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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502화 (502/651)

제502화: 누구나 살다 보면 죽는다(3)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고 다시 가방을 열어 총을 꺼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인물은 자신과 같이 러시아에서 온 조르닌이었다.

두 사람은 솔른쳅스카 브라트바의 히트맨들이다.

특히 1001호의 주인 지르코프는 베스트 중의 베스트다.

조르닌은 이번 작전에 조수 겸 경험을 쌓는 의미로 같이 동행한 것이다.

“답사는 언제 가는 것이죠?”

“지금!”

“지금요?”

지르코프는 MP5를 다시 가방에 넣고 권총 한 자루를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가자구, 총은 챙겼지?”

“여기!”

그러면서 품속에서 꺼내 보였는데 소음기가 끼워져 있다.

“그런데 선배님 만약 오늘 밤 기회가 매우 좋으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계획대로 해야지.”

“계획대로라면 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작전은 한 번 세워지면 절대 바뀌거나 고쳐서는 안돼.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바로 치고 들어가는 건 위험한 행동이야. 치밀한 준비 없는 공격은 어떤 함정이나 위험을 불러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아무리 기회가 와도 사전에 짜 놓은 대로 움직이는 것이 프로다운 일이고 히트맨으로 몸 값을 높이는 길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평상복 차림으로 객실을 나갔다.

차량 한 대가 이북오도청 근처 길가에 멈췄다.

북한산은 조용했고 모두가 잠이 든 듯 근처 고급빌라단지의 불빛도 꺼져 있었다.

라이트를 끈 차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분 가까이 흐르고 좌우 문이 열리더니 지르코프와 조르닌이 내렸다.

차에서 얼른 내리지 않는 건 만약을 대비해서이다.

만약 적이 잠복해 있다거나 함정을 깔았었을 수 있다.

차 안에 있으면 도주가 빠르지만 일단 내려 버리면 위험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폈지만 오른쪽은 나무들이 우거진 언덕이고 왼쪽은 역시 숲이 짙게 깔린 하천이었다.

“놀랍군. 도심에서 불과 10분 움직였는데 이런 산과 숲이 있다니.”

지르코프는 매우 놀란 표정이다.

더욱이 전방으로는 절벽처럼 치솟은 북한산이 버티고 있다.

두 사람은 길을 따라 걷더니 왼쪽다리를 건넜다.

가파른 주택가 골목이지만 상당히 넓었고 좌우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독빌라들이 서 있는데 대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이미 정확한 약도를 넘겨받았고 머릿속에 외우다시피 하기 때문에 그다지 권총수의 집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골목 맨 꼭대기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200여 미터를 올라갔다.

막다른 길이고 언덕 위로는 소나무들이 우거진 산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골목이 있고 모두 세 채의 단독주택이 있었는데 권총수의 집은 맨 안쪽에 있다.

다른 두 집 앞에는 차가 있지만 권총수의 집 앞은 비었다.

개인적으로 벤츠를 타고 다니며 가끔 회사차인 랜드로버를 이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법인차든 개인차든 집 앞에 차가 없다는 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므로 지르코프는 여유롭게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11시 30분이 지나고 있었고, 두 사람은 태연히 걸어가 닫힌 대문을 바라보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기둥과 대문 사이로 생긴 틈을 이용해 안쪽 집까지 보았다.

어디서나 흔히 보는 주택이다.

단지 마당 가운데 납작한 화강암 한 개가 놓여 있다.

원래 있던 돌이라면 파냈겠지만 여러 가지 생김새나 구조를 보면 가져다 놓은 듯 했다.

“넘어가 볼까요?”

담장은 2미터 가까이 되었는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었다.

부르릉!

그때 멀리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라이트가 보인다.

두 사람은 재빨리 오른쪽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1미터 50 가까운 돌담을 쌓아 산과 골목을 경계 지었는데 단숨에 뛰어 올라 소나무 뒤에 숨은 것이다.

예상대로 라이트가 꺾어지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온다.

두 사람은 두 눈을 빛냈다.

“벤츠입니다.”

조르닌이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윽고 마지막 주택 대문 앞까지 다가온 차가 멈추고 라이트가 꺼졌다.

딸칵!

문소리가 열리며 권총수가 내렸다.

자동차 문을 잠그고 잠긴 대문을 열었다.

쾅!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요란했고 두 사람은 숨겼던 몸을 드러내며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권총수를 내려다보았다.

턱!

계속 걸어서 현관으로 들어갈 줄 알았던 권총수가 납작한 바위에 걸터앉더니 담배를 피워 물었다.

홱!

조르닌이 번개처럼 고개를 돌렸다.

푸르게 빛나는 조르닌의 눈은 지금이야 말로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냐는 뜻이다.

스윽!

지르코프가 왼손을 들어 올려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저 혼자서라도.”

홱!

지르코프의 눈이 사납게 변했다.

불길 같은 시선에 조르닌은 입을 다물었지만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당장 다가가서 쏘면 된다.

차에서 내렸을 테니 어떤 무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총기 소유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다.

꿀꺽!

거의 잡힌 물고기이다.

다시 한 번 슬그머니 지르코프를 바라보았는데 꼼짝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운 권총수는 꽁초를 비벼 끄더니 바위에 결가부좌했다.

이어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운기조식에 들어간 것이다.

조르닌은 더욱 안달하며 설명했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잘 안다며,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명상이라는 것이다.

명상에 깊이 빠지면 웬만한 소란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르코프에게 강조했다.

당장치자는 의견이다.

절대 세운 계획을 벗어날 의도가 없는 듯 꼼짝 않던 지르코프 눈동자가 좌우로 흘러 다닌다.

슥!

혀까지 핥는 건 지르코프 또한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표적이 너무 한가하게 앉아있다.

진짜 명상이라면 이보다 더 확실한 기회는 없다.

“조용히 다가가 쏘면 끝나는 것입니다.”

조르닌은 더욱 재촉했다.

꼴칵!

지르코프는 좀 더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뜻 행동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다시피 공격은 치밀한 준비를 갖추고 난 이후에 이뤄져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권총수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약도는 확보했으나 오늘밤은 정확한 주위 지형과 몇 미터 거리에서 공격 할 것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짓기 위한 탐색이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조르닌은 갈기를 세운 사자처럼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다.

콱!

지르코프의 이가 물렸다.

조르닌의 재촉이 생각을 바뀌게 하긴 했으나, 자신의 눈으로 봐도 지금은 좋은 기회였다.

예상못한 득을 얻는다면 이 또한 작전과는 무관하게 과감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아주 드문 일이지만 지금이야 말로 그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

탁!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좋아. 오늘 밤 정리 해버리지.”

지금까지 계획대로 움직였고 백퍼센트 성공했다.

철저한 작전과 시나리오에 의해 움직였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났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두 사람은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산을 내려갔다.

산은 마사로 이뤄졌다.

미끄러지기 쉬운 토질인 것이다.

조심스럽게 내려간 두 사람 앞에 골목의 담벼락이 나타났다.

골목으로 빗물이나 흙이 밀려 내려가지 않도록 쌓은 담인데 높이가 1미터 50정도 된다.

뛰어내리면 들킬 것이다.

깊은 명상에 잠겼다고 해도 조용한 밤이기 때문에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고 자칫 울림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1미터 50밖에 안 되는 높이지만 줄을 잡고 내려가는 형식을 빌려야 하는데 밧줄이 없다.

화악!

조르닌이 윗도리를 벗더니 소나무에 팔소매를 단단히 묶었다.

몇 번 당겨본 뒤 옷을 잡고 조심스럽게 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미끄러져도 안 되고 돌멩이 따위가 굴러 떨어져도 안 된다.

비록 자신의 키보다 훨씬 낮은 담이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후우우!

들리지 않을 만큼 숨을 내쉬며 지르코프를 올려다보았다.

지르코프 역시 소나무에 묶인 조르닌의 옷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슥 하는 소리와 함께 묶은 매듭이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조금 풀렸다.

지르코프는 소스라쳤고 재빨리 먼저 내려간 조르닌이 엉덩이를 받쳐 무게를 줄인다.

처억!

발이 땅에 닿았다.

높지 않았으나 굉장히 긴장을 한데다 숨 막히도록 내려온 바람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두 사람은 최대한 호흡을 정리하면서 대문으로 다가갔다.

기둥 사이로 다시 보았는데 여전히 앉아 있는 권총수의 모습이 보인다.

문을 두드릴 수는 없다.

다행히도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2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담장이었기 때문에 가장 간단한 방법은 누군가의 어깨를 밟고 넘어가는 것이다.

조르닌은 망설이지 않고 쭈그려 앉았는데 자기 어깨를 밟고 올라가란 뜻이었다.

척!

지르코프의 오른발이 조르닌의 오른 어깨를 밟았고 뒤이어 왼발이 왼쪽 어깨를 짓누른다.

조르닌을 밟고 서자 목이 담장 끝으로 충분히 나왔다.

마당 가운데 있는 권총수까지의 거리는 30여 미터 가까이 되었는데 캄캄한 밤이다.

골목 입구에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해 희미하지만 분명한 모습이 드러났다.

넘어가서 쏠까 여기서 그냥 쏠까.

사격에 자신은 있으나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중요한 표적이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나 언제 깨어날지도 모른 상태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꾹!

지르코프는 어금니를 물었는데 그냥 쏘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막의 흑새를 노렸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만큼 뛰어난 인물이므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 사살하듯 죽여 없애면 좋겠으나 일단 30미터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능력으로 머리를 쏠 수 있다.

콰악!

지르코프는 두 손으로 권총을 감싸 쥐었다.

스으으!

권총수를 향해 분명하게 조준하는데 총구가 흔들린다.

그건 밑에 쭈그리고 있는 조르닌이 움직인다는 의미다.

자세를 풀었고 고개를 숙여 속삭인다.

“총구 흔들려”

조르닌이 미동도 하지 않았고 지르코프는 다시 일어섰다.

권총수를 향해 조준한 뒤 지르코프는 방아쇠를 당겼다.

슉!

소음기를 끼웠지만 워낙 조용한 탓에 소리가 제법 크다.

헉!

두 번째 방아쇠를 당기려던 지르코프는 소스라쳤다.

맞아 쓰러져야 할 권총수의 몸이 마치 태풍에 날아가는 것처럼 뒤로 퉁겨 가버렸다.

마당의 바위는 골목에서 파고드는 가로등 불빛의 영향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캄캄했다.

집 처마 아래는 가로등이 파고들지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스!

권총수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현관 입구를 살핀다.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방아쇠를 더 당기기로 했다.

슉!

슈슈슉!

거리는 40미터에 가깝다.

대낮이라고 해도 먼 거리인데 지금은 밤이고 더욱이 표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뚝!

사격을 멈췄다.

평소의 지르코프 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쨍그랑!

현관 유리 깨지는 소리를 보아 자신의 총알이 격중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권총수는 확실하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퍼억!

한참 총을 쏘고 있는데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쿵!

이어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어깨가 가벼워졌다.

쭈그리고 앉아 있던 조르닌이 재빨리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는데 소스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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