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1화: FBI(2)
포대 한 개씩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사내들을 바라보더니 이마를 찡그렸다.
“조심해.”
부두와 배를 잇는 사다리를 건너던 한 사내가 휘청거리자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포대 겉면에는 ‘아라비카(Arabica)’라고 쓰여 있다.
커피다.
그것도 아라비카중 가장 품질이 좋은 2등급짜리들이다.
아라비카 2등급이면 생두 300그램당 결점두가 4개 이하인 것을 의미한다.
생두는 비정상적인 커피로 가공 과정에서 커피 맛을 떨어뜨린다.
“마지막입니다.”
트럭에서 포대를 내려주던 사내가 포대 한 개를 사내의 어깨위에 올려주며 말했다.
휘익!
사내는 트럭에서 뛰어 내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산타마리아호를 바라보았다.
포대는 어창 깊숙이 실렸기 때문에 겉으로는 어선으로 보일 뿐이었다.
“모두 몇 포대지?”
카푸가 물었다.
옆에 선 사내는 헐떡이며 대답했다
“스무 개입니다.”
“스무 개면?”
“400 킬로그램이죠.”
그건 커피의 무게일 뿐이다
400킬로그램의 커피 원두속에 다른 물건 100킬로가 들어있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양이 지금 배에 실려 가기 직전이다.
가격으로 따지면 천문학적이다.
못해도 최종 소비자에가 들어갈 때의 비용으로 계산한다면 10억달러는 넘을 것이다.
사다리가 치워지고 정박해 있던 배가 천천히 부두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내들 모두는 어둠속을 뚫고 떠나가는 어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잘 도착해야 할텐데.”
카푸가 나직히 중얼거렸다.
잡으려는 쪽과 잡히지 않으려는 쪽의 머리싸움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여 국경을 넘고 단속을 따돌렸으나 전체적인 기록을 놓고 보면 성공률이 50퍼센트가 채 안된다.
두 번에 한 번은 피하지 못하고 잡혔다는 얘기다.
열 번 시도에 두 번만 성공해도 남는 장사이긴 하지만 얼마 전 새로 개발된 운반 방법은 가히 경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미국의 첨단 감시 장비는 뭐니뭐니해도 위성이다.
24시간 지구상의 모든 움직임을 체크하고 있는 위성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기존의 방식인 화물선을 이용한 수출품 속에 넣는 방식은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많은 양을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새로운 방법 한 가지가 개발되면서 이제 안심하고 이토록 많이 보내는 것이다.
어선은 완전히 사라졌고 트럭과 SUV는 부두를 떠났다.
***
모처럼 방문했는데 선물 하나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권총수는 그래서 10만 달러를 내놓고 나왔다.
훈련은 모두 스물두 개 과정이 있고 각각의 코스마다 한 명의 교관들이 진주해 있다.
경비근무자까지 포함하면 훈련소 상주 직원이 오십 명 가까이 된다.
일 인당 5천달러씩 돌아가는 꼴이니 결코 적은 보너스는 아니었다.
다시 워싱턴에 있는 호텔로 돌아온 권총수는 메일부터 열었다.
코만도 조직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기록한 서류가 조금전 막 도착해 있었다.
권총수는 곧바로 FBI에서 보내온 서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을 살피던 권총수 눈썹이 찌푸려 졌다.
드르륵!
드래그를 움직여 앞서 봤던 자료를 다시 살핀다.
‘육 개월이면 반년!’
반년 전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중 단속된 양은 약 2,00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양이었다.
그런데 단속된 마약중 브라질 코난도 조직의 물건은 채 100킬로도 되지 않는다.
육 개월전까지는 단속된 마약의 30퍼센트는 무조건 코만도 조직 소유였다.
FBI와 마약단속국(DEA)이 내놓은 통계를 보면 미국으로 마약을 보내는 조직은 남미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약 오십여 개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은 양을 보내는 곳이 코만도인데 육개월전부터 보내는 양이 급전직하한 것이다.
설마 그들이 마약 사업을 포기한 건 아닐 것이다.
‘단시간에 돈을 벌려면 마약 장사를 하라’
감비노 마피아의 두목중 한 명이었던 카를로스 감비노가 했던 말이다.
열 번 수출해서 두 번만 성공하면 떼돈을 버는일이 마약장사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형 난데, 지금 서류 보고 있지?”
“보고 있지.”
옆 방의 오민철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코만도 조직의 마약이 현저히 줄어든 것 말이야.”
“그렇잖아도 나도 너무 이상해 너에게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미국시장의 삼분의 일을 장악하는 거대조직이 6개월 동안 고작 100킬로 보냈다는 건 두 가지로 봐야지.”
“말해봐?”
“첫째는 더 많이 보냈지만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예 마약장사를 포기했거나.”
“마약 장사가 조직 운영자금인데 포기할 리는 없고.”
“그렇지. 내가 보기에는 더 많이 보냈지만 걸리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싶어.”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생각도 오민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 생존 밑천의 90퍼센트가 마약에서 나온다.
만약 마약이 없다면 지구상의 범죄조직중 약 90퍼센트는 사라진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멀리 강이 보인다.
포토맥 강이다.
몇 번이나 손이 담배갑을 만졌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이 의문을 풀지 않으면 이번 사건 해결은 의외로 어려워 질수도 있다.
마약을 보내는데도 극히 적은 양만 걸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탁!
창문을 닫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마를 찡그린다.
문득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을 떠올렸다.
FBI와 DEA 시선은 기존의 운송 방식을 유지하면서 붙잡아 놓고 전혀 다른 형태로 보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일어나자마자 인디애나주를 가자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 거긴 왜 가냐고 묻자 준비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오민철은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는데 권총수는 벌써 자동차 시동을 걸어 놓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워싱턴 델레스 공항으로 출발했고 이미 어제밤에 예약을 해 놓았던 터라 도착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인디애나행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인디애나 주도이기도 한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다.
“말 좀 해봐.”
오민철의 재촉에 권총수는 가져온 아이패드를 펼쳤다.
수시로 FBI에서 자료가 오기 때문에 그때그때 살펴야 한다.
“인디애나 하면 떠오르는 사람 없어?”
“인디애나? 인디애나 하면 KKK?”
한때지만 인디애나가 KKK단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바즈.”
“쉐인 바즈?”
“그래 이제 생각 난거야?”
“아아! 그 자식!”
오민철이 놀라면서도 크게 한 숨을 쉬었다.
영국 보안업체 킬로 알파 써비스(KAS)시절 같은 팀원이었다.
네이비 씰 출신으로 드물게 미국계가 아닌 영국 업체에 들어갔는데 그의 특기는 침투 및 탈출이다.
적진으로 파고드는 능력 하나 만큼은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라크 모술에서 작전중 지뢰에 왼쪽 발을 다쳐 용병에서 은퇴한 것이다.
“그에게 물어 볼 것이 있어서 말이야.”
“전화하면 되잖아. 나한테 전화번호 있는데.”
“형, 같이 전장을 뛰다 장애인이 된 친구야. 못 만난지 8년 가까이 되었고, 그런 사람에게 중요한 내용을 물어보는데 달랑 전화로 하라고?”
“앗 나의 실수.”
오민철이 오른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했다.
듣고 보니 맞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건 예의를 알고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용병은 군인이 아니다.
그래서 군대와 달리 전투중 부상을 입어도 회사로부터 어떤 지원도 없다.
모든 건 개인의 돈으로 치료를 해야한다.
즉 바즈는 장애인이 됐지만 위로금 한 푼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결혼했다고 했던 것 같던데?”
“아들 하나 있다고 했어. 그때가 두 살이라고 했으니 상당히 컸겠는데.”
두 사람은 옛날을 회상하며 바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인디애나 폴리스 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두 사람은 택시를 이용해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바즈와 아내 이사벨라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취향을 알지 못해 백화점을 몇 바퀴 돌았다.
선물을 하는데 상대의 취향을 모른다는 건 굉장히 난감할 일이었다.
그때 오민철이 눈을 빛내며 좋은 생각이 있다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이곳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로 하는게 어때? 그럼 나중 시간 날 때 부부가 직접 마음에 드는 걸 고를수 있잖아.”
“콜!”
두 사람은 곧장 백화점 사무실로 들어가 상품권 100달러짜리 스무장을 구입했다.
두 사람은 렌트카를 이용해 아주 오래전 바즈가 적어준 집 주소를 찾아 떠났다.
바즈의 집은 인디애나폴리스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외곽에 있었다.
“저기 같은데.”
도로가에 바즈 행버거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학생시절부터 햄버거 만드는 실력이 남달라 다리를 다친 뒤 장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끼이익!
차를 세우고 두 사람은 내렸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좁은 가게 안에 다행히도 빈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들이 가득했다.
붉은 색 앞치마와 머리에 승무원들처럼 붉은 베레모를 썼다.
그러고 보니 간판도 빨강색이다.
맥도널드와 버거킹에게서 적지 않은 색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색을 가지고 상표권이니 저작권이니 따지지는 않는 맹점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역시 바즈 답군’
두 사람은 유일하게 남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뭘 드시겠어요?”
붉은색 앞치마와 베레모를 쓴 백인 여자가 생긋 웃는다.
바즈의 아내 이사벨라로 짐작되었는데 두 사람은 오늘 스페셜 햄버거 레드 가이즈(Red Guys)로 주문을 했다.
두 사람은 열심히 햄버거를 먹는 손님들을 돌아보았는데 오민철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오늘만 사람이 많은 건 아니겠지?”
“가게 곳곳에 손님들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걸 보아 인기를 끄는데 성공한 모양이야.”
탁자도 그렇고 벽도 사람들의 손떼가 묻어있고 제법 유명한 사람인 듯 몇 개의 사인은 액자를 하여 걸어놨다.
그렇다고 지저분하다거나 불결한 건 아니었다.
이른바 맛집 다운 그런 흔적들이다.
“레드 가이즈 나왔습니다.”
주문한 햄버거는 금방 나왔다.
어느 식당을 가든 빠른 것을 좋아하는 오민철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두 사람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잎 크게 베어 문 오민철이 눈을 부라렸다.
“내가 햄버거는 좀 먹어 봤기 때문에 아는데 예술이야.”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넘버 원.”
오민철은 권총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모양이다.
두 사람은 즐겁게 햄버거를 먹으면서 과거 KAS시절 바즈와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주방에 있는 바즈가 들을 수 있도록 약간 목소리를 높였는데 가장 먼저 반응 한 건 홀에서 서빙을 하던 아내 이사벨라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라는 듯 손님들 시중을 들으면서 자꾸 흘깃 거렸다.
그러더니 급기야 더 이상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사람의 탁자로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