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7화 (497/651)

제497화: 탈출(1)

차탄구라고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데 인구 삼천여명 되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로가르주는 수도 카불 동쪽에 있는데 아프카니스탄 34주도 가운데 가장 적은 지역이지만 전략적 요충지이다.

이미 뉴스를 통해 들었지만 이 지역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악해야 하는 지역이다.

탈레반이 카불시내까지 들어갔다는 건 로가르주까지 완전 장악한 것이 분명했다.

좀 더 기다려보지 왜 서둘렀을까.

미군의 일 차 호송에 제외되면 두 번째 작전으로 카불공항 인근 K3지점에서 2차 수송기가 기다리고 있다.

물론 2차 수송기는 작전계획에 들어있을 뿐 백퍼센트 실행될지는 장담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지 않다면 기다려 볼 수는 있다.

“미군 측에서 계속 대기하라는데 탈레반은 더욱 공항을 중심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그래서 육로를 이용해 파키스탄으로 넘어간다는 전략입니다.”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쭈그리고 앉아 지도를 보면서 핸드폰은 귀에 바짝 대어있다.

파키스탄 고위 관리들과 탈레반 상층부 관계자들과는 무척 친밀하다.

물론 블랙잭에 대한 적대감은 탈레반만큼은 아니겠지만 파키스탄이라고 하여 쉽게 국경을 내어줄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장담 못한다.

“잘 알았습니다. 잠시 후 다시 통화하죠.”

권총수는 전화를 끊고 곧장 차로 돌아왔다.

부우우웅!

차를 끌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걸리면 죽는다.

탈레반은 지금 잔득 독이 올라있다.

특히 CIA대리인이 되어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용병들에 대한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여러 루트를 통해 용병들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닷새 전에는 다인코프 용병 일곱 명이 육로로 탈출하려다 붙잡혀 목이 잘린 사진이 뉴스 화면을 채웠다.

별일 없어야 한다.

부우웅!

차는 순식간에 터널을 빠져 나갔다.

서둘러 출근하는 권총수를 발견한 직원들 눈이 커졌다.

항상 환한 미소를 짓는데 지금은 잔뜩 굳어있다.

“채이사 오이사 출근했어요?”

“지금 휴게실에서 커피 마시고 있을 겁니다. 오시라고 할까요?”

“아니 내가 가지.”

권총수는 곧바로 복도를 걸어 직원들 휴게실이 있는 끝 방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민철과 채명천이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커피 한 잔 해?”

오민철이 커피를 뽑아 오겠다는 듯 자신의 잔을 놓고 나가려 하자 권총수가 말렸다.

“형 됐고, 조금 전에 리야드에서 전화가 왔어.”

“리야드? 거기 새벽일 텐데?”

그러면서 재빨리 휴게소 벽에 걸린 벽시계를 보았다.

블랙잭 용병들이 진출한 나라의 시간을 알리는 벽시계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새벽 3신데.”

권총수는 조금 전 박호명과의 통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 굳어버린다.

육로 탈출을 시도했다는 건 CIA에서도 어떻게 손을 써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오민철은 잘라 말했다.

“그런데 맥 서기관과는 통화 해봤어?”

“전화를 안 받아.”

오면서 몇 번을 걸었고 문자까지 보냈지만 소식이 아직 없다.

“뭐야? 피하는 거야?”

오민철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지금 카불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자국민과 자신들을 지원한 현지인들을 비행기로 태워 탈출 시키고 있지만 워낙 인원이 많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탈레반에 잡히면 무조건 총살이다.

더 많은 수송기를 보내고 싶지만 카불 공항의 여건이 좋지 않아 비행기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한 마디로 자신들 코가 석자이니 이쪽을 배려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젠장!”

오민철도 계속 맥보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되지 않자 인상을 썼다.

“이 사람 막판에 진짜 등 돌리는 거야 뭐야.”

오민철의 말이 거칠어진다.

권총수는 연신 침을 삼켰다.

뭔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정보를 끄집어 내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맥보란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

그건 CIA가 블랙잭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배신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인가.

수시로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 이미 탈레반의 보복이 시작되어 엄청난 사람들이 처형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외세와 가까이 한 자국민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공식 발표까지 나왔다.

“젠장!”

답답한 듯 투덜거리며 커피를 단숨에 비워 버렸다.

“대표님!”

직원 한 명이 급히 들어왔다.

“조금전 KAS(Kilo Alpha Services)소속으로 추정되는 시신 이십여 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입니다.”

아무리 전투력이 뛰어난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대책이 없다.

그 지역이나 국가가 전복되어 버리면 모든 지원이 일시에 끊어져 버린다.

더군다나 조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주위 지역민들도 재빨리 돌아선다.

그들에게 협력한 자신들의 죄가 드러날 걸 우려해 앞 다퉈 상대에게 밀고를 해버리기 때문이다.

휴게실 공기는 아침부터 얼어붙었다.

카불 동쪽으로 있는 로가르주 차탄구를 빠져나가는 행렬이 있었다.

터번을 얼굴에 감고 펄럭 거리는 통 넓은 토브를 걸친 사내들의 모두 스무 명이었다.

험준한 산길이다.

바위와 가시나무 넝쿨이 범벅이 된 산길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부상을 입을 것 같다.

파키스탄 국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

하지만 산을 관통하는 건 길목 곳곳에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를 급조폭발물이나 탈레반의 매복을 염려해서이다.

물도 비상식량도 떨어졌다.

누구도 입을 열거나 말하지 않고 앞 사람만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소대장님!”

맨 선두에서 걸어가던 흑표소대장 전상미는 첨병으로부터 걸려온 무전을 받았다.

“뭐죠?”

“탈레반인지 민간인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10여명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전투준비!”

헤드셋을 통해 명령을 전달하자 뒤따르던 소대원 모두가 각자 엄폐물을 찾아 몸을 낮췄다.

전상미는 자세를 낮추고 전방을 향해 걸어갔는데 커다란 바위 뒤에 첨병으로 나간 문도석이 있었다.

“저기 보시죠!”

그러면서 1시 방향을 가리켰다.

자신들이 지나가야 할 코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양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런데 12시 방향으로 서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정확히 아홉 명의 무슬림 복장을 한 사내들이 앉아 얘길 나누고 있었다.

오십여 마리밖에 되지 않는 양들인데 사람은 아홉 명이다.

물론 아프카니스탄 생활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기에 양떼라고 하여 수백 마리가 되고 그러는 건 아니다.

땅이 워낙 건조하여 초지가 모자란데다 가난하여 양을 많이 키우는 집이 보통 십여 마리였다.

더 적은 마릿수를 키우는 농가도 많으므로 아홉 명이란 사내, 즉 주인이 많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긴박하고 블랙잭 용병들을 보는 즉시 사살하라는 탈레반의 우두머리 하이바툴라 아쿤자다 명의의 명령이 떨어졌다.

블랙잭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아프카니스탄 영토에 들어와 활동하던 아카데미 다인코프 KAS를 포함한 스무 곳 가까운 보안기업 직원들은 살려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 아카데미였다.

40여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다인코프와 KAS, 베텍, HART등 굵직한 회사들의 인명손실이 적지 않았다.

한데 모아 철수를 시키면 자칫 대형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그래서 소대 분대 단위 형태로 쪼개 철수 시키다 보니 전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허나 가장 결정적인건 그들과 유착했던 지역 토호들과 주민들이었다.

누구보다도 그들에 대해 잘 아는 그들의 고자질은 매복이나 함정과 같은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나마 아직까지 블랙잭은 탈레반으로부터의 어떤 공격을 받지는 않았고 고자질도 당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혈안이 되어 쫓고 있다.

“일단 통과해.”

정상미의 지시에 문도석이 돌아본다.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시선이었다.

전상미는 왼쪽 11시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암벽군이 몰려 있는 험준한 바위산이다.

안전장비가 턱 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바위산을 넘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산등성이 고개를 넘어가려면 나무 아래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밤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주간이다.

지금은 야간 주간을 가리는 것보다는 한 시라도 빨리 파키스탄 국경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했다.

“출발!”

전상미의 명령이 내려졌다.

용병이라고 하여 지휘자의 명령을 거절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흑표 소대원들은 언제든지 상황이 발생하면 응전할 수 있도록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진행방향을 고수하며 걸어간다면 나무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져 지나간다.

한두 사람이 아닌 스무 명이 가는 길이니 그들이 돌아볼 것이다.

전상미는 쉬지 않고 쌍안경을 이용해 나무 아래 있는 양치기로 보이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이상하군’

전상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지만 떠들고 있긴 했다.

헌데 단 한 사람도 웃거나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무려 아홉 사람이 앉아 얘기를 하는데 웃지 않는다는 건 한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치기들이 무슨 긴장할 일이 있는가.

전상미는 헤드셋을 끌어당겨 나직하게 말했다.

‘내 명령이 없어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방아쇠를 당겨도 좋아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특수부대 출신들이고 교전 경험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의 느낌과 시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

또한 마지막으로 퇴각하는 마당이므로 매사를 공격적으로 보는 것이 좋다.

툭!

누군가 돌멩이를 건드렸다.

굴러가는 돌멩이 소리에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얘기를 나누던 사내들이 바라본다.

전상미는 한 손을 들어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적의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행동이었는데 사내들은 표정이 없었다.

‘사격준비’

전상미는 적이라는 걸 확신했다.

사내들 손이 꿈틀 거리듯 움직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데 갈색의 칸두라를 걸친 사내들 손이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와 달리 이런 산악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활동성을 감안하여 통 넓은 바지나 헐렁한 칸두라를 걸친다.

그러므로 그 속에 총 한 자루 숨겨봤자 밖으로 표시도 나지 않는다.

드르르륵!

전상미가 선제사격을 했다.

때를 같이하며 소대원들의 HK-416이 불을 뿜는다.

오랫동안 교전할 것도 없었다.

워낙 정확한 사격을 사랑하는 블랙잭 용병들에게 아홉 명의 사내는 순식간에 나뒹굴었다.

전상미와 소대원들이 다가갔다.

여기저기 AK소총이 떨어져 있었다.

먼저 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위장한 탈레반이었던 것이다.

툭!

한 명이 아직 살아있다.

전상미가 군홧발로 옆구리를 걷어찼는데 자신을 보라는 뜻이었다.

슥!

전상미는 옆구리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윽!

사내의 뺨에 문지르며 입을 열어 물었다.

“탈레반인가?”

사내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우리가 여길 지나갈 줄 알았지?”

“카불에서 공항이 아닌 육로로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로가르주 뿐이오.”

그건 이미 여기뿐만이 아니라 로가르주 곳곳에 탈레반이 함정을 파놓거나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