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4화: 꿈은 사라지고(2)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카스텔노다리, 거긴 또 어디지?”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헛소리 할래.”
카스텔노다리는 외인부대 훈련소가 있는 곳이다.
“그곳을 나오면서 뭐라고 다짐했냐?”
“다짐?”
“그래 임마, 다짐 했잖아.”
“어떤 다짐?”
“너 진짜 기억 안나?”
“글쎄 워낙 힘든 훈련소 생활이었기 때문에 난 두 번 다시 카스텔노다리 쪽을 보며 오줌도 안 싸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너 뭐라고 했어. 형 이제 우리 두 사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남아 대장부 한번 죽지 두 번 죽냐고 했잖아.”
“내가 그런 유치한 말을 했다고?”
“이런 개자식!”
오민철이 흥분하여 말을 못한다.
“젠장 증인될 만한 놈들이 모두 뒈져 버렸으니.”
외인부대 훈련소 동기중 친했던 인물들은 거의 사망하고 없다.
“형!”
권총수가 담배를 물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드르륵!
유리창을 활짝 열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더니 돌아섰다.
엉덩이를 창틀에 기대며 잠시 담배를 피우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과 같이 가는 건 문제가 아냐. 하지만 이제는 형수님이 계시잖아. 평범한 출장이라고 해도 해외로 나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형수님 새벽기도에 목멜 것 아냐. 내 남편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잠도 못자고 빌 것 아니냐고.”
“나 해외 안 나가도 새벽기도에 나가는 사람이다. 이래도 나가고 저래도 나간다는 얘기야.”
오민철이 이마를 찡그렸다.
“강력계 형사를 남편으로 둔 여자는? 파병을 보낸 미국 여자들은 어쩌고? 타워 크레인 기사를 둔 여자들은 어떻게 산대. 임마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잖아.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고 7,80까지 살 놈은 살아. 다시 말하면 내 아내도 이제 이 직업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하고 있어. 오히려 너만 보내면 나한테 비겁하다고 눈을 부라릴 거야.”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왜 웃는데? 이 형 말이 좆같다 이거냐?”
“결혼을 하더니 이빨이 더 좋아졌군. 알았어. 알았다고.”
오민철이 재빨리 인터폰을 눌렀다.
“예 대표님!”
강순태 경리과장이다.
“오이사야. 내 것도 함께 끊어.”
“같은 비행기로 끊습니까?”
“당연하지 이 친구야. 실과 바늘이 떨어지면 되나.”
탁!
오민철은 인터폰을 끊었다.
아침회의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장웅철 법무팀장은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정상적이라면 어제 밤에 일이 끝났으므로 지금쯤 뉴스에 권총수가 죽었다는 소식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 조용했다.
미아리에서 술 취한 남편이 아내와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것 말고 서울에서 살인사건 뉴스는 없었다.
창문을 열고 천장의 환풍기까지 틀었지만 담배연기가 사무실을 가득 매웠다.
척!
책상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더니 잠시 망설인다.
입가에 물린 담배를 생연기를 피워내고 그렇게 일분여 서 있던 장웅철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바쁜가?”
“아닙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구기동이면 어디 관할인가?”
“구기동이면 종로서 관할입니다.”
“종로 서에 아는 사람 있나?”
“있죠. 수사과장이 저와 고향 후배입니다. 왜 그러십니까? 편하게 말씀 하십시오.”
장웅철은 잠시 망설이는 듯 입을 다물었다.
입에 물린 담배는 생 연기를 피워내고 있는데 그렇게 3,40초쯤 지났을 때 입을 열었다.
“혹시 어제 밤 종로관할서에 살인사건 신고 들어온 것 없는지 알아 봐 줄 수 있겠는가?”
살인사건이라는 말에 상대는 잠시 놀라는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왜?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다 재빨리 눈치를 채고 연락드리겠다면서 끊는다.
장웅철은 핸드폰을 끄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북!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더니 다시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는데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삑!
인터폰을 눌러 여비서에게 시원한 냉수 한잔을 시켰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책상위에 던지듯 놓더니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다.
그때 문이 열리고 여비서가 쟁반에 머그컵에 냉수를 담아 가져왔다.
“여깄습니다. 팀장님!”
장웅철은 굳은 얼굴로 냉수를 단숨에 마셨다.
“김여선씨.”
쟁반을 들고 나가던 여직원이 돌아섰다.
“아버님 병환은 좀 어떠세요?”
갑작스런 질문이라는 듯 비서 김여선은 눈을 크게 떴다.
“경리부에 애기 해 놨으니 위로금이 조금 지금될 거에요. 아버님 치료비에 보태세요.”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 못한 일이라는 듯 김여선의 눈이 커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이사대우지만 팀장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었다.
디시 한 번 허리를 구부린 뒤 김여선은 문을 닫고 나갔다.
“모든 것이 돈이야.”
장웅철은 중얼 거렸다.
자신에게 다짐하듯 뱉어 낸 말인지 아니면 세상을 향한 외침인지 알 수는 없었다.
지이잉!
때마침 책상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고 총경 그래 알아봤나?”
“예, 간밤에 취객에 의한 난동으로 칼에 맞은 사람이 발생하긴 했지만 관할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은 없었다는 군요.”
“분명한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수고했네. 아 참 고 총경 언제 저녁이나 하지.”
“전 항상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죠. 불러만 주십시오.”
“그러지.”
삐그덕!
의자 뒤로 상체를 눕히자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인 사건이 없었다’
장웅철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팟!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빛내며 상체를 세웠다.
‘혼자 사는데 죽었다면 누구도 모를 수 있지 않는가’
벌떡!
장웅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다.
혼자 사는 사람이 죽은지 몇 달 만에 사회복지사에게 발견이 되기도 하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로 알려지는 경우가 허다한 세상이다.
다시 핸드폰 번호 하나를 깊게 누른다.
“예 팀장님!”
“조 기사. 당장 구기동을 한 번 다녀오게.”
이미 권총수의 집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는 조기동으로서는 어려울 일이 아니었다.
또한 장웅철이 왜 자신더러 구기동을 다녀오라고 하는지 알고 있다.
“예!”
전화를 끊은 조기동은 곧바로 차의 시동을 걸었다.
30분 정도 지나 구기동에 벤츠 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한낮의 구기동은 한산했다.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한 쌍이 이북오도청 뒤쪽에서 걸어오고 있을 뿐 사람도 차량도 다니지 않는다.
왼쪽 다리로 핸들을 꺾어 가파른 포장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골목 역시 인적이 없고 어디선가 개가 짖었다.
골목 맨 끝까지 올라간 조기동은 차를 끌고 들어갈까 하다 돌아올 때 편하도록 차만 돌려놓고 내렸다.
골목을 걸어 권총수의 집이 있는 마지막 집 앞으로 다가가 훌쩍 한 번 뛰면서 집안을 엿보았다.
조용했다.
훌쩍!
일 미터 50가량의 골목 담벼락을 뛰어 산으로 올라섰다.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 봤는데 집안에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담을 넘어 들어가 볼까 잠시 망설이던 조기동은 다시 쭈그리고 앉아 골목으로 뛰어 내렸다.
들어가는 것 보다는 벨을 눌러 보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 응답하면 엉뚱한 사람이름 대며 그의 집 아니냐고 하면 된다.
푹!
벨을 눌렀다.
부부북!
반응이 없어 연거푸 눌렀다.
없다.
부부북!
다시 누르고 여전히 기다려도 안으로부터 조용했으므로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담을 넘어가 집안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넘어가기 위해 다시 산 쪽으로 올라가려는 그 때 등 뒤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누구시죠?”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자신의 차 앞에 벤츠 한 대가 바짝 대어 있고 차에서 권총수가 내리고 있었다.
권총수 얼굴을 알아보기에 조기동은 소스라쳤다.
하지만 재빨리 숨을 내 쉬며 말했다.
“최남선씨에게 볼일이 있는데 반응이 없어서 말이오.”
“최남선?”
“이집 주인요. 내가 아는 분인데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거죠.”
재빨리 거짓말을 둘러댔다
“최남선? 그런 사람 살지 않는데.”
권총수의 두 눈이 조기동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어 이상하네, 여기 최남선씨 집인데.”
조기동이 눈을 빛낸다.
“최남선이라는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는데 그러십니까?”
움찔!
이번에는 조기동이 얼어붙는다.
허를 찌른 질문이다.
그것까지는 전혀 머릿속에 계산해 넣지 않았다.
그런 사람 살지 않는다고 하면 미안하다면서 내가 주소를 잘못 찾은 것 같다고 돌아설 생각이었다.
그런데 권총수가 최남선이란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느냐고 치고 들어오자 조기동은 얼른대답을 못했다.
즉 권총수가 언제부터 여기에서 살았는지는 모른다.
“왜 대답이 없습니까? 최남선?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조기동은 과감하게 물었다.
이럴 땐 치고 나가는 것이 좋다.
“언제부터 여기 살았습니까?”
순간 권총수는 다시 웃었다.
조기동의 질문에 대답을 해줄 이유는 없다.
그건 빠져나가기 위한 조기동의 잔머리가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오래됐죠.”
“이상한데!”
조기동은 자꾸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더니 핸드폰을 검색하는 듯 하더니 크게 말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주소를 거꾸로 봤군요. 69번지를 96번지로 잘못 알고 정말 죄송합니다.”
조기동은 연신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자신의 차로 돌아가 곧장 도망치듯 사라졌다.
부우웅!
권총수는 잠시 서 있더니 빙긋 웃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기동이라는 것 까지는 몰랐지만 알고서 왔다.
반노환동의 경지는 자신의 집 쪽에 불길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걸 간파하게 해주었다.
‘훗, 내가 살아 있으니 한바탕 뒤집어 질 것이다.’
방긋 웃으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팟!
들고 있던 머그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되었다.
조기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놀란 것이다.
“틀림없나?”
조기동의 목소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날 보고 웃었습니다. 대충 둘러대긴 했지만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건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러시아에서 온 두 사람은 어찌된 거야?”
“글쎄.”
장웅철은 얼어붙었다.
“알겠네!”
굳은 얼굴로 전화기를 들고 있던 장웅철이 핸드폰을 끊었다.
딸칵!
다시 담배를 피워 문 장웅철은 냉정해지기 위해 사무실을 왔다갔다 했다.
저벅저벅!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어디 있는 것일까.
어디엔가 파 묻혔단 말인가.
죽은 시신을 집안에 둘리는 없다.
통화 할 수 있는 비상전화가 있긴 하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만들어준 대포폰인데 일이 끝나면 그 번호로 통화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쪽에서 전화가 없으니 이제 이쪽에서 걸어 보는 수 말고는 대책은 없는 것이다.
장웅철은 어금니를 물고서 전화를 눌렀다.
번호 한 개 한 개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린다.
심각한 일이고 어쩌면 치명적인 불행을 맞을 수도 있는 전화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푹!
통화버튼을 눌렀다.
제발 전화 받기를 소원하며 응답을 기다렸다.
따르릉! 따르릉!
신호는 계속 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두 번 울렸는데 불길한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네 번...
다섯 번...
전화를 끊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장웅철은 다시 한 번 같은 번호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