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8화: 병력증원(1)
젊은 사람이 공원묘지 관리인으로 근무할 확률은 거의 없다.
아무리 아닌 척 하려고 해도 본능적으로 쏟아내는 살기를 감추지는 못한다.
들어 올 때 자신을 보는 관리인 눈은 살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현미정을 만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한패거리다.
조금만 추리해보면 이렇게 우연하게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도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현미정은 어떻게 자신이 오늘 여길 올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사실 오래전부터 감시의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거칠지 않고 적의의 강도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버려 두었다.
누군가 감시하고 지켜보는 건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자신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장웅철을 의심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현미정이었다.
조금전 절절한 사죄의 행동은 자신을 방심하게 만들려는 현미정의 연극이다.
부우웅!
권총수는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라 출발했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과하는 걸 수치로 여긴다.
고개 숙이는 것을 부끄러움이라 여긴다.
그들이 하는 최고의 사과는 유감이라는 다소 건방진 표현이다.
그들의 그런 특성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는 권총수에게 현미정의 낮은 자세의 용서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질 리 없다.
그들이 보는 세상 사람들은 그 정도 보여주면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피식!
그들과 자신은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현미정을 만났다는 말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그 여자를?”
믿어지지 않는 다는 얼굴이다.
“원수가 원수의 무덤에 꽃을? 무슨 경우야?”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오민철이 가져다준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무슨 얘기 했어? 싹싹 빌던?”
“나도 사람이야 형, 다른 건 몰라도 이번일은 마음이 약간 흔들렸어. 천왕건설 주식양도 말이야.”
“흔들려, 진짜로?”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오늘 현미정을 만나지 않았다면 권악수의 제의를 놓고 상당 시간동안 고민했을 거야.”
“흐흐 집구석 잘 돌아간다. 아들이 공들여 지은 다 된밥인데 어머니라는 사람이 코를 빠뜨린거 아냐.”
권총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현미정과 무덤 조우가 없었다면 권악수의 제의에 대한 결정을 하는데 고민의 시간이 짧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만 물러서야지 하는 마음이 여러차례 들었다.
“아들의 제안을 엄마가 거절하도록 만들어주다니 운이 좋은 건가 나쁜건가.”
오민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권총수는 차에서 내려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오후 4시가 넘어가는 호텔 커피숍은 한가했고 실내에 거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섬칫할 만큼 자극적인 소리는 파가니니의 라 캄파렐라였다.
맥보란이 자주 듣는 음악이기에 금세 떠올린다.
장웅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약속 시간 10분 전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로 다가가 커피부터 한 잔 주문하고 돌아온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검색했다.
멈칫!
메시지를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별일 없지. 진즉 연락을 해야 하는데 미안하고 고맙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해라. 난 잘 있어’
유병칠이 보낸 문자였다.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으로 보던 친구였다.
빈대처럼 달라붙어 얻어먹는 자신을 쓰레기라고 손가락질 하던 유병칠이다.
그러던 언젠가 만날 친구가 없어 물어물어 유병칠이 일하는 공사 현장을 찾아갔었다.
술을 마시고 그의 집에서 하루밤 신세 진 뒤 돈 몇 푼을 결혼 축의금 형태로 놓고 나왔었다.
피식!
권총수는 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사람이 아닌 돈이 돌리고 또 돌리는 것이다.
“일찍 오셨군요?”
장웅철이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어디 가십니까?”
권총수가 일어나자 장웅철이 물었다.
권총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할 텐데, 감사합니다.”
장웅철은 확실히 예전과 다르다.
이른바 상대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시선도 사라졌고 목소리도 매우 톤이 낮아졌다.
자리가 목소리 행동 모든 것까지 조절하는 현대인의 삶에 가장 특화된 사람임은 분명했다.
옛날의 자리와 지금의 위치가 격세지감일 만큼 바뀌었다는 걸 알고 있다.
“오늘 내가 어딜 다녀온지 아십니까?”
권총수의 말에 장웅철의 눈이 빛난다.
“날 낳아준 여자의 묘지를 가봤죠. 어떤 의무감이나 감정이 있어서 간 건 아니고 그냥 불쑥 가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갔죠. 그런데 거기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누구?”
“현미정씨가 묘지를 찾았더군요.”
“사모님이!”
“그런데 말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결례를 거침없이 하더군요.”
“무슨 결례인지 모르지만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아쉽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금은 무슨 일이 되었든 권총수 앞에 납작하게 허리를 구부리는 일 말고는 다른 행동은 일체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불쾌하셨다면 저를 봐서라도 감정 다스려 주시죠.”
“날 죽이려고 하더군요.”
“네에?”
장웅철은 너무 놀란 것 같았다.
“사모님께서 대표님을 죽이려 하다니 뭘 어떻게 하셨기에.”
권총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한 커피를 받으러 갔다.
장웅철이 자신이 가져 오겠다고 했지만 직접 걸어가 커피를 가져왔다.
장웅철은 커피를 마실 생각은 않고 권총수를 보는데 안색이 굳어있다.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묘지 관리인도 건장한 사내로 앉혀 놓았고, 주차장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있고.”
“그럴수가.”
후루룩!
권총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장 변호사님.”
“말씀 하십시오.”
“장변호사님 같은 경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까?”
굉장히 기분 나쁘다.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과 무슨 거래냐는 뜻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장웅철이 벌떡 일어나더니 의자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뭐하십니까?”
주위 사람들이 바라보았으므로 권총수는 강한 무형의 경기를 발출해 일으켜 세웠다.
혹시 장웅철을 아는 사람이라도 무릎 꿇는 모습을 보고 소문이 새어나간다면 결코 좋을 일은 없다.
뿐만 아니라 내용이 왜곡되어 언론에 실릴 수도 있다.
즉 블랙잭에 대해 어떤 식으로라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기사가 나가도록 조작할 수 있는 집단들이다.
장웅철은 자신의 힘으로는 권총수가 일으킨 경기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자리에 앉았다.
“허면?”
장웅철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속이 바짝 타는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더 이상 우리 둘 이렇게 마주 앉아 차 마시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나가버렸다.
“대표님!”
장웅철은 걸어가는 권총수를 불렀으나 돌아보지 않고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몇몇 손님들이 장웅철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 있던 장웅철은 자리에 앉았다.
식어가는 커피잔을 바라보던 장웅철의 표정은 수시로 바뀌었는데 뭔가 떠오른 듯 핸드폰으로 어딘가 전화를 했다.
“접니다 사모님. 왜 그러셨습니까? 제가 분명히 더 이상 누구도 권총수를 향한 어떤 장난도 쳐서는 안 된다고 얘기 했잖습니까?”
“무슨 말이에요. 난 그에게 사과했어요.”
“사모님 권총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우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갖고 있단 말입니다.”
“아니 지가 무슨 귀신이에요. 속마음을 알게.”
“묘지 관리인과 주차장에 열 명의 사내들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네에?”
“당장 모든 걸 포기하고 물러나십시오. 권총수를 죽이고 싶기로는 저도 사모님 이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숫적 우세를 내세워 공격한다고 해서 잡히거나 다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말로 알고 있더란 말인가요?”
“만약 마음독하게 먹고 그들 모두를 죽였다면 어떡할 뻔 했습니까? 그는 사람을 죽여도 결코 증거 따위를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희망을 가졌는데.”
“미안해요. 조심하죠.”
“정말 왜 이러십니까. 조금 진정하라고 했잖...!”
이미 전화가 끊어졌다.
화난 얼굴로 재 다이얼을 누르려던 장웅철은 소리나게 핸드폰을 탁자에 놓았다.
콰앙!
“우리도 못해내는 일을.”
목소리에 분노가 짙게 배어 있었다.
사모님이 망쳐 버렸다는 보고에 권악수는 두 눈에서 시뻘건 핏기를 쏟아냈다.
“전화기 줘봐요.”
장웅철에게 핸드폰을 뺏더니 어머니 현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지 인상이 더욱 험악해지더니 버럭 소릴 지른다.
“전화 좀 빨리 받으세요.”
“권회장!”
“어머니 나 죽는 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숨도 쉬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할 때란 말입니다.”
“장 변호사가 또 뭐라고 했나 보구나.”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십니까? 어머니가 뭘 하겠다고 나서냐구요. 젠장.”
“미안하다. 난 어떻게 해서라도 널 돕기 위해...”
“닥치고 가만 처박혀 있는 것이 돕는 것이란 말입니다.”
“아...알았다. 이제는 조용히 있으마.”
“밥이나 처먹고 집구석에 박혀 있으란 말입니다. 한 번만 더 초를 치면 그때는 가만 안 있습니다.”
탁!
전화를 끊는 권악수의 눈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낼 듯 이글거린다.
전화를 끊은 현미정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가 이걸 자식과의 통화라고 볼 것인가.
한참을 서 있던 현미정은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 앉았다.
“아줌마 냉수 한 컵 줘요.”
“네, 사모님!”
안쪽에서 가정부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쟁반에 냉수 한 컵을 받쳐 들고 온다.
컵을 받아 든 현미정은 단숨에 물을 비우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흐흣!”
돌아가던 가정부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조금전까지 굳어 있던 현미정이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뭘 더 어쩌겠다고? 뭘 어쩌긴, 어차피 이판사판인데.”
현미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그 화살에 심장을 맞아 즉사 하느냐 아니면 상처만 입을 곳에 맞느냐만 남아 있거늘, 한심한 놈 그러니까 계속 당하는 거지.”
현미정은 코웃음을 쳤다.
“조실장!”
전화를 걸더니 소리쳤다.
“쳐버리세요. 그냥 밀어 버리라구요. 더 이상 시간 질질 끄는 것도 질렸고, 누가 죽든 정리해요.”
현미정의 눈이 불꽃으로 이글거린다.
“토막을 내든 눈알을 뽑든 쓸어버리라니까!”
현미정은 전화를 끊었다.
“아줌마 물 한 컵 더 주세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목이 타는 거야.”
신경질적이다.
현미정은 가정부가 가져다 준 두 번째 잔을 단숨에 비웠다.
권총수는 달력 앞에 서 있었다.
FBI 크리스 국장과 워싱턴에서 만나기로 한 날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한참 달력을 바라보던 권총수가 인터폰을 눌렀다.
“채 이사님 이번 20기 지원자들 마감이 언제까지라고 했습니까? 모레가 마지막 날이라구요. 알겠습니다.”
19기까지 보냈는데 지금까지 약 3,000여명 정도 되었다.
민간 보안기업 후발주자로서 엄청난 쾌속 진군이다.
실력도 좋다는 평가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사실 권총수는 지금 한 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갈수록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특수부대 전역자는 한계가 있는 반면 용병을 필요로 하는 산업분야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군복무가 의무인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민간 보안기업 시장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남자라면 모두 군대를 다녀왔으므로 기본적인 전쟁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