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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22화 (522/651)

제522화: 발버둥 치는 사람들(3)

파출소 관계자의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았다.

“몇몇 전직 고위 관료 분들이 살고 있긴 하지만 특별히 순찰대상자로 정해진 사람은 없습니다. 아 잠깐만요.”

잠시 자신들끼리 무슨 얘기를 나누는 듯 여러 이야기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여보세요?”

“예예!”

“왼쪽 개천건너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 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기도 한 인물이죠.”

“누구죠?”

“권총수라는 이름인데 블랙잭이라는 민간보안기업 대표입니다.”

“아! 그 사람.”

“찾아오는 사람이 워낙 많아.”

“누구가 찾아옵니까?”

“거의가 기자들이죠. 그리고 이건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전해 들은 얘긴데 그 사람이 워낙 해외에서 유명했잖습니까? 그러다보니 앙심을 품고 죽이러 온 킬러들이 적지 않다고 합디다. 아, 물론 들은 얘깁니다.”

파출소 관계자는 자신의 입으로 말해 놓고도 약간은 쑥스럽다는 듯 헤프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채불수의 눈이 빛났다.

“조형사, 권씨가문 사건 기억하지?”

“권씨요?”

“천왕그룹 권씨들.”

“아, 예! 어마어마했죠. 살인이다 아니다 해외언론에서까지 특집으로 다뤄졌던 큰 사건 아닙니까? 맞다. 그때 범인으로 지목된 친구가 권총수였죠.”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기 때문에 조문철 형사도 들은 것이다.

채불수의 눈이 좁혀졌다.

자신도 기억한다.

워낙 대형 사건이었고 마치 천벌이라도 받은 듯 대한민국 제일의 명문가라는 권씨일가가 불과 일년도 채 되지 않아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죽었다.

살해당한 것으로 인정된 건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권마수의 죽음 뿐이었다.

당시 청와대 수석으로 변장한 기동술이란 사람에 의해 살해 되었고 경찰수사는 지지부진하다 미제 사건으로 넘어갔다.

나머지 권씨 일가의 죽음은 타살의 정황이 컸지만 증거가 없어 경찰도 검찰도 어쩌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 됐다.

“어쨋건, 그럼 오늘 밤에 마도로스에서 권총수를 친다?”

운전석에 앉은 김황식이 조수석의 채불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안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백전노장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갑자기 벙어리가 된 듯 입을 다문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마도로스파와 권총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다.

그들은 폭력집단이다.

이렇게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우두머리가 친히 나섰다는 건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권총수가 국내 폭력조직과 혈채(血債)를 갖고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채불수가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자신보다 계급도 높고 선배인 듯 깎듯했다.

“예, 그냥 그렇게 지냅니다. 하하. 그런데 선배님. 저기 권총수라고 아시죠? 옛날에 선배님께서 권씨일가 사건 수사했잖습니까?”

“당연히 잘 알지.”

“제가 필요해서 그러는데 권총수의 국내 행적에 대한 기록이 있으면 조금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왜 그러나? 그 친구 블랙잭이란 민간 보안회사 차려 거부가 되었잖아. 듣자하니 천왕중공업 최대주주이기도 하다던데?”

선배의 말인 즉 거물이 되었으니 함부로 건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무튼 기록 좀 지금 당장 부탁합니다.”

“알겠어. 언제 저녁 한끼 하자고.”

“제가 모셔야죠. 감사합니다.”

전화기를 내린 채불수는 답답한 표정을 했다.

여러 정황상 권총수 말고는 마도로스파라는 인천최고의 폭력조직이 노릴만한 인물이 근처에 살고 있지 않았다.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오늘 밤 지원을 나온 강력3팀장 오경환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채불수는 뒤를 돌아보았는데 봉고차 한 대가 멈춰있다.

단속 나갈 때 사용하는 봉고차임을 알아보고 빙긋 웃었다.

“저기 앞에 벤츠 보이죠. 그 앞으로 두 대의 봉고도 있고.”

“저놈들입니까?”

오경환도 본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부우웅하는 소리가 들리며 검정색 벤츠 한 대가 옆을 지나가 다리를 건너 올라갔다.

그리고 십여 분 정도 지났을 때 봉고차 두 대와 벤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라갈까요?”

“일단 가봐!”

김황식이 시동을 걸어 다리를 건넜고 그 뒤를 강력3팀이 타고 있는 봉고차가 따랐다.

길은 넓었으나 경사가 상당했다.

“저 끝에 있는데요.”

천오필이 탄 벤츠가 마지막으로 좌회전하며 들어갔는데 브레이크등이 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이쪽 블록에 세워!”

30여미터 앞두고 왼쪽으로 골목이 있었는데 김황식이 차를 세웠고 3팀 봉고차는 오른쪽 골목으로 세웠다.

“총기 살피고.”

형사들이 권총을 꺼내 실탄과 안전장치를 확인하고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덜컥!

승용차에서 모두 네 명이 내렸는데 맞은편 봉고차에서는 여섯 명이었다.

야간 근무자 전원이 출동한 듯 보인다.

채불수는 동네 사람처럼 옷차림을 잘 살피더니 나머지에게는 대기하라는 말을 남기고 걸어 올라갔다.

채불수는 걸음을 재촉하며 마지막 골목 끝에 이르렀다.

사내들이 두 대의 봉고차에서 내렸는데 대략 스무명 정도 되어 보였다.

채불수는 재빨리 파출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집의 위치를 설명하고 물었다. 그러자 파출소장은 맞다면서 그곳에 권총수가 산다고 했다.

‘조폭이 용병 두목을 죽이러 왔다고?’

갑자기 헷갈린다.

그러면서 아랫배가 슬쩍 뜨거워 오는 것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면서 흥미가 생겼다.

사내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일부는 번쩍이는 회칼을 들고 담을 넘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잠시 지켜볼까 했으나 이건 영화가 아니다.

범죄자를 잡는 것도 좋지만 범행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 짧은 사이 사내들은 이미 담을 넘은 뒤였다.

자신들이 지체하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면 엄청난 책임 추궁이 따를 것이다.

“출동, 모조리 진압해!”

무전기로 말을 했고 형사들이 우르르 달려 올라왔다.

타앙!

선두의 채불수가 공중에 대고 공포탄 한 발을 발사했다.

갑작스런 총소리에 남은 사내들이 우왕좌왕한다.

“경찰이다. 그 자리에서 꼼짝마!”

김황식은 가장 먼저 담배를 피우고 서 있는 천오필에게 다가갔다.

“종로경찰서 김황식 형사입니다. 당신을 형법 제114조 범죄단체조직과 야간 주거침입 조종혐의로 체포합니다.”

“뭔데!”

수갑을 채우기 위해 손목을 잡으려 하자 피하면서 인상을 썼다.

김황식이 권총을 꺼내 들이 밀었다.

“모가지에는 쏠 수 없지만 발등에는 얼마든지 한 발 땡길 수 있어. 조용히 수갑 받으세요”

“진짜 어이가 없네.”

“나도 어이가 없습니다.”

화악!

그때 조문철 형사가 다가와 번개처럼 팔을 잡아 뒤로 꺾었다.

그러나 천오필은 그냥 당하지 않았다.

몸을 꺾인 팔 만큼 빙글 돌려 틀더니 조문철을 씨름의 잡치기하듯 옆으로 밀쳤다.

조문철이 벌러덩 나가 떨어지자 탕하는 소리가 들리며 김황식 형사가 눈을 빛냈다.

“한 번 더 반항하면 그때는 진짜 몸에 구멍 뚫을 거요.”

“......”

찰칵!

쓰러진 조문철이 일어나 수갑을 채웠고 담을 넘어가 대문을 열자 경찰들이 우르르 밀려 들어갔다.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회칼을 들고 들어간 사내들은 현관문을 부수고 온 집안을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집 안에는 어떤 기척도 없었다.

분명히 벤츠는 대문 앞에 세워져 있는데 주인 권총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두 무기 내려놔.”

현관을 들어선 경찰들이 권총을 겨누자 사내들이 덤빌 듯 갖고 있는 각자의 흉기를 더욱 움켜쥐었다.

“야간 체포시 세 번 불응하면 발포하도록 법이 바뀐건 모르지 않을 것이고, 손들어.”

두 번째 지시를 내렸다.

“야 내려!”

행동대장 고중천이 지시를 하자 그때서야 모두가 들고 있던 흉기를 내려 놓았다.

“체포해!”

근처 파출소 근무자들까지 지원을 나와 사내들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형사들의 손에 이끌려 사내들이 대문 바깥으로 나가고 마당에는 채불수와 조문철 형사 둘만이 있었다.

총소리에 놀란 듯 인근 주민들이 대문 밖으로 나와 웅성거렸다.

두 사람은 마당 가운데 놓인 커다란 바위를 보며 눈을 빛냈다.

“사람아 앉았던 자리 아냐?”

채불수가 허리를 숙여 바위를 만졌는데 부드러움에 놀란다.

“진짜 사람이 앉은 자국인데요. 이런 돌은 굉장히 고가로 거래된다던데.”

작품이 되는 수석을 의미한 말이다

그때였다.

구두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열린 대문 안으로 권총수가 들어섰다.

그는 정장 차림이었는데 낯선 두 사람을 보며 그다지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경찰이십니까?”

두 사람이 어떻게 아느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조금 전 권총소리가 들렸잖습니까? 저 위에 있는 금선사 스님에게 잠깐 볼일이 있어 들렸다 오는 길인데 총소리가 나더군요.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들리고.”

금선사를 갔다는 말은 거짓이다.

잠깐 산에서 상황을 살펴 봤을 뿐이었다.

이미 천오필의 패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경찰들까지 출동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럴 때는 자신이 나서면 안 된다.

일단 무거운 혐의를 씌워 연행해 갔지만 보나마나 오늘 밤 안으로 풀려 날 것이다.

요즘은 조폭들도 유명한 변호사들을 두고 있다.

“집안이 엉망일 것입니다.”

조문철 형사가 현관을 들어가는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그러면서 조문철은 조금 전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권총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갔는데 여기저기 살피더니 피식 웃어 버렸다.

조문철은 바위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채불수에게로 다가왔다.

“별로 놀라지 않는데요?”

일반 사람 같았다면 겁에 질렸을 것이다.

“확실히 다른데!”

채불수가 담배불을 끄며 중얼거렸다.

“진짜 틀려. 평범한 사람은 죽어도 아니야.”

조금 전 시끌벅적 한 상황에서 문자가 도착했는데 경찰 선배가 보내준 권총수에 대한 신상명세서였다.

가장 시선을 끄는 내용은 공중을 날아간다는 대목이다.

물론 줄을 긋고 그 밑에 믿지 않는다는 말을 낙서하듯 빨간펜으로 써놓긴 했지만 서류에 기재될 정도면 결코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라고 봐야한다.

뭔가 있는 것이다.

“크게 부서지거나 파괴된 건 없습니다.”

권총수가 다가와 말했는데 그건 곧 가택침입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마도로스파라는 인천 최대 폭력조직에서 조금 전 선생님을 죽이려고 침입했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많죠.”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답이 애매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뜻 같기도 하고 죽이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자신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으로도 들린다.

“이 집 주인 권총수씨 맞죠?”

권총수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보로 레드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하시겠습니까?”

두 사람에게 담배를 내밀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딸칵!

채불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권총수를 보며 말했다.

“타계한 권철태 전 대통령이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래전 타계한 유명했던 영화배우 설지씨고?”

권총수는 야릇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언젠가 권씨가문의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할 때 한국에 계셨죠?”

권총수의 미소가 짙어졌다.

“나에게서 듣고 싶은 것이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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