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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10화 (510/651)

제510화: 붉은 두목(2)

오민철이 걸어오더니 육중한 철문을 보며 말했다.

“대포로 쏴도 멀쩡할 것 같은데.”

철문은 단단했다.

지금쯤 만약을 대비해 많은 총구가 대문을 향해 집중 되어 있을 테고, CCTV는 침입자를 살피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지켜볼 것이다.

“가자고!”

권총수가 철수하는 사람들처럼 뒤로 물러났고 오민철도 뒤를 따랐다.

대문 주위에 설치된 CCTV화면 각도를 벗어났다고 생각이 들자 권총수가 움직였다.

탁!

수직으로 솟구쳤다.

워낙 빨랐기 때문에 오민철은 한참 공중에 뜨고 나서야 알아 차렸다.

공중에서 보는 저택은 매우 넓었다.

수영장도 있고, 개인 테니스장까지 갖춰져 있었다.

예상대로 십여 명의 사내들이 일제히 대문 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스으으!

CCTV 촬영권을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올라간 권총수는 천천히 내려섰는데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거목을 발견하고 옆으로 내렸다.

족히 두 사람은 팔을 벌려야 손이 닿을 것 같은 분비나무였다.

지면에 내려선 오민철은 재빨리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권총수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대문은 왼쪽에 있다.

즉 대부분의 경호원들은 그쪽에 집결되어 있는 것이다.

‘두 명!’

감각에 기척이 잡힌다.

스윽!

권총수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전음이 들려왔다.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오민철은 어금니를 물었다.

권총수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용병이라고 해도 강호무사인 권총수를 흉내 낼 수도 따라갈 수도 없다.

예전에는 가끔씩 자존심에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었다. 격투기는 물론 사격에 대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에 무서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는 금세 드러났다. 독자적 작전에 연거푸 실패하고 그중 몇 번은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보다도 작전에서 권총수의 뜻을 존중한다.

시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반드시 화를 입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오민철은 AK를 거머쥐고 주위를 살핀다.

어떤 액션도 취하지 말라고 했지만 갑자기 적이 나타나면 방아쇠는 당겨야 한다.

걸어가는데 소리가 없다.

멀리 두 사내가 보인다.

저택 오른쪽 측면으로 방향은 동쪽이었다.

정장의 두 사내가 AK를 들고 10여 미터 간격을 두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슉!

어른 손바닥 보다 조금 작은 자작나무 잎사귀 하나가 날아갔다.

자작나무 잎사귀는 거리가 좀 더 가까운 사내의 목젖을 깊숙이 파고들어갔다.

사내는 눈을 뜨고서 다가오는 권총수를 보았는데 입술을 움직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런 말도 토해내지 못했다.

더욱이 무형의 강기로부터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쓰러지지도 않았다.

권총수는 사내 앞을 지나가며 다시 한 개의 자작나무 잎을 날렸다.

쉬이이!

적엽비화 수법이다.

반노환동의 내공은 어떤 비수보다 빠르고 위력이 강한 공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푸욱!

이번 잎은 사내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사내는 믿어지지 않는 듯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있는 힘을 다해 들고 있던 AK의 방아쇠를 당겨 보려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엎어졌다.

둘 모두 제거 했으니 무형의 경기를 거두었는데 쿵쿵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저택 뒤쪽에 있는 세 명의 사내까지 완벽하게 제거한 권총수는 오민철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 내말 잘들어. 대문 앞에 있는 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형도 같이 당겨. 난 뒤에서 쏠테니까 필시 돌아설 거야. 그때 형은 측면에서 훑어 버리는 거지.’

권총수는 천천히 총을 들고 저택을 돌아 왼쪽으로 걸어갔다.

멀리 정문이 보인다.

권총수는 소리없이 다가갔고 이곳저곳 숨어서 대문을 향해 소총을 겨누고 있는 사내들 모습이 분명하게 보인다.

* * *

여직원 조미향은 전화기속에서 들려오는 빠른 영어를 한참 듣고 있었다.

“필립 모리스라구요?”

뉴스 위크지에 나온 광고를 육 개월 전에 찍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시장의 반응이 무척 좋다는 전화도 받았다.

“무슨 일이시죠? 잠깐 기다려 보시죠.”

전화를 귀에서 뗀 조미향은 인터폰 번호 한 개를 눌렀다.

“이사님 전화 좀 받아 보시죠. 필립 모리스 브래들리 이사라는데 대표님을 찾습니다.”

상대는 채명천이었다.

채명천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서툰 영어지만 통화는 충분히 가능한 실력이다.

“브래들리 어쩐 일이십니까?”

채명천은 미소를 지으며 아는 체를 했다.

이윽고 채명천은 잠시 듣고 있더니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지금 서울에 계시지 않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연락을 하여 대표님더러 전화를 드리도록 하죠.”

채명천은 전화기를 왼손으로 바꿔 들었다.

“서울로 오시겠다구요. 어떤 용무인지 물어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채명천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통화 내용을 복기하는 듯 눈을 빛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무슨 일로 서울을 오겠다는 거지.”

계약 연장건이냐고 묻자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웃어넘긴다.

계약 연장을 요구하면 언제든지 응할 준비는 되어 있다고 권총수는 말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면서 강순태 경리과장이 결재서류를 들고 들어섰다.

“이사님! 전자 결제로 돌리면 안 되겠습니까?”

한번씩 결제를 받기 위해서 7층에서 10층까지 올라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귀찮은 모양이다.

“강과장 너무 그러지마. 누군 전자결제 시스템이 좋고 편하다는 걸 몰라 그러는 줄 알아. 자꾸 전자결제 운운하는 것도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역이자 고문이라고.”

“그런 뜻은 아니었고.”

워낙 채명천이 진지하게 대답을 하자 강순태는 재빨리 표정을 풀며 웃었다.

“정말 섭섭하신 것 아니죠 농담인데 이사님?”

“서류나 내놔!”

채명천은 강순태 과장이 가져온 서류를 검토한 뒤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필립 모리스에서 전화 왔다면서요. 관리부 조미향씨가 그러던데요.”

“왔는데 오묘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오묘한 뉘앙스?”

“밑도 끝도 없이 서울에 오겠다는 거야. 대표님 만나겠다는데 무슨 용건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

“보나마나 광고 연장 협의겠죠. 나스닥에서 필립 모리스 주식이 계속 상승세던데, 그게 모두 대표님 광고 덕 아니겠습니까?”

강순태는 결재가 난 서류를 챙겨 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대표님 아직 러시아에 아직 계십니까?”

“응!”

강순태 과장이 돌아가고 채명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신경이 쓰인다.

브래들리 이사가 오는 것도 신경 쓰이고 러시아를 간 권총수의 신변에 문제는 없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 그만 두었다.

작전 중에는 핸드폰을 꺼 놓지만 실수로 켜 놨는데 자신이 전화를 걸어 문제라도 생긴다면 돌이킬 수 없다.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지금까지는 좋다.

블랙잭이 주무르는 모든 사업 분야가 나름 빛을 내고 있다.

누구 말처럼 이대로만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주위는 어느새 캄캄해지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보면 기동타격대라고 할 수 있는 레드킬이 늦어도 20분 빠르면 15분 정도면 도착 할 것이다.

권총수는 정문을 향해 걸어가며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앞이 아닌 뒤에서 갈기는 사격에 누구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나마 일부는 뒤를 향해 돌아섰지만 이번에는 왼쪽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뚝!

총격전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공격이고 도살이었다.

상대는 몇 번 방아쇠도 당겨보지 못하고 숨지기 바빴다.

뚝!

총소리가 멈췄다.

정원석 뒤에 엎드려 있던 오민철이 걸어나와 사내들을 살폈다.

“어 이건 수류탄 아냐.”

오민철이 조그만 나무상자를 발견하고 뚜껑을 열었는데 그곳에 둥근 클립이 달린 원형의 수류탄이 들어 있었다.

“RGO같은데?”

오민철이 이모저모 살피며 말했다.

러시아 신형 수류탄으로 평균 15미터, 최대 20미터까지가 유효살상 반경이다.

“혹시 모르니까?”

오민철은 주머니에 수류탄 몇 개를 넣더니 뚜껑을 닫고 다시 한번 시신들을 정확하게 조사했다.

“이상 무!”

전장에서처럼 오민철이 돌아서며 큰 소리로 보고를 했다.

씨익!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저택을 바라보았다.

저택은 이 요란한 총소리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적에 대한 정보가 50퍼센트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 성공하려면 70퍼센트 이상을 적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이었고 외인부대에서 배운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간추려보면 솔른쳅스카 브라트바를 보면 자신에 대한 그들의 준비가 매우 미진했다.

특히 경계상태를 보면 사막의 흑새가 강호의 인물이라는 소문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했음이 분명했다.

조금 뛰어난 용병 정도로 평가하지 않고서 이렇게 허접하게 준비를 할리는 없다.

사람이라면 뚫고 들어오기 불가능할 방비지만 강호무사에게는 호랑이 굴치고는 너무 간단하고 단순한 방어벽이다.

덜컹!

현관문이 잠겼다.

드르륵!

오민철이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문이 거덜 났다.

콰앙!

거기다 권총수의 강력한 장력이 문을 후려쳤다.

문은 산산히 부서지며 거실로 날아 들어갔고 두두두 하는 총소리가 울려 나왔다.

실내에 머무는 경호원이다.

실내에 같이 머무는 경호원들은 많아야 두세 명이다.

안에 반드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질 일은 없었다.

휘익!

수류탄 챙겨오기 잘했다면서 오민철이 수류탄 두 개를 까서 거실로 던졌다.

쿵!

쿠쿵!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거실은 완전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쫘라락!

퍼퍽!

가구들이 날아가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산산이 부서졌으며 벽에 진열된 온갖 진귀한 물건들이 박살났다.

먼지 자욱한 거실로 권총수가 앞장 서 들어갔다.

오민철은 앞을 볼 수 없으나 권총수는 틀리다.

이 정도의 먼지는 권총수의 시야를 방해할 수 없다.

흠칫!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처음에는 워낙 덩치가 커서 괴물인줄 알았다.

세렝게티 평원을 지배해야 할 검은색 갈기의 숫 사자 한 마리가 박제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의 폭발로 몸뚱이가 갈라져 버렸다.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고가의 소파는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뒤로 두 구의 시체가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졌다.

권총수는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중 한 명은 눈을 뜨고 있었다.

사내는 한 번씩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살고 싶은 듯 양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입술을 달싹 거렸지만 말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사내의 오른쪽 무릎 아래가 사라졌고 수류탄이 폭발하며 날아온 강력한 접시 하나가 머리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푹!

권총수는 지풍을 날려 사내가 빨리 숨을 멈추도록 해 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죽여주는 것이 자비였다.

오민철이 2층으로 올라갔다.

발자국 소리를 완전히 죽인다.

여러 상황을 보아 2층에 숨어 있는 적이 있다고 보여지지 않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시박!

사박!

살얼음 위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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