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4화 (544/651)

제544화: 친위대장(1)

둥가는 이제야 새벽같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았다.

“알아보게.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게 데리고 오게. 얼굴 좀 봐야겠으니 말일세.”

“미국이면?”

FBI라도 데려 오느냐는 질문이다.

프레드가 빙긋 웃었다.

“FBI는 우리의 적이라는 걸 몰라서 묻나? 동양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더군. 견원지간(犬猿之間).”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개와 원숭이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야. 우리와 FBI가 바로 그런 사이라고 할 수 있지. 그들이 죽든 우리가 죽든 어느 한쪽이 죽지 않는다면 전쟁은 끝없이 이어질거야. 적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많이 죽일수록 좋은 것 아니던가?”

“그건 맞습니다. 보스, 하지만 FBI는 간단한 적이 아닙니다. 무조건 죽인다고 하여 우리에게 득이 되는 건 아닙니다. 죽일 때와 죽이지 않을 때를 잘 판단하여야 합니다. 자칫 득이 아닌 독으로 작용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들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강대국의 경찰들이니까요. 사담 후세인 한 명 죽이기 위해 대량살상무기가 숨겨졌다고 뻥을 치고 이라크를 잿더미로 쓸어버린 미국입니다.”

프레드는 시가 연기를 길게 뿜어 냈는데 마르셀루의 말인 즉 브라질이라고 그렇지 말란 법 없다는 뜻이었다.

“미국이 들어 온다고?”

급기야 프레드는 피식 웃는다.

“들어올 수도 있지. 하지만 군대가 오면 몰라도 FBI정도는 결코 우리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침략은 불가능하다.

군대만 오지 않는다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서두르게. 예감이 좋지 않아.”

둥가를 바라보는 프레드의 눈이 날카롭다.

오랜 경험에서 오는 본능이 이번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둥가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생각했다.

‘세바스찬이 자살을 할 정도면?’

세바스찬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 안다.

언더보스(구역장)들 중에서도 프레드의 신임이 두텁다.

무식하고 무대뽀인 무지한 마약상이 아닌 것이다.

그는 계산을 할 줄 알고, 전세를 살필 줄 알며 처단과 용서를 적절히 조율하는 뛰어난 인물이다.

사석에서도 자살을 가장 비겁한 책임회피로 볼 만큼 자존심과 명예욕이 강하다.

‘얼마나 강력한 상대였기에 그토록 자신이 싫어하던 자살로 삶을 정리했지?’

분노보다는 궁금했다.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칠판에는 온갖 이름들과 화살표가 엉켜 있었다.

맨 위 프레드의 이름만 온전할 뿐 나머지는 이리저리 얽히고 섞여 복잡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자를 찾는 것입니다.”

권총수가 칠판 한곳에 쓰인 이름을 매직으로 짚었다.

‘세르지뉴’

더글라스가 건네준 정보에도 등장하고 세바스찬이 적어준 종이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그건 둘 모두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만도에서 세르지뉴라는 사내의 위치는 아주 묘했다.

구역장급 언더보스 역할을 하면서도 평의회 즉 ‘더 카운슬(The Council)’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코만도 역시 마피아처럼 다섯 명으로 구성된 5인 평의회가 존재한다.

5인 평의회 의장은 보스 프레드이며 나머지 네 명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5인 평의회야 말로 코만도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주로 사업계획이나 언더보스 이상급 간부들의 신변처리에 관한 결정이 이뤄지는데 세르지뉴가 다섯 명의 평의회 명단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같은 언더보스급인데 다른 사람들 불가능하고 왜 세르지뉴만 참석하는 자격이 주어졌을까.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오민철이 말했다.

“중요한 일?”

권총수가 물었다.

오민철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주 비밀스런 일을 한다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 중요하지 않는 일을 한다면 평의회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멤버로 들어가겠어?”

캐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FBI에서는 아직 세자르가 평의회 인물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권총수는 조직 계보를 백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믿을 만한 내용으로 얻어냈고 지금 공격하기 위한 판을 짜고 있다.

‘어쩌면’

문득 프랑스의 르밀리유나 러시아 마피아처럼 코만도 역시 풍비박산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평가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권총수는 보며 은근슬쩍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

강호의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두뇌 자체가 자신과는 다른 것이다.

“이제부터는 세르지뉴 찾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죠.”

셋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일하게 정해진 구역이 없으면서 언더보스 급이고 5인 평의회에 참석 한단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처음 며칠은 조직원 몇을 붙잡아 추궁을 해봤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세르지뉴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럴수록 가슴은 더욱 뛰었다.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건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긴데.”

두 사람은 야자수 그늘 아래 앉아 땀을 식히며 얘길 나누고 있었다.

캐인은 FBI와 미국 대사관의 협조까지 받아가며 따로 세르지뉴를 쫓고 있었다.

권총수는 세르지뉴라는 이름을 계속 중얼거렸다.

어떤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줄곧 그의 이름을 입속에 담는 건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그에 대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름을 기도문 외우듯 하는 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이다.

그건 오랜 전장의 경험이었다.

“언더보스급인데 5인 평의회 위원중 한 명이다.”

권총수가 계속해서 혼잣말을 흘리자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뭔 비밀스러운 임무를 진행하는 놈 아닐까.”

“비밀스런 임무?”

“그거 있잖아. 대가리들 몇 명만 알고 있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 말이야. 마피아 같은 경우 사회적 거물을 암살할 때는 보스와 히트맨 말고는 아무도 모르게 진행한다고 하잖아.”

“조직은 물론 외부 청소 팀은 더글라스가 맡고 있었잖아.”

“그러긴 한데.”

“설마 블랙 와이드 팀이 두 개?”

권총수가 눈을 좁혔다.

오민철 역시 계속 고개를 갸웃 거린다.

“가능성이 떨어져.”

권총수는 빛나는 눈빛을 거두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담뱃불을 붙이며 이마를 찡그렸다.

누군가를 추적하면서 이토록 헤매듯 거리를 돌아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어딘가에 단서는 있었고 그 단서가 점점 커지면서 목표물까지 안내해 준다.

“가공인물일 리는 없고.”

오민철도 답답한 듯 계속 중얼 거렸다.

“가만!”

한참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담배를 피우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그 사람!”

“뭐가?”

권총수는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형 따라와!”

“어디 가는데?”

“그 생각을 미쳐 못하다니.”

권총수는 멀리 세워 놓은 포드 익스플로러를 향해 걸어갔다.

오민철은 뒤쫒아 오며 무슨 일이냐며 추궁하듯 물었다.

부우웅!

두 사람이 탄 포드 익스플로러가 출발했다.

“형 기억할지 모르겠네. 그 사람?”

“누구?”

“자르델 경감!”

“아!”

오민철이 놀란다.

“맞아. 그 영감이 있지. 그런데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겠는데? 폭식병에 걸려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먹으려고 환장했는데.”

“살아 있기를 기도해야지.”

부우웅!

차는 빠르게 도심으로 들어갔다.

통-

동전 하나가 걸인의 깡통으로 떨어졌다.

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에게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길.”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와 누더기보다 못한 헐렁한 외투를 걸친 노인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계속 떠들었다.

“한 푼만 주시오. 그대의 가정에 복이 쏟아 질 것입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 늙은이에게 실천하시오.”

하지만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노인은 조금전 행인이 던져주고 간 동전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는 몇 개의 동전이 더 들어 있었는데 오늘따라 수입이 평소 같지 않았다.

싸라락!

주머니 속 동전을 손으로 매만지며 얼추 햄버거 한 개는 사먹을 정도라는 걸 가늠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모자란다.

햄버거를 먹게 되면 반드시 콜라 한 잔이 필요하다.

콜라 없는 햄버거는 있을 수 없다.

노인은 더욱 아랫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합시다. 한 푼만 주고 가시오.”

여전히 반응 없는 사람들을 보며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냥 가지 말고 한 푼 주고 가시오. 이 늙은이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일부 행인이 인상을 쓰며 돌아보았다.

“뭘 봐!”

급기야 버럭 소릴 질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전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팔랑!

바로 그때 낙엽 하나가 공중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아닌 겨울이다.

더욱이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은 5층 건물 처마 아래쪽이기 때문에 낙엽이 떨어질 리 없다.

스윽!

낙엽은 절묘하게 자신의 깡통 속으로 들어갔다.

가뜩이나 콜라값이 들어오지 않아 화가 난 노인은 거칠게 깡통 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가 소스라쳤다.

“으헉!”

노인의 눈이 찢어진다.

“배...백달러!”

그건 낙엽이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 자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다 보니 낙엽으로 본 것이었다.

달러다.

너무 오래 되어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해 지려는 그림.

평소 가장 존경하고 제일 담고자 하는 위인중의 위인 밴저민 프랭클린이다.

브라질 사람이 왜 미국의 정치인을 좋아하는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백 달러 지폐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백 달러만 보면 행복하다.

거기엔 너무 먹을 것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오! 기어이!”

하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는데 웬 낯선 사내가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어엇!”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다시 봐도 사람 얼굴이다.

스으으!

사내가 주저앉고 둘의 시선이 평행으로 부딪치면서 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이다.

본 듯 하지만 기억이 없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낯이 익는 묘한 사내였다.

“브라질 경찰 영웅께서 구걸이라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나...나를 아시오?”

“몸이 무척 야위었군요. 그때는 인격과 덕망이 넘치도록 보기 좋았는데.”

뚱뚱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인격이라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었다.

“누구?”

“권총수입니다. 브라질 갱조직 레드 커맨더와 충돌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잖습니까. 자르델 경감님.”

“설마 KAS용병?”

당시는 영국의 보안회사 KAS소속 용병이었다.

“알아보시는군요.”

“오! 자네로군. 내가 프랭클린 다음으로 존경하는 미스터 권 총수 아닌가.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 청년?”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런데 어쩌다 길거리에서 이러고 있습니까?”

“일단 자리를 옮기세. 갑자기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네.”

“그러시죠.”

“깡통과 깔판은 자네가 좀 들게. 자네도 나 알지?”

자르델이 오민철을 향해 히죽 웃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