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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11화 (511/651)

제511화: 붉은 두목(3)

2층에 올라선 오민철은 잔뜩 긴장하며 귀를 세웠다.

무거운 정적이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쾅!

첫 번째 방문을 발로 걷어차며 뛰어 들었다.

한편 일 층의 권총수는 부서진 잔해들을 살피며 꼼꼼하게 수색했다.

권총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터지는 시한 폭탄이었다.

방심하는 순간 위험은 덮쳐온다.

조금씩 위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을 굳혀 갈때 이 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없어!”

오민철이 2층에서 외쳤다.

스으으!

권총수는 초상비를 펼쳐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넓은 거실과 두 개의 커다란 방이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다.

“어랏! 이건 또 뭐야?”

창가에 커다란 스피커가 있었는데 오민철이 창문 너머를 좀 더 살펴보기 위해 다가가다 무릎이 스피커와 부딪혔다.

그런데 스피커 앞면이 툭 떨어져 나가며 주먹 크기의 투명한 덩어리 세 개가 바닥으로 굴러나왔다.

“어, 이거 RDX(Research Department Explosive)아냐?”

RDX는 폭발성 니트로아민 화합물이며, 군과 산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폭발물이다.

퍽!

오민철은 다른 한 개의 스피커까지 뜯어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권총수는 족히 한 개당 3,4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세 개의 RDX를 살피고 있었다.

“테러집단도 아니고 RDX가 왜 필요하지.”

“러시아 마피아의 폭탄 암살 뉴스를 본 적 있지. 정치인들 암살에 사용하려는 의도로 보관된 걸거야.”

“푸틴과 가깝다고 했지.”

“미하일로프는 푸틴 정적 암살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어.”

권총수는 묵직한 RDX를 들었다 놨다하며 야릇한 표정을 짓더니 일어났다.

“일단 나가죠!”

권총수는 옅은 회색 덩어리 RDX세 개를 들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대문 앞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권총수는 사용하고 남은 수류탄까지 이용하여 대문에 급조폭발 장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3킬로그램짜리 RDX 세 개와 수류탄이면 충분했다.

오민철은 조금 떨어져 보고 있었다.

아무나 폭발물을 제조하고 만들어 내지 못한다.

군에서도 가장 어렵고 힘든 훈련이 폭탄 제조와 해체 분야이다.

유일하게 권총수만 그 부분을 마스터했고 이제는 완전한 전문가가 되어 결코 실수란 하지 않는다.

대문을 세 부분으로 나눠 폭약을 설치한 권총수는 마지막으로 볼펜에서 꺼낸 스프링을 가느다란 철사와 연결했다.

스프링에 연결된 철사는 대문에 단단히 걸었다.

사람이 열든 차로 밀든 대문은 뒤로 열리게 되어있다.

그때 대문이 뒤로 밀리면 늘어난 스프링이 원래대로 줄어들면서 신관을 자극하고 곧장 터지게 되어있는 것이다.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상태를 확인한 뒤 씨익 웃으며 돌아섰다.

“오고 있어. 엔진소리야.”

오민철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권총수는 거친 디젤엔진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상당히 멀리 피했다.

직접 폭탄을 설치한 권총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력일지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대문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정원석 뒤에 몸을 숨겼다.

“문을 열고 들어오겠지?”

“차로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마지막 정문 초소가 붕괴된 걸 목격한 그들은 곧장 차로 대문을 향해 돌진해 들어올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았다.

오민철의 귀에도 들릴 만큼 자동차 엔진 소리는 가까이서 들려왔다.

물론 산길이고 오르막이기 때문에 평지 때보다 클 수 있지만 그만큼 빨리 달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멈췄어!”

디젤엔진의 거친 소리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느껴지는가 했는데 갑자기 부우웅하며 폭발하듯 커졌다.

검문소 시체들을 확인하느라 잠시 멈췄을 것이다.

마치 탱크가 달리는 것 같은 굉음이 들리며 대문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철대문을 밀어붙이며 들어왔으나 거기까지였다.

쿵!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쿠쿠쿵!

연이어 폭음이 들리고 버스가 공중으로 4,5미터 쯤 솟구쳐 올라갔다.

공중으로 치솟은 버스가 지면으로 떨어지면서 다시 한 번 폭발소리가 들렸다.

떨어진 버스가 바람개비처럼 나뒹굴었고 대문이 산산 조각이 나버렸다.

여러 폭약이 동시에 터지는 것보다는 일정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폭발하는 것이 훨씬 상대에게 안기는 피해가 크다.

권총수는 그 점을 노려 마지막 한 방을 버스가 땅에 떨어질 때 터지도록 조치해 놓은 것이다.

화라락!

버스에 불이 붙었다.

불은 순식간에 버스 전체로 옮겨 붙었고 일부 생존자가 깨진 창문으로 기어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부 사내들은 차 안에서 불이 붙은 채 몸부림 치고 있었는데 권총수와 오민철이 총을 겨누며 다가갔다.

버스 안에는 상당히 많은 인원이 있었다.

폭발 순간 유리가 깨지면서 밖으로 튕겨 날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안에 갇혔고 불바다 속에 던져진 듯 불타고 있었다.

불에 몸이 붙었는데도 밖으로 기어 나오는 사내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내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내 잠잠해졌다.

두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았다.

불을 끄려 하지도 않았고 끌 마음도 없었다.

상대는 적이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저들이 자신들을 죽일 것이다.

전쟁에서 관용은 가장 자제되어야 할 행동중 하나다.

그야말로 누가 먼저 죽이고 많이 없애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전쟁의 목표는 단 하나 이기는 것이다.

화르르르!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으아아아!”

그때 누군가 비명을 지르더니 차 밖으로 몸을 날렸는데 온 몸에 불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본 권총수가 왼손을 뻗었다.

강력한 장력이 불붙은 사내를 휘감자 불이 꺼졌다.

스르르!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려 사내를 끌어 당겼다.

사내는 줄에 묶여 끌려오듯이 권총수 발아래까지 다가왔다.

“으음!”

밖으로 드러난 얼굴은 화상이 심했지만 그 이외의 신체는 옷에 둘러쌓인 탓에 숯덩이가 되지는 않았다.

사내는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쯤 온 몸이 칼로 쑤시는 듯 아파 올텐데도 사내는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한 듯 눈을 두리번거리더니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자꾸 넘어지고 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더니 기어이 일어나 앉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두 다리를 딛고 서지는 못했다.

움찔!

우뚝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사내가 놀랐는데 마치 커다란 고릴라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사내는 놀라면서도 권총수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한참을 그렇게 보더니 중얼거렸다.

“사...사막의 흑새.”

권총수 입 꼬리가 약간 말려 올라갔다.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고 러시아 마피아 조직원들까지 자신을 알아본다는 건 평범하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번 자신의 목숨 청부는 솔른쳅스카 브라트바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다.

“훗훗!”

권총수는 뭔가 떠올랐다.

사내는 간부가 분명했다.

그것도 솔른쳅스카 브라트바에서도 상당한 지위에 올라 있지 않고서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척!

권총수는 사내와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 쭈그리고 앉았다.

“난 당신을 살릴 수도 있소. 그 상태로 병원으로 가면 목숨은 건질 것입니다. 하지만 상처로 보아 여기서 30분 이상 지체한다면 절대 살지 못합니다.”

사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권총수는 말을 이었다.

“다시 반복하죠. 나에게 협조하면 당신은 죽지 않습니다. 약속드립니다. 사막의 흑새를 알고 있다면 나의 신용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들었을 텐데.”

“집 안은?”

궁금한 모양이다.

이정도 사태라면 집안이 온전할 리는 없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오긴 했으나 호랑이는 아직 잡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내의 눈꺼풀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눈을 깜빡이려는데 눈꺼풀이 덮히지 않는 것이다.

불길에 눈썹이 타면서 입은 화상으로 인해 사내는 이제 여기서 살아난다고 해도 평생 눈을 깜빡거리지 못할 것이다.

“음!”

사내는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누가 들어도 그건 절망에 가득찬 음성이었다.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결정을 내리기 위한 잠시의 고민이다.

사내는 고민을 하면서도 두 손으로 몸 여기저기를 만졌는데 무척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알렉산드로.”

사내는 기어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레드킬 팀장.”

오민철의 눈이 빛났다.

어딜 가나 우두머리는 다르다.

그냥 우두머리가 아닌 것이다.

“비상구가 있죠. 러시아 경찰이 들어 올 것에 대비해 지하 통로가 있소.”

권총수는 자신의 감각에 전혀 잡히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푸틴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러시아 경찰이 우릴 공격 할 것이라는 건 누구도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놓은 대피로라고 보면 될 것이오.”

사내는 침을 삼켰다.

목이 마른 모양이다.

오민철이 눈치 빠르게 재빨리 부서진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잠시후 플라스틱 컵에 물을 가득 담아왔다.

“고맙소.”

사내는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난 사내의 눈에 생기가 돈다.

“파벨리스키역 인근에 또 하나의 거처가 있죠. 여기처럼 철옹성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곳도 경비가 잘되어있소.”

파벨리스키 역이라는 말에 재빨리 오민철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여기서 12킬로.”

“이동수단은 지하실에 가면 될 것이오. 거기에 적지 않은 차량들이 있으니.”

그러면서 왼쪽 정원을 가리켰다.

나무 사이로 우뚝 솟은 엘리베이터 건물이 보인다.

다다다!

오민철은 재빨리 달려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 오민철은 지하 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모두 여섯 대의 승용차가 지하 주차장에 있었는데 하나같이 최고급 차량들이었다.

말로만 들었을 뿐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고급 차량들이었다.

키는 의외로 쉽게 찾았다.

주차장 벽으로 작은 선반이 만들어져 있는데 자동차 키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완전 별천지에서 사는 친구로군.”

아무거나 키 한 개를 쥐고 눌렀다.

꾹!

그러자 부르릉하며 아주 낮게 깔린 저음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공간인데도 너무 소리가 작아 여섯 대의 차량중 어느 차에 시동이 걸린 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건 또 뭐야.”

시동이 걸린 차량의 흰색이었다.

“벤틀리!”

차 뒤에 쓰여 있는 영문글자를 보며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꾸울꺽!

세계적인 명차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타본 적은 없다.

“어흠!”

오민철은 약간은 쑥스러운 듯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차고 앞으로 다가가자 셔터가 자동적으로 올라간다.

차고 밖에는 이미 권총수가 알렉산드로를 안고 있었다.

다급한 표정인 걸 보니 상태가 나빠진 모양이었다.

약속은 약속이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권총수의 가치는 하락된다.

사막의 흑새라는 브랜드 가치속에는 약속이란 부분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권총수는 알렉산드로를 뒷좌석에 태우고 옆에 앉았다.

부우웅!

차는 산속의 저택을 빠져나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흰색의 벤틀리 한 대가 나타났다.

차에 설치된 네비게이션을 이용해 알렉산드로가 찍어준 주소대로 가고 있었다.

“저곳 같은데?”

알렉산드로는 모스크바대학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었다.

전방 오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왼쪽으로 눈에 띄는 2층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성당 같기도 하고.”

오민철이 전면 유리 너머로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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