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0화: 발버둥 치는 사람들(1)
고중천은 인상을 썼다.
맨 뒤에 오는 차량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북한산 입구 도로 한쪽으로 차를 세우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는다.
그때 같이 멈춰선 두 번째 차량에서 박종구가 내렸다.
“형님 대식이 전화 안 되는데요.”
세 번째 차에 타고 있는 신대식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는 않는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내도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저 멀리 길 아래쪽을 바라보았지만 신대식의 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중천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박종구가 말했다.
“그냥 우리끼리 작업할까요?”
고중천은 이마를 찡그렸다.
잘 따라오던 차량이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대사(大事)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좋을 것은 절대 없다.
“5분만 기다려 보자.”
고중천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연거푸 핸드폰을 살피는데 혹시 문자라도 올까 싶어서였다.
“야 차에 들어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아.”
답답한 듯 모두 차에서 내려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들이 흘깃거렸다.
사람들 눈에 관심 있게 찍혀서 좋을 것 없다.
사내들은 재빨리 피우던 담배를 끄고 차안으로 들어갔고 고중천과 박종구만 남았다.
10억짜리 프로젝트다.
일을 끝내면 자수하여 교도소에 들어갈 사람까지 이미 선정해 놓았다.
전과 이력이 없는 신입을 밀어 넣고 똘똘한 변호사 선임하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7,8년이다.
형행 성적 좋으면 더 빨리 나올 수도 있다.
“철수하자!”
시계를 본 고중천이 담뱃불을 껐다.
“그냥 가게요?”
“애들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진행하냐. 오늘만 날도 아니고, 철수해.”
위쪽으로 더 올라가 차를 돌릴 때 고중천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형님이라는 글자가 떴다.
“예. 형님! 네엣! 정말입니까? 야 라디오 틀어봐. 뉴스.”
전화기를 끊고 난 고중천이 소리쳤다.
사내들이 재빨리 라디오를 켰다.
여기저기 틀지만 노래가 나오거나 교통상황을 전달하는 내용뿐이었다.
“임마 KTN을 틀어야지.”
사내가 부지런히 싸이클을 찾아 헤맨다.
뚝!
한순간 사이클이 맞은 듯 곧바로 뉴스가 흘러나왔는데 광화문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세 명이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가해차량 운전자의 말을 빌리면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들이받았고 옆 차선으로 튕겨가면서 또 한번 시내버스와 부딪쳤다.
사고로 차에 불이 붙으면서 타고 있던 세 명 모두가 숨졌다.
“이런 젠장.”
고중천이 어금니를 물었다.
“죽은 세 명 대식이 일행이다.”
“넷?!”
“진짭니까? 형님이 그걸 어떻게?”
차안의 사내들 눈이 커졌다.
“조금전 경찰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대. 차량넘버를 조회해서 연락처를 알았나봐. 형님께서 전화하셨다.”
모두가 굳은 얼굴이다.
사건은 교통사고 반에서 강력계로 넘겨졌다.
이유는 시신들 품속에서 회칼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죽은 세 사람 모두에게서 회칼이 나왔다는 건 분명 단순교통사고로 처리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종로경찰서 강력2팀장 채불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세 자루 회칼을 보고 있었다.
팀원들 모두 조폭들이라고 단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명도 아닌 세 명 모두가 회칼을 차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설마 어딜 치러 가다 사고를 당한 건 아니겠죠?”
김황식 형사가 빙긋 웃었다.
“아니지. 그랬었을 수도 있지. 쫓기는 놈들이 아니라면 평소에 회칼을 품에 담고 다닌다? 우리가 조폭 한두 번 검거해 봐.”
없다.
평소에는 갖고 다니지 않는다.
회칼을 소지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범죄가 성립되고 더욱이 족보를 뒤져 조폭임이 드러나면 빼도박도 못한다.
“나왔습니다. 팀장님!”
안쪽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던 조문철 형사가 말했다.
“인천 마도로스파 놈들인데요.”
채불수와 김황식이 걸어가 조문철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오늘 죽은 세 사내의 사진과 간단한 신상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주의사항 란에 ‘마도로스파 조직원’이라는 붉은 글씨가 떴다.
조직폭력배들로 경찰의 관리 대상자들이다.
“인천 애들이 무슨 일로 서울까지 와서 사고로 죽지.”
“귀찮은데 인천으로 넘기죠?”
김황식 형사가 채불수 팀장을 바라보았다.
거주지가 타지역 일지라도 관내에서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면 관할 경찰서에서 조사 하는 것이 정석이다.
채불수는 반응이 없다.
경험에 비춰 대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낚는다.
서울에도 수많은 폭력조직이 난립하고 몇몇은 기업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마피아와 야쿠자처럼 철옹성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필사의 노력을 다해 단속하고 잡아 들였지만 대세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조폭도 예전처럼 무조건 찌르고 뺏는 시대가 아니다.
그들도 이젠 힘과 머리를 적절히 나눠 구사 할 줄 안다.
어쨌든 인천조직이 서울까지 회칼을 차고 왔다면 그냥 넘길 수는 없었기에 채불수는 본청에 있는 강력계 동기 팀장에게 서울 인천 경기권 조폭 동향에 대한 최신 자료를 요청했다.
“그래그래. 빠를수록 좋아. 언제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끊고 난 채불수는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있다’
뭔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권총수는 잎이 우거진 벚나무 아래에서 고중천의 일행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중천은 어디론가 부지런히 통화를 하더니 차를 타고 떠난다.
물론 고중천의 통화내용은 모조리 감청하듯 천리지청술을 전개하여 들었다.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고 핸드폰을 꺼내 마석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바쁘실 텐데요.”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인천 마도로스파라고 아십니까?”
“갑자기 마도로스 파는 왜? 그들과도 얽혔습니까? 현역에 있는 아이들은 모르고 고문으로 있는 몇 명은 가끔 통화 한 번씩 합니다만?”
“우두머리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우두머리와 통화를 원한다는 말에 마석춘은 잠시 당황한 듯 말이 없었다.
“격에 어긋나는 것입니까?”
조직의 규모에 따라 그 바닥에서의 권위도 달라진다.
경찰도 아닌 민간인이 폭력조직 우두머리와 직통을 한다는 건 상대 입장에서는 무척 불쾌 할 것이고 나중 누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줬는지 가만두지 않을 수도 있다.
“흐음!”
“곤란하면 이만 끊죠.”
“아닙니다. 제가 잠시 후 다시 전화드리죠.”
권총수는 핸드폰을 내리고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방안의 공기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원탁을 놓고 다섯 명의 사내들이 포커게임을 하고 있었다.
마흔 초반에서 육십대까지 연령대는 고르게 보였다.
“삼백!”
남색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맨 육십 중반정도 되는 노인이 오만 원권 60장을 세어 던진다.
판돈은 이미 만원 권과 오만 원권이 수북하여 마치 무덤의 봉분같다.
“천 사장?”
받을 것이냐 죽을 것이냐 묻는 것이다.
천오필은 오른쪽에 앉아 300만원을 때린 장출운의 패를 내려다보았다.
“바닥패는 그저 그런데.”
바닥에 깔린 장출운의 패를 보며 중얼거린다.
장출운은 웃기만 했다.
천오필은 지갑을 꺼내 백만 원짜리 수표 3장을 세더니 던진다.
“콜!”
“받고.”
천오필 왼쪽에 앉은 도리구찌(사냥모자)를 쓴 뚱뚱한 사내가 삼백을 넣고 판돈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했다.
“하프 베팅이지? 얼마야?”
그때 한쪽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 딜러가 수북하게 쌓인 지폐를 싹 쓸어 헤집어 보았다.
“오천은 될듯 싶습니다.”
“3,000으로 갑시다. 삼천.”
그러면서 천만 원짜리 수표 세장을 던져 넣었다.
“꽥!”
그러자 바로 옆 왼쪽 사내가 패를 엎었고 뒤이어 그 옆에 있던 다른 사내까지도 패를 엎었다.
“무지막지하게 치는구만.”
두 사내는 아쉬운 듯 패를 엎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다섯 중 셋이 남았다.
가장 먼저 삼백을 배팅한 장출운이 때릴 차례다.
“삼천?”
장출운은 눈을 빛내며 삼천을 친 맞은편 뚱뚱한 사내 배송독의 바닥 패를 본다.
“참 애매한 패인데, 잠깐 고민해도 되죠?”
“도박판에서 고민하는 건 당연한 것 아냐. 얼마든지 하세요.”
배송독이 큰소리쳤다.
장출운의 시선은 계속 배송독의 바닥패에 머물렀다.
세븐 카드 하이(High) 로(low)게임이다.
바닥에 넉 장을 깔고 손에 3장을 쥔다.
가장 낮거나 높은 패를 든 사람이 먹는다.
즉 나눠 먹는 것이다
물론 독식도 가능하다.
하이로 가든 로에 줄을 서든 상대보다 내 패가 더 낮고 더 높으면 독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로 게임은 하이만 먹는 오디 게임과 달리 판이 커진다.
즉 둘이 나눠 먹다보니 확률이 높아지므로 배팅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콜!”
장출운 역시 천만 원짜리 수표 3장을 던진다.
이제 다음 차례는 천오필이다.
이들 모두 인천에서는 제법 이름께나 있는 유지들이다.
한 사람은 골프장을 운영하고, 다른 사람은 호텔을 운영한다.
장출운은 화물선 2척을 갖고 있고 뚱보 배송독은 서울을 오가는 버스회사 사장이다.
“일단 삼천은 넣고.”
천오필이 삼천만원을 넣었다.
콜을 할지 받고 리미트로 나갈지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한편 배송독과 장출운의 눈이 커졌다.
소극적으로 따라오기만 하는 듯 하던 천오필이 돌변하여 치고 나오자 놀란 것이다.
“콜만하죠.”
“히든입니다.”
딜러가 마지막 7장째 패를 세 사람 앞에 나눠 주었다.
세 사람 모두 히든 카드를 잡아가는 손이 신중하고 숨소리까지 멎는다.
그때 패를 엎고 이미 죽은 두 사람이 판돈을 보며 말했다.
“도대체 얼마야 1억은 넘었고?”
“이 판 물 좋다!”
오늘 포커판에서 가장 크다.
“베팅 하시죠?”
딜러가 말했다.
장출운은 상체를 뒤로 붙이며 카드를 양손으로 가린 채 쪼이고 있었다.
스스슥!
표정을 봐서는 어떤 패가 떴는지 알 수 없다.
“만!”
장출운은 일단 만 원짜리 하나를 던졌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살짝 던져보는 미끼다.
“만이라, 장 사장 족보가 좋은가봐?”
천오필의 말에 장출운은 미소만 지었다.
“만 받고,”
그리고 난 천오필은 장출운의 표정을 살폈다.
장출운의 표정이 약간 변했는데 그건 족보를 잡긴 했지만 확실한 보장을 하기에는 약하다는 뜻이다.
바닥패는 하이로 갈지 로를 향해 튈지 헷갈리는 패다.
“그냥 콜!”
남은 건 배송독이다.
배송독 역시 고민이 깊은 걸 보면 확실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천오필과 장출운의 패를 번갈아 살피던 배송독이 어금니를 물었다.
“딜러 판돈 확인.”
이미 딜러는 돈을 가지런히 추려 놓고 말했다.
“일억삼천 입니다.”
“받고 육천오백.”
배송독이 역시 손지갑에서 천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세더니 집어넣었다.
정확히 하프 배팅을 한다는 건 패가 아주 높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 선택지는 장출운에게로 돌아왔다.
“피곤하네!”
장출운은 패를 살며시 앞에 놓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를 피우며 한참 동안 배송독의 패를 보던 장출운이 손지갑의 지퍼를 열었다.
“콜!”
그러면서 수표로 육천오백만원을 던져 넣었다.
먹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 패는 아니지만 확인 정도는 들어가 볼 만한 패라는 뜻이다.
이제 천오필의 차례가 되었다.
“일단 콜을 하고.”
천오필 또한 육천오백을 집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