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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88화 (488/651)

제488화: 화장(1)

자리에서 일어난 그리즈만이 천천히 걸어갔다.

“보스!”

오른손에 들린 권총을 발견한 퐁텐은 더욱 자세를 낮추며 애원했다.

“퐁텐, 막내가 몇 살이라고 했던가?”

“스물두 살입니다.”

“아빠가 없다고 하여 아이들이 길거리에 나 앉을 일은 없겠군.”

“보스 잠깐!”

“그만 미련을 버리게, 죽는다는 건 슬프지만.”

탕!

그리즈만은 방아쇠를 당겼고 머리에 총을 맞은 퐁텐은 그대로 주저 앉았다.

“멍청한 놈! 일이란 지시를 받고 처리할 것이 있고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처리할 일이 있거늘.”

자신의 지시가 없었지만 어제밤 같은 경우는 알아서 행동했어야 한다.

온 조직이 나서서 움직일 정도면 상대를 죽여도 될지 아니면 지켜만 봐야 할지 세 살 먹은 아이도 판단할 수 있다.

사실 어제 밤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퐁텐을 죽였지만 더이상 효용가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퐁텐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그런 보고를 여러차례 받았고 이번 사건이 퐁텐을 제거할 명분을 준 것이다.

몸을 사리면 이 일은 끝이다.

“라비오!”

그리즈만은 경호팀장을 불렀다.

“예 보스!”

“쫓고 있나? 빨리 잡아오게. 난 죽여야 할 놈을 오랫동안 놔두는 성미가 아니라네.”

“압니다!”

라비오는 재빨리 밖으로 사라졌다.

털썩!

그리즈만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언제까지 여기 앉아 있을텐가.”

순간 사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사라졌다.

그리즈만은 손가락 사이에 낀 시가를 입에 넣더니 소리가 나도록 질근 씹었다.

“살아서 파리를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즈만은 시가를 거칠게 내뱉었다.

클럽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주말 밤의 잔해가 실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술병만 대충 치워졌을 뿐 사람들이 피우고 간 담배꽁초와 깨진 술잔, 휴지조각, 누구 것인지 모를 넥타이까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쭈욱!

지저분한 클럽 한쪽에 세 사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즐거운 일이 있는 듯 세 사내는 큰 소리로 웃으며 떠들었는데 그중 스포츠머리를 한 마흔 초반 가량의 사내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고 있던 세 사내가 갑자기 고개를 입구로 돌렸다.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멈칫!

한 사내가 들어섰다.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니고 클럽 직원들도 아직 출근할 때가 아니다.

입구를 들어선 사내는 클럽 안을 대충 살펴보는 것 같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실내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클럽인 까닭에 그렇게 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유난히 강렬하게 느껴진다.

파팟!

다가오는 사내의 오른손에 새하얗게 날이 선 회칼 한 자루가 들려있다.

세 사내의 오른손이 총을 뽑기 위해 허리로 향했다.

슈육!

뻐억!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사내의 목에 회칼이 깊숙이 박혔고 그 뒤로 앉은 사내의 얼굴이 사라져 버렸다.

소림의 반야수(般若手)에 통째 날아가 버린 것이다.

주춤!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권총 손잡이를 잡긴 했으나 뽑지는 못했다.

어느새 사내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씨익!

사내는 웃었다.

마치 뽑을 테면 뽑아보라는 것 같았다.

쿵!

그때 목이 날아가버린 사내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목에 칼이 박힌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그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힘들거요.”

빨리 죽도록 해주겠다는 듯 목에 꽂힌 칼을 뽑았다.

쓰욱!

칼을 뽑자 피가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나오더니 사내는 눈을 뜬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슥!

권총수는 사내의 옷에 피 묻은 칼을 닦았다.

피를 닦아내자 칼은 다시 새파란 광채를 뿜어냈다.

권총수는 탁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두 발은 의자를 디딘 자세로 선글라스 사내를 내려다 보았다.

흘긋!

선글라스 사내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아직도 권총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잉투안?”

“당신?”

잉투안이란 사내는 뭔가를 직감한 듯 보였다.

싹!

칼이 번쩍였고 잉투안은 신음을 흘렸다.

오른쪽 뺨이 벌레에 물린 듯 따금하더니 뜨거운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칼이 움직이는 걸 보지도 못했는데 관자놀이에서부터 턱 아래까지 베어 버린다.

“당신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됩니다.”

스윽!

권총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듣자하니 배달부라더군요? 당신이 데려간 한국 여자 데리러 왔습니다.”

잉투안은 피를 흘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속은 흔들리고 있으나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한 발 늦었다!”

싹뚝!

이번에는 아직까지 권총을 쥐고 있는 잉투안의 오른 팔을 어깨에서부터 잘라 버렸다.

퍼덕!

바닥으로 묵직한 팔이 떨어졌다.

“아흐흑!”

잉투안은 조금전까지 몸에 붙어 있던 자신의 팔이 바닥에 떨어져 꿈틀대는 걸 보며 기겁했다.

보고 또 봐도 너무 허무하게 잘려 나가버린 팔이다.

“영업장(사창가)으로 팔려나가는데 3일에서 5일이 걸린다더군요. 잡히거나 납치해온 여자들중에서 혹여 나중 말썽거리가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한 번 더 살피기 위해서 마지막 조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자 어딨소?”

잉투안은 얼른 대답을 못했다.

너무나 돌아가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다.

푸우욱!

대답을 머뭇거리자 칼이 잉투안의 왼쪽 어깨와 팔이 이어지는 부위에 깊숙하게 박혔다.

“그냥 뽑을 수도 있고 밑으로 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뽑으면 자상(刺傷)으로 끝나지만 밑으로 그어버리면 왼팔까지 잘리게 된다.

죽는 것이 낫지 양팔 없이 산다는 건 너무 끔찍할 일이었다.

“작업실에 있소.”

“작업실?”

무슨 작업실이냐고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신상을 살피고 등급을 매기는 작업이오.”

“등급?”

여자들이 한 곳에 모이면 분류를 한다.

미모가 출중하고 몸매가 뛰어나면 파리에 있는 사창가로 넘겨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것이다.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구별하고 나눠 보낸다는 말에 권총수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마피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갱단들이 성매매 산업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건 한 가지 이유다.

거대 수익!

들어가는 투자금 없이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갱조직에 의해 사육되는 성매매 제한 나이는 마흔살이다.

사람에 따라 동안이거나 피부가 탄력을 잃지 않으면 좀 더 하기도 하지만 그들 손에서는 거의 마흔이 한계선이다.

이후 아프리카나 중동쪽으로 팔아 버린다.

올 나이트로 밤을 새는데 하룻밤 몸 값이 천오백달러선이다.

이른바 짧은 숏타임에도 평균 150에서 200달러를 받는다.

숏타임의 경우 하룻밤에 최대 다섯 명의 남자와 관계를 맺을 때도 있다.

한 달 내내 쉬는 날은 없다.

아파도 일을 해야 한다.

한 여자가 평균 한 달에 이만 달러에서 이만오천 달러를 벌어들인다.

여자에게 들어가는 돈은 10프로가 채 안된다.

여자 한 명당 한 달에 이만사천 달러를 벌어주며 세금도 없다.

이런 여자가 프랑스 전역에서 천 명이 넘는다.

즉 성매매만으로 한 달에 이천사백만 달러가 들어온다.

모든 범죄조직들이 매춘 사업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다.

권총수는 잉투안을 조수석에 태웠다.

흐르는 피는 점혈을 하여 지혈시켰다.

“어디요?”

권총수가 속도를 줄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는 로뎅미술관이 있는 바빌론느가였다.

“저기요!”

조수석에 앉은 잉투안이 입을 열었는데 창밖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탁소라는 간판이 있는 이층 주택이다.

일층은 세탁소이고 이층은 살림 집 형태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세탁소 주인도 르 밀리유 조직원이겠군?”

“그...그렇소.”

파파팟!

권총수는 잉투안의 마혈괴 몇 곳의 혈도를 더 제압했다.

잉투안은 깜짝 놀랐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 몸이?”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차를 길가에 대고 문을 열었다.

“내가 30분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당신은 온 몸이 뒤틀려 숨을 거둘 것이오.”

“잠깐!”

문을 열고 나가려던 권총수는 잉투안이 하도 큰 소리로 외쳐 고개를 돌렸다.

“세...세탁소가 아니오.”

권총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세탁소 바로 옆 꽃집이오.”

권총수의 시선이 꽃집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화려한 생화들이 가득했고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있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잉투안이 세탁소를 가리킨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엉뚱한 세탁소 사람을 상대로 푸닥거리를 하다 보면 항상 경계와 주의가 몸에 밴 꽃집 주인이 뭔가 이상하게 생각할 건 뻔했다.

꽃집 주인은 최소한 권총 정도로는 무장을 하고 세탁소를 살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조직과 통화를 하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묻다보면 세탁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인물이 권총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들통나긴 했지만 잉투안은 백전노장의 갱답게 순발력 있는 시나리오를 썼다.

“이제 내 몸은?”

어쨌든 약속은 지켰으니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러죠!”

손을 뻗어 마혈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오른손이 머리쪽을 향해 쓰다듬듯 움직였다.

그러자 잉투안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마혈을 풀어줬으나 수혈을 눌러 잠속으로 빠뜨려 버린 것이다.

권총수는 의자 밑에 있던 칼을 꺼내 신문지로 둘둘 말았다.

탁!

차문을 닫고 인도로 올라섰다.

천천히 걸어가며 세탁소를 보았는데 중년의 대머리 남자가 열심히 다리미 질을 하고 있었다.

지소현을 쫓느라 다급한 상태다.

그러다보니 저 대머리를 다짜고짜 위협하거나 두들겨 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온다.

다리미질을 하던 세탁소 주인이 우연이 고개를 들었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권총수의 눈길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척!

권총수는 꽃집 앞에 걸음을 세웠다.

물을 주던 여자가 손님이 나타나자 손을 멈추고 다가온다.

“어떤 꽃을 드릴까요. 생일 선물로 드리려면 여기 장미가 좋구요. 러시안 셔스도 괜찮습니다. 병문안을 가신다면 이것 작약 꽃도 향기롭구요, 아니면 라넌귤러스도 인기죠”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에 있는 꽃들을 훑은 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훨씬 더 많은 꽃들이 있었는데 주인이 따라 들어왔다.

권총수는 레드 피아노 장미 한 송이를 들어 향기를 맡았다.

“안쪽이 작업실입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여자가 놀란다.

꽃집에 찾아와 작업실을 묻는다.

작업실, 그건 자신들만이 사용하는 은어다.

여자는 재빨리 윗도리를 옆으로 젖히며 차고 있던 권총을 뽑으려 했다.

큭!

권총수가 더 빨랐다.

손에 들려 있던 레드피아노 장미가 목을 관통해 버렸다.

마치 목에 한 송이 꽃으로 된 브로치를 달고 있는 모양새였다.

여자는 몸을 떨었는데 권총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도무지 있을 수 없고 차라리 꿈인 듯 한 시선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싹 거렸다.

“누...누구?”

쿵!

소리를 내며 여자는 뒤로 넘어졌는데 많은 꽃을 담은 바구니들이 엎어지면서 그녀의 몸을 덮어 버렸다.

권총수는 가게 안쪽으로 있는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통로가 끝나고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단층짜리 창고가 나타났고 오른쪽 끝에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닫혀 있다.

손잡이를 당겨 보았는데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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