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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03화 (503/651)

제503화: 꿈은 사라지고(1)

“허걱!”

조금 전까지 자신의 어깨를 밟고 권총을 쏘던 지르코프가 나동그라져 있는데 얼굴이 없었다.

목이 통째 잘려 나가 버린 것이다.

“꺽!”

조르닌은 다시 놀라는데 골목 오른쪽 배수구에 낯익은 얼굴 하나가 처박혀 있었다.

천천히 배수구로 다가간 조르닌은 얼어붙는다.

지르코프 머리통이 배수구에 처박혀 있었다.

후들후들!

갑자기 아랫도리가 흔들린다.

담벼락 쪽에 나동그라진 몸뚱이와 배수구에 있는 머리통을 번갈아 보는 조르닌은 여전히 상황에 대한 해석을 하지 못하고 침만 삼켰다.

덜컹!

그때 대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나타났다.

조르닌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싸악!

권총을 든 손목이 통째 날아가 버린 것이다.

소림의 반야수를 도법으로 변형하여 베어버린 것이다.

뚝뚝뚝!

잘린 손목에서 핏방울이 떨어진다.

하나도 아프지 않다.

너무 놀라면 손목이 잘렸는데도 결코 고통 따위를 느낄 수 없다.

조르닌은 넋이 나간 얼굴로 멍하니 서 있다.

한참을 바라보던 조르닌은 땅바닥에 권총을 쥔 채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잘려나간 손목을 보며 마른침을 삼킨다.

꾸울꺽!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권총수의 손에 칼 따위는 없다.

일본 닌자들을 보면 비도술이라는 것이 있어 칼을 던져 죽이고 신체를 절단하는 기술이 있다고 들었다.

주위를 살폈지만 자신의 손목을 자른 칼은 보이지 않는다.

딸칵!

권총수는 담배를 피우더니 대문 앞 시멘트 턱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좋군! 별빛도 없고.”

권총수는 흘긋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쭈욱!

세차게 빨아들이는지 담뱃불이 빨갛게 빛을 뿌렸다.

“조르닌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화악!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다.

“죽은 친구가 지르코프?”

조르닌은 침을 삼켰다.

뭔가 애초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도 상당했다. 물론 믿지 않지만 초인적인 능력 운운하는 서류들이 있었고 피식 웃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서류를 채운 내용들이 잘못됐다.

내용보다 훨씬 무서운 사실이 지금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한마디로 상대를 너무 경시하고 온 것이다.

틱!

담배꽁초를 튕겨 버린 권총수가 일어났다.

파팟!

잘린 손목 근처가 따끔하더니 흘러내리던 핏방울이 멈춘다.

지풍으로 피를 멎게 해준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니 들어갈까요.”

권총수는 대문을 열었다.

조르닌은 머뭇거렸다.

마지 지옥의 문을 보는 느낌이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는 더 이상 존중되지 않을 것이다.

조르닌은 무거운 걸음으로 권총수가 열어준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 마당은 훨씬 넓었고 한가운데 놓인 바위 역시 컸다.

주춤거리듯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바위는 더 커보였는데 조르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멀리서 날아오는 가로등 불빛에 바위 일부가 보이는데 윗부분이 반들반들 했다.

일부러 갈고 다듬은 흔적은 없다. 아무리 잘 다듬는다고 해도 이만큼 반들반들하게 만들 수는 없다.

문제는 바위 모양이었다.

결가부좌하고 앉았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좌우 엉덩이 쪽이 움푹 들어갔고 양 팔이 겹쳐 올라간 아래 부분인 다리 형태의 굴곡이 그대로 보인다.

‘설마’

꿀걱!

아무리 살펴도 처음부터 진흙위에 사람이 앉으면 찍히는 모양의 바위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자연의 힘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작은 것도 아닌 좌우 폭이 1미터 50은 될 정도로 큰 바위가 도장을 찍어 놓은 듯 이런 형태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앉아요.”

권총수는 바위를 가리켰다.

조르닌은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앉았다.

엉덩이에 느껴진 감촉이 바위라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매끈하다.

권총수는 현관 쪽에서 나무로 된 의자 한 개를 들고 오더니 조르닌과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권총수는 조르닌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르닌은 권총수의 눈길을 받지 못하고 슬며시 피한다.

부드러운 눈빛인데 이상하게 숨이 턱 막히고 엄청난 무게의 바위가 앞가슴을 짓누르는 듯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솔른쳅스카 브라트바?”

흠칫!

조르닌은 다시 놀란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들도 사막의 흑새를 죽이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이쪽에서도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밀리에 이뤄진 일이다.

누가 외부로 알렸을까.

정보가 샐만한 곳은 없다.

“난 내게 다가오는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말입니다.”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조르닌씨?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내 말을 우습게 여기거나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물쩍 넘기려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흘긋 피는 나지 않지만 잘려진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건 손목 잘린 건 아무것도 아니고 더 무자비한 보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 묻겠소. 날 죽이라고 사주한 한국 내 인물이 누구죠?”

조르닌은 눈을 빛냈다.

눈빛이 상당히 흔들렸는데 무척 당황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입안이 바짝 타는지 연신 침을 삼킨다.

“지르코프가 알고 있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소. 난 당신을 지르코프와 같이 동행하여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소.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자세한 내막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권총수의 강렬한 눈빛이 거두어졌다.

그건 조르닌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치명적인 판단미스로군’

내일 침입해 올 줄 알았지 오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발생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도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 있을 때는 매우 냉철해진다. 하지만 운기조식중 갑작스런 이들의 기척을 발견했고 곧장 제압해야 한다는 계산이 앞섰다.

즉 좀 더 냉철하게 대처했다면 지르코프를 살려 그의 입에서 의뢰인을 알아 낼 수 있었다.

군대로 말하면 둘은 사수와 부사수다.

지르코프는 사수이기 때문에 부사수를 죽이고 사수를 살렸어야 했다.

분명한 증거를 찾아 권악수를 완전히 침몰시키려면 지르코프가 숨을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놈은 사람이 안된다’

권총수는 그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러자면 완벽히 퇴로를 차단하여 포위 공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권총수는 한참 동안 조르닌을 바라보았다.

시선만 조르닌에게 던지고 있을 뿐 머릿속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뭔가를 계산하는 듯 싶다.

한편 시간이 길어지자 조르닌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다.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주변환경이 자세히 보이고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반격할 어떤 기회가 없다.

기관단총이 있다.

하지만 호텔에 있는 것이니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른손도 잘렸고 권총은 대문밖에 잘린 손과 같이 있다.

그렇다고 맨손 격투로 대항할까 했으나 이미 모든 것에서 압도되어 몸은 잔뜩 주눅이 들어있다.

저벅저벅!

갑자기 권총수가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고 거실에 불이 환히 켜졌는데 5분여 지나고 A4용지 대여섯 장과 펜을 가지고 나왔다.

탁!

바위에 종이와 펜을 올려놓고 말했다.

“세르게이 미하일로프가 누구죠?”

흠칫!

조르닌은 어깨를 떨었다.

이름만 들어도 온 몸이 얼어붙는 존재다.

“보...보스!”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난 또 모른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군요.”

권총수는 종이와 펜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 세르게이 미하일로프가 살고 있는 집과 근처 거리를 그려주시죠.”

권총수가 빤히 바라본다.

보스의 집은 거의 노출되어 있다.

단지 경비가 삼엄할 뿐이다.

그건 마피아나 삼합회, 야쿠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마약카르텔 두목들도 동일하다.

노출을 시키는 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것이기도 하며 결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도전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들어오라는 뜻도 된다.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모를 리 없다.

잘 안다.

이번 작전이 진행되기 전 두세 번 보스가 살고 있는 러시아 외곽의 저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 대통령인 푸친과도 매우 절친할 만큼 세르게이 미하일로프의 영향력은 모스크바에서 압도적이다.

‘갑자기 보스 거처는 왜 묻지!’

궁금하다.

청부한 사람을 알아내기 위해 설마 모스크바까지 찾아가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호랑이 집(虎窟)이다.

모스크바에 일단 들어가는 순간 누구 총을 맞을지 모른다.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금방 알려질 것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일이 끝나면 곧바로 전화를 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화가 없으면 실패했다는 걸 알고 제2차 공격진을 보내든지 아니면 모스크바의 뒷골목에 비상이 걸릴 것이다.

사막의 흑새가 모스크바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 경계상태는 평소보다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조르닌의 표정이 밝았다.

나쁠 것 없다.

콱!

볼펜을 쥐고 A4용지에 모스크바의 대로를 적당히 그리고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도로에 이어 솔른쳅스카 브라트바의 보스 세르게이 미하일로프 저택의 위치를 그리기 시작했다.

약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연거푸 종이를 구려 버렸다.

세 번째 종이를 버리고 네 장째 약도를 그리고서야 펜을 놓았다.

“주소도 밑에 쓰시죠.”

조르닌은 다시 펜을 놓고 주소를 썼다.

잠시 약도와 주소를 바라보던 권총수가 종이를 접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위에 앉아 있는 조르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군대는 무장 해제된 적을 포로로 인정하여 돌려주기도 하지만 용병에게는 포로가 없습니다.”

퍼억!

오른손을 뻗었다.

순간 조르닌의 가슴이 뻥 뚫리고 말았다.

터널처럼 손바닥 모양 그대로 구멍이 생겼는데 극성의 반야수였다.

반노환동의 경지에 들어서면서부터 공격의 강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원하는 대로 파괴하고 부술 수 있는 것이다.

반노환동에 오르지 못했다면 지금 같은 경우 가슴이 터져 죽었을 것이다. 손바닥 모양으로 정확한 구멍이 뚫리지는 않는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형! 시체 두 구 치워야겠어. 매형 용달있지? 그것 좀 끌고 오지.”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서 전화를 끊었다.

권총수는 바위에 앉았다.

죽은 시체를 옆에 두고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권악수가 범인인데.”

증거가 없다.

증거만 찾으면 완벽하게 보낼 수 있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살려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죽일 사람은 죽여야 한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목을 치기 위해서는 빼도 박지도 못할 올가미가 필요했다.

갑작스런 러시아 출장얘기에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모스크바는 왜? 설마 또?”

“형은 이제 내 일에 끼어들지마. 그렇게들 알고 강과장 비행기 표 한 장 예매해줘.”

“예!”

경리과장 강순태가 대답했다.

“이상 회의 끝냅시다.”

권총수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임원들 또한 일어나 각자의 사무실을 향해 돌아갔다.

“형은 왜 안가?”

탁!

마지막 임원이 나가면서 문이 닫히자 오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말했다.

“야 우리 카스텔노다리를 나오면서 뭐라고 약속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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