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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3화 (543/651)

제543화: 한 걸음 더(2)

권초수는 날아온 볼펜을 잡아 세바스찬 앞에 놓는다.

툭!

피가 잔뜩 묻은 볼펜이다.

“코만도 조직계보를 작성해 주시죠.”

세바스찬은 깜짝 놀랐다.

“당신 정도 되면 조직내부 구석구석을 상당히 깊이 들여다 보고 있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더글라스는 세바스찬에 대한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한편 세바스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여전히 오른손에 쥐어진 권총을 들어 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권총수가 뻗어낸 무형의 강기에 눌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덜덜덜!

급기야 얼마나 힘을 주었으면 온 몸을 떨기까지 했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툭!

결국 권총을 놓으며 지친 듯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시선은 여전히 권총수 얼굴에 고정했는데 자혹한 의문에 휩싸여 있다.

“아무리 방음 장치가 잘되어 있다고 해도 기관총소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들렸다면 클럽에 있는 부하 한두 명 정도는 들어와 보는 것이 정상이긴 하죠.”

파르르!

세바스찬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움직였다.

권총수의 말은 클럽의 부하들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즉 바깥에 일행이 또 있다는 의미였다.

“어디서 왔소?”

세바스찬은 차분한 얼굴로 물었다.

더이상 발버둥 쳐봤자 자신만 더 초라해 진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FBI.”

세바스찬은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권총수를 훑었다.

FBI와 오랫동안 전쟁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FBI에 전략 전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고개를 약간 갸웃거린다.

자신들에게 많은 요원들이 희생 되었지만 이런식으로 마구잡이 살육을 벌이며 밀고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건 학살이지 범인 체포가 아니다.

만에 하나 언론에 보도라도 된다면 크리스 국장의 모가지는 물론이고 미국 정계가 흔들릴 일이었다.

“혹시?”

“말해요.”

“사막의 흑새?”

이번에는 권총수가 놀랐다.

브라질 최고의 마약조직 코만도의 언더보스중 한 명의 입에서 자신의 닉네임이 나올지는 몰랐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날 아십니까?”

충격을 받은 듯 세바스찬은 멍한 시선으로 본다.

‘만나지 마라. 그것이 사는 길이다’

언제부터 사막의 흑새는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절대 부딪쳐서는 안되는 피해야 할 적이었다.

그와 총구를 맞대고 살아 남은 개인이나 조직은 없다.

사막의 전장에서도 무적불패의 용병이었지만 전세계 많은 갱단을 초토화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오래전 프랑스 최대조직 ‘르 밀리유’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고 가장 최근에는 러시아 마피아 솔른쳅스카야 역시 두목이 죽는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진짜 사막의 흑새란 말이오?”

“맞습니다.”

사악!

세바스찬은 종이를 반듯이 놓더니 볼펜을 쥐고 조직의 계보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세바스찬이 적어 내려가는 글씨를 가만 지켜보고 있었다.

세바스찬은 A4용지 뒷면까지 가득 채웠다.

권총수는 건네주는 종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어림잡아 이백명 가까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진짜일까 엉터리일까.

자신이 정확한 내용을 모르므로 대충 적었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다.

이백여명에 가까운데 사람 이름 한두 개 가짜로 채운다고 알아낼 리 없었다.

그러나 권총수는 심각하게 읽었는데 그것은 내용이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사막의 흑새에게 걸렸다가 살아난 사람도 많지만 죽은 이가 더 많다.

면전에서 결코 거짓으로 속이려는 배포를 가진 사내는 아직껏 없었고 앞으로도 있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만 가르쳐 드리지.”

“좋아요.”

권총수는 말을 해보라며 눈을 빛냈다.

“코만도 베르멜루는 러시아 마피아도 아니고 프랑스 밀리유도 아니오. 우린 범죄집단이 아니라 국가요.”

국가(國家)란 말에 권총수 눈이 빛났다.

국가라면 코만도 자체가 브라질이라는 뜻이다.

필요하면 국가권력, 즉 군대나 경찰도 동원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조심하시오. 지금 당신은 브라질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을지 모르니까.”

세바스찬은 다시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권총수는 무형의 강기를 해체 시켰다.

세바스찬이 무슨 이유로 권총을 들어 올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세바스찬 정도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주는 것이 예의다.

혹시 갑자기 총구를 돌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할 수 있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무형의 경기가 여전히 근처를 싸고 돌며 언제든지 그의 손을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총구가 권총수를 향하는 건 불가능하다.

타앙!

역시 바로 총성이 울리며 세바스찬이 옆으로 쓰러졌다.

배신을 할지 몰라서 안하는 건 아니다.

FBI라면 얼마든지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살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만도의 언더보스는 경제적 여유와 명예를 함께 지니는데 그건 곧 막중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배신을 하게 되면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친척은 물론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조리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이렇게 자살한다면 최소한 그들에게 피해는 가지 않는다

권총수는 세바스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클럽은 조용했다.

시끄러운 음악도 꺼져 있었고 특이한 건 수많은 핸드폰들이 커다란 통에 가득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오민철과 캐인의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었는데 권총수는 단번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안에서 기관총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당황했을 것은 뻔했다.

그중 누군가는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있다.

이에 오민철과 캐인은 가장 먼저 음악을 담당하는 디제이부터 제압했고 이어 모든 사람들을 무릎 꿇리고 핸드폰을 빼앗은 것이다.

몇몇 사내가 피를 흘리거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 보나마나 주먹으로 달려들다 오민철에게 터진 것이다.

물론 총에 맞은 죽은 이도 있는데 세바스찬 부하들일 것이다.

“기싸아앙.”

오민철이 소릴 질렀으나 반응이 없다.

권총수가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그만 일어나도 됩니다. 우린 여러분 편에 선 평범한 시민일 뿐이죠. 이곳 주인이 여러분도 잘 아는 코만도 조직 간부입니다. 총소리는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권총수는 위조한 브라질 경찰 특공대 BOPE의 신분증을 펼쳤다.

“즐거운 주말 밤 보내는데 미안합니다. 계속 즐기십시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 사람은 클럽을 빠져 나왔다.

부우웅!

클럽 맞은편에 있던 포드 익스플로러가 센바랄가를 떠났다.

아침 일찍 대문이 열렸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고 멀리 대서양의 푸른 바다가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벤츠에서 내린 사내는 대략 마흔 초반가량 되어 보였는데 짙은 남색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메고 있었다.

잘 단장된 잔디로 된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 앞에 도착하자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이 머리를 숙였다.

“시우바, 치치 오랜만이야.”

두 명의 경호원이 빙긋 웃고 문을 열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또 하나의 유리로 된 문이 나타났는데 의외의 사내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었다.

“마르셀루씨. 이 아침에 어쩐일로?”

문을 열어준 마르셀루가 빙긋 웃는다.

쉰 정도 나이의 마르셀루는 코만도 조직을 이끌어가는 프레드의 고문 변호사이자 책사다.

단순히 법적 문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사업 깊숙히 개입하여 좋은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침 일찍 보스가 차 한 잔 하자고 부르더군요.”

마르셀루의 말을 곱씹어 본다.

차 한 잔 하기 위해 불렀다는 건 중요한 일이 있다는 의미다.

마르셀루의 안내로 직사각형의 탁자 의자에 앉았고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묻는다.

“둥가씨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보였는데 둥가는 밝은 웃음을 지었다.

“주시면 즐겁게 마시겠습니다. 마르타.”

마르타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때 이층 계단에서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두 사람이 쇼파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넥타이를 메지 않은 정장 차림의 백인 사내가 내려왔다.

“왔군.”

백인사내는 둥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인사내, 코만도 베르멜루의 보스 프레드가 자리에 앉는다.

탁!

프레드는 탁자 위에 놓인 시가잭에서 두툼한 시가 한 개를 꺼내더니 불을 붙였다.

“의사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시가를 무는 프레드를 보면 변호사인 마르셀루가 한마디 했다.

의사는 기관지가 좋지 않은 프레드에게 금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네가 여기에 앉았다면 그런 소릴 못할거야.”

프레드는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골치 아픈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 모르는 마루셀루와 둥가 사이에는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커피 드세요!”

마르타가 싱긋 웃으며 커피를 놓고 돌아갔다.

둥가는 조용히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커피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커피농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커피를 빵처럼 먹었다.

배가 고프면 커피 원두를 씹어 먹으며 자랐다.

웬만하면 지긋지긋해서라도 커피는 보기도 싫은텐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커피가 좋다.

그때는 배가 고파 먹었다면 지금은 향에 취해 마신다.

“세바스찬이 떠났네.”

“흡!”

커피를 마시던 둥가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그가 자살 따위나 하는 친구이던가.”

“원해서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자살이란 말입니까?”

마르셀루의 눈이 커졌다.

세바스찬은 세르지피 주를 완전히 손에 넣고 있다.

땅덩어리는 브라질의 어느주 보다 작지만 많은 부두를 끼고 있었다.

특히 수심이 깊고 지형적 영향으로 파도가 적어 세계각지에서 온 수출입 화물선들이 가득했다.

당연히 돈이 흔하고 총과 마약등 법을 피해서 움직여야 할 물건들까지 덩달아 활발하게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황금시장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세바스찬이기에 프레드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범인이 경찰이라고 했다는데, 그건 아닌 듯 하고.”

미국에 무사히 상륙했다고 생각했던 코카인이 FBI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더글라스가 가족과 함께 실종되었고 이번에는 세바스찬이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초장에 잡아야 하네.”

시선이 둥가에게 향했다.

“그렇지 못하면 나중에 굉장히 힘들어진다는 걸 알아야 해.”

“FBI겠죠?”

마르셀루가 묻는다.

프레드는 시가를 물고 등을 의자에 기댔다.

“클럽에 있던 부하들 중 단 한 명도 살아나지 못했다는군.”

“네에?”

두 사람 모두 소스라쳤다.

“모두 열세명이 시신이 되었어. 생사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너무 많은 아이들이 숨졌어.”

프레드는 탄식하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치 사랑하는 자녀를 잃고 한숨 쉬는 부모의 모습이다.

둥가의 직책은 프레드의 친위대인 레드 베저(Red badger)의 수장이다.

그를 조직에서는 마피아의 형식을 따라 카포라고 부르기도 하고 행동대장이라는 뜻으로 액션 카포(Action Capo)로도 불린다.

다른 구역장들과 달리 오로지 프레드의 직접 명령만을 받아 움직이며 반드시 완수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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