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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6화 (496/651)

제496화: 깨어나지 못하는 밤(2)

중요한 일이라면 아무리 일방적인 통보라고 해도 채 십 분의 면회도 않고 떠날리 없기 때문이다.

“회장님!”

“그냥 갔어요.”

“네에?”

“건강 조심하라면서, 담배는 폐에 직격탄이니 금연하라는 충고까지 하더군요.”

장웅철은 눈을 깜빡거렸다.

무슨 뜻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원수끼리 만나 건강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는 건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정말입니까? 그렇게 말했단 말입니까?”

“어디 있었다고 했지?”

“파리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놈의 천왕물산 지분은 몇 퍼센트라고 했소?”

“처음에는 2퍼센트 조금 넘었는데 지금은 11퍼센트까지 늘어났습니다.”

11퍼센트라는 말에 권악수의 눈이 커졌다.

“참고로 외국 투기자본의 지분율은 처음보다는 조금 떨어진 대신 권총수의 지분이 높아지고 있죠.”

권악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놈은? 전철해?”

“천왕물산 대표이사 요즘 떵떵 거리더군요.”

“장 법무팀장.”

권악수 눈빛이 가라앉았다.

조금전 권총수를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달리 묵직하면서도 차갑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으라는 말 있죠? 나 8.15특사로 나가 그 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장웅철의 눈이 좁혀졌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두 번 다시 그놈 쌍판 보지 않겠다는 뜻이오.”

화악!

장웅철의 눈이 커졌는데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전철해를 보기 싫으니 없애 버리라는 뜻이었다.

“그건, 안...!”

안된다고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권악수에게 남은 건 오로지 원한밖에 없다.

적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여 없애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전철해를 나가기 전까지 죽이라는 뜻이다.

돈 받고 사람 죽이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지천이다.

앞서서는 권철악과 일을 했고 이어 권악수 밑에서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양아들이지만 어쨌든 권철악과 권악수는 너무 닮은 구석이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주문하는 일의 내용도 엇비슷한데 주로 청소였다.

특히 청소는 동남아 쪽에 부탁하면 백퍼센트 성공한다.

어차피 그들은 잡혀 봤자 사형이나 종신형 따위는 받지 않는다는 한국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달려든다.

잡히면 20년이고 안 잡히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는 일이니 얼마든지 해 볼만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권악수가 말을 끊고 잠시 머뭇거린다.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권총수를 어떻게 보시오?”

장웅철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빛냈다.

어떤 면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인가.

권총수는 자신도 알만큼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지금 권악수가 던진 질문은 결코 안다는 것에 국한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힘으로 정리 되겠소?”

장웅철의 눈이 좁혀졌다.

어쩌면 자신이 권악수 곁에 있는지 이십여 년 가까이 됐지만 가장 솔직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권총수가 자신이 상대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이다.

장웅철은 어금니를 물었다.

진짜는 전철해가 아닌 권총수다.

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거물이 되어버렸고 신체에 기이한 능력까지 지녔다.

권총수가 살아있는 한 권악수는 영원히 불편할 것이다.

꼴보기 싫은 사람과 얼굴 마주하며 사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건 없다.

권총수도 청소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전철해와 급이 다르다 보니 마음만 먹는다고 해결이 되는 상대는 아니다.

권악수의 말뜻을 알아 차렸지만 시원한 대답을 못하는 이유다.

“우리와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장웅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전 한 사람을 만났소. 운동시간에 담장 아래를 산책하고 있는데 외국인 남자 둘과 한국인 세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장웅철은 눈을 빛냈다.

“날 알아본 사내들이 눈인사를 했소. 그냥 지나치려다 인사도 받고 했으니 한마디 건네려고 다가가 외국인들에 대해 물었소.”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어디서 왔고 무슨 죄를 지어 한국 교도소에 수감 중이냐는 말에 두 사내는 슬쩍 웃더군요. 그때 같이 있던 한국인 사내가 ‘회장님 이들은 솔른쳅스카 브라트바’입니다 라고 하더군요.”

장웅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른침까지 삼키는 걸 보면 뭔가 알고 있는 듯 했다.

“솔른쳅스카 브라트바를 아십니까?”

“약간, 얘기는 들었습니다.”

“장 팀장이 안단 말이오?”

“알고 있다기 보다는 몇 번 해외출장을 다니다보니 이 사람 저사람 만나고 그렇게 스치듯 지나간 사람들 중 그들의 흔적이 조금 있지요.”

아는 사람까지 있다는 뜻이다.

권악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인데 어서 말해보라는 의미였다.

“저도 제3자를 통해 들었습니다. 2008년 기준으로 조직원 5,000명 이상라고 했으니 지금은 훨씬 더 커졌을 것입니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마피아 최대 조직입니다. 얼마전 포춘지에서 세계 범죄조직들 중 마피아 삼합회 야쿠자를 제치고 수익 1위로 꼽을 정도로 자금력도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입니다.”

권악수의 눈이 커졌다.

“보스는 세르게이 미하일로프이며 그 아래로 조직의 의사결정기관인 붉은 왕들(Red King)로 불리는 12명의 두목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하더군요.”

권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웅철의 설명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듯 보인다.

“오랜만에 희망찬 소식을 듣는군.”

권악수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당장 그들과 접촉하여 권총수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권총수와 채명천 문영출이 앉았고 맞은편에는 한 명의 백인과 동양계인데 중국말을 쓴다.

천왕물산의 주식 5퍼센트를 가진 프로덱터 자산운용의 실질적 대표인 피롤노이고 중국인은 홍콩 투자은행 그랜드슬램의 경영안전부장 추덕흠이다.

그랜드 슬렘은 천왕물산의 주식 6.1퍼센트를 가진 대주주다.

오랫동안 얘기를 나눈 듯 각자 앞에 놓인 생수병의 물이 거의 바닥이다.

“보시죠!”

문영출이 블랙잭을 대표하고 피롤노와 추덕흠이 서로의 서류에 싸인을 하더니 넘겨주었다.

문영출은 둘로부터 받은 서류를 자세히 살핀 뒤 미소를 지었다.

“됐습니다.

문영출은 서류를 가지런히 앞에 놓는다.

“대표님.”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앉은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두 회사가 갖고 있는 천왕물산 주식 전량을 매수한 것이다.

권총수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법무팀장 장웅철은 어군 문 앞에 있었다.

일행인 세 명의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장웅철의 입에서는 연신 고마움에 대한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집권여당 중진들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법무부 제1차관인데 권악수가 8.15특사로 나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이었다.

잠시 후 세 사람을 태우고 갈 차량들이 다가와 섰다.

두 명의 여당 중진들이 악수를 하고 먼저 떠났고 법무부 제1차관의 승용차가 맨 마지막으로 떠났다.

장웅철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세 대의 차량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를 찾아 꺼낸 장웅철은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또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이번에는 라이터를 찾는 것이다.

딸칵!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인 뒤 길게 연기를 뿜었다.

푸우!

그건 연기를 뿜어낸다기 보다는 어려운 일처리를 끝내고 나서 토해내는 후련함이었다.

권악수의 8.15 사면을 위해 만난 사람만 일백 명이 넘는다.

전직 검찰총장을 비롯해 현 국회의장을 만났고 청와대 비서관들은 물론 국회의원과 법무부 고위 관리까지 그들을 상대하는데 백억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다행이 로비는 성공했고 이제 곧 권악수는 나온다.

그리고 이제 권악수가 나오기 이전에 처리할 일이 있다.

어쩌면 이 일이야 말로 백억을 뿌리며 성공한 로비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 절대과제였다.

적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정신은 총총했다.

툭!

차량 한 대가 다가오고 장웅철은 담배 꽁초를 밟아 끈 뒤 차에 올랐다.

부우웅!

벤츠 S클래스는 소리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전 팀장님 메일로 보냈습니다.”

운전사가 말했다.

장웅철은 핸드폰을 열어 운전기사 조기동이 보낸 메일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조기동은 룸미러를 통해 장웅철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을 봐서는 장웅철이 자신이 보낸 내용에 대해 흡족해하는지 못마땅해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건 얼굴 어느 부분 하나 찡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일 들어온다고?”

“이런 일은 빨리 끝낼수록 좋은 것이라면서 그쪽에서 서둘더군요.”

“으음!”

장웅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내용을 살피고 나서 물었다.

“뭐하는 친구들이야?”

“바이킹이라는 태국 갱단입니다. 알려진 대로 절반은 착수금으로 보내고 일 끝나면 나머지를 달라더군요.”

탁!

장웅철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딸칵!

담배를 피워 물더니 유리를 내렸다.

차 안으로 밤바람이 밀려 들어왔고 뱉어낸 연기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뺨을 후려친다.

‘끝까지 한번 가봐야지’

여기까지 왔다.

가다가 그만 두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이 권악수의 지론이다.

말 그대로 기호지세(騎虎之勢)인 것이다.

‘이번 싸움을 이기면 살고 만약 고꾸라진다면 62살을 일기로 인생 종치는 거지’

장웅철의 입가에 먹물같은 미소가 맺히더니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건 꿈이다.

인생은 꿈을 좇다 끝나는 것이라는 사법연수원 시절의 어느 선배 법관의 말이 오늘따라 귓가를 때린다.

“아참 그리고 비행기 표는 예매해 놨습니다.”

“오늘 많이 바빴겠어.”

수고했다는 말로 운전기사 조기동을 칭찬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출근이다.

흰색 랜드로버를 몰고 집을 나온 권총수는 신호에 걸려 멈춰 있었다.

지이잉!

그때 조수석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자지러진다.

핸드폰 액정을 살핀 권총수 눈이 커진다.

국제전화인데 사우디 지사장 박호명의 전화였다.

때 마춰 신호가 바뀌었고 권총수는 방향 지시등을 켜고 차를 길 오른쪽으로 세웠다.

비상라이트를 켠 채로 통화를 시도했다.

“무슨 일이오?”

사우디 리야드는 지금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 것이다.

“아프칸 말입니다. 철수를 해야 하는데 문제가 적지 않을 듯 싶습니다.”

“CIA와 협조하여 항공편으로 빠져나오기로 했잖습니까?”

“그렇게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미군을 지원한 아프칸 국민들이 너무 많이 항공편을 차지하여.”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블랙잭 용병은 2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카불이 함락되기 직전 맥보란으로부터 귀띔을 받고 본대랄 수 있는 100여명은 철수했다.

나머지는 현지에 남아 중요한 정보자료를 폐기하고 블랙잭을 지원하고 도왔던 현지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비행기 좌석이 없단 말입니까?”

“현재는 그렇습니다.”

권총수는 전화기를 든 채 차문을 열고 나왔다.

가장 중요한 사태다.

“팀은 지금 정확히 어디 있습니까?”

“미군측으로부터 아직 분명한 답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동 중입니다. 정확한 위치는 차탄구입니다.”

“차탄구면 로가르주 아닙니까.”

덜컹!

재빨리 조수석 문을 열어 콘솔박스를 당겼다.

그 안에 여러 가지 서류가 있는데 왼손으로 뒤지더니 지도 한 장을 꺼내 길 바닥에 펼쳤다.

출근길 시민들이 지나가며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지도를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한곳에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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