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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90화 (490/651)

제490화: 노트정리(1)

말은 않고 있으나 지소현은 지금 어서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게 어쩔 수 없이 파리는 이제 악몽의 도시로 각인되었다.

아마 평생 파리는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해외여행 자체가 끔찍한 트라우마가 되어 그녀를 괴롭힐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시 남편을 도시의 전쟁 속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형수님!”

내공을 담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만들었다.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지소현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진다.

“네 총수씨!”

“이제 걱정 하지 마세요. 곧 형님과 같이 귀국하시게 될 것입니다.”

“네, 알아요.”

“불편하더라도 병원에 오 이사님과 같이 계시죠. 프랑스 경찰에서 신변 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믿을 수가 없고.”

오민철과 같이 있게 한다는 말에 지소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오민철과 더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오민철 역시도 지소현이 옆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권총수는 오민철의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힘내라는 듯 격려를 해주었다.

권총수는 이창덕과 공태성에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주차장에서 랜트한 랜드로버를 끌고 나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 있는 채명천이다.

“그쪽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지금 바로 멜로 보내죠.”

“수고하셨습니다.”

“오이사는 이제 안전 한 거죠?”

“다행히!”

채명천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간략하게 국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중 가장 귀에 들려오는 건 천왕물산이었다.

“약속대로 전해철쪽이 경영권을 잡는데 성공했고 우리쪽 이사도 파견되었습니다.”

권총수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채명천이 말했다.

“잘못된 것이라도?”

“아닙니다. 갑자기.”

“갑자기 뭡니까?”

권총수가 머뭇거리자 채명천이 추궁하듯 말했다.

“우리 사이에 비밀 없기로 했잖습니까?”

권총수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천왕물산이 탐나는 모양이죠. 염려 마십시오. 문영출 관리부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문제없도록 차근차근 하라고 하세요.”

전화를 끊고 메일을 확인했다.

세 명의 사진이 있고 그 밑으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리웨핑’

‘오홍보’

‘리거창’

그리고 맨 아래 세 사람의 직책이 적혀 있었다.

세 사람의 직책과 메일로 보내진 신상내용을 살피는 권총수 표정이 돌덩이처럼 차가워졌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끄고 완전히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멀리 센강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리웨핑은 대사, 오홍보는 공사, 리거창은 참사관.”

권총수는 들릴락 말락 혼자 중얼거렸다.

“대사관 서열 1,2,3위가 직접 관여했단 말이지.”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회의가 열렸다.

거의 포획했던 사냥감이 포위망을 벗어났다.

한번 놓친 사냥감을 다시 잡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사람을 납치하고 감금하는데 이골이 났다는 프로들인데도 놓친 것이다.

상처입은 맹수는 무섭다.

더욱 흉포하게 날뛰고 공격력이 강해지며 두 번 다시 포위되는 일을 당하지 않는다.

회의는 세 시간째 진행되고 있었지만 뾰족한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는다.

“몇 명이 죽었다고 했나?”

머리를 바짝 빗어 올린 쉰 가량의 사내가 입을 열어 물었다.

파리주재 중국대사 리웨핑이다.

“열 명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열 명!”

리웨핑의 눈이 커졌다.

르 밀리유는 프랑스 최고 갱단이다.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고 프랑스 경찰과 심지어 군 정보부에서까지 궤멸에 나서고 있지만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마피아처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회 지도층인사들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기에 도무지 끊어 낼 수가 없자 프랑스 경찰 고위 간부가 탄식했다고 한다.

“열 명을 죽였는데 증거하나 없단 말인가?”

“그는 살인을 할 때 절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얼굴 또한 항상 다르죠. CCTV에 찍힌 얼굴도 모두가 틀리고 과학적 분석에도 변장했다는 증거나 흔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속수무책입니다.”

중국 정부차원의 제거대상 일호이지만 남의 나라에서 어떤 작전을 펼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치안체계가 허술하고 외교적 역량이 뛰어나지 않는 나라 같으면 직접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다.

그러나 여긴 프랑스다.

아차하여 실수라도 한다면 외교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일 뿐 아니라 한 때 수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두었던 제국이다.

그래서 쓴 편법이 프랑스 르 밀리유 갱단에서 붙잡아 넘겨주면 그때 홀가분하게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일이 단단히 뒤틀려 버렸다.

“놈은 지금 어디 있나?”

“아직 파리에 있는 것으로만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사님!”

참사관 리거창이 입을 열었다.

“그나마 지금으로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원을 노리는 것입니다.”

모든 시선이 리거창에게 몰린다.

그는 서기관이자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의 화이트 요원이다.

“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프랑스 경찰에서 경호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삼엄하지는 않습니다.”

리웨밍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리는 없지만 설혹 실패하여 요원 중 체포된 사람이 있어도 안전부 소속이라는 건 결코 드러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얼마든지 파리를 여행하기 위해 들어온 관광객으로 위장할 수 있습니다.”

리거창은 자신이 갖고 있는 계획을 말했다.

리웨밍을 포함한 모여있는 관계자들 눈이 커졌다.

리거창의 계획이 나름대로 기대해볼만 했기 때문이었다.

대사관 문이 열리고 승용차들이 한 대 두 대 나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퇴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검정색 렉서스가 나온다.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은 머리가 벗겨진 마흔 중반 가량 사내였는데 자색 뿔테 안경에 상당히 뚱뚱했다.

대사 다음으로 직위가 높은 이른바 넘버 투 인 오홍보 공사이다.

오늘 밤 중국인의 밤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렀다.

원래는 대사 리웨핑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일이 바빠 대신 자신이 가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은 대략 10만 명이다.

그중 파리에 4만 명이 몰려 산다.

오늘 모임의 장소는 샹그릴라 호텔이다.

호텔이 있는 트로카데로까지는 대사관에서 20여분 걸린다.

물론 차량이 막힌다면 좀 더 걸릴 수 있지만 차안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들으면 오늘은 비교적 퇴근길 차량 소통이 원활하다고 했다.

신호가 바뀐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 멈췄다.

쫓기는 시간도 아니고 굳이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욱이 중국외교부는 해외근무자들의 근무 평점에서 그 나라의 교통질서를 비롯한 경범죄 처벌 전력에 큰 무게를 둔다.

외교관들이야 말로 국위선양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모든 행동과 생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횡당보도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오홍보는 횡단보도 정지전 앞에 멈춰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중 한 사내를 보았다.

자신의 차량 앞을 지나면서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앞이마를 덮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내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홍보는 사내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쳐다보다 뒷 차가 빵 하는 소리에 출발했다.

부우웅!

두 곳의 교차로를 더 지나면 센강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야 호텔에 갈 수 있다.

신호로 인해 앞을 달리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속도가 높아졌고 저 멀리 센강을 건너는 퐁 상쥬 다리가 보인다.

다리로 진입하는데 또 하나의 교차로가 있다.

묘하게 이번에도 노란 불이 들어왔다.

그러나 속도를 더욱 높여 교차로를 통과하여 다리에 진입했다.

“어엇!”

운전을 하던 오홍보의 눈이 커졌다.

교차로를 빨리 통과하기 위해 가속 폐달을 밟았다.

시속 100킬로 가까운 속도로 교차로를 지난 오홍보는 속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가속 폐달에서 발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계속 가속 폐달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의 속도는 더욱 올라갔고 바늘이 120을 넘어버렸다.

발을 떼야 한다.

오홍보는 온 힘을 다해 오른발을 움직이려 했지만 자신의 신체가 아닌 듯 미동을 하지 않았다.

콰앙!

속도가 빠르다 보니 앞차를 들이 받지 않을 수 없었고 충돌의 여파로 핸들이 틀어졌다.

쿠쿵!

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을 치면서 승용차는 강물로 날아갔다.

풍덩!

비온 뒤 흙탕물 가득한 센강은 오홍보의 승용차를 순식간에 삼켜 버렸다.

파리주재 중국 대사 리웨핑이 오홍보의 사고 소식을 들은 건 밤 8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병원에 입원한 오민철을 어떻게 공격할건지 치열한 논의를 끝내고 퇴근 하는 차 안에서였다.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파리 경찰청 고위 간부인 마투이디였다.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겠소!”

전화를 끊고 난 대사 리웨핑은 방향 지시등을 켜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중심가가 아닌 외곽 변두리이기 때문에 도로는 넓었고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다.

차에서 내린 리웨핑은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너무 충격이다.

예상치 못한 전화였기에 잠시 가슴을 달래기 위해 멈춘 것이다.

과학수사본부에서 정밀 감식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일단 운전부주의에 의한 사고로 본다고 했다.

아주 멀쩡해서 나갔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지병이 있는 건 더욱 아니었다.

왜 하필 오늘이란 말인가.

딸칵!

리웨핑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금 베이징의 모든 관심은 이곳 파리에 집중되어 있다.

이유는 이라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참패를 당한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한 복수다.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여전히 중국군은 수적 우세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에 능할 뿐 현대전에는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극단적인 비아냥까지 더 타임즈에 실렸다.

G2.

Group of 2 불리는 미국과 더불어 경제 강국이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은 첨단 장비로 무장했고 중국자본은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허수아비임이 드러났다.

경제가 발전했다고, 첨단 장비를 개발했다고 해서 전투력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갑자기 떼돈을 번 졸부 모습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척!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옆에 다가와 앉는다.

검정색 양복에 중절모를 쓴 육십 후반의 가량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앉았다.

“라이터 좀 빌립시다.”

노인은 미국 담배인 말보로 레드를 입에 물었다.

“그러시오!”

리웨핑은 자신의 라이터를 꺼내 주었고 노인은 양손으로 바람을 막으며 불을 켜더니 담배에 붙였다.

“고맙소!”

노인은 길게 빨아 당기더니 연기를 내 뿜었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이어졌고 흘긋 리웨핑을 돌아보던 노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무슨 걱정 있으시오? 헛헛!”

리웨핑은 노인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구려. 근심이 얼굴에 앉았으니 마음속이 불편할 것이고.”

정확히 속 마음을 뚫어본다.

리웨창은 다시 한 번 노인을 살폈다.

특별한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고 단지 담배가 눈에 거슬린다.

프랑스 담배는 독특하다.

품질 면에서는 가장 매혹적인 향기와 부드러움을 지녔다.

미국인들도 프랑스에 들어오면 이곳 담배를 망설이지 않고 피우는데 노인은 담배 중에서 가장 독하다는 말보로 레드를 여유 있게 빨고 있었다.

“한 개비 피워 보시려오?”

리웨핑은 움찔했다.

한 대 피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보듯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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