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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1화 (491/651)

제491화: 노트정리(2)

리웨핑은 얼떨결에 받아 들였고 자신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욱!

역시 독하다.

한 모금 빨았을 뿐인데 목에 턱 하니 걸린다.

순간적으로 눈 앞이 핑 도는 느낌이 들면서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난다.

그런데 묘하다.

피울수록 답답하던 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고 목구멍이 개운해졌다.

사막의 흑새 문제로 골치 아팠던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씻은 듯 사라진다.

허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담배가 필터 가까이 타들어갔을 무렵 리웨핑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툭!

쥐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더니 온 몸을 크게 떨었다.

부들부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리웨핑은 입에서 거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어 쿵 소리를 내며 길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바르르!

온 몸을 더욱 거세게 떨면서 눈을 까뒤집었다.

“누...누구?”

아직 정신이 있는 듯 심한 경련을 하면서도 누구냐고 질문을 던진다.

노인은 피우던 담배를 껐다.

“글쎄요. 내가 누굴까? 혹시 들어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사막의 흑새라고.”

털썩!

리웨핑은 소스라치며 물고기처럼 몸을 크게 요동했다.

푸푸푸!

입에서 나오던 거품이 붉게 변했다.

그건 몸속의 상태가 극히 악화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신?”

리웨핑은 말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밖으로 흘러나오는 건 몇 마디 되지 않았다.

“내...내가 왜?”

담배를 피웠을 뿐인데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묻는다.

“VX 아시죠?”

VX는 신경작용제의 일종이다.

무취 무미이며 연한 갈색을 띤다.

영국에서 살충제로 개발했다가 인체에 너무 유해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용 금지되었다.

액체 상태에서는 공기에 노출되어도 좀체 증발하거나 기화하지 않고 오랫동안 잔존한다.

담배에 액체 상태의 VX를 묻혀 말렸다.

습기는 말랐지만 다량의 VX가 담배속에 있었고 리웨핑은 의심없이 피운 것이다.

“아, 한 가지 귀띔해 드릴 것이 있습니다. 센강에 빠진 오홍보 공사는 내가 죽인 모양입니다.”

움직임이 없다.

호흡이 끊어졌는데도 리웨핑의 입에서는 계속 붉은 피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팟!

권총수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새벽.

갑작스런 정전으로 병원은 혼란스러웠다.

비상 발전기를 돌려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가까스로 기능을 회복했지만 일부 병실은 발전기의 전압이 약해 제대로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측의 연락을 받고 전기회사에서 긴급 복구팀이 도착했다.

검정색 밴이 도착했고 십여 명의 작업복 차림의 기술자들이 내려 차에 실린 연장통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병원 현관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다섯 명의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이 내려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는 비상구를 알리는 전등만이 켜져 있어 상당히 어두웠다.

사내들은 손에 휴대용 후레쉬를 켜고 복도를 걸어갔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휘어진 복도를 따라 돌아간 사내들의 걸음이 멈추고 후레쉬 하나가 병실 문을 비추었다.

‘677’

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사내들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푸슉!

바람을 뚫는 소리가 났다.

슉!

슈슉!

눈 깜짝할 사이에 앞장서 들어가던 네 명의 사내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는데 숨이 끊어졌다.

유일한 생존자인 3등 서기관 리거창은 얼어붙어 버렸다.

시력이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 졌다고는 하지만 병실은 캄캄했다.

그나마 복도는 비상구를 알리는 전등이라도 있었지만 병실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먹물이었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모두 네 발의 소음기소리가 울렸고 네 명이 쓰러졌다.

한 발에 한 명씩 겨눴다는 뜻인데 그건 이쪽을 정확히 보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뜻이다.

리거창은 야시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조금씩 어둠이 익숙해지면서 깜짝 놀랐다.

사람이다.

야시경 따위는 쓰지 않고 있었다.

그때 복도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았지만 리거창은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잠깐 들어갑시다!”

문 입구를 막아선 자신을 한쪽으로 밀치며 두 사내가 들었다.

“모두 제거 했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뒷모습이지만 체구가 단단했고 허리가 꼿꼿했다.

“정전 사태는?”

“곧 회복되리라 봅니다. 경찰에 사건을 넘겼습니다.”

리거창의 눈이 커졌다.

사내들은 지금 오늘밤 작전에 나선 자신들을 두고 하는 얘기임이 틀림없었다.

오늘밤 열 명이 왔다.

다섯 명은 공격조이고 다섯 명은 공격이 끝날 때까지 고장 난 전기 시스템을 고치는 척 할 것이다.

이쪽에서 작전 성공 메시지를 보내면 곧장 철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파팟!

그때 전기가 들어오고 실내가 훤해졌다.

다섯은 기술자로 위장만 했을 뿐 전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즉 지금 전기가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이미 진짜 기술자들이 다시 도착했고 응급 복구를 마쳤다는 뜻이었다.

“허흡!”

리거창은 다급한 신음을 흘렸다.

권총수다.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데 손에는 글록 19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침대가 텅 비었다는 것이다.

‘아아!’

리거창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자신들이 덫을 놓은 것이 아니라 권총수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까?”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려운 일 아니죠. 난 당신이 누군지 잘 알고 있으니까.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이죠. 3등 서기관이란 신분이고.”

리거창의 눈빛이 흔들린다.

“병원전기도 당신들이 끊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프랑스 전력회사 기술팀을 중간에 제거하고 그들이 타고 오던 밴을 탈취한 것 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리거창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어제 밤부터 난 당신을 24시간 쫓고 있었습니다.”

해외 대사관에 화이트 요원으로 파견될 정도면 나름대로 문무를 겸비해야 한다.

여기서 문무란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도 풍부해야 하고 정보원으로서 신체적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며 감시하고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육식귀원에 이르렀다.

탈 인간의 경지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중국대사 리웨핑을 제거하고 곧바로 리거창을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맥보란을 통해 그가 중국 대사관 화이트 요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어떤 작전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그가 주도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보법을 이용해,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신법으로, 그리고 가까이 접근할 때는 잠영술로 감시했으니 그가 나눈 얘기를 포함한 모든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오민철을 다른 병실로 옮긴 것도 모든 속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이잉!

전화가 울렸고 권총수는 통화를 시도했다.

잠시 듣고 있더니 알았다면서 끊는다.

“프랑스 경찰이 오고 있다는 군요.”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살려주면 면책특권으로 빠져 나갈지도 모르고.”

푸슉!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리거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퍼어억!

리거창 역시 같이 온 일행처럼 바닥에 엎어졌다.

권총수는 다섯 구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파리도 지겹군’

그리고 천천히 병실을 걸어 나갔다.

오민철이 퇴원을 했다.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그다지 불편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먼저 귀국하도록 종용했지만 지소현은 버텼다.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 없다면서 올 때처럼 파리를 떠날 때도 오민철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엄청난 폭풍을 맞고 난 탓일까.

지소현은 불과 20일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굉장히 침착하고 차분했다.

이번 사건으로 용병들의 세계가 야전을 뛰고 달리는 전쟁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납치하고 협박하는 것도 용병시장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르 밀리유 조직에 성공하면 오백만 유로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실패해도 이백만 유로를 받기로 한 르 밀리유는 기쁜 마음으로 오민철을 기다린 것이다.

오민철에 대한 모든 소식은 한국 주재 중국대사관으로부터 전달 받았다.

프랑스 영토, 그것도 수도 파리에서 독자적으로 오민철을 납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권총수를 잡기 위한 미끼이기 때문에 감추려 해도 금세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중국과 프랑스의 외교마찰은 물론이려니와 엄청난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프랑스 영토에서는 프랑스 사람이 일을 벌이는 것으로 작전을 바꾼 것이다.

르 밀리유 갱 조직이 오민철을 공격한 건 그런 사연이 있었다.

차량들이 속속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무장을 한 사내들이 매서운 눈으로 저택 곳곳을 살피며 돌아다녔고 자신들끼리 주고받는 무전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르 밀리유가 프랑스 밤을 장악한 이후 이토록 비상사태에 놓이긴 처음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프랑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열한 명의 보스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대보스 그리즈만의 좌석은 아직 비어 있었다.

삐걱!

출입문이 열리고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그리즈만이 나타나자 열한 명의 지역 보스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즈만은 비서가 뒤로 빼내준 의자에 앉았고 곧장 시가를 피워 물었다.

특유의 가느다란 눈에 떴는지 감았는지 구별이 안 되는 얼굴로 시가를 빨았다 뱉기를 반복했다.

대보스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방안의 공기는 더욱 얼어 붙었다.

두꺼운 시가를 삼분의 일 쯤 태웠을 때 그리즈만의 입이 열렸다.

“로랑!”

왼쪽으로 첫 번째 앉아있던 비서 로랑이 고개를 돌렸다.

“몇 명이지?”

“열일곱 입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올라온 지역 보스들은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 내용을 알지 못하는 듯 눈을 빛냈다.

“십칠!”

그리즈만은 나직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데샹!”

그러자 오른쪽으로 앉아있는 마흔 초반가량 되어 보이는 비쩍 마른 사내가 공손히 대답했다.

“예 보스.”

“낭트는 안녕한가?”

낭트는 북서부에 위치하며 프랑스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인데 밤은 그에게 입법 사법 행정권을 모두 부여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고민하는 듯 눈을 깜빡 거리더니 데샹은 조용히 말했다.

“큰일은 없습니다.”

“그래야지 큰일이 없어야 좋은 거야. 가정이든 회사든 시끄러우면 좋지 않아. 말썽 많은 집구석 잘되는 것 봤나?”

“못 봤습...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다.

시끄럽고 말썽 많은 집구석이란 다름 아닌 요즘 르 밀리유를 놓고 하는 말이다.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뱉어낸 말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맞다고 장단을 맞춘 꼴이다.

“데샹, 자네가 보기에 어떤가? 우리 조직이 망할 것 같은가?”

“보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결코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물론이네. 자네가 어떤 사람인데 우리 조직이 망하길 바라겠나.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데샹은 식은땀을 흘렸다.

요즘처럼 시끄럽고 조직이 흔들릴 만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을 때일수록 말 한마디 뱉는데 신중해야 한다.

스윽!

그리즈만은 시가를 끄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즈만은 창가로 다가가더니 넓은 저택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무장 경호원들이 눈에 띄었고 오늘 모인 지역 보스들이 데리고 온 경호원들이 타고 온 차량에 앉아있다.

“열일곱 명이 죽었네. 그것도 한 놈에게 말일세.”

그리즈만이 돌아섰다.

“자네들도 얘긴 들었을 거야. 어쩌면 좋겠나? 좋은 생각들 있으면 한마디씩 말해 보라구.”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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