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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15화 (515/651)

제515화: 청천벽력(1)

차 한 대가 골목에서 멈췄다.

앞문이 좌우로 열리고 오민철과 권총수가 내렸다.

권총수는 술을 마셨고 오민철은 마시지 않았다.

화경(化境)에 들어선 고수에게 술은 큰 의미가 없다.

물론 일반인들처럼 마시면서 취할 수도 있고 마시면서 내공을 끌어 올려 주기(酒氣)를 한쪽으로 모아 태워 버릴 수도 있는데 오늘은 내공을 이용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CIA국장과 FBI국장은 또 다르다.

국제적으로는 CIA가 요란하지만 미국내에서는 결코 FBI를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자신의 측근중의 측근을 FBI에 앉히려 하는 것이다.

즉, 크리스는 현재 지구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래들리 또한 필립 모리스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임원이다.

한쪽은 정치적 비즈니스가 필요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업적 파트너이다.

결정적인 건 둘 모두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칼자루를 잡는 쪽에서 자리를 이끌어가야 했고 그래서 작정하고 마시면서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도 건방지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신중했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고 승용차 보닛에 엉덩이를 걸치며 기댔다.

오민철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떡할 생각이야?”

“물을 걸 물어.”

“하겠다고?”

“난 장사꾼이야. 액수만 맞으면 노우 할 필요가 없지.”

“그럼 아까는 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면서 대답을 피했어?”

“형 진짜 왜 이래? 장사 한두 번 하냐고. 크리스 국장은 지금 완전 코너에 몰렸어. 그가 흔들린다는 건, 그 자리에 크리스를 앉힌 장본인인 백악관도 상황이 아주 나쁘다는 거 아냐?”

“흐흐! 시간을 끌어 애를 태우면서 몸값을 올리겠다? 이제 우리 총수 완전히 거물 됐구만.”

“세상에 뭣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돈이야. 사람들은 미치도록 돈을 좋아하면서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천박한 눈으로 보지. 왜 그러는 줄 알아. 자기가 돈이 없으니까 그래.”

“돈이 있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던지지 않을까?”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사실이야. 우리나라 부자는 횡포를 부리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은 교도소에 잘 들어가지 않아. 들어가도 금방 나오지. 하지만 미국을 봐. 돈푼께나 있다는 사람들을 보라고. 수많은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지. 어떨 때는 저사람들은 기부하기 위해 돈을 버는가 싶을 때도 있잖아.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부자들은 어때? 우리도 기부를 하긴 해. 그런데 자기 돈으로 하지 않고 회삿돈으로 한다는 게 문제야.”

“넌 저 많은 돈 어떡할래?”

오민철이 눈을 좁히며 물어봤다.

근래에 들어 권총수의 가치관이 약간의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옛날에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래서 돈이라도 왕창 벌어 가슴속에서 끓고 있는 분노를 태워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자신이 다녔던 보육원에 기부를 하더니 점점 범위를 넓혀 거액을 익명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이제는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자신의 피와 땀이 묻은 돈을 작정하고 뿌리려 한다.

“내일 보자고!”

권총수가 대문을 닫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탁!

오민철은 닫힌 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돈은 표면적인 것이다.

좀 더 권총수의 속을 들여다본다면 이번 건을 계기로 좀 더 미국 사회에서의 인맥을 확실하게 다져 보려는 계산이다.

블랙잭 사업의 핵심은 미국 시장에 있다.

회사도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고 훈련소도 뉴저지주에 있다.

맥보란을 통해 CIA를 얻었고 크리스를 통해 FBI, 나아가 미국의 새 정부와 소통하려는 것이 권총수의 최종목적일 것이다.

계약을 어떤 식으로 해야 양쪽 모두 만족할 건지 아직 답을 찾지 못해 시간을 끄는 것이 분명했다.

8월 14일.

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밤에도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로 세상은 가마솥 같았고 폐쇄된 교도소는 더욱 찜통이다.

그러나 권악수는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10시가 넘었으니 2시간 후면 이곳을 나간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벽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권악수를 보며 같은 방 동기들이 축하를 보내느라 여념이 없다.

“건강 하십시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권악수 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물론, 육십이 다된 채 사장이라는 사기꾼 노인도 고개를 숙인다.

누군가는 나중 천왕그룹 권악수 회장이 내 감방 동기라고 자랑을 할 것이고, 어느 누군가는 권악수에게 잘 보여 한자리 얻어 볼까 하는 계산이 넘쳐나는 인사들이었다.

“밖에 나오면 전화 주십시오. 거하게 한 잔 사죠.”

순간 사기꾼 채 사장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사긴 개뿔이 사냐. 개자식이 우릴 뭘로 보고’

전화도 받지 않을 것이다.

받아도 당신 누구냐고 할 것이다.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죄수들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뚝!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다.

이 방에 용무가 있다는 뜻이다.

철컥!

문이 열리고 당직 교도관 이성순이 나타났다.

이성순이 아직 자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죄수들을 보더니 권악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회장님. 잠깐 보시죠.”

“나 말이오?”

자신 말고는 회장님으로 불리는 사람이 없지만 왠지 잠깐 보자는 소리가 거북해 묻는다.

이성순은 권악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한참을 등을 기댄 채 있던 권악수가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인데.”

권악수가 바깥으로 나가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깥에서 잠가 버리기 때문에 안에서는 절대 나갈 수가 없다.

권악수가 나가고 방안이 술렁거린다.

“이상한데!”

사기꾼 채사장의 눈이 빛난다.

“뭐가 이상해?”

성폭행 혐의로 들어온 마흔아홉 살 먹은 뚱뚱한 변씨가 물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 그렇지 않으면 두 시간 후에 나갈 회장님을 왜 불러내겠어.”

“기자들을 피해 미리 빼돌리려고 그럴 수도 있잖아.”

“내가 특별사면에 대해 잘 아는데 아무리 높은 놈일지라도 제날짜가 아니면 미리는 못나가. 단 일 분이라도 시간이 되어야 가능하지.”

모두가 눈을 깜빡 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권악수는 당직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뭔 일인데 불러내는 겁니까? 기자 자식들 달려 들어봤자 내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나올 것이 없는데.”

이미 기자들이 던질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무조건 미안하다.

열심히 노력하여 천왕그룹을 세계제일의 대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말만 열심히 늘어놓으면 된다.

밖으로 나갔던 이성순이 다시 들어왔는데 왼손에 종이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앉으세요!”

서 있는 권악수에게 자리를 권했다.

권악수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진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낀 듯 했는데 이성순이 담배까지 건넨다.

조금 전 방에서 피웠지만 권악수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 입에 물었다.

딸칵!

이성순은 불을 붙여주고 자신도 피워 문다.

후우!

거의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은 담배연기를 서로를 향해 뱉어냈다.

이성순은 자신이 뱉어낸 담배연기가 천장을 타고 흘러가다 환풍기 사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권악수 또한 불길함을 알아차린 듯 이성순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후루룩거리며 커피만 마셨다.

“회장님!”

이성순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말하세요. 뭔 일이 일어난 모양인데?”

“맞습니다. 불편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일단 8.15특사에서 제외됐습니다.”

퍼억!

권총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다.

“괜찮으십니까?”

커피를 허벅지에 떨어뜨려 푸른색 죄수복이 검게 물들었는데 제법 뜨거울 텐데 권악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교위 지금 뭐라고 했소? 내일 나가지 못한다고? 이제 한 시간 반만 지나면 8월 15일인데.”

권악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상부에서 내려온 지침이어서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리요? 아니 8.15 특사로 결정한 사람을 나가기 2시간 전에 불가하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저희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퍼억!

권악수는 소파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성순을 노려보는 눈이 살기 등등 했다.

“난 나갈 것이오. 반드시 두 발로 걸어 나간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권악수는 분노를 삭히지 못한 채 실내를 서성거렸다.

“이런 젠장!”

“미친!”

입에서는 계속 욕설이 튀어나왔다.

“전화 있소?”

이성순은 움찔했다.

전화 좀 잠시 빌려주는 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권악수의 사면이 대기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가는 나중 감당 못 할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규정상 지금 전화는 불가합니다.”

자신도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권악수를 출소시키지 말라는 건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다.

별일 아닌 것으로 사면 대기가 떨어질리 없다.

큰 사건이 생겼다고 본다면 원리 원칙대로 해야한다.

힘 빠진 호랑이에게 충성했다 나중 힘센 호랑이가 오면 그때는 대책없이 당한다.

“그만 나가시죠.”

이성순이 문을 가리켰다.

“전화 좀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나?”

삐익!

이성순은 책상 위 인터폰을 눌렀다.

“권악수 부회장님 방으로 안내하도록.”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고 30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교도관 두 명이 들어섰다.

“회장님 가시죠.”

“이교위 너 이 개자식.”

와락!

두 명의 교도관이 강제로 권악수를 밀치며 문밖으로 사라졌다.

“놔, 내 발로 걸어가면 되잖아. 이 새꺄.”

교도관들을 향해 지르는 권악수의 욕설이 들려왔다.

딸칵!

이성순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당신 같은 거물에 대한 사면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엄청난 여죄가 밝혀졌거나 아니면 쉽게 나갈 수 없는 모종의 사건이 터졌다는 뜻이겠지’

교도관 생활 20년이다.

친절을 베풀어야 할지 아니면 안면을 싹 바꿔야 할지 정도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안면을 바꿔야 할 때였다.

장웅철은 소스라쳤다.

새벽 일찍 기자들을 피해 출소하고자 후문에 도착했는데 담당자로부터 오늘 사면 대상자에 권악수 회장 명단이 빠졌다는 것이었다.

재빨리 교정당국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법무부는 물론 이곳 중천 교도소 고위 관계자들과 통화를 했지만 하나같이 권악수가 오늘 사면 대상에서 긴급하게 제외됐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후문은 조용했다.

거의가 정문으로 나간다.

권악수처럼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는 거물들만 슬며시 후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12시가 넘었지만 권악수는 없다.

교도소 후문 근무자는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 창문을 닫아 버렸다.

쾅!

어이가 없다.

한참을 서 있는다.

딸칵!

장웅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러시아 솔른쳅스카 브라트바 조직의 보스 세르게이 미하일로프가 살해당했다는 뉴스는 들었다.

넘버2였던 로만체프도 온 몸에 총을 맞고 숨졌다.

범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전 세계의 시선이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다.

파팟!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장웅철은 눈을 빛내더니 피우던 담배를 발로 짓이겨 끄더니 차로 걸어갔다.

부우웅!

검정색 벤츠가 아직 어두운 새벽 속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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