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1화: 발버둥 치는 사람들(2)
천오필은 현재 팔천만원 가까이 터지고 있다.
즉 이번 판에 복구를 하느냐 아니면 일부만 건지느냐다.
“왜 그러는데?”
뭔가 눈치를 챈 듯 장출운의 눈이 빛난다.
“설마!”
“에라 모르겠다. 스윙!”
스윙은 하이 로 모두 먹겠다는 뜻이다.
“뭔데요?”
“빽.”
천오필은 손에 들고 있는 패를 내렸는데 백 스트레이트였다.
하이에서도 높은 족보가, 로에서는 가장 강한 패다.
“이런 젠장, 난 6탑인데.”
장출운이 패를 깠는데 A2346이다.
백 스트레이트만 아니면 최강의 패다.
그것도 에이스가 스페이드이니 누가 이길 것인가.
안타까운 듯 계속 한숨을 쉬었다.
그때 침묵하고 있던 배송독이 입을 열었다.
“미치도록 미안하네. 난9 집(house)이야.”
배송독이 패를 뒤집어 보여주었는데 9석장에 7두 장이다.
완벽한 풀 하우스이다.
로 로는 장출운을 이겼지만 백스트레이트는 결코 풀 하우스를 이길 수 없다.
독식이 물 건너가고 배송독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2억여 원이 넘는 돈을 배송독 혼자 챙긴다.
“아 참, 천 사장이 스윙을 하는 바람에.”
장출운이 아깝다는 표정을 짓자 돈을 끌어모으는 배송독이 말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사장님은 안 되잖아요. 하이든 로든.”
천오필의 표정이 굳어진다.
“뭐해 빨리 패 돌려.”
천오필이 딜러를 보며 인상을 썼다.
그때 천오필이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꿈틀!
액정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린다.
처음 보는 전화다.
스팸으로 보는 듯 바로 끊어 버렸다.
그때 딜러는 다시 패를 돌렸다.
지이잉!
또다시 전화가 울렸고 액정을 보자 조금 전 그 번호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누구야?”
“천오필 사장님?”
“누군데?”
“돈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신 뭐야?”
“여기서 정리 하세요. 그만 끝내란 얘깁니다. 오야붕 노릇 계속하고 싶으시면 이쯤에서 포기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대충 흘려 듣지 말고 명심하세요.”
“무슨 개소리야? 야 너 뭐하는 놈이야.”
하지만 전화는 끊어졌다.
“이런 죽일 새끼가.”
돈을 잃은 천오필은 잔뜩 흥분해 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앞에 놓인 석장의 카드를 보던 천오필의 인상이 구겨진다.
하트3,스페이드9 클로버K다.
그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승부를 보기 힘든 가장 나쁜 패다.
물론 이후 연속으로 3이 떨어질 수도 있고 9가 나올 수도 있다.
K 네장이 들어오지 말란 법도 없다.
오지 않는 가능성의 패를 믿고 베팅했다가 주머니 먼지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이름하여 개패도 이런 개패는 없다.
퍽!
“아니 벌써 죽으면 어떡합니까?”
장출운이 돌아본다.
천오필은 계속 패를 엎었다.
“죽어!”
“죽어!”
갑자기 패가 나쁘다.
순간 천오필은 20여 분전 받은 전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내 수신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가고 이내 받는다.
“여보세요.”
“당신 누구야? 이름이 뭐야? 나 알아?”
“조금 알죠.”
“뭐하는 사람인데? 경찰이야. 남동서야 아니면 연수서?”
“발이 넓은가 보군요. 난 이제 자야할 시간입니다. 조금 전 말한대로 여기서 손 끊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입니다. 사람 말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탁!
또다시 상대가 일방적으로 끊자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런 호로 상노무새끼가.”
버럭 소릴 지르며 다시 번호를 눌렀다.
권총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십여 번 울리더니 끊어졌다가 전화는 다시 울렸다.
전화는 무려 일곱 차례나 끊어졌다 울리기를 반복했고 이내 조용해진다.
권총수는 조용해진 핸드폰을 보며 빙긋 웃었다.
모든 건 운명이다.
천오필이 오래 장수할 것이라면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어이 온다면 어쩔 수 없다.
오는 적을 돌려보낼 수는 없다.
어리석은 적은 이쪽의 관용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공격해 온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은 없다.
출국을 앞두고 바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갈수록 부족해지는 인력 해결을 위한 대책이었다.
날마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이어가지만 뚜렷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차라리 타국출신들을 채용하는 것이 어떨까요?”
홍보이사 정태경이 눈을 빛냈다.
“타국 군 출신?”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아카데미나 다인코프 모두 미군 출신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그러면서 오민철은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타국 군?”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부들 모두가 일어난 권총수 표정을 바라보았다.
“우리 군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도 언제까지 우리 군 출신으로 채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신 것으로 압니다만?”
“사실이야. 시장은 커지고 인력은 한계가 있으니.”
“누가 좋을까? 타국 군인이라고 해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험에 비출 때 일본 자위대가 괜찮긴 한데?”
오민철이 슬쩍 권총수의 얼굴을 살핀다.
“자위대?”
“그 자식들은 안 됩니다.”
여기저기서 당치 않다는 듯 불만 섞인 음성들이 터져 나왔다.
“짱깨도 괜찮지만 그 자식들은 너무 음험해서.”
그때 잠자코 있던 경리과장 강문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자신도 참석하고 싶다며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북한 애들 어떨까요? 뉴스에 나오는 그쪽 특수부대들 보면 무시무시하던데?”
“북한군?”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강문태를 바라보았다.
“국경도시 단둥에 가면 북한군 출신들이 발길에 채인다던데요. 러시아와 중국에도 북한 특수부대 출신 노동자들이 넘쳐나구요.”
“누가 그래?”
오민철이 물었다.
“중국 단둥에서 식당을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분이 그러더군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을 시키면 게으름 피우지도 않고 무척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걔네들 위대한 수령님 하면서 미친 듯 훈련한다던데 데려 올 수만 있다면 저렴한 몸값에 우리야 쌍수를 들어 환영인데 안 그래?”
그러면서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권총수는 창가에 서서 회의탁자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볼 때 그들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프로젝트는 없지. 자본주의 맛을 한 번 느끼면 목숨 걸고 뛸 테니까. 그런데...”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홍보이사 정태경이 입을 열었다.
“북한 근로자 채용은 우리 법에 문제가 됩니다.”
그러자 일제히 정태경이사를 바라보았다.
“구체적인 법 조항을 알아봐야겠지만 정부의 허락없는 채용은 어려울 것입니다.”
“듣고보니 그럴 것 같은데.”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를 들더니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듯 입맛을 다시며 잠시 기다리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변호사님.”
블랙잭의 국내법 문제를 관리하는 로펌 ‘감 앤 장’을 대표하는 변호사 이충문이다.
권총수는 오늘 저녁 어떠냐고 묻고서 괜찮다고 하는 듯 식사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난 권총수는 말했다.
“일단 최우선적인 안건으로 올려 매달려 봅시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총수는 그날 저녁 어군에서 이충문 변호사를 만났다.
더위가 꺾이고 이젠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로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별채의 한옥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두 사람이 비우는 술잔이 빠르게 늘어난다.
“저도 군대생활 했지만 북한 특수부대 애들 훈련받는 것 가끔 영상으로 보는데 무시무시합니다. 저것들이 사람이냐 짐승이냐 싶더라니까요.”
권총수의 질문은 간단했다.
‘북한군 출신들을 데려오는데 국내법에 저촉되느냐.
물론 남한 땅은 밟지 않고 현지에서 곧바로 뉴저지 훈련소로 보낼 것이다.
미국 입국 문제는 내가 해결할 테니 그것만 알아봐 달라’
질문에 이충문은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첫 번째는 남북 교류와 경협 차원의 접근으로 본다면 긍정적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상당액이 노동당 정치 자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다.
결국은 정치적 결단으로 가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한 가지에서 위험하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었다.
이충문은 무거운 얼굴로 자칫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 정치판의 단골 메뉴이자 전가의 보도인 간첩사건으로 엮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여의도가 워낙 잔인한 바닥이다 보니 언제 누가 블랙잭을 하루아침에 간첩 집단으로 몰아넣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나 간첩으로 몰리면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기독교에서 죽음의 뜻함)을 건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부담없는 좌석처럼 서로 웃고 술을 마셨지만 권총수 머릿속은 심각했다.
어차피 인력이 부족한 지금 어떤 형태로든 충원을 해야 한다.
단순히 용병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전투력을 지녀야 한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들이 제격인건 분명했다.
그런데 언제 돌변할지 모를 정치판의 잔혹성이 문제인 것이다.
채불수 팀장을 비롯한 경찰들은 승용차 한 대를 미행하고 있었다.
승용차에는 마도로스파 두목 천오필이 타고 있었다.
사흘 전 사망한 조직폭력배들을 추적하면서 마도로스파가 서울에서 어떤 작업을 준비 중이라는 걸 간파했다.
그래서 몰래 인천으로 들어가 마도로스파 주요 간부들을 감시하는데 두목 천오필이 오늘 밤 서울로 들어온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강력계 다른 팀 지원을 대기시켜 놓았다.
차는 내부 순환로를 내려와 홍제동으로 들어섰다.
“세검정 쪽으로 가는데요.”
“전번 사고는 광화문근처에서 났지?”
“예!”
“세검정쪽에 볼일이 있는 것 아냐?”
차는 홍제동을 지나 구불구불 홍제천을 따라 세검정 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지이잉!
조수석에 앉은 채불수가 핸드폰을 꺼낸다.
액정을 살피며 통화버튼을 누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오팀장.”
오늘 지원하기로 한 강력3팀장 오경환이다.
“출발합니까?”
“10여분 정도만 더 대기해 주시겠습니까? 곧 목적지가 결정 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채불수는 차가 구기터널 쪽을 좌회전하는 것을 보며 중얼 거렸다.
“불광동쪽으로 가려나?”
“불광동쪽으로 갈 것 같았으면 홍제 램프를 나와 거기서 좌회전 하는 것이 빠르고 가깝죠.”
핸들을 잡은 김황식 형사가 말했다.
“구기동으로 가는데요?”
구기터널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빠져 올라갔다.
천오필이 탄 벤츠가 길가에 멈춰섰다.
앞쪽으로 두 대의 검정색 봉고가 정차해 있었다.
두 대중 벤츠 바로 앞에 있는 봉고차 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내려 걸어왔다.
벤츠의 뒷 유리가 내려가고 사내는 허리를 구부려 차안을 향해 말했다.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확실해?”
“집안까지 들어가 확인했습니다. 불도 모두 꺼졌고.”
“무전기 켜고 모두들 대기해.”
“예 형님!”
사내는 다시 봉고차로 돌아갔다.
한편 조문철 형사는 캠코더로 두 사람이 나누는 모습을 빼놓지 않고 촬영했다.
그때 채불수 팀장은 근처 파출소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총로서 강력2팀장 채불수입니다. 우린 지금 이북오도청 아래 와 있는데 이 지역에 주요 순찰대상자가 있습니까?”
사회적으로 유명 인사나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집중 순찰하며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