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6화: 콩쿠르호(2)
어둠이 짙어지자 권총수는 잠영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곧장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브라질에서 코카인을 싣고 온 배가 산타마리아호라고 전달하면서 당분간은 체포하지 말고 감시만 하도록 했다.
또한 콩쿠르호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콩쿠르호의 탑승자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한 명은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배를 조종하는 항해사였다.
통화를 끝낸 권총수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는데 완벽히 어선 모습 그대로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들은 태연하게 갑판에 불을 켜 놓고 그물들을 손질했는데 누가 봐도 찢어진 그물을 꿰매는 어부들이다.
자연스러운 그들을 보면서 권총수는 어쩌면 진짜 어선이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 친구가 우두머리인 모양이군’
어둠속에 숨어 네 사내의 대화를 엿듣던 권총수 시선이 구레나룻 수염을 한 사내를 주시했다.
멜빵이 있는 데님 오버롤에 검정색 점퍼를 걸쳤는데 에단이라고 불렸다.
지금 배가 가고 있는 방향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다.
중간에 또 다른 배로 커피로 위장한 마약을 옮겨 싫을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뷰포트 항구로 입항할 것으로 보였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안개까지 자욱했다.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새벽 2시였다.
산타마리아호에서 물건을 인수받아 항해를 시작한지 8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불빛이다.
비록 안개가 끼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권총수의 눈은 불빛을 찾아냈다.
항구다.
자신이 예상한 뷰포트 항구였다.
이미 무인항공기가 떠서 콩쿠르호를 감시하고 있고 핸드폰으로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보내주고 있었다.
권총수는 번호 한 개를 눌렀다.
사내들이 여전히 갑판에 있었으므로 전음을 통해 통화를 시도했다.
“어디야?”
상대는 오민철이었다.
“뷰포트 3번 부둣가.”
“몇 명이나 왔는데?”
“네가 시키는 대로 나와 카사스 요원 둘 뿐이야.”
권총수는 크리스 국장에게 전화를 하여 많은 요원은 필요없고 만약을 대비해 FBI요원 한 명만 오민철에게 딸려 보내라고 했다.
어떤 작전을 수행하면서 지역 경찰과 충돌하거나 그들이 멋모르고 방해를 할 때가 있다.
만약이란 그런 일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 분명한 FBI요원이 필요하다.
한참 통화를 하고 있는데 배가 멈추었다.
그러더니 기관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던 항해사까지 어창에 숨겨온 커피 포대를 꺼냈다.
이어 하나씩 물이 들어가지 않을 고무가방에 담더니 줄을 달아 바닥에 던졌다.
고무가방 끝에 매달린 무거운 납덩어리는 순식간에 20여개가 되는 커피 포대를 바다로 가라앉혀 버렸다.
그리고 잠시 멈췄던 배는 다시 항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갈고리에 고무 포대를 걸어 끌고간다’
두꺼운 고무라면 웬만한 암초나 해초에 걸려도 찢어지거나 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납덩어리를 달았다고 해도 물의 부력 때문에 가벼워 졌을테니 찢어질 일은 더욱 없다.
‘준비들 많이 했군’
훈련없이 이뤄지는 작전은 없다.
즉 오늘 이런 방법을 얻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준비했을 것이다.
마약조직이 마약만 파는 줄로 아는 사람도 있다.
마약조직이 얼마만큼 운송 운반을 성공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지는 이미 아프카니스탄에서 겪고 보았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작전을 세운다.
어쨌든 푸른 천막을 이용해 항공감시와 레이더까지 피하는 방식은, 언뜻 조악하고 조잡한 듯 보이지만 첨단 IT시대에 감시의 허를 찌르는 계책임은 틀림 없었다.
배는 완전히 내항으로 들어섰고 한밤중의 부두는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새벽 조업을 나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싣느라 선원들이 바쁘게 움직였고 수출입선들로 보이는 대형선박들은 주로 어선들 왕래가 적은 밤에 하역을 하기 위해 부두로 몰려들었다.
콩쿠르호는 완전히 부두에 닿았고 엔진을 껐다.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어창에 실린 아귀 상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잡아온 아귀상자를 보고 마약 운반선이라고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두머리 에단은 입항 신고를 위해 해안 경비대 사무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권총수는 어느새 육지로 올라왔다.
천천히 걸어갔는데 거대한 물류창고 담벼락 옆에 승용차 한 대가 시동을 끄고 있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 안에는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마중을 나왔던 두 명 중 한 명인 카사스와 오민철이 앉아 있었다.
슥!
오민철이 주머니에서 접혀진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콩쿠르호에 대한 내용이야.”
권총수는 접힌 종이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아 룸미러로 권총수를 바라보던 카사스의 눈이 커졌다.
잠복근무 중이기 때문에 차안에는 불빛이라고는 없는데 권총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민철이 건네준 종이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걸 믿어야 하나!’
가짜로 읽지는 않을 것이다.
사막의 흑새에 대해서는 FBI보다는 CIA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쉽게 접하고 들을 수 있었던 내용중 하나는 그가 하늘을 날아간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가 날아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의 반응이다.
아프카니스탄 철군 후 상원 청문회에서 중동 담당자였던 맥보란이 보였던 대답이었다.
의원들은 하나 같이 말미에 사막의 흑새가 정말로 하늘을 나느냐는 비아냥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맥보란은 자신도 과학을 숭배하지만 세상에는 비과학적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 또한 믿는다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사막의 흑새와 가장 가까이서 지냈고 오랫동안 같이 작전을 가졌던 맥보란의 말뜻에서 누군가는 최소한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비과학적인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평했다.
진짜 읽는지 무슨 내용이 적혀 있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매우 결례되는 행동임을 알기에 꾹 눌러 참는다.
“평범한 어선이라고?”
흠칫!
카사스는 놀란다.
맞다.
내용을 요약하면 콩쿠르호는 그냥 어선이다.
정식으로 아귀를 잡고 철 따라 여러 생선을 잡는다.
선주는 존 브룩스이며 그는 모두 다섯 척의 어선을 갖고 있고 콩쿠르호는 에단이란 사람에게 임대를 해주고 있었다.
“에단은 누구요?”
권총수가 물었다.
“이곳 뷰포트 출신입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했죠. 은행원으로 5년 근무한 것이 직장생활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해병대 입대하여 이라크전에 참전한 뒤 전역했습니다. 이후의 기록은 지금 보다시피 고기를 잡는 어부죠.”
“어부?”
눈 앞으로 에단을 떠올렸다.
오면서 줄곧 살폈지만 특별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마약 조직원인지 선원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과 나눈 얘기 역시도 평범했다.
메이저리그 순위를 말했고, 보스턴 레드삭스 팬인 듯 무척 우호적인 평가를 내렸다.
권총수의 시선은 창너머 부둣가에 정박한 콩쿠르호에서 떠나지 않았다.
에단 일행은 일단 신원 확인이 됐으므로 이제 남은 건 배 밑에 잠겨 있는 커피 포대로 위장한 코카인을 누가 꺼내 가느냐였다.
파팟!
갑자기 뇌전처럼 권총수의 눈이 빛나더니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간다.
“왜?”
“형은 계속 차에 있어. 나오면 눈에 띌 위험이 있으니까.”
권총수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미국내 조직으로 완전히 물건이 넘어가야 코만도 조직 입장에서는 성공한 것이다.
마약 거래라는 것이 거의 공항이나 해상 화물선 단속에서 걸린다.
즉 통과하기 전까지는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내는 코만도와 미국에서 마약을 시장에 푸는 조직 모두 필사적으로 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밀수품들을 배나 항공기에 싣는 건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목적지에 갖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거의 적발되고 실패한다.
모든 물품의 적발은 입국 검사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이번 운송은 거의 성공으로 보이지만 지금이야 말로 미국내 조직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 상황이야 말로 시장에 내다 팔기 직전인 마지막 단계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는 더욱 잔인해지고 신경을 곤두 세우기 때문에 경찰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비듯 달려들면 오민철이 위험해 질 수 있다.
권총수는 잠영술을 펼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쓰레기장 담벽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물결이 밀려온다.
권총수의 청각은 두 명의 사내가 물속으로 뛰어들었음을 분명하게 감지했다.
필시 배아래 있는 마약 포대를 꺼내기 위해 스킨 스쿠버 두 명이 수중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머지는 어디선가 이쪽 작업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둘...셋 넷!”
권총수는 어부들의 바쁜 움직임과 구별되는 또 다른 기척을 감지했다.
‘모두 다섯 명이다’
부글부글!
콩쿠르호 수면으로 기포가 솟구친다.
사람이 물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내 기포가 사라지고 조용하다.
물속에서 운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권총수는 오른쪽으로 30여미터 이동했다.
잠영술이기 때문에 누구의 눈에도 권총수의 움직임이 띄지 않았다.
팟!
포장이 씌워진 2톤짜리 트럭 한 대와 포드 익스플로러 두 대가 커다란 포플러나무 아래 주차해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인기척은 보이지 않지만 모두 차안에 들어가 있다.
조금 전 자신이 파악한 다섯 개의 기척과는 전혀 다른 사내들이다.
‘넷!’
그렇다면 물속 수중에서 작업하는 잠수부 둘까지 포함하여 열한 명이다.
쏴아아!
그때 물속에서 잠수부들이 나타났는데 예상대로 두 명이다.
포대를 담은 고무 백이 물 위로 올라왔는데 납덩이를 잘라냈다.
트럭과 승용차에 앉아있던 네 명의 사내들이 재빨리 가더니 밧줄에 매달린 철망으로 된 통을 갖고 다가갔다.
스르르!
철망이기 때문에 물이 들어찰 리 없다
잠수부들은 커피 포대가 담긴 고무 백을 철망 통에 넣었으며 사내들은 밧줄을 끌어 올려 트럭에 싣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건져 올려진 고무 백은 스무 개였다.
브라질 세르지피를 떠난 스무 포대의 커피로 위장한 코카인 포대가 마침내 안전하게 미국에 도착한 것이다.
“철수!”
넷 중 한 사내가 무전기로 말했다.
사내는 건장한 체구의 백인이었는데 귀밑에 전갈 문신이 선명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정확히 다섯 명의 사내들이 몰려들었는데 손에 M4를 들고 있었다.
트럭은 두 명이 올라탔고 나머지 아홉 명은 포드익스플로러에 올랐다.
그런데 차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래.”
모두가 놀란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포드도 트럭도 꼼짝 하지 않는다.
차에 탔던 사내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고 일부는 보닛을 열어 살핀다.
그때였다. 누가 놀라는 소리를 냈다.
“뭐야?”
우두머리 사내 마일스의 눈이 커졌다.
“기름 아냐?”
손에 들고 있던 휴대용 랜턴을 켜서 길바닥을 비췄는데 차량 휘발유가 흘러나온다.
누군가 연료 선을 잘라 연료통 기름을 유출시켜 버린 것이다.
쉭!
마일스는 빨랐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간파하고 재빨리 권총을 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