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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40화 (540/651)

제540화: 하이에나 우리를 나오다(1)

더글라스는 이마를 찡그린 채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았다.

갈등을 느끼는 모양이다.

어느 집단이건 최고 우두머리의 신상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는다는 건 다시는 조직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아니면 더 이상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걸 털어 놓을 경우 설혹 이쪽에서 살려준다고 해도 조직에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더글라스는 시선을 권총수에게 돌렸다.

말을 하고 죽는 것을 선택했으며 다만 한 가지 부탁을 하기로 했다.

“날 좀 도와주겠소?”

“뭡니까?”

오민철이 묻는다.

“날 죽여주시오. 대신 칼이 아닌 총으로 쏴 달라는 것이오.”

“그러죠. 고통없이 보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권총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제서야 굳어 있던 더글라스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

비록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겠지만 죽는다면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떠났다는 평가는 들을지 모른다.

“담배 한 개비만 더 얻어 피울 수 있겠소?”

오민철이 재빨리 담배를 건네고 라이터를 켜주었다.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더글라스는 한숨을 토하듯 연기를 뱉으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FBI같아 보이지는 않는군요?”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코만도 조직 블랙워드의 리더인 날 이렇게 옴짝달싹 못할 만큼 짓누를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는데.”

워낙 거칠게 살아왔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납치했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권총수 앞에서는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30,000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코만도의 보스는 코인 프레드.”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뭔가 알아야 반응을 하는데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반면 캐인은 약간 눈썹을 찌푸렸으며 그건 얼굴은 모르지만 이름은 들어봤다는 의미였다.

더글라스는 느릿하게 프레드에 대한 말을 이어갔고 세 사람은 귀를 세우며 들었다.

코만도 조직과 우두머리 프레도란 사람에 대한 설명은 30여 분간 이어졌다.

갈대 숲 너머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캐인! 사람 한 명 살립시다.”

갑작스런 말에 캐인이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본다.

“더글라스씨 말이오? 미국 시민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캐인은 깜짝 놀랐다.

권총수의 말은 더글라스를 살려주겠다는 뜻이며 미국 시민으로 신분까지 바꿔달라는 요구다.

CIA도 그렇지만 FBI도 중요한 증인이나 특정 범죄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댓가로 신변이 위험해지는 사람이 있으면 증인 보호프로그램에 따라 모든 걸 새로 만든다.

스윽!

권총수가 오른손을 뻗더니 당기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더글라스 무릎에 깊숙이 박혀 있던 칼이 뽑혀 권총수의 오른손에 잡혔다.

파팟!

이어 소림의 탄지신통으로 더글라스의 무릎을 지혈했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혈도까지 눌렀다.

아픔이 사라지고 흘러나오던 피가 멈추자 더글라스의 눈이 커졌다.

“이제보니 당신 혹시.”

더글라스가 뭔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빛냈다.

“사막의 흑새?”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이동합시다.”

캐인이 운전석에 올랐고 오민철은 조수석이다.

권총수는 더글라스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는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이 있습니까?”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아홉 살짜리 아들이 하나 있죠.”

“당장 전화를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빨리 집을 나오라고 하시죠. 살림살이 미련 두지 말고 여권만 챙겨 오라고 해요.”

더글라스가 운전하는 캐인을 슬쩍 본다.

칼자루는 캐인이 쥐고 있다.

캐인은 분명한 대답을 아직 하지 않았다.

“캡틴은 긴급 투입된 특수요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의 지시를 받고 따르도록 되어 있소.”

더글라스의 표정이 그제서야 가라앉는다.

지금 모습으로는 절대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지구상 어디에 숨어 있어도 코만도는 반드시 찾아내 제거하고도 남을 조직이었다.

부우웅!

차는 떨어지는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경비행기 한 대가 어둠을 뚫고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기에는 권총수를 비롯한 오민철과 캐인이 앉아 있었는데 시간은 저녁 아홉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리우를 떠난 지 두 시간여 날아간 비행기는 점차 고도를 낮추더니 불빛이 깜박이는 정글속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쿠쿵!

활주로 노면이 흙으로 되어 있는 터라 비행기는 앞으로 고꾸라질 듯 기우뚱하며 조금씩 중심을 잡았고 천천히 속도를 떨어뜨렸다.

흔들거리며 착륙하던 비행기가 멈췄고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이 내렸다.

비행기 조종사는 세 사람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기수를 돌리더니 다시 활주로를 달려 이륙했다.

활주로 끝에는 이미 한 사내가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권총수 일행과 악수를 한 사내는 FBI요원 바트였다.

그가 운전대를 잡고 일행은 차에 올라 활주로를 떠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포드익스플로러가 다시 나타난 곳은 세르지피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다라일크 항구였다.

10시가 넘은 항구는 조용했다.

이 시간이 제일 한가하다.

새벽 일찍 조업을 나간 배들은 거의 초저녁에 들어오고 새벽 조업은 자정이 넘어 두세 시 때부터 조업을 나가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의 공백이 있는 것이다.

그 대신 이 시간에 가장 많이 벌어지는 일은 선박수리나 그물 손질이다.

탁!

라이트가 꺼지고 포드 익스플로러가 멈췄다.

오늘 새벽 일찍 위성턴으로부터 감청되지 않는 전화를 이용해 긴급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공해상에서 콩쿠르호에게 코카인을 환적(換積)한 산타마리아호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떳떳하다는 듯 파란 천막을 덮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위성추적은 용이로웠다.

위성자료에 의하면 오늘 밤 자정을 전후하여 이곳 세르지피주 다라일크 부두에 입항할 것으로 예측했다.

타탁!

오민철은 의자 아래 숨겨 놓은 M4를 꺼내 30발들이 탄창을 살피며 만약을 대비했고 캐인 역시 M4로 무장했다.

상대가 AK로 무장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권총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딸칵!

유리를 조금 내리고 권총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열린 유리 틈으로 말보로 레드의 푸른 연기가 뻗어나간다.

두어번 담배를 빨아들이던 권총수가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잠시 짬을 내어 얼마전 채 끝내지 못한 통화를 하려는 것이다.

회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권총수가 자리에 없는 지금 모든 건 채명천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침 회의를 끝내고 자신의 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권총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채명천은 재빨리 피우던 담배를 껐다.

권총수는 전에 얘기하다 만 윤칠수 기자 사건에 대해 질문했으며 채명천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권총수는 잠시 침묵했다.

솟구치는 화를 다스리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지만 20여초 반응이 없더니 짧게 한 마디 했다.

“잘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러나 전화는 끊어졌다.

잠시 핸드폰을 들고 있던 채명천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화가 나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가만 보면 세상에서 인간처럼 미련한 동물은 없다.

권총수는 지금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고 있다.

상대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권총수 목소리는 인간적인 감정이라고는 조금도 묻어 있지 않았다.

차가운 한기가 풀풀 풍겨 나온다.

안타까운 사람들이다.

아직까지 권총수가 칼을 겨눠 그 칼을 피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권악수와 모친 현미정에게 향해있던 칼 끝이 이제 체포영장을 가로막는 검찰에게까지 확대되었다.

누구나 사람을 죽일 수는 있다.

문제는 이른바 법에 걸리느냐 걸리지 않느냐 였다.

권총수는 절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법이 처벌해주지 않으므로 결국 돌아와서 직접 나설 것이 뻔했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온다.

채병천은 액정을 보았는데 권총수의 고문 변호사인 이충문이었다.

감앤장 대표급 변호사라는 명함으로 잠시 우쭐대다 권총수에게 혼이 난 이후 무척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러워졌다.

“이 변호사님.”

“얘기 들으셨습니까? 권악수가 오늘 중으로 나오는 모양입니다.”

“네에?”

채명천의 눈이 커졌다.

“나도 자세한 얘긴 알지 못하고 조금전 법무부 후배로부터 살짝 귀띔을 받았습니다.”

채명천은 너무 뜬금없는 일이었기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권악수는 장웅철로부터 전달받은 깨끗한 양복으로 갈아 입었다.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권악수, 넌 할 수 있다.”

점점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적은 절대 살려둬서는 안 된다. 적은 적일뿐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한다.”

마치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출장을 앞둔 선수의 다짐처럼 비장하다.

“두 번 다시 실수는 없다.”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맹수의 포효처럼 들린다.

“한 놈도, 누구도 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때 문이 열리고 교도소장이 나타났다.

“회장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쌀쌀 맞았다.

권악수를 아는 체하며 웃어주긴 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가식이었다.

립서비스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웃음은 진짜다.

과거의 권악수를 대하듯 굽히는 허리도 자연스럽고 얼굴에 감정을 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권악수 쪽이 냉랭했다.

“웬일이오?”

찬바람이 분다.

교도소장은 흠칫 했지만 어느새 표정을 회복한다.

“나가실 준비 끝났으면 가시죠.”

“교도관을 보내도 될 텐데 굳이 소장님께서 오셨습니까? 바쁘실 텐데?”

노골적인 비아냥이다.

교도소장은 여전히 웃고 있다.

권악수는 문을 열고 나갔다.

교도소장이 재빨리 옆을 따르자 다시 한 번 걸음을 세우고 말했다.

“나 혼자 갈수 있소. 저기 저 문만 열고 나가면 끝나는 것 아니오?”

더 이상 누구의 안내가 없어도 되는 아주 짧고 간단한 길이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경멸하거나 차별하지는 않았으나 굉장히 불쾌했다.

가끔 술 생각이 나서 양주 한 병 부탁하는데도 안 된다고 가로막은 교도소장이다.

“곧 정년퇴직한다고 들었소만?”

“일 년 남았죠.”

“퇴직하면 다른 일을 해야 할 텐데 일자리는 알아보았소?”

“알아봐야죠.”

“하긴, 아직 일 년이란 시간이 있으니까.”

그리고 권악수는 작은 문을 열고 나갔다.

거기서부터는 교도소 안이긴 하지만 실외다.

작은 공터를 50여 미터 걸어 나가면 후문이 나타난다.

혹시 기자들을 대비해 후문으로 출소 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은 것이다.

교도소장은 우두커니 서서 걸어 나가는 권악수를 바라보았다.

“권회장, 원래 이 자리가 그런 자리지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해져야 하는 자리 말이오.”

교도소장은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당신은 얼마 전까지 약자였소. 비록 오늘 다시 강자로 돌아가지만,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이오.”

교도소장은 담배를 길게 빨아드리더니 연기를 토하듯 뱉었다.

“권회장 눈에 내가 한심하게 보였다면 당신이야 말로 인생 더 배워야 할 것 같소.”

교도소장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워낙 극비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다행히 기자들은 한 명도 몰려오지 않았다.

운전기사 양형모는 서둘러 뒷문을 열어주었고 권악수는 재빨리 차에 올랐다.

타탁!

뒷문과 조수석으로 장웅철이 올라탔고 차는 교도소를 출발했다.

“어딨소?”

권악수가 다짜고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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