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2화 (542/651)

제542화: 한 걸음 더(1)

앉아있는 탁자로 여자가 곧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내밀며 다가왔다.

“맥주!”

아찔한 여자의 옷차림에 오민철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생긋 웃으며 돌아갔다.

“어디 갔지. 2층에도 안 보이는데요?”

캐인이 이미 2층을 뒤진 뒤 다가왔다.

오민철은 눈에 힘을 주고 두리번거렸다.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올 테니까 앉아 기다려, 만약 안에서 총소리가 들리면 곳곳에 있는 조직원들을 모두 없애 버려.”

캐인의 눈이 커졌다.

없애 버리라는 말을 너무 간단하게 뱉는다.

자신이 대충 헤아려도 대여섯 명은 되는데 그들을 범죄자라고 몰살하듯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권총수는 사람들을 젖히며 통로를 걸어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걸어가던 권총수가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클럽 안쪽으로는 문 하나가 굳게 닫혀 있었다.

출입 통제구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스르르 문이 저절로 열린다.

문을 열자 안으로 복도가 나타났다.

탁!

열린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복도 끝에 또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저절로 열렸다.

제법 넓은 사무실이다.

책상 두 개와 소파가 놓여 있는데 세 명의 사내들이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한참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내기를 하는 듯 탁자위에는 백 달러짜리 지폐 대여섯 장이 놓여 있었다.

스르르르!

흐릿했던 권총수의 몸이 분명히 만들어진다.

워낙 소리도 없고 조용하여 문이 열리고 닫힌 걸 모르고 있던 사내중 한 명이 고개를 돌리다 입구에 있는 권총수를 발견하고 놀란다.

“넌 뭐야?”

푸슉!

숙!

소음기가 끼워진 글록 19가 속삭이며 두 사내가 엎어졌다.

혼자 남은 사내는 안색이 하얗게 굳어버린다.

권총수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마치 형사처럼 홀스터를 차고 있었으며 권총을 뽑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색이 되어 앉아 있다.

꿀꺽!

꿈이 아닌가 싶은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 내기 도박을 하던 두 명의 동료가 피를 흘리며 꼼짝하지 않는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해요.”

사내는 마른침을 삼킨다.

“저 안에 몇 명 있습니까?”

권총수는 안쪽에 닫힌 문을 가리켰다.

“다...다섯!”

“조금 전 들어온 카푸 일행이 넷이고, 그럼 나머지 한 명이 저 방의 주인이라는 것인가?”

사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 주인이 누구요?”

“세바스찬.”

권총수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더글라스로부터 받은 언더보스(구역장급)명단을 훑었다.

있다.

이곳 센바랄가를 장악하고 있는데 코만도 조직내에서 발언권이 세다고 말했다.

같은 언더보스 급이지만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상파울루 대학을 졸업한 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내로 브라질 경찰 특공대 BOPE출신이다.

그다지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는 걸 보면 방음장치가 잘된 모양이었다.

하긴 그토록 음악소리가 큰데 방음장치가 되어있지 않다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퍼억!

권총으로 사내의 머리 뒤쪽을 때렸다.

쿵!

사내는 그대로 쓰러졌는데 잠에 골아 떨어진다.

수혈을 제압한 것이다.

권총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유난히 짙은 화약냄새’

그건 권총에서 나는 화약 냄새와는 또 다르다.

오랜 용병생활 경험으로 볼 때 상당한 중화기가 안에 있음이 틀림없다.

자동소총이 아니다.

방음이 될 만큼 밀폐된 공간이다.

보통사람은 절대 맡지 못한다.

육식귀원을 넘어 반노환동에 들어선 내가 고수의 후각에 걸릴 정도의 화약이라면 자동소총은 결코 아닌 것이다.

‘중화기로 보이는데’

권총수는 문 앞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렸다.

도시든 정글이든 적진은 무인지경일 수 없다.

아무리 경계병이 없고 조용하다고 해서 무턱대로 들어갔다가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내공이 높아져도 한 가지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부비트랩이었다.

특히 땅속에 폭발물을 묻고 부비트랩을 설치해 놓으면 시각이 아닌 후각이나 청각으로는 감지하는데 애를 먹는다.

잠시 망설이던 권총수는 문을 중심으로 오른쪽 측면으로 몇 걸음을 비켜섰다.

벽에 붙어선 권총수는 허공섭물의 방법으로 닫힌 문을 끌어 당겼다.

딸칵!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리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두두두!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출입문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브라질 정치권까지 쥐락펴락 할 정도의 막강한 조직이 되었다는 건 나름대로 뭔가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화약 냄새가 맡아졌지만 백프로 확신은 아니었고 만약을 대비해 조심한 것이다.

오랜 전쟁을 하면서 수많은 형태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부비트랩을 헤치고 기어이 죽지 않고 살아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오늘 또 한 번 예상못한 함정에서 권총수를 구한 것이다.

자동소총이라도 이정도 근거리면 호신강기를 뚫는다.

하물며 기관총이라면 온 몸이 견디지 못한다.

뚝!

사격이 멈췄다.

문은 거덜이 난 채 나뒹굴었고 사무실 책상과 소파 역시 걸레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입구쪽 맞은편 벽에는 손가락 하나는 너끈하게 들어갈 구멍들이 빼곡하다.

스르르!

권총수 모습이 또다시 사라졌다.

사무실에는 모두 다섯 명이 있었다.

탁자 위에는 백 달러짜리 뭉치가 몇 개 있었는데 무사히 마약을 운반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보너스로 보인다.

카푸를 포함해 세자르 루시우 쿠카쿠 모두 권총을 뽑아 들고 있었고 소파 솔로석에 앉아 박살난 출입문을 바라보는 마흔 초반 가량의 노랑머리 사내 세바스찬 역시 권총을 쥐고 있었다.

뒷골목 세계는 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적도 없고 친구도 없다.

잠시 웃다가도 돌아서서 방아쇠를 당기는 곳이 뒷골목이고 배신이 밥먹듯 일어난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오르고 싶으면 먼저 올라가 있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 가장 빠른 승진의 방법이다.

‘죽는 건 무조건 무능이다’

거대 마약조직 코만도의 우두머리 프레드는 분명하게 말한다.

그의 말은 여러 곳에서 효과를 나타냈다.

긴장하지 않는 나태한 자, 부하들을 쉽게 뭉개면서 관리를 할 줄 모르는 리더는 언제든지 뒤에서 총을 맞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부패예방이다.

조직에 충성하지 않고 몰래 돈을 빼돌리거나 착복하는 사람은 배신자 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누가 죽여도 죄를 추궁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두머리라고 호의호식한다거나 부하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가는 것이다.

코만도가 다른 여타 마약조직보다 빨리 강맹해지고 조직원의 숫자가 많은 것도 이런 분명한 법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직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언제 어떤 부하가 배신의 방아쇠를 당길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조직원들은 직책에 맞는 나름대로의 생존방법들을 항상 준비하고 다닌다.

세바스찬을 만나기 위해서는 벨이 있다.

이름하여 오브 피스 벨(of peace ball), 이름하여 평화의 벨이다.

용건이 있거나 보고할 사항이 있는 부하들은 반드시 이 벨을 눌러 면담을 요청해야 한다.

위험을 피하기 위한 세바스찬이 만들어낸 절차였다.

그걸 모른다는 건 외부인일 가능성이 높고, 또한 자신을 노리고 온 킬러일 확률이 크므로 그냥 들어오면 벌집이 된다.

권총수는 그런 함정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단지 오랜 경험과 내가고수다운 육감으로 피한 것이다.

“어!”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 루시우가 놀란다.

사무실이 폭탄을 맞은 듯 박살 났는데 정작 보여야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동료 셋이 죽어 있다.

세바스찬이 있는 사무실 문을 열면 5미터 앞 정면에 설치된 총은 러시아 기관총 PKM이다.

지구상에서 그 어떤 기관총보다 견고하고 고장이 없는 무기로 정평이 나있고 탈레반의 무기로 악명을 떨쳤다.

그걸 증명이라도 해 주듯 사무실과 소파는 물론 맞은편 시멘트 벽에 까지 탄흔이 엄청나다.

루시우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예리한 눈으로 사무실을 살핀다.

시체가 보여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동료들 것 말고는 안 보인다.

그리고 출입문은 자동으로 안에서 잠기는데 누가 문을 열어주었을까.

정확한 신분이 아니면 열어주지 않는다.

“없어?”

두 번째로 나온 사내는 쿠카쿠와 세자르였다.

두 사람 모두 손에 권총을 쥐고 사무실을 훑는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세자르는 사태가 심상찮다고 보는 듯 눈을 빛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세바스찬과 카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도 권총을 쥐고 일어섰는데 갑자기 뭔가 절단되는 것 같은 섬칫한 소리가 들린다.

싸아악!

세바스찬은 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으므로 고개를 돌렸다.

흠칫!

세바스찬은 소스라쳤다.

등 뒤에 따라 나오던 세자르는 그대로 서 있고 그 뒤로 또 한 명의 사내가 있었다.

사무실에는 분명 둘 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다음에 일어났다.

스물스물!

카푸의 목에 붉은 선이 나타났다.

마치 타이트한 붉은 목걸이를 차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점점 선이 굵어지며 급기야 흘러내린다.

피다.

목이 잘려진 것이다.

그런데 목은 몸통에 그대로 붙어 있고 피만 흘러내린다.

자신을 바라보는 카푸의 눈빛 또한 아직 생기가 있는 것이 완전히 숨이 끊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쉬이익!

그때 바깥 사무실을 수색하던 두 사내가 굳은 얼굴로 들어오다 말고 문 앞에서 굳어 버렸다.

두 사내의 목에 볼펜이 꽂혔는데 세바스찬의 눈이 떨린다.

자신이 사용하던 볼펜들임을 알아 차렸다.

루시우와 쿠카쿠는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술을 달싹 거렸지만 끝내 한마디도 뱉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쿠쿵!

퍼어어!

두 사람이 넘어지고 거의 같은 순간에 들어서던 세자르까지 엎어졌는데 이마에 책상위에 있던 10헤알짜리 동전 다섯 개가 꽂혔다.

동전도 책상 한쪽에 모아 놓은 것이다.

“앉으세요.”

권총수는 자신이 먼저 소파에 앉아 주인처럼 말했다.

세바스찬은 권총을 쥐고 있었다.

단지 밑으로 내려뜨리고 있을 뿐이고, 그에 반해 권총수는 아무것도 손에 없었다.

총으로 쏴야 한다.

적이 들어왔다.

이미 다섯 명의 부하가 놈의 손에 희생당했다.

안방에서 적에게 다섯 명의 부하를 잃었다는 소문이 나가면 자신은 더 이상 지금의 지위를 누릴 수 없다.

“으음!”

무겁다.

이토록 권총이 무거울 줄 몰랐다.

늘어뜨리고 있을 때는 가벼운데 들어 올리려고 하자 팔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욕설을 퍼부으며 더욱 힘을 주었으나 요지부동이다.

딸칵!

권총수가 담배를 피워 문다.

소파에 등을 기대 앉아 세바스찬을 바라보는데 지그시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웃음은 당신의 지금 팔이 움직이지 않는 건 나 때문이라고 일러주는 것 같기도 했다.

끝내 권총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세바스찬은 권총수 맞은편에 앉았다.

후우!

권총수는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권총수가 왼손을 책상 쪽으로 뻗었다.

스으으으!

그러자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A4용지 한 장이 천천히 날아온다.

“우웃!”

세바스찬은 기겁했다.

탁!

날아온 종이를 잡아 탁자 위에 놓았고 이번에는 쿠카쿠 목에 박힌 볼펜을 허공섭물의 방법으로 당겼다.

스윽!

목 깊숙이 박힌 볼펜이 빠져 나와 천천히 날아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