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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28화 (528/651)

제528화: 현장 복귀(1)

기가 막히다는 듯 한참을 있더니 묻는다.

“사실이오?”

“예! 아침 일찍 마도로스파 변호를 맞고 있는 이철희씨에게 전화가 왔더군요.”

콱!

권악수는 탁자 모서리를 쥐며 부르르 떨었다.

“한마디로 쉽게 말해 백지장도 맞들면 낫지 않느냐는 것이죠.”

“그렇다고 아무나 같이 든단 말인가. 이런 미친 여자 아냐? 내가 그토록 건들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퍼억!

권악수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권악수의 두 눈이 시뻘겋게 타오른다.

“흐흐흐! 이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군. 내 코가 석자인데 그 여자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

권악수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제 법무부 관계자와 만났고, 중앙지검장도 만났습니다. 시키신 대로 골프가방에 오만원권을 빼곡 채워 전달했습니다.”

권악수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반응 있어요?”

“예! 최대한 해보자는 겁니다.”

“당연하지. 십억씩 담았죠? 그 돈 받고 움직이지 않는 놈이 있다면 등신이지.”

권악수는 자신하는 표정이었다.

“사모님 문제는!”

“두 번 다시 그 여자 얘기 내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이 시간 이후로 그 여자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니까.”

장웅철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갈수록 흉포해진다.

외부로부터 입은 데미지가 크면 클수록 세상을 현명하게 보는 눈을 길러야 하는데 권악수는 거꾸로다.

오히려 더욱 증오를 태운다.

저런 정신 상태로 설혹 출소를 한다고 해도 회사를 정상으로 경영할 수 있을지 두려울 뿐이다.

두 사람은 올해 처음으로 나온 일본 오오마산 참치로 만든 스시를 먹고 있었다.

화이트 로펌 대표 이철희는 연신 감탄했다.

수많은 참치 스시를 먹어 봤지만 여기처럼 입안에 달라붙는 느낌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설마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건 아닐테고?”

장웅철이 물었다.

“딱 한 번 왔지. 그때는 다른 손님을 모시고 온 입장이어서 제대로 맛을 느낄 여유가 없었고.”

“대단하군. 천하의 화이트 로펌 대표 변호사가 입맛을 챙기지 못할 만큼 긴장하며 모신 손님이라니 누군지 궁금해지는군.”

“아아! 됐네. 그만하세. 또 무슨 소릴 하려고 이러나.”

사법연수원 이후 장웅철은 지방 검사로 전전했다.

지검장급까지 올랐지만 소원이던 서울 중앙지검에서는 한 번도 근무해 보지 못했다.

반면 이철희는 처음부터 남부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자신보다 2년 먼저 부장을 달았고 차장 역시도 한 발 빨랐다.

결국 동부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고 로펌을 차렸는데 오늘날 국내 5대 로펌중 하나에 들어갈 만큼 규모가 크다.

“싫든 좋든 이제 우린 한 배를 탔네.”

이철희의 눈이 빛난다.

그는 천오필의 변호사고 장웅철은 현미정을 보호해야 한다.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경찰쪽 정보를 정확히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면 권총수를 습격한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배후조종 혐의다.

어떻게 해서라도 두 사람을 배후 조종혐의에서 빼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자주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인천공항은 사람으로 북적거린다.

해외로 연말 휴가를 떠나는 가족들과 연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채명천과 낯선 중년인 한 명이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지그시 웃고 있었다.

금테안경을 끼었고 약간 콧대가 높은 중년의 사내는 바로 블랙잭의 고문 변호사인 감앤장 소속의 이충문이다.

그가 오늘 출국장에 나온 건 권총수가 불렀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국에 있을 때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 우리 쪽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판단해야 할지 전문가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 말고는 없죠. 어차피 우리 쪽은 검찰이 움직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검찰 움직임은 어때요? 그 놈들 믿지 마세요.”

권총수 표정이 차갑다.

“검찰은 잘 체크하고 있습니다.”

“소문 도는 것 들었습니까?”

“소문?”

“권악수 쪽에서 권력기관에 거액의 로비자금이 들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 그 바닥에 계시면서 금시초문은 아닐테고?”

권총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이충문은 어색한 표정을 했다.

“글쎄, 정말로 금시초문입니다.”

“알아보세요. 내 정보가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거든요.”

이충문의 눈이 빛났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말속에 냉기가 깔려 있다.

그건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우회적 경고이기도 했다.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셨습니까?”

권총수에게서 감당키 어려운 강력한 위엄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이충문이 슬그머니 자세를 바로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성골을 자처하는 명문가 사람들로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단 말이오. 난 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과 전쟁은 격이 다르다.

싸움은 지고 이기지만 전쟁은 죽고 산다.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야 이충문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민철이 씨익 웃었다.

자신이 보기에 그동안 이충문의 어깨에 은근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법인에서 간판급 변호사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무게는 자신 같은 촌놈들에게나 통한다.

권총수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 아니라 까불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날 수 있다.

“채 이사님 런던 다녀온 것 자료 정리되면 미국으로 바로 보내주세요.”

“며칠 걸릴 겁니다.”

“그만들 돌아가세요. 바쁘실 텐데.”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죄송합니다. 차가 어찌나 막히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전철로 오는 건데.”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국정원 제5국장 정현웅이었다.

갑작스런 정현웅의 등장에 권총수는 물론 오민철 채명천까지도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변호사 이충문이었다.

‘저...저사람!’

재빨리 위아래를 훑는다.

‘정현웅이 틀림없다. 어떻게 저 사람이 여길.’

감앤장은 우리사회의 권부(權府)라 할 수 있는 기관과 개인을 타이트하게 맡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곳만은 점령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국정원이었다.

국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어떻게 내부가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국정원과도 친밀한 관계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장이나 아니면 넘버2로 불리는 차장급들이다.

기획조정실장을 포함에 1차장, 2차장, 3차장은 거의 정치인들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과는 아주 가끔 통화도 하고 식사 자리도 갖지만 바로 밑의 국장들은 다르다.

그들은 철저한 정보요원들이다.

개인적인 만남에 일체 응하지 않고 업무 외적인 일로는 결코 대인관계를 하지 않는다.

‘무서운 건 실무진들이지’

아는 변호사중 한 명이 우연히 해외여행중 친북인사를 만났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귀국하자마자 심리전단 소속 요원 둘이 찾아와 연행되어 갔고 이틀여 조사받으며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사람이 아니더라고’

농담도 없다.

철저히 사무적이고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더란다.

언젠가 회사차원에서 1차장을 만나 식사할 때 정현웅이 동석한 걸 기억한다.

정보요원이기 때문에 스치듯 만난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동석했으므로 자신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분야 사람들의 기억력은 탁월하다.

그런데 정현웅은 이충문을 본체만체 했다.

어쩌면 정말 모르는 걸까 했지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모른 척 할 정도면 그만큼 권총수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국정원까지’

분명 배웅인사차 나온 것이 틀림없다.

“원장님께서 잘 다녀오시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바쁘실 텐데.”

바쁠텐데 뭐 그런 인사까지 보내냐며 감사하다는 답례다.

정현웅을 보낸 건 뻔하다.

이번에 미국에 건너가면 워싱턴 재야의 많은 거물 정치인들을 만날테니 좋은 얘기, 국익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달라는 뜻이다.

물론 국익 속에는 자신의 입지도 좀 세워 달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권총수는 정현웅과 따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악수를 나눈 뒤 오민철과 돌아섰다.

아까부터 출국 수속을 밟으라는 안내방송이 줄기차게 나오고 있었다.

“다녀오십시오.”

남은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채명천과 이충문에 비해 정현웅의 허리는 완전히 폴더다.

이충문은 볼수록 신기했으며 충격을 받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층 단독주택이다.

한겨울이지만 남향의 단독주택은 따뜻한 햇빛을 듬뿍 끌어안고 있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누구시죠?”

여자 목소리였다.

대문 밖에서는 채불수 팀장을 비롯한 강력2팀이 있다.

“경찰입니다. 천오필씨 집에 계시죠?”

“없는데요. 왜 그러시는데요.”

“사모님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업무방해죄로 처벌 받습니다. 알고 왔으니 문 여십시오. 계속 없다고 거짓말하면 직접 들어갈 것입니다.”

“없다니까요?”

여자가 소릴 높였다.

천오필은 거실에 앉아 통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자신의 변호사 이철희였다.

천오필의 표정이 딱딱한 것이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때 아내가 다가와 경찰이 왔다고 손으로 신호를 했다.

“잠시 후에 다시 하죠.”

전화를 끊은 천오필이 이마를 찌푸렸다.

“경찰이 왔다니까? 당신 집에 있는 것 다 안다면서 좋게 말할 때 문 열래.”

가급적 집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경찰의 관리대상이다 보니 수시로 수사기관들이 덮치기 때문이다.

오늘 아내 생일이다.

아침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 살짝 들렸는데 어떻게 경찰이 알았단 말인가.

파팟!

천오필의 눈이 이글거린다.

‘어떤 새끼가 찔렀구나’

조직내 경찰 프락치가 있다.

간부 몇 명 말고는 자신의 동선은 모른다.

고위간부라면 누굴까.

그때 다시 한 번 인터폰을 통해 채불수 음성이 들려왔다.

“가택수색영장까지 같이 받아 왔습니다.”

부인의 표정이 굳는다.

천오필은 이마를 찡그렸는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천오필은 몇 번 길게 숨을 내쉬더니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고 핸드폰을 들었다.

상대는 조금전 통화했던 변호사 이철희다.

“경찰들이 쫓아왔습니다. 빌어먹을, 그러죠 뭐.”

“뭐래요?”

아내가 묻는다.

천오필은 할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물더니 아내에게 문을 열어주도록 했다.

아내가 놀란 눈을 하자 천오필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별 것 아냐. 들어오라고 해.”

딸칵!

천오필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내가 대문을 열어주고 현관문 잠금장치까지 풀어 놓는다.

딸칵!

열린 현관문을 통해 마당을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채불수와 김황식 형사가 들어섰다.

나머지는 혹시 도주를 대비하여 마당에서 대기하고 있다.

채불수는 두 개의 영장을 펼쳐 보였는데 하나는 체포영장이고 또 한 장은 가택수색영장이다.

사실 가택수색영장은 체포해야 할 대상이 숨거나 집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보이지 않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채불수는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수갑을 꺼내 다가갔다.

“담배나 마저 피우고 갑시다.”

천오필이 낮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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