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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8화 (498/651)

제498화: 탈출(2)

블랙잭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민간 보안업체들도 로가르주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타앙!

어쩔수 없다.

살려두면 탈출로가 드러나니 없애야 했다.

전상미 표정이 착잡하다.

의외로 일이 복잡해 잘못하면 국경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들었다.

이십여 곳의 민간보안 기업들이 로가르주를 이용한다면 지금 말고 앞으로도 여러번 탈레반과 조우할 가능성이 크다.

전상미는 소대원들을 바라보았는데 말은 없었다.

소대원들은 전상미의 시선에 담긴 뜻을 알고 있었다.

여러분들도 상황의 엄중함을 파악했을 테니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보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블랙잭 또한 민간군대 아니겠습니까?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죽고 사는 것이죠.”

문도석이 씨익 웃는다.

“선배는 당연한 얘기를 진리인양 말씀하십니까?”

문도석의 특전사 후배인 정몽술이 빙긋 웃었다.

“흐흐흐!”

“크크!”

모두가 웃었다.

그건 전상미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분위기는 좋다.

전상미는 제발 이 좋은 분위기를 인천공항까지 가져갔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전상미는 무전기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십분간 휴식.”

석양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담배 생각나는 사람 피워요.”

전상미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아무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었다.

적진에서 작전중에 담배를 피우는 군인은 없고 지휘관 역시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상미가 담배를 허락한 건 이른바 긴장된 분위기를 잠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평소 같았다면 바위에 등을 기대거나 아니면 평평한 곳에 잠시 눕는 소대원들이 있었을 텐데 모두가 허리를 세우고 사방을 주시하고 있다.

블랙잭 중동지역 관리자인 사우디 지사장 박호명에게 이곳 사정을 분명하게 설명한지 벌써 10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긍정적인 일이 있다면 GPS 수신기를 통해 어떤 신호가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잠잠했다.

‘돌아갈 수 있을까’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부상으로 전역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치열한 재활로 정상의 몸이 되자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결혼이었다.

군시절 사귀었던 남자와는 헤어졌다.

이후 결혼을 전제로 남자를 만나거나 같이 자리에 앉아본 일은 전혀 없다.

나이 먹어간다고 결혼을 하는 그런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의 서열이 있다면 맨 뒤에 있을 만큼 관심 밖이었다.

회복된 몸을 갖고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블랙잭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3년간 하사관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거액의 돈을 벌었는데 대충 10억은 넘을 듯싶다.

아프카니스탄에 탈레반 정부가 들어섰다고 용병시장이 종을 치는 건 아니다.

전쟁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어난다.

용병들의 주머니를 채워줄 달러는 지천이다.

“휴식 끝!”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고 주위는 완전히 캄캄해지고 있었다.

자정이 넘었다.

하루 종일 지금까지 쌓은 수많은 인맥을 찾고 동원하여 블랙잭 용병들 출국문제를 의논했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맥보란도 오후 3시쯤 연락이 닿았는데 철군문제는 자신의 권한 밖이라면서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저녁 아홉시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파키스탄 군부에서 국경을 넘어 자국영토를 침입한 정체불명의 인물 열일곱 명을 사살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박호명을 포함한 여러루트를 통해 알아 본 결과 다행히 블랙잭과는 관계가 없는 사건으로 밝혀져 한숨 놓았지만 걱정이 가신 건 아니었다.

카불 공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모두 끊어졌다.

당분간은 어느 누구도 아프카니스탄 자체를 들어갈 수가 없다.

팟!

마당의 운기조식 바위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권총수 눈이 빛났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파팟!

마치 번개처럼 강렬한 섬광이 피어나고 재빨리 번호를 누른다.

그쪽 시간은 아직 초저녁이다.

즉 결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쩌면 결례일지라도 전화를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신호가 가는데 얼른 받지를 않는다.

걸고 또 걸기를 무려 여섯 번째 일때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장군님, 사막의 흑새입니다.”

잠깐 놀라는 듯 호흡이 꺾어지는가 싶더니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오오, 나의 친구 사막의 흑새.”

파키스탄 최정예부대인 SSG를 이끌고 있는 어바시 소장이다.

작년에 준장에서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파키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

“미안합니다. 전화기를 바꾸면서 캡틴의 연락처가 빠졌습니다. 같은 전화로 계속 신호가 온다는 건 나와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받았는데, 앗 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앗 쌀라 말라이쿰!”

권총수는 서둘러 자신이 전화를 하게 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어바시 소장은 주저없이 말했다.

“로가르주면 파슈툰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군요.”

“맞습니다.”

파슈툰족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물론 전부가 아닌 일부지만 어떤 면에서는 탈레반보다 더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한다.

그런 그들에게 외세는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이 공격해야 할 적인 것이다.

그들은 아프카니스탄에 뛰어든 미국을 포함해 수많은 민간기업들과 보안업체 직원 모두를 적으로 본다.

일부는 아프카니스탄 국경을 넘어 탈레반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장 국경수비대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권총수는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바시오 장군과는 훈자마을에서 인연을 맺었다.

천왕중공업 소속 엔터프라이즈호 인질 사건을 해결하고 복귀하면서 조우한 것이다.

그때의 인연이 오늘 이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박 지사장!”

사우디 지사장 박호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권총수는 어바시 장군과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면서 파키스탄 국경수비대와 교신할 수 있는 주파수를 블랙잭 암호문으로 설명해주었다.

국경수비대와 블랙잭 용병들 사이에 교신 주파수로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어바시 장군이 보낸 것이다.

통화를 끝낸 권총수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가 막 넘어가고 있다.

요 며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육식귀원에 이른 고수이기 때문에 피로는 느끼지는 않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시간임은 분명했다.

후우!

또 한 개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줄 담배다.

지도상으로 국경까지는 5킬로가 채 남지 않았다.

양떼를 몰고 있던 탈레반과 조우 말고는 아직까지 이동은 무난했다.

그러나 워낙 신경을 끌어 올렸기에, 긴장 상태의 이동은 엄청난 피로를 가져왔다.

새벽 5시다.

이제 결정을 할 때가 왔다.

즉 대낮에 국경을 넘어야 하는지 아니면 밤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분명한 판단을 내릴 때다.

“지금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문도석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밤이야 말로 피아 오해를 살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어둠속에서 파키스탄 군과 조우를 하면 일단 방아쇠를 당겨야 할 것이고.”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해요.”

전상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문도석의 의견이 맞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야간에 만나게 되면 무조건 총격전이 벌어질 것이다.

설혹 총격전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오해를 살 수 있다.

침투와 기습은 야밤에 이뤄진다.

그건 적이라는 뜻이다.

낮에 접근하므로 그런 적대 행위를 피하자는 뜻에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이는 듯 표정들이 밝지 못했다

전상미는 소대원들의 얼굴을 쭉 살폈다.

소대원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선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수의 뜻에 따르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은 다르다는 걸 감추고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유 상사님!”

흑표 소대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마흔 한 살이다.

특전사에서만 잔뼈가 굵었고 잠깐이지만 전상미와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는 것 아닌가 싶군.”

많은 후배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더욱이 물이 부족한 지금 하루종일 기다린다는 것도 좋은 전략 같지는 않고.”

소대원들 수통의 물은 거의 바닥이다.

그야말로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마음으로 마른 입만 적시고 있었다.

“좋아요. 저기 나무 아래서 십분간만 휴식하고 곧바로 월경하죠.”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커다란 개잎갈나무, 일명 설송(雪松)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10분이란 짧은 휴식시간이지만 경계병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일반적인 휴식이라면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얘기 저런 애길 나누며 부드러운 시간을 가질텐데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파팟!

그때 전상미를 포함한 소대원들의 눈이 빛났다.

“무슨 소리지? 헬기 아냐.”

“헬기야!”

누군가 소리쳤고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 숨었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동쪽 하늘 끝으로 까만 점이 나타났다.

“뭐지.”

숨어 쌍안경으로 보던 전상미가 기종을 알아내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문도석에게 쌍안경을 넘겨준다.

“미군헬기는 아니야.”

“러시아야. Mi-8TVK.”

문도석이 소리쳤다.

Mi-8TVK는 러시아 육군 주력 공격헬기다.

사우디를 제외한 이슬람권이 그러하듯 파키스탄도 러시아 장비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공격기가 오고 있다는 건 여러모로 불길하다.

바위처럼, 나무의 일부인 듯 소대원들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헬기는 그다지 높이 날지 않았으나 금방이라도 공격을 퍼부을 듯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헬기는 한번을 끝으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날고 있었는데 전상미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헬기가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아프카니스탄 쪽으로 깊숙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짝 라인을 걸치 듯 가볍게 들어왔다가 곧장 날아가는 방식으로 정찰을 하고 있었다.

공격 헬기가 출동했다면 표적의 위치와 형태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보고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토록 오랫동안 먹잇감을 찾는 매처럼 날아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상한데요.”

문도석이 중얼거렸다.

그때 GPS수신기가 작동을 시작했다.

전상미는 수신기를 살폈는데 눈살을 찌푸렸다.

영어로 상당히 긴 단어가 반짝 거렸다.

계속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걸 보던 전상미가 무전기 사이클을 수신기에 나타난 숫자에 맞췄다.

순간 무전기에서 잡음과 함께 소리가 흘러나온다.

“블랙잭, 블랙잭!”

잡음이 심하긴 했지만 분명하게 블랙잭을 호출하고 있었다.

“여긴 블랙잭, 어딘가?”

“여긴 PK, 여긴 PK 블랙잭 응답하라.”

PK는 파키스탄의 국가 코드다.

GPS에 나타난 수신 부호와 맞아 떨어진다.

전상미는 자신있게 응답했다.

“블랙잭, 감도 양호하다.”

그러면서 재빨리 은신해 있는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아직 움직이지 마.”

믿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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