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37화 (537/651)

제537화: 어둠의 자식들(1)

“경찰이다!”

마일스가 외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둠을 뚫은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푹!

푸푸푹!

총소리는 아니었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무장한 자신의 부하들이 하나둘 넘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이라는 것까지는 눈치 챘으나 아직 발견을 하지 못해 자신은 방아쇠 한 번 당겨보지 못하고 있는데 멀쩡한 부하들이 나자빠지고 있다.

쿵!

털썩!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넘어진 부하에게 주춤 다가갔다.

화악!

마일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죽은 부하들의 목에 구멍이 뚫렸고 그곳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꾸울꺽!

총에 맞았다면 소리가 나야 한다.

칼에 베었다면 칼을 휘두른 사람이 있어야 했다.

좀 더 다가가자 부하의 목에 뭔가 펄럭거린다.

한 걸음 더 접근하여 상체를 숙이고 바라보았는데 목에 꽂힌 것은 놀랍게도 포플러나무 잎사귀였다.

“허헉!”

마일스는 또다시 온 몸을 떨었다.

믿을 수 없어 시선을 더욱 낮췄다.

“아!”

진짜였다.

포플러나무 잎사귀가 깊숙하게 목에 박혀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부하들 모두 이와 같다는 뜻이었기에 마일스는 얼어붙어 버렸다.

흠칫!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는데 자신의 등 뒤에 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권총을 쏠 생각 보다는 너무 놀라 심장이 멎을 듯 했다.

탁!

사내는 권총을 쥔 마일스 손목을 잡았다.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이다.

아직까지 이렇게 빠른 손을 가진 사람은 못봤다.

툭!

손목이 잡히는 순간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며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떨어 뜨렸다.

“베레타 아냐?”

고개를 돌렸는데 다른 사내가 나타나 땅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들었다.

오민철이 빙긋 웃는다.

부우웅!

그때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며 부두를 향해 강력한 라이트가 비췄다.

승용차 두 대가 도착했는데 방탄조끼를 입은 카사스와 여섯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모두 흑복에 방탄조끼를 걸쳤는데 FBI 기동대원들이었다.

그들 손에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며 더욱 유명해진 HK-416이 들려 있었다.

기동대원들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진 사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FBI입니다.”

카사스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마일스란 사내를 체포했다.

커피 포대를 열었다.

그 안에는 커피 열매도 담겨 있었지만 흰색의 비닐 팩에 담긴 코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닐팩 한 개가 500g이다.

자세히 뒤졌는데 모두 10개가 들어 있었다.

한 포대에 500g짜리 코카인 비닐팩 열 개면 5킬로그램이다.

모두 스무 포대이므로 200개가 나왔고 무게로는 일백 킬로나 되었다.

얼른 계산해도 대략 10억 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신문이고 방송 어디에서도 10억 달러어치 코카인 밀매조직 검거에 대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정치 뉴스와 마약 중독자들끼리 총기를 이용한 싸움이 벌어져 3명이 숨지고 다섯 명이 다쳤다는 것 말고는 주목할 만한 소식은 없었다.

그 시간 권총수와 오민철은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미국내 마약조직은 FBI가 맡고 이제 코만도와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권총수의 손에는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는데 브라질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FBI요원들이 보내온 코만도에 대한 가장 최신 정보들이었다.

오민철 역시도 아이패드로 여러 기록과 새로운 정보를 살핀다.

“흐음!”

어느 정도 기록을 살핀 듯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았다.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고 있는데 발 아래 하얀 눈밭처럼 구름이 깔려 있었다.

도시의 전쟁이 어려운 건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치열한 교전이나 추격을 하다보면 민간인이 다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약조직들은 이쪽과는 다르다.

그들은 민간인의 죽음이나 부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야전으로 본다면 그들에게 민간인은 주위의 숲과 나무일뿐이다.

도시라는 대자연속에 살고 있는 나무이고, 바위이고 살아가는 짐승인 것이다.

전장 속에서 나무는 꺾이고 불에 타기도 하며 바위는 총알에 깨지며 제 모습을 잃는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동물들 또한 전쟁으로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마약조직들에게 시민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경찰이 불리한 것이다.

외인부대시절 어린아이를 저격하지 못해 부대가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작전은 실패했다.

아이가 IS정보원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더 조심해야 하는 건 범죄자들은 잡히겠다 싶으면 나무와 풀들과 바위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다.

이쪽은 가려서 쏴야 하고 저들은 마음대로 쏜다는 차이가 도시전쟁에서는 엄청난 성패를 보인다.

“코모도 조직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이 일 년에 일백 명이 넘어.”

자료를 훑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그중 80퍼센트가 코만도와 무관한 민간인?”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매우 놀란 얼굴이었는데 권총수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한 수 접어주고 싸워야 하는 매우 불리한 입장이지.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면 결코 그 작전은 성공했다고 볼 수 없어.”

“그런데 말이야 여기 28페이지 밑에 쓰여 있는 내용, 배신자가 드물다는 거야. 배신자가 없는 조직이 있나? 어딜 가든 조직에 불만을 갖고 있는 놈은 존재하는데.”

“배신자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어. 잔혹한 처벌을 한다는 얘기겠지. 배신을 하거나 수사기관의 끄나풀이 되면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 완전히 청소를 해버린다고 들었어.”

뉴스위크지 편집장으로 있던 폴은 코만도 조직을 21세기 최악의 범죄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그 발언이 있고 보름 후 그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놀라운 건 때마침 아내와 두 딸은 알프스를 여행 중이었는데, 그곳 호텔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스위스 경찰과 FBI모두 코만도의 소행으로 판단했지만 분명한 물증은 갖고 있지 않았다.

곧 갈레앙 국제공항에 도착하므로 안전띠를 풀어놓은 손님은 다시 채우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아이패드를 각자의 백에 넣고 내릴 준비를 했다.

입국장을 들어섰다.

누굴 찾는지 두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바로 옆에서 굵직한 톤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백인 사내가 넥타이 없는 장장차림으로 서 있었는데 수염이 덥수룩했다.

“캐인?”

“미스터 캡틴!”

서로가 악수를 나눈다.

마약만을 단속하는 FBI 7국 소속 제3작전팀장 캐인이었다.

“오민철이오!”

“반갑습니다.”

권총수는 캐인의 어깨를 토닥거리는데, 캐인에게서는 굉장한 살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건 한눈에 봐도 복수심이었다.

많은 부하들을 코만도 조직에게 잃은 리더의 분노인 것이다.

전쟁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더 이성적이냐는 양쪽의 장비가 비슷하다고 볼 때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권총수의 손바닥에서 현현한 기운이 뻗어나가 캐인의 몸을 감싼다,

순간 캐인이 놀라 자신의 몸을 돌아본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몸 안으로 시원한 얼음물이 들어오는 듯 감정이 내려앉고 눈앞의 풍경들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청사 입국장은 변함없건만 조금 전과는 판이한 주위 모습에 캐인은 매우 놀랐다.

마음이 안정 되므로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어깨를 짚은 것 같지는 않은데’

권총수가 오기전 많은 조사를 했다.

불가사의한 능력도 알고 있고 과학으로는 이해 못하는 면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자신 역시도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어깨를 토닥이자 온 몸이 시원하고 꺼질 줄 모르던 분노의 화염이 가라앉은 것이다.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공항을 떠나고 있었다.

캐인이 운전대를 잡았고 권총수와 오민철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운전을 하는 케인이 주로 말을 했고 두 사람은 듣는다.

캐인의 얘기를 종합하면 코만도 조직은 더 이상 FBI나 DEA(마약단속국)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피하는데 방점을 찍었다면 지금은 만나면 곧장 방아쇠를 당긴다.

즉 몇 번에 걸친 전쟁에서 압승을 거두자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코만도 두목은 누굽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그것이 참 분명하지 않습니다.”

캐인이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건 세 명인데 셋 모두 아니라는 얘기도 있고.”

“그런 거대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겁니까?”

“신디케이트 형태로 운영된다는 말도 있고.”

피식!

오민철이 웃는다.

“세상 웃길 일이군.”

“글쎄 말입니다.”

캐인이 맞장구를 친다.

범죄집단 여럿이 민간 기업처럼 공동으로 하나의 시장을 운영하는 걸 신디케이트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형태의 운영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도시라는 숲속의 맹수들이다.

맹수는 절대 공존하지 않고 단 한 마리의 지배력만 인정하고 존재한다.

숲의 주인이 두 마리의 맹수일 수 없듯 범죄조직 역시 그렇다.

한 명의 두목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계급 사회다.

수사망을 혼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라는 설을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차는 빠르게 리우 시내를 향해 달려갔다.

FBI 안가는 놀랍게도 리우 최대의 빈민가로 알려진 파벨라로 들어가는 말카라 2가에 있었다.

넓은 도로를 놓고 한쪽은 화려한 건물들이 있는데 반해 맞은편은 가파른 언덕과 산비탈이며 거기엔 허름하고 낡은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벌집을 보는 듯 했다.

브라질의 공권력 집행이 불가능하다는 지역이다.

파벨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마약 카르텔에게 장악되어 있고 그들의 말만 듣는다.

브라질 정부에서조차 몇 번에 걸쳐 군 병력까지 투입했지만 난공불락이었다.

경찰이건 누구건 공권력을 집행하러 들어가면 거의가 걸어 나오지 못한다.

그 파벨라가 훤히 보이는 건물 5층이 FBI 비밀 안가인 셈이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했던가”

사무실로 들어선 오민철이 실내를 한 바퀴 돌아보더니 커텐 사이에 숨겨진 감시 망원경을 보았다.

파벨라 지역으로 들어가는 가장 큰 도로, 그래봤자 왕복 2차선이지만 그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빈민가이면서 산동네다.

당연히 도로 사정이 좋을리 없고 지금 보이는 도로가 제대로 갖춰진 차도라고 했다.

나머지는 처음부터 있었던 좁은 골목이거나 계단, 또는 급경사의 비탈길이다.

한쪽 방에는 무인항공기와 첩보위성이 찍은 사진과 정보를 받아 볼 수 있는 첨단기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소득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캐인이 끓여온 커피 잔을 놓고 세 사람은 사무실에 탁자에 앉았다.

“지금 우리에게 확보된 코만도 조직의 간부급은 쉰 명 가까이 되죠.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트럭이나 승용차 넘버도 일백여 대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차량 넘버나 차종은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죠. 직접 한 번 보시겠습니까?”

케인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권총수가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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