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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14화 (514/651)

제514화: 손님(2)

누굴까

찍힌 전화번호를 발견한 권총수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원장님!”

상대는 정릉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녀원장 마리아 수녀였다.

“바오로 형제님, 조금 전 안나 수녀님께서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어요.”

“네에?”

권총수는 눈을 크게 떴다.

“바오로 형제님, 바오로 형제님!”

권총수가 반응이 없자 다그치듯 불렀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권총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권총수는 한동안 멍하니 않아 있었다.

보육원 시절 가장 싫었던 수녀이며 원장이기도 했다.

이른 바 FM(원리 원칙)이다.

부모에게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하여 조금도 봐주는 것이 없다.

흔히 말하는 단칼이었다.

복장에서부터 두발까지 철저히 체크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학교를 보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니. 누군가 너희들에게 엄마 아빠 없는 아이 아니랄까봐 아주 버릇이 없다는 말이야’

어차피 없는 엄마 아빠인데 그까짓 버릇이 있고 없고가 무슨 대수인가.

모두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니 이미 모질고도 사나운 운명에 빠졌다는 것이 권총수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원장 수녀가 올바르게 키우려고 노력을 해도 시설 출신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비웃는다.

그리고 한심한 시선을 던진다.

어쩌면 자신을 버렸던 부모에 대한 분노보다 주위 어른들의 그런 시선들이 권총수를 더욱 반항적이고 거친 아이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형, 주차장으로 내려와.”

인터폰을 통해 말했다.

“어디 갈건데?”

“안나 원장 수녀님 선종 하셨대. 형도 한 번 뵈었잖아.”

“관세음보살. 알었어.”

권총수는 윗도리를 들고 사무실을 나갔다.

집에 들러 검정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나온 권총수는 오민철을 태우고 곧장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어!”

장례식장으로 들어선 오민철이 놀란 눈을 했다.

“장례식장 맞아?”

오민철이 두리번거렸다.

이름 없는 수녀 한 명 세상 떠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리 없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장례식장은 너무 쓸쓸할 만큼 조용했다.

제로니무스 소속 수녀들 몇 명만이 영정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연도(죽은 이의 영혼이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바치는 기도문)를 바치고 있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서자 머리가 희끗한 60가량의 노 수녀가 다가왔다.

제로니무스 수녀원 원장이다.

“오셨어요!”

마리아 수녀가 마른 미소를 지었다.

“베로니카, 파치스 수녀님!”

연도중에 있는 두 수녀들을 불러 보았다.

“인사 나누세요. 바오로 형제님입니다. 우리 수도원의 제일 큰 후원자님이시죠.”

수녀들은 가볍게 목례를 했다.

권총수는 오민철과 나란히 영정 앞에 서서 두 번의 절을 하고 성호경을 그었다.

그리고 선 채 사진 속 안나 수녀를 바라보았다.

안나 수녀가 파출소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아이들과 싸웠다.

세 명의 아이를 죽도록 두들겨 팼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친구 유병칠에게서 돈을 뺏은 것이다.

일요일 날이면 보육원 후원자들이 찾아오는데 그중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유병칠에게 용돈 하라고 십만 원을 주고 간 것이다.

유병칠은 구만 원을 보육원에 놔두고 만원을 가지고 나왔는데 물론 방과 후 오락실을 가려는 목적에서였다.

유병칠은 돈을 지키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고 늘씬 두들겨 맞았다.

얘기를 들은 권총수가 쫓아가 유병칠의 돈을 빼앗은 세 남학생을 초주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바오로!”

원장수녀는 매우 놀란 얼굴이다.

대개의 경우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피해 학부모들에게 연락하여 의견을 듣고 병원비가 필요할 경우 일정선에서 합의한다.

물론 가해 학생은 학교교칙에 의거 적절한 징계를 받는다.

그런데 피해학생의 부모들이 경찰에 고발을 해버렸다.

나중 알게 된 일이지만 시설 출신이기 때문에 병원비 받아내기가 마땅치 않다는 걸 피해 학생 부모들의 공통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경찰을 끌어들이면 형사합의로 들어가 제대로 치료비를 받아 낼 수 있는 것이다.

골치 아픈 일은 또 있었다.

두들겨 맞은 학생들 부모가 이름 있는 중견기업의 대표였고 한 명의 부친은 현역 구청장이었다.

육십이 넘은 안나 수녀는 부모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보다 못한 피해 학생 어머니 한 명이 부모도 아닌 당신이 이럴 필요 없다.

부담스러우니 그만하라고 하자 안나수녀는 분명하게 말했다.

“난 바오로의 어미입니다. 자식의 잘못을 비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안나수녀는 권총수 더러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하지만 권총수는 거부했다.

난 그들이 유병칠의 돈을 빼앗지 않았다면 절대 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돈을 빼앗기는데 보고만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또 다시 두들겨 패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면서 버텼다.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지면 그때도 가만두지 않고 두들겨 패겠다는 말에 피해학생 부모들은 눈에 독기를 품더니 기어이 소년원에 보내버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파출소에 방송국기자들이 몰려 든 것이다.

나중 알고 보니 급우들이 방송국에 고발을 해버린 것이었다.

결국 뉴스에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합의를 보고 치료비 역시 자비 부담으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난 이 아이의 어미 입니다’

지금도 귓가에 쟁쟁했다.

“젠장!”

갑자기 권총수가 투덜거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오민철까지 크게 놀랐는데 권총수의 눈물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스윽!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의 자선(慈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이전까지는 남의 돕는다는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렌드라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그 역시 네팔의 가난한 국민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벌어들인 연봉의 80프로가 넘는 돈을 네팔의 오지에 학교 세우는 일에 앞장섰다.

네팔이 깨어나고 부강한 나라들과 어깨를 같이 할 수 있는 길은 교육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권총수도 어느 한순간 자신 또한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부모도 없이 태어났지만 고등학교까지 나왔다.

비렌드라에 비하면 자신은 행복한 인생이다.

이후 적지 않은 돈을 꾸준히 보육원과 종교 재단에 기부하고 있지만 어쨌든 말썽꾸러기를 아들로 받아들여 준 원장 수녀의 깊은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제로니무스 수녀원 원장과 잠시 차를 마시며 30여 분간 얘길 나눈 권총수는 장례식장을 떠났다.

차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있을까? 천국이라는 곳 말이야? 우리 불가에서는 극락이라고 하는데.”

오민철이 침묵을 깼다.

권총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성당 보육원에서 컸으므로 천국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며 자랐다.

“있겠지.”

“어떻게 알아?”

“있으니까?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그렇게 사는 것 아니겠어.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어.”

“그럼 극락도 있다는 건데?”

“있으니까 어려서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겠지.”

오민철이 빛나는 눈으로 말했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데. 있으니까 그렇게 돈 버는 것도 포기하고 목탁 두드리고 기도하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

오민철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처럼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말했다.

“있네. 있어. 천국 극락 모두 있어. 왜 내가 그걸 몰랐지. 극락 있어. 당장 이번 주에 절 가야겠다.”

그런 오민철을 보며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핸드폰이 왔는데 경리과장 강순태였다.

“대표님, 필립 모리스 홍보이사님께서 지금 서울에 오셨다고 합니다. 스케줄 알아보는데요?”

권총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늘 저녁 괜찮으면 같이 하자고 해봐.”

“예!”

권총수는 전화를 끊었다.

“전번 계약 때 얼마 받았지?”

“삼백만 달러.”

“반응이 무척 좋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천만 달러 정도 불러봐.”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부우웅!

차는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섯시 조금 넘어 어군으로 들어섰다.

문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마석춘이 미소를 지으며 권총수와 오민철을 맞았다.

아버지뻘 될 만큼 나이가 많은 마석춘이지만 권총수 앞에서는 항상 예의를 잃지 않는다.

물론 권총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 연루에 대한 모든 것을 덮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인 것이다.

하지만 머리가 희어지는 지금도 자세를 낮추는 것이 이제는 불편하다.

적당히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마석춘의 안내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서니 브래들리와 크리스 국장이 와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 앉는 한국식 식당인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 듯 했는데 권총수가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난다.

브래들리와는 구면이지만 크리스는 처음이다.

서로가 악수를 나눴고 오민철까지 포함한 네 사람은 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브래들리 이사는 술을 조금 마시는데 크리스는 일체 입에 대지 않는다.

하긴 FBI 국장이나 되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떠드는 것도 모양새 나오지 않을 일이다.

“요즘 모스크바가 시끄럽더군요?”

브래들리가 말을 꺼냈다.

권총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난 모르는 일입니다. 러시아에 간 것은 맞지만 비즈니스에 관계된 일만 보고 곧바로 돌아왔죠.”

세상의 모든 이는 친구이면서도 또한 적이기도 하다.

인생사 한치 앞을 볼 수 없어 언제 어제의 친구를 내일 적으로 만날지 모른다.

맥보란에게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테지만 내가 했다고 말해본 적은 없다.

자신이 하는 일은 증거가 없다.

현대 과학으로는 자신이 저질렀다는 증거를 절대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인 입만 잘 관리하면 전혀 문제될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 처음 보는데 결례를 무릅쓰겠습니다.”

크리스가 눈을 빛냈다.

“캡틴, 나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권총수는 반찬으로 나온 매실 장아찌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속에 넣고 우드득 씹었다.

크리스는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신으로 인해 백악관 새 정부가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FBI국장은 관료이지만 정치인이다.

정치에 간섭하거나 공작 따위는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중요한 사건에 정치인이 연루되었다면 본의 아니게 FBI가 끼어들면서 구설에 오르기 시작한다.

아무리 중립적인 수사를 한다고 해도 상대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서 FBI를 흔들기 시작한다.

기회만 있으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끌고 들어가기 위해 발악한다.

정치인이 아니지만 정치를 하고 있기도 한 FBI국장의 입에서 아무나 들을 수 없는 미국 정치의 막전막후가 속속 보여지고 있었다.

국내 정치인들이 들었다면 자지러지고 소스라칠 얘기들이었다.

현재 몰려있는 자신과 백악관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꺼낸다는 건 권총수는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권총수 또한 돌아가는 상황을 깊이 알수록 일 처리하는데 수월할 것이다.

“코너에 몰렸군요?”

권총수가 말했다.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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