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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09화 (509/651)

제509화: 붉은 두목(1)

차 유리가 깨져 사라졌고 보닛 틈으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뚜욱!

잠시 AK사격이 멈췄는데 탄창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탁!

그 사이에도 PKM의 사격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드르륵!

탄창이 채워진 AK가 다시 불을 뿜었다.

슥!

그때 AK를 들고 있던 사내가 손을 들어 PKM 사내의 사격을 중지시켰다.

보닛에서는 더욱 짙은 연기가 솟구쳐 올랐고 사내들이 조심스럽게 차량으로 다가왔다.

PKM을 쏘던 사내 역시 AK로 바꿔들고 접근해 오고 있었다.

두 사내가 갈라지며 재빨리 좌우 운전석으로 총구를 들이 밀었다.

로만체프는 걸레가 되어 핸들 아래로 엎어져 있었지만 조수석의 권총수는 보이지 않았다.

휙!

재빨리 뒷좌석도 살피고 트렁까지 들여다보지만 권총수와 오민철은 보이지 않는다.

흠칫!

그런데 돌연 두 사람은 동시에 소스라쳤다.

목 뒤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어...어떻게’

두 사내는 같은 생각을 하며 굳어버렸다.

탁!

슥!

자신들 손에 쥐어진 총을 압수해간다.

총을 빼앗겼다.

이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돌아서라고 명령했다.

두 사람은 몸을 돌려섰다.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던 사내 앞에는 오민철이 서 있고, 조수석 쪽의 사내는 권총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총에 맞은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저리 가!”

오민철이 빼앗은 AK 총구로 사내를 찔렀다.

사내는 차 뒤를 돌아 권총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섰다.

나란히 선 두 사내는 마른침을 삼킨다.

도무지 눈 앞의 일이 믿기지 않는다.

사격이 이뤄지는 순간 권총수는 몸에 힘을 뺀 오민철을 낚아채어 밖으로 튕겨 나갔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출구가 좁은 차문으로 나갈 경우 자칫 다칠 위험이 크다.

힘을 빼고 몸을 부드럽게 하면 설혹 부딪히거나 충돌해도 크게 다치지 않는 것이다.

오민철이 앞으로 나오면서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부탁 합시다. 운전을 하고 있는 사람은 로만체프였는데?”

넘버2가 탄 차량을 어떻게 확인도 않고 공격할 수 있느냐는 궁금증이었다.

“차량이 통과하면 근무자는 다음 검문소에 연락을 해주게 되어 있소.”

팟!

권총수의 눈이 빛나면서 시선이 운전석 쪽으로 향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넘버2인 로만체프가 그걸 모를 리 없는데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고 곧장 들어온 건 뭘까.

“자살한 것 아냐?”

오민철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지 자살이라기 보다는 우리와 같이 죽기를 원했지. 강호의 말로 너 죽고 나죽는 동귀어진(同歸於盡).”

권총수의 CIA의 도움을 받아 증인보호그램으로 지켜준다는 말에도 로만체프는 믿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러시아 마피아의 추적이 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벌인 행동일 것이다.

배신자에 대한 응징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직접 보고 수행까지 했을 것이니 어떤 말로도 그를 안정시킬 수는 없었다.

푸푹!

퍽!

권총수의 좌장이 뻗었다.

두 사내의 머리통이 부서지며 숨이 끊어진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20미터가 채 안되는 거리에서 AK와 기관총이 쏟아내는 총알을 맞게 되면 아무리 호신강기가 단단하다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어엇!”

오민철이 깜짝 놀라며 소릴 질렀다.

탁!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었는데 귓가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의 유리를 내렸을 때 차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같은 강도였다.

오민철을 옆에 낀 권총수는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속도로 숲을 날아갔다.

우거진 나무들을 피하기 위해 30여 미터 이상 공중으로 솟구친 상태로 달리는 권총수의 금강부동신법은 거의 빛살에 가까웠다.

도로는 이미 봉쇄되었을 것이고 10킬로 밖에 있다는 레드 킬이란 공격대 역시 지금쯤 연락이 닿아 이곳으로 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조용히 잠입하며 표적만 제거하고 나오거나 아니면 입구부터 차근차근 부수면서 완전히 파괴해버리는 두 가지이다.

같은 사람을 죽여도 전자와 후자는 엄청난 위력과 두려움의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대중들에게 그가 죽었다는 인식으로만 전달된다.

하지만 후자는 완전 몰살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으로 알려지면서 한 가지 사실을 각인 시킨다.

‘그와 원한을 맺으면 온 가족이 죽는다’

권총수는 거의 후자의 방법을 택하고 있었다.

물론 강호의 방식이다.

이를 가르쳐 준 것 또한 사부 천금신승이었다.

한 사람을 죽인 것과 연이 닿은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쳐 내는 것과는 미지의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주위 잔가지까지 깨끗하게 쓸어버리면 분명한 효과가 있었고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솔른쳅스카 브라트바 역시 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우두머리 세르게이 미하일로프만 죽이면 사막의 흑새에 대한 두려움이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더 이상 날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힘들고 복잡해도 굳이 정면승부를 택한 것이다.

군사작전에서처럼 적 지휘관을 암살하는 일 따위라면 혼자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판을 크게 벌려놔야 얕보지 않는 것이다.

멀리 넓은 저택이 보인다.

허공에 뜬 권총수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숲을 뚫고 뻗어온 도로는 굳게 닫힌 저택 대문으로 이어진다.

입구 오른쪽으로 경비초소가 있었다.

스으으으!

가랑잎처럼 권총수는 서서히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오민철 역시 같이 내렸는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권총수의 빠른 신법에 놀란 표정을 했다.

두 사람은 앞 검문소에서 빼앗은 AK를 들고 있었는데 나무 사이로 4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초소 건물을 바라보았다.

“바깥부터 쓸어야겠지?”

“그게 낫지. 대문을 잠그고 안쪽부터 쓸어버린다고 해도 잘못하면 담을 넘어온 이들에게 공격을 받아 협공에 빠질 위험이 있어. 레드킬이 오기 전에 끝날지 안 끝날지 모르지만 일단 보이는 건 차례대로 하나 하나 정리 하자고.”

일단 레드킬이 오기전 적의 병력이 적을 때 자택을 쳐서 미하일로프부터 죽이는 것이 좋겠냐 아니냐를 물었던 것이다.

“오케이!”

권총수는 주변 청소부터 하자는 오민철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추고 초소를 향해 다가갔다.

사박사박!

권총수의 발자국 소리는 없으나 오민철의 것은 조심스럽게 내딛는다고 해도 들린다.

하지만 오민철의 귀에만 들릴 뿐 밖으로 퍼져 나가지는 않았다.

권총수는 지금 무형의 강기를 펼쳐 주변을 에워 쌓아 버렸다.

거대한 비눗방울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눈으로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만 소음은 일체 흘러나가지 않는다.

화악!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완벽한 군부대 위병소다.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건물 외벽은 국방색으로 페인트칠을 했고 두꺼운 시멘트로 진지를 구축했다.

마지막 정문 초소답게 차량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트도 많았고 모두 여섯 명이 AK와 PKM으로 무장한 채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두 명의 사내는 AK를 들고 서 있었고 나머지 네 명은 모두 PKM을 진지위에 거치한 채 도로 저편을 노려본다.

군부대도 이만큼 강력한 위병근무는 서지 않는다.

권총수는 위병소 뒤에 바짝 붙었다.

위병소 안에 인기척을 살피기 위해서인데 조용한 것이 사람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토록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는데 한가하게 쉬고 있을 리는 없다.

권총수는 지면을 살피더니 어린아이 주먹만한 돌멩이 다섯 개를 왼손으로 주워들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위병소 건물을 따라 초소 앞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여섯 명 모두 뒤는 보지 않고 오로지 전방을 살필 뿐이다.

쏴악!

권총수의 왼손이 앞으로 뻗어갔다.

촤라락!

파공성이다.

뭔가 날아온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늦다.

돌멩이는 다섯 사내의 뒤통수를 때렸고 순식간에 수박이 깨지듯 머리가 파편이 되어 사라졌다.

“으응!”

AK를 들고 서 있던 한 사내만 살았고 나머지는 모두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혼자 살아난 사내는 아무 말도 못했다.

동료들의 머리가 박살 난 것에도 충격을 받았고 걸어오는 권총수를 발견했지만 소총의 방아쇠를 당길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그냥 서 있었다.

부들부들!

사내는 떨었다.

엄청 떨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태가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오민철은 머리가 부서져 나갔는데도 혹시 생존자가 있는지 일일이 확인을 했다.

권총수는 심하게 떨고 있는 생존 사내를 보며 빙긋 웃었다.

“미스터?”

사내는 대답할 여유를 갖지 못한 듯 계속 떨고 있을 뿐이었다.

“이름을 묻잖습니까?”

오민철이 자연스럽게 사내의 손에 들린 AK를 빼앗았다.

“세...르게이.”

“세르게이 아주 좋은 이름이군요.”

오민철이 사내와 마주서서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내는 처음보다는 조금 덜 떨긴 했지만 여전히 후들거린다.

스윽!

오민철이 담배를 권했다.

사내는 받을 생각이 없는 듯 손을 올리지 않았다.

“받으세요.”

그제서야 세르게이는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오민철은 바람에 라이터 불이 꺼지지 않도록 양손으로 감싸며 붙여 주었다.

이윽고 자신도 한 개비 피워 물더니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잠깐 나와 가실까요!”

오민철이 사내의 등을 밀듯하며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섰다.

슥!

오민철은 나뭇가지 한 개를 주워 사내에게 건넸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저택 내부의 약도를 그려주시죠. 저 안에 몇 명의 경비병이 있고 집 구조가 어떤지 자세히 말입니다?”

움찔!

사내는 놀란 표정을 했다.

보스가 사는 집의 내부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두려운 듯 했다.

“시간 없습니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AK를 들어 올리려는 시늉을 하자 사내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안에 있는 경호원은 모두 일곱입니다.”

“좋아요. 계속해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내는 막대기로 이곳저곳으로 선을 그으며 저택의 내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저택의 대문을 살피고 있었다.

철옹성이다.

담장의 높이도 3미터가 넘어 보였고 그 위로 2중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또한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침입자를 경계한다.

어쩌면 지금 집 안에서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비록 자신과 오민철 둘 뿐이지만 어쨌든 저택은 포위망에 갇혔다.

지원 병력도 정문도로가 아니면 어느 곳으로도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공중공격이 없는 한 지리적 잇점이 철저히 자신들에게 있으므로 최악의 경우 레드킬로 교전을 벌인다고 해도 우위에 설 자신이 있다.

거기에 보스 미하일로프의 신변을 이쪽에서 먼저 거머쥔다면 게임은 종료된다.

푸욱!

뭔가 살 속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오민철은 죽은 시신에서 뽑아 낸 칼을 사내의 명치에 박았다.

사내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죽이느냐는 원망의 시선을 보냈다.

“협조 잘해 줬는데 미안합니다.”

오민철은 조심스럽게 세르게이를 땅바닥에 눕혔다.

“잘가시오. 세르게이.”

세르게이는 딸꾹질 하듯 몇 번 헐떡이더니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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