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06화 (506/651)

제506화: 돌파구(1)

앰블런스들은 복잡한 자카레지뉴 골목 곳곳으로 달려가 길가에 쓰러진 부상자들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삐뽀!

삐뽀!

고통에 찬 신음과 피로 범벅이 된 시신들이 엠블런스에 실려 떠나고 거친 땅 울림이 전해온다.

부르르릉!

디젤 엔진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리더니 철망으로 덮인 경찰 특공대 버스가 달려왔다.

문이 열리고 무장 경찰들이 쏟아져 내렸다.

“팀별로 서둘러.”

지휘관의 외침이 울려 퍼졌고 특공대는 순식간에 복잡한 자카레지뉴 골목으로 흩어졌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특공대 지휘관을 바라보는 캐인의 인상이 굳어진다.

캐인은 FBI 제3작전팀장이다.

제3작전팀은 마약수사를 전담하는 제7국 소속이다.

FBI 7국은 오로지 마약이다.

전체가 마약사건과 조직들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검거하는데 그중 작전3팀 열다섯 명이 사흘 전 선박을 이용해 리우에 도착했다.

사건의 시작은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개월 전 뉴욕으로 들어오는 화물 컨테이너에서 약 200킬로 가량의 코카인이 발견되었다.

브라질에서 오는 커피를 실은 컨테이너였다.

커피를 담은 포대사이에 숨겨 밀반입을 시도한 것인데 추적 조사 결과 코카인의 주인이 이 지역에 터전을 잡고 리우의 뒷골목을 지배하는 브라질 최대 범죄조직 ‘코만도 베르멜루가’라는 것이 밝혀졌다.

미국의 마약수사는 원점 타격이다.

들어오는 마약을 단속하는 방어적 전략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공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그 실예가 멕시코와 콜롬비아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상당수가 FBI원점 타격전략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사리진 곳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조직이 위축되다보니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의 양도 줄어들었다.

FBI와 마약단속국 DEA는 오랜 회의 끝에 브라질 정부와 마약퇴치결의를 맺었다.

그리고 두 달 전 들어와 작전을 개시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대참패였다.

FBI단속요원 다섯 명과 마약단속국 요원 네 명이 숨지는 대사건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 날의 대참사는 곧바로 전 세계로 타전되었고 FBI는 굉장한 조롱과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물론 멕시코와 콜롬비아 마약조직들은 쌍수를 들어 축하했고 만세를 불렀다.

그중 아랍계 방송 알자지라는 미군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쫓겨나고 FBI는 ‘코만도 베르멜루가’에게 몰상 당했다면서 한껏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나 절치부심한 FBI는 명예회복을 위해 이른바 작전명 ‘피 묻은 십자가’를 결행했다.

리우의 랜드마크인 코르코바우 언덕위에 세워진 예수상을 빗댄 것이다.

전지전능한 예수도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마약조직 두목 한 명 잡지 못할 손가.

코만도 베르멜루가의 두목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작전을 결행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또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제3작전 팀이 급습을 받아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한 것이다.

확!

캐빈이 갑자기 권총을 들어 겨누자 경찰특공대장 라몬스는 흠칫했다.

“말해보시오. 누구요?”

“무슨 말입니까?”

“이곳에 진입하자마자 공격을 받았소. 그게 뭐겠소. 어느 골빈 경찰이 우리의 움직임을 넘겨줬다는 것 아니오.”

15명중 무려 9명이 숨졌다.

텍사스 국경넘어 악명 높은 멕시코의 후아레스 카르텔을 쳤고,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클란델골포(clan del golfo)’까지 공격한 적이 있지만 오늘 같은 피해는 없었다.

어쩌면 FBI 역사상 최악의 작전으로 남을지도 모를 만큼 대형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연이은 실패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도 정보가 흘러나간 것이다.

앞선 뼈아픈 경험으로 이번에는 브라질 정보 고위 관계자 몇 명만 알고 있었다.

아예 브라질 경찰을 제외한 것이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작전지역인 이곳에 진입하자마자 코만도 베루멜루가 조직원들이 퍼붓는 AK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

브라질이라는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를 이끌어가는 고위급 정치인들까지 마약조직과 손이 닿고 있다는 건 충격이었다.

부르르!

케빈은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한참을 겨누었지만 끝내 내리고 말았다.

경찰특공대장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FBI는 침묵했다.

제아무리 강한 조직이라고 해도 안에서 새어 버리면 작전이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1908년 발족한 FBI 역사상 가장 최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마약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프칸 텔레반 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원조와 지원을 받지 못하자 자국민의 양귀비 재배를 묵인해 버린 것이었다.

2017년 세계 마약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였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각국이 강력한 단속과 생산 재배지 공격으로 잠깐 소강상태인 듯 했지만 지난 육개월 동안 수백억 달러가 늘어났다.

바로 아프카니스탄이었다.

이름하여 탈레반 정권의 배째라 식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너희들이 우리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지 않으니 스스로 일어나려면 어쩔 수 없다’

대놓고 재배 독려는 하지 않았지만 단속 역시 하지 않았다.

밀이나 옥수수를 지어 수확할 때보다 많게는 무려 열 배의 수익이 생기자 순식간에 전 국토는 붉은 양귀비 꽃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 유럽, 러시아 마약조직들이 순도 높은 생 아편을 구하기 위해 아프카니스탄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가장 많은 아프카니스탄 아편을 가져가는 곳이 브라질 최고의 범죄 집단 코만도 베르멜루가였다.

멕시코와 콜롬이바 마약 카르텔에 대해 혹독하리만치 공격적인 단속과 주요 간부들의 체포 및 사살이 이뤄지면서 잠시 주춤하는 사이 그 틈을 브라질 조직, 그중에서도 코만도 베르멜루가 밀고 들어온 것이다.

더욱이 미국에서 거래되는 마약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

새로운 시장을 진출했을 때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유혹하는 전형적인 상술이다. 그러다 어느정도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 가격을 올릴 것이다.

어쨌든 저렴하다는 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미국 수사기관은 골치를 썩었다.

그야말로 밀물처럼 밀고 들어온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미 뿐 만 아니라 동남아산 마약까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두 번의 작전이 연속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한 보고서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첫째 브라질은 멕시코처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아닌 원거리 국가이다. 군사작전에 가까운 대규모 공세가 불가능했다.

둘째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대한 정보는 90퍼센트 이상 정확히 확보하고 있지만 브라질 조직에 대해서는 대략의 자료 말고는 없었다.

셋째 브라질 공직사회의 부패도가 멕시코 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비밀이 유지될 리 없었다.

넷째 공격지역이 너무 광범위 하고 민간인이 밀집되어 있다. 이는 단속반이 소극적인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는데 반면 적은 민간인 희생자 따위는 전혀 고려 않는다.

“왜 대책이 없는 거야?”

모든 보고서 말미에는 문제점에 대한 조치와 향후 대책이 반드시 실려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훑어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것 아닌가. 현재로서는 코만도 베르멜루가를 궤멸시킬 대책이 없다는 것 말이야.”

보고서를 받은 중요 수사기관의 수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사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석 달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정신적 육체적 공허함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인은 또 하나 있었다.

실패라는 단어 때문이다.

실패가 이토록 무서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예일대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생으로서 실패를 몰랐고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하며 도대체 좌절이나 뒤로 물러나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새 정부 들어 첫 FBI국장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으면서 인생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출발도 무난했다.

몇 건의 테러 음모를 찾아냈고 실리콘벨리에서 15년 동안 공학박사로 일하던 MIT공대 교수이기도 한 데이비스를 간첩죄로 체포한 것도 빛나는 업적이었다.

미국의 신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며 무려 십억 달러라는 거액을 스위스 은행 계좌에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약단속국과는 별도로 크고 작은 미국 내 마약조직 십여 곳을 일망타진했다.

거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눈이 부시다 못해 뜨지 못할 정도의 업적이다.

하지만 이번 브라질 작전 실패로 언론은 자신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뉴욕타임즈는 FBI역사에서 아직까지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고 조롱했으며, CNN은 FBI가 마약집단의 희생제물이 되었다며 한탄했다.

비난은 고스란히 자신을 FBI국장 자리에 임명한 현 백악관 주인에로 향했다.

보통 새 정부가 들어서면 1년 정도는 공화당이나 언론이 축하의 의미로 온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웬만하면 따지지 않고 협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같은 올드포지(펜실베니아주)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떡 하니 자리에 앉히더니 이게 무슨 망신인가.

군대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쫓겨오고 FBI는 마약조직에게 얻어 맞다니, 미국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시작으로 공화당과 언론에서 파상적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FBI국장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닌가’

딸칵!

FBI국장 크리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거실 창문을 열고 어두운 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크리스의 한숨 소리가 어둠만큼이나 크고 무겁다.

“아빠!”

한참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부른다.

고개를 돌리자 이층 맨 아랫 계단에 딸 제레미가 서 있었다.

현재 컬럼비아대학 3학년이다.

주말을 이용해 내려 온 것인데 잠옷 차림으로 다가왔다.

“힘들어요?”

다가온 제레미가 크리스의 손을 잡았다.

“아빠가 그랬지. 공직에 있는 사람이 칭찬을 듣는다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그건 사실이다.

언론과 대중의 평가는 인색하다.

잘하면 조용하고 못하면 바로 퍼붓는다.

“난 영원히 아빠 편이야.”

제레미가 싱긋 웃었다.

“아빠 이것!”

제레미가 영문판 뉴스위크지를 뒤에 감추고 있다가 내밀었다.

탁!

제리미는 한쪽으로 걸어가 거실 불을 켜주었다.

“이번 주 것 아니냐?”

“담배만 피우지 말고 한 번 읽어 보시라구요.”

제레미는 미소를 지으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죽고 부쩍 자신과 가까워졌다.

아내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마음이 고맙다.

훤한 불이 켜졌고 들고 있던 뉴스위크를 슬쩍 본 크리스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단순히 읽어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팔랑!

표지를 넘기고 광고를 훑어 본 뒤 몇 장을 연이어 넘겼다.

대충 한 번 살피고 천천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하나의 기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재학중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3학년생

재빨리 주간지를 활짝 펴고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기사는 조금전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딸 제레미에 관한 내용이었다.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자신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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