들은 우연찮게 그 식물을 씹었고 그때마다 허기가 가시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됐다.
줄기는 땔감 말고는 사용할 곳이 없고 잎에 마약 성분이 들어 있었다.
이 잎을 따 모아 여러 가지 화학처리를 걸쳐 코카인이라는 무서운 마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세르지뉴 보다 더 코카인에 해박한 사람은 없을 걸세.”
“그렇다면 그가 곧 코만도 조직의 공장장이란 말 아닙니까?”
“그렇지. 아주 적절한 표현일세. 내가 보기에는 죽은 하늘의 왕 우두머리 조르세 밑에서 일하다 프레드와 손을 잡았을 거야.”
“그 자가 어디선가 공장을 지어 놓고 열심히 만들 것 아닙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자르델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들었다.
“웨이터!”
자르델 경감이 갑자기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다가온 종업원에게 A4 한 장과 펜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종이와 펜을 가져오자 자르델 경감은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어떤 지역을 암시하는 약도였다.
삭!
싸아악!
그리려고 하는 지역을 아주 잘 아는 듯 거침없이 볼펜을 움직였다. 잠시 볼펜을 멈추고 자신이 그린 약도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몇 군데를 더 추가했다.
“자 보게.”
그린 약도를 권총수 앞에 내밀었다.
도로와 지형마다 이름을 써 놨기 때문에 어딘지는 알겠지만 한 번도 가보거나 한 적은 없다.
“아마존 밀림 속 아닙니까?”
“마약 조직들이 왜 남미지역에 몰려 있는 줄 아나?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
자르델이 커피를 마시는데 바람 소리가 들린다.
그건 커피가 떨어졌다는 뜻이었기에 권총수는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종업원이 다가와 자르델의 빈 잔에 커피를 가득 채웠다.
자르델의 안면근육이 씰룩거렸는데 감동한 얼굴이다.
“분명하게 말하지. 자넨 무조건 천국일세. 여호와께서 자네 같은 사람을 데려가지 않으면 누굴 데려가겠나.”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머그잔 가득 채워진 커피를 보며 환한 얼굴이다.
그러더니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해. 갑자기 커피 맛이 코카인처럼 느껴지다니.”
“네에?”
“몇 년 전 리우의 한 커피숍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네. 커피 향과 맛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야. 놀라운 건 그 집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거지.”
두 사람은 눈을 빛내며 보았다.
“주인이 커피에 미량의 코카인을 탄거야. 흐흐흐!”
그러면서 자르델 경감은 커피를 부지런히 마셨다.
얼른 마시고 한 잔 더 시키려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정보가 맞다면 조금전 그려준 그림 중 어느 한곳에 반드시 공장이 있을걸세.”
권총수는 낙서하듯 그려놓은 그림을 보았다.
말이 그림이지 거리는 수백킬로였다.
경비행기 한 대를 렌트하여 나흘 동안 아마존 동부 지역인 타파조스강, 상구강, 아라과이아강 일대를 저공 정찰했다.
세 개의 강 모두 아마존강의 지류일 뿐이지만 숲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우거져 있었다.
간간히 넓은 공터처럼 숲이 사라진 곳이 있었는데 대부분 금광 개발로 인한 것이었을 뿐 코카인 제조시설로는 판단되지 않았다.
“내일은 타파조스강을 훑어보자고.”
경비행기에서 내린 권총수의 말에 오민철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왜?”
“아냐!”
오민철은 권총수의 물음에 시선을 돌렸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 이토록 피곤하고 강한 노동인줄 몰랐다.
그러나 힘들어도 이 방법뿐이다.
뭔가 의심스런 곳을 발견해야 차를 이용해 접근을 시도해 볼텐데 인도보다 더 큰 땅덩어리인 아마존 열대 우림을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다.
***
차가 멈추고 세 명의 사내가 내렸다.
두 명의 사내는 청바지에 점퍼를 걸쳤는데 AK를 들고 있으며 남은 한 명은 사냥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세 사람은 길가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무척 낡은 아파트였다.
손가락 하나는 너끈히 들어갈 것 같은 외벽의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유리가 깨진 창문은 천막으로 막았으며, 시멘트 밖으로 튀어나온 철근에서 흘러나온 녹물이 아파트 벽을 붉게 물들였다
“몇 층이라고 했지?”
“501호입니다.”
사냥 캡을 쓴 사내가 묻자 왼쪽 약간 마른 체구에 두 눈이 푹 들어간 서른 초반 가량의 사내 베베투가 말했다.
스윽!
사냥 모자를 쓴 사내가 뒤에서 권총을 꺼냈다.
“부모님과 산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베베투와 나란히 선 대머리 사내 시우바가 입을 열었다.
“딸 둘과 함께 모두 여섯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 나이가?”
“12살, 11살입니다.”
“아직은 어리군.”
“놔둘까요?”
베베투가 물었다.
사내의 눈이 가늘어지며 소름끼치는 살기가 뻗어 나온다.
“지나간 곳은 깨끗해야 한다.”
그건 모조리 죽이라는 뜻이었다.
세 사람은 일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덜컹!
엘리베이터는 낡은 아파트만큼이나 요란하게 문이 닫혔고 올라가는데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승용차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빌어먹을 엘리베이터.”
사냥 모자의 사내 파울리뉴가 이마를 찡그렸다.
흔들리는 엘리베이터가 불안한 모양이다.
쿵쾅!
너무 흔들리는 바람에 엘리베이터 벽에 어깨를 부딪쳤다.
파울리뉴는 더욱 인상을 썼고 커다란 굉음이 생기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지만 복도와는 약 20센티 정도 차이가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복도와 수평이 될 만큼 올라오지 않은 것이다.
“지금 나가는 거야.”
폐쇄공포증이 있는 듯 파울리뉴는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뒤이어 베베투와 시우바도 복도로 올라섰는데 엘리베이터는 또 한 번 요동을 했다.
우당탕!
“쳐죽일!”
문이 닫힌 엘리베이터를 보며 파울리뉴는 투덜거렸다.
세 사람은 10여 미터 쯤 걸어갔는데 계단을 이용한 비상구 문이 오른쪽으로 있었으며 바로 옆 문에 501호라고 쓰여 있다.
“여깁니다.”
베베투가 손가락으로 낡은 문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