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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32화 (532/651)

제532화: 역습(1)

이사벨라는 잠시 쭈뼛거리더니 더듬거렸다.

“이라크 모술 얘기를 많이 하시던데 혹시 해병으로 가셨어요? 아니면?”

상당히 조심스럽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낯선 손님들이다.

다분히 남편이 용병으로 근무했고 사고를 입었던 이라크 얘기가 나왔으므로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타탁!

둔탁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때 주방에서 한 사내가 주방장 복장을 하고 나왔는데 건장한 체구의 백인 사내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사내의 왼쪽 다리를 보았다.

오른발과 똑같이 신발을 신고 있다.

하지만 오른쪽 다리는 허벅지에 바지통이 달라붙는데 반해 왼쪽은 헐렁하다.

그건 의족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맙소사! 이것이 꿈이야? 생시인 것 같은데.”

바즈는 바르르 상체를 한 번 떨었다.

“캡틴, 민철! 오 하느님!”

“바즈!”

오민철이 와락 바즈를 끌어안았다.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바즈는 계속 중얼 거렸다.

“정말 오랜 만이야. 햄버거 장사 한다더니 기어코 성공한 모양이야.”

오민철이 환한 웃음을 짓고 물러서고 이번에는 권총수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더 멋있어 졌군?”

“나의 영웅.”

권총수의 말에 바즈는 힘차게 거수경례를 했다.

척!

처억!

권총수도 똑같이 거수경례를 한 뒤 서로 부둥켜안았다.

지켜보던 이사벨라의 눈이 젖고 햄버거를 먹던 손님들이 바라본다.

“좋아!”

권총수가 등을 토닥거렸다.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환한 얼굴과 특히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들을 보며 한때 전장을 누볐던 동료 용병의 제2의 삶을 크게 축하했다.

가게는 조금 일찍 문을 닫았다.

바즈 부부는 두 사람을 근처 맥주가게로 데려갔다.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맥주가게 주인이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는데 바즈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에릭 내가 말했지. 물론 자네는 그럴리 없다고 날 거짓말쟁이라고 했는데 말이야. 바로 그가 왔네. 공중을 날아간다고 했던 나의 친구, 캡틴!”

맥주 가게 주인 에릭의 눈이 빛난다.

그랬다.

에릭에게 친구 바즈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네이비씰을 나온 건 매우 자랑이었고 자긍심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든 바즈를 얘기했다.

그럴때면 친구들 모두 기가 죽었는데, 해병대 출신이나 공수여단 출신들도 한 발 물러선다.

그들의 기죽은 모습을 볼 때는 그야말로 온 몸이 짜릿할 만큼 희열을 느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전투력은 캡틴이라는 한국인에게 비하면 상대가 안 된다면서 이른바 용병 썰을 풀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군대얘기의 90퍼센트는 흔히 말하는 뻥이다.

가만 놔두면 인간의 경지를 넘어 입신할 정도로 거품을 물고 자랑하는 것이 남자들의 군대시절이다.

하지만 사람이 공중을 날아간다니 이건 해도 너무 심한 뻥 아닌가.

그래서 만약 사실이라면 바즈에게 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진실과 거짓을 놓고 둘은 양보 없이 부딪쳤는데 마침내 오늘 그 장본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주목할 일은 바즈였다.

거짓말이었다면 아는 한국인 친구라고 적당히 얼버무렸을 텐데 자기 입으로 증언하듯 말한다는 것이다.

“에릭, 만 달러 준비해 놓았나?”

바즈는 의기양양했다.

“캡틴! 내가 말이야 여기 에릭과 약속을 했어.”

그러면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순간 오민철도 웃고 권총수도 웃는다.

웃지 않는 사람은 에릭 뿐이었다.

하지만 에릭도 뭔가 확신하는 모양인데 그건 과학이었다.

절대 인간은 비행기나 기구를 타지 않는 한 하늘을 날을 수 없다.

행글라이더나 윙슈트 같은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말했다.

“보여주시오. 내 앞에서 날아가면 약속한 대로 내 친구 바즈에게 만 달러를 지불하겠소.”

“에릭 만 달러는 너무 많아. 백 달러만 주게. 그럼 우리 사이도 변함이 없을 것 아닌가.”

보나마나 자신이 이겼다는 듯 말하는 바즈를 보며 에릭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백 달러라는 말에 어느 정도 부담이 가신 것이다.

“어때?”

바즈가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결코 사람 앞에서 자랑 삼아 뭔가를 보여주는 권총수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권총수는 무공은 재미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권총수에게 무공이란 수련이고 공부이며 끝없이 도전해 가야 할 운명같은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에릭이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오! 오오오오!”

말을 잇지 못했다.

권총수가 선 채로 공중으로 일 미터 가까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리 발밑을 살펴도 텅 비었다.

의자도 없고 탁자도 없고 그렇다고 양손은 내려와 있으므로 천장의 그 무엇도 붙잡고 매달리지 않은 것이다.

“이럴수...!”

에릭은 주춤거리며 다가가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발밑을 손으로 저었다.

후이이이!

아무리 젓고 또 저어도 없다.

손에 잡히는 건 맥주가게에서 뿜어내는 맥주 냄새뿐이다.

스으으!

권총수는 가볍게 내려와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섰다.

“봤지? 에릭 내가 거짓말쟁이 아니지?”

사실 내기에 걸린 돈보다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몰린 것이 너무 분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거짓말을 가장 싫어했다.

거짓말을 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네이비 씰에 들어갔을 때 그곳 교관이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짓말 하지 않는 군인이 되어야 한다’

작전에 거짓말이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다.

진실에서 더도 덜도 보태거나 빼서는 안 된다.

전투는 생사를 주고받는 비정한 게임이기에 있는 사실과 모든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적의 숫자를 부풀려 보고 한다거나 적의 경계병이 졸고 있다고 해서 그 부대를 과소평가 하면 안 된다.

경계병 한 명만 졸고 있을 뿐 나머지는 언제든지 우리와 맞설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라는 것이 교관의 말이다.

“인정!”

에릭은 흔쾌히 말하며 지갑에서 백 달러짜리 한 장을 내 놓았다.

“받지 않으면 우리의 우정이 훼손되겠지.”

“오케이!”

바즈는 백 달러 지폐를 받더니 다시 내놓았다.

“이 돈으로 우리 맥주 마시지. 어떤가?”

“OK!”

하나 같이 좋다면서 박수를 치고 소릴 질렀다.

잠시 후, 모두가 놀랐는데 권총수의 손에서 봉투가 이사벨라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안을 열어보던 이사벨라는 가득 채워진 백화점 상품권에 감동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어떻게.”

이사벨라는 당황했다.

“바즈, 이걸 봐요.”

이사벨라는 봉투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받아든 바즈의 눈 역시 커진다.

“뭘 그렇게 보기만 해요. 바즈 뭐라고 말해야죠?”

그러면서 이사벨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되나요. 난 캡틴에 대한 얘기만 들었지 오늘 처음 보는데.”

초면에 이렇게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아직까지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그때 오민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선물을 받으면 큰 절을 해야 한다.”

그건 인디언의 속담중 하나다.

이사벨라가 권총수를 끌어안고 볼 키스를 하려 들자 오민철이 소리쳤다.

“안돼. 노우, 그것 말고 한국식으로 절을 해요. 코리안, 코리안!”

이사벨라가 멈칫했다.

“절?”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오민철이 무릎을 꿇고 양손을 붙인 이마를 바닥에 대는 것이라면서 서서 대충의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오케이. 오케이!”

이사벨라는 알았다는 듯 웃으며 정말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들자 오민철이 팔을 잡았다.

“됐어요. 농담입니다. 하지 않아도 우린 기쁩니다.”

모두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서로에 대한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면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특히 바즈는 웃는 얼굴로 자꾸 권총수를 흘긋 거렸다.

죽음이 수시로 뒤바뀌고 결정되는 전장터였다.

실력이 좋아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건 운명이었다.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다.

재수 없으면 그냥 맞고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떠나는 것이다.

이라크 모술에 배수의 진을 친 IS와의 교전은 가장 격렬했고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리더는 권총수였다.

그는 팀의 스나이퍼이면서 모든 작전을 통제하고 결정했다.

팀장은 거의가 영국의 자존심인 SAS 출신들이 맡는다.

씰이나 델타포스 출신들도 있지만 일부러 SAS명예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고사하거나 빠진다.

권총수와 자신이 소속되었던 KAS 레드배저(Red Badger)팀장 메컬리는 SAS 상사 출신이다.

노련한 전쟁 기술자였지만 모든 전략 전술을 세울 때는 항상 권총수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 들였다.

더욱 놀라운 건 팀원들이 권총수를 존경했다는 것이다.

“바즈!”

권총수가 정색했다.

“씰 4팀 출신이라고 했지?”

“오케이!”

씰 4팀은 대서양에 배치되어 활동한다.

특히 북중미와 남미, 아프리카 쪽에서 작전을 펼친다.

“소형 보트를 타고 해안으로 침투할 때 첩보위성, 또는 적의 무인 항공기의 감시를 어떻게 피했다고 했지?”

과거 용병시절 바즈가 떠들던 말이 설핏 기억이 났다.

단순 무식하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적의 공중감시를 따돌린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자세히 들어두는 건데 하며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웃기는 게 말이야. 첨단 과학 기계도 의외로 허점을 드러낼 때가 많더라고, 별것 아냐. 위장이지. 우리의 전투복이 왜 그런 색일까. 적의 감시에서 좀 더 멀어지고 날 위험에서 숨기려는 뜻이지. 그런데 그게 정말로 효과가 있듯 모든 위장은 잘만 하면 예상치 못한 소득을 올리지.”

“어떻게?”

“바닷물과 색깔이 같은 푸른 천막으로 보트를 덮고 이동하지. 무인 항공기나 첩보위성 모두 일,이백 미터가 아닌 아주 높은 곳을 비행하며 지상의 물체를 찍잖아.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사진판독이나 수상한 선박 또는 물체 따위로 의심을 받지 않아.”

“푸른 천막으로 침투 정을 덮어씌운다고?”

“육안으로 살피는 해안 경계병들도 가끔은 놓친다고.”

네이비 씰 같은 특수부대에서 목숨이 걸린 실전에 사용한다는 건 어느 정도 실험을 통해 입증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설마 그 질문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지?”

그 질문 하나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

아무리 옛 동료라고 하지만 다리 한쪽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전화로 묻는다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온 것이다.

권총수는 더 이상 옛날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다치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겠으나 바즈에게는 어떤 과거도 상처로 작용할 것이다.

가게 주인은 슬며시 자리를 빠지고 바즈 부부와 권총수 오민철 네 사람은 맥주잔을 부딪치며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다.

오민철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고개를 갸웃 거린다.

그건 어떤 것에 쉽게 호응할 수 없다는 동작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바즈가 했던 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다.

“난 그 방법 밖에 없다고 봐.”

권총수는 확신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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