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30화 (530/651)

제530화: FBI(1)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권총수와 오민철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둘은 안으로 들어가 6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 있었다.

오민철은 투명한 벽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모저모 다듬는다.

쨍!

도착은 금방이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내리는데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던 마르티네스와 카사스였다.

“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두 사람을 따라가는데 복도는 조용했다.

우리나라 경찰서 내부와 큰 차이가 없다.

문 마다 소속 부서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겨울인데도 문을 열어 놓고 근무하는 곳도 있었다.

국장의 방은 맨 끝에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선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영화속에서만 보던 FBI는 막강한 수사권을 갖고 있었다.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이 체포하지 못한 사람이 없을 만큼 절대적인 존재로 각인되었는데 그 힘센 거대 조직의 수장이 있는 사무실은 초라할 정도였다.

책상도 평범했고 의자 등받이 색상이 약간 변한걸 보면 전임자가 쓰던걸 이어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벽에 붙은 책장에는 두꺼운 파일들과 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전면 벽에 신의, 용기, 진실(Fidelity, Bravery, and Integrity)이라는 표어가 각인되어 있지 않았다면 200여 가지의 수사 관할권을 가졌고 2만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장의 방이라고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썰렁하기까지 했다.

한국은 관공서가 좋은데 반해 미국은 가정집이 좋다고 한 어느 교포의 말이 떠오른다.

척!

서로 악수를 하고 소파에 앉았다.

권총수를 바라보는 크리스 국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서울을 다녀갔지만 은근이 걱정을 했다.

비즈니스처럼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계약을 파기할 때에는 상대가 입은 만큼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경제적 거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계약서 시늉을 내긴 했지만 권총수 쪽에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거나 취소해 버리면 없었던 일이 된다.

애초부터 이번 일은 평등한 입장에서 거래될 수 없는 것이었다.

백퍼센트 이쪽이 매달리고 아쉬워 서울까지 찾아간 일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결국 면전에서 다시 보게 되자 실감이 나고 안정이 되는 것이다.

“보내준 서류는 잘 살펴봤습니다. 인정 사정 없는 친구들이더군요.”

“그들의 생존 모토가 뭔 줄 아십니까? 죽여라. 무조건 죽여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입니다.”

크리스의 설명에 오민철이 살짝 놀란 표정을 했다.

“경찰이든 누구든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눈 사람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거죠. 적은 절대 아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죽여 없애지 않으면 내 생존이 힘들어 진다는 겁니다.”

“멕시코 마약 조직들은 가끔 경찰이라고 하면 머뭇거리기라도 했는데.”

오민철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더욱 위험한 건 브라질 경찰입니다. 그들을 믿지 마세요. 그들을 믿는 순간 큰일 납니다.”

크리스의 눈에서 열기가 피어났다.

그건 반드시 코만도 조직을 무너뜨리고 말겠다는 의지였고 죽은 부하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결기였다.

“현지에 도착하면 우리 요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편의를 지원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니 부담없이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크리스는 자신의 노트북을 켜고 코만도 조직에 대한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물을 내놓고 설명했다.

차라리 브리핑이라고 해도 좋았다.

권총수는 눈을 빛내며 크리스의 설명을 들었다.

‘정보를 많이 축적할수록 생존기간은 길어진다’

영국 최대 민간 보안기업 KAS의 사훈이다.

말 그대로 아는 것이 힘이고 죽지 않는 지름길인 것이다.

다음 날 권총수와 오민철은 워싱턴을 떠나 리버티 국제공항에 나타났다.

말은 뉴저지주 국제공항이지만 뉴욕에 있는 3대 공항중 한 곳으로 블랙잭 훈련소를 찾아가기 위한 것이다.

모든 스케줄은 권총수가 정한다.

또한 FBI에 자신의 동선을 귀띔할 필요도 없다.

청사를 나와 워싱턴에서 미리 예약해 놓은 랜드로버를 타고 공항을 떠났다.

그리고 정확히 두 시간후 랜드로버는 뉴저지주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모리스타운에서 북쪽으로 뻗어가는 81번 도로다.

모리스타운에서 북쪽으로 50킬로 정도 들어가면 대규모 늪지대가 나온다.

핸들은 오민철이 쥐고 있었는데 권총수는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미국에 볼일이 있어도 가급적 훈련소 방문은 자제한다.

자신은 궁금한 마음에 찾지만 직원들은 무척 긴장해야 하고 신경 쓸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오지?”

“음!”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속도를 조금씩 늦추었는데 왼쪽으로‘블랙잭(Blackjack)’이라는 검정색 바탕에 붉은 글씨가 쓰인 입간판이 보인다.

오민철은 차를 멈추며 방향 지시등을 켠다.

맞은편에서 차들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꺾을 수가 없었다.

덜컹!

아스팔트 턱에 걸리며 차가 움찔거린다.

부우웅!

조용하다.

숲은 우거졌고 커다란 엘크 한 마리가 자동차 소리에 놀라 달린다.

입간판에서 4킬로 정도 들어가자 군 위병소처럼 바리케이트가 쳐진 초소가 나타났다.

그렇게 2킬로쯤 더 들어가자 훈련소로 들어가는 위병소가 보인다.

흑복차림으로 서 있던 두 사내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사내가 운전석으로 다가오자 오민철이 유리를 내렸다.

“어엇!”

미리 연락을 하지 않고 왔기 때문일까 다가온 사내가 소스라쳤다.

“이사님! 대표님까지.”

오민철이 빙긋 웃었다.

“수고들 많습니다.”

“저희 블랙잭 훈련소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가십시오.”

사내가 거수 경례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척!

오민철이 인사를 받고 차는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소 사무실 앞에는 소장 벤자민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멈추고 두 사람은 내렸는데 벤자민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대표님과 이사님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권총수는 악수를 나누었고 오민철은 벤자민을 끌어안았다.

“미국에 와도 좀체 찾지 않으시면서 오늘은 오셨습니다?”

조금은 섭섭하다는 말투지만 진짜가 아닌 그냥 하는 소리다.

두 사람은 벤자민을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근무하고 있던 직원 세 명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는데 권총수는 손을 들며 이름들을 불렀다.

“마이클!”

“론!”

“제프 잘 있었습니까?”

셋 모두 남자였는데 권총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이 소파에 앉고 벤자민은 안쪽 주방으로 가더니 잠시 후 상큼한 향기를 뿜는 커피 3잔을 쟁반에 받치고 왔다.

머그잔 가득히 커피를 채운 벤자민이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회사 일이십니까?”

“아닙니다. FBI와 그럭 저럭한 비즈니스가 있습니다.”

훈련소장은 이사급이다.

이사급은 회사의 움직임을 속속들이는 아니어도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한다.

회사와는 상관없는 개인적 의뢰이기 때문에 말할 필요가 없지만 굳이 숨길 일도 아니다.

최대한 숨기는 것이 없는 인간관계가 수명이 길다.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뱉어내는 말들은 문밖으로 나가 적들에게 들어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

권총수는 너무 깊숙한 것 까지는 제외한 대강의 내용을 말해 주었다.

FBI가 마약조직과 싸움에서 고전한다는 내용 정도였다.

“며칠전 CBS뉴스에도 나왔는데 미국 내 마약판매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더군요. 콜로라도주에서는 마약에 취한 아들이 늙은 부모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소식이 있고, 여기서 멀지 않은 트랜턴(뉴지저주 주도)에서는 십대 두 명이 마약에 취해 권총을 들고 슈퍼마켓을 털다 경찰에 사살되기도 했구요.”

미국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40퍼센트 가까이가 브라질 마약 조직 코만도가 공급한다.

워낙 방대한 양이고 많은 조직들이 필사적으로 미국시장을 공격하기 때문에 불을 끄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불씨를 꺼야하는데 피어나는 불이 워낙 거세 정리가 안 된다.

즉 미국 시장만 단속해봤자 효과가 없기 때문에 원점 타격을 해야하는 것이다.

공급처인 코만도에 타격을 주지 않는 한 결코 마약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아마존 밀림에서 생산하는 코카인과 아직 분명치는 않지만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와 아편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밝혀졌다.

“재밌습니다. CIA도 그렇고 FBI역시 사막의 흑새가 없으면 어려움에서 빠져나가지를 못하니 말입니다.”

벤자민이 농담처럼 뱉은 말 같지만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건 이렇게 된 이상 죽든 살든 두 기관은 권총수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는 의미이자 이제 블랙잭은 두 기관에서 발주하는 어떤 전쟁 사업도 가장 우선적인 협상 대상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방아쇠만 당길줄 알던 전쟁터의 사내가 이제 제법 관리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벤자민이 브리핑을 하려는 듯 사무실에 설치된 스크린을 내리려 하자 권총수가 막았다.

“아닙니다. 오늘은 커피만 마시죠.”

권총수는 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잔을 들어 올렸다.

***

브라질 동부 세르지피 항구에 어둠이 찾아 들고 있었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데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칠어 지역 어선들 말고는 외부 선박들은 좀체 입항을 꺼린다.

부두에는 백여 척의 어선들이 정박해 있었는데 오늘따라 바다는 잔잔했다.

어둠이 깊어가고 부두는 조용했다.

자정 무렵 자동차 한 대가 부두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검정색 포장을 씌운 2톤짜리 트럭이었는데 부둣가 가까이 다가와 천천히 멈췄다.

라이트를 끈 트럭은 꼼짝하지 않았고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빨간 담뱃불이 보이는 걸 보면 두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럭에는 두 명의 사내가 타고 있었는데 팔뚝이 드러나는 짧은 반팔티셔츠를 입었고 손목에 전갈 문양의 문신을 새겼다.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핸드폰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올 시간이 됐는데.”

사내는 살짝 열어 놓은 창밖으로 담배 꽁초를 튕겨 버렸다.

“오는 것 같은데.”

운전석에 앉은 사내가 백미러를 통해 나타난 강력한 불빛을 보며 말했다.

“그래!”

조수석 사내 역시 백미러로 뒤를 보는데 차량 불빛이 들어온다.

불빛은 점점 가까워 졌고 트럭 뒤에서 멈춰 섰다.

두 사내는 차에서 내려 차량 앞으로 걸어갔다.

혼다에서 나온 SUV였다.

벌컹!

SUV의 앞뒤 문이 모두 열리고 네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사내들은 트럭에서 내린 두 사람을 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별일 없었지?”

운전석에 앉았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선적하자고.”

조수석 사내가 트럭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윽고 트럭에서 20킬로그램짜리 흰색의 포대를 하나씩 내려주었다.

밑에 있던 사내들은 내려준 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부둣가로 걸어갔는데 갑판에 전등 하나를 달랑 켠 50톤짜리 어선이 있었다.

배 측면으로 산타마리아(SantaMaria)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사내들은 어깨에 20킬로그램짜리 포대를 메고 배와 부두를 잇는 사다리를 건넜다.

트럭에서는 계속 포대가 내려졌고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내들이 선적 작업에 동원되었다.

딸칵!

지휘하는 사내 카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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