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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86화 (486/651)

제486화: 칼바람(1)

전등불을 덮어 버릴만큼 강한 백색섬광이 피어나며 두 사내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뚝!

셋 중 생존자로 남은 사내는 옆구리에 찬 권총을 잡은 채 멈췄다.

권총수의 칼이 자신의 목에 대어져 있어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다.

‘여섯으로 알고 있는데?’

파고드는 전음에 사내는 깜짝 놀란다.

셋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다.

‘말하지 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하시오’

사내는 문이 닫힌 곳을 가리켰는데 화장실로 보였다.

‘또 나머지 둘은?’

사내는 대답을 않고 머뭇거렸다.

딸칵!

바로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나왔다.

슈욱!

권총수 손에 들린 칼이 날아갔다.

푸욱!

칼은 사내의 목을 관통하고 돌아왔다.

척!

이기어도(以氣馭刀)이다.

물론 거리도 가깝고 칼 또한 강호무사들이 사용하는 장검과는 무게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분명한 어도술이었다.

부들부들!

사내는 공포에 온 몸을 떨었다.

“인질은 어딨소?”

“조금 전 후문으로.”

“후문?”

“전화를 받고.”

사내는 더듬거리며 설명했는데 권총수가 들어오기 직전 조직 상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인질을 데리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파팟!

권총수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슈퍼에 들어서자마자 전화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승용차에서 내려 슈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 들어와 주인을 제거하고 사내들을 공격한 시간이 넉넉잡아도 10분이 채 안 된다.

집안에서는 두 사람의 흔적이 잡히지 않는다.

슈유육!

권총수는 저 만치 눈에 들어온 고층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이백여 미터 되어 보였는데 무척 높았다.

파팟!

중간에 건물 외벽을 한 번 더 박차고 재차 솟구쳐 옥상에 올라선 권총수는 주변 도로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밝혀진 길을 쫓던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팟!

저 멀리 콩코르드 광장 방향으로 달리는 승용차 한 대가 유난히 속도가 높다.

드문드문 다니는 택시와 일반 차량들 속도에 비해 눈에 띈다는 건 범죄자를 좇는 경찰차가 아닌 이상 의심해 볼만했다.

슈우우!

단번에 몸을 날려 내려선 권총수는 달려오는 택시를 세웠다.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은 운전사가 고개를 내고 욕을 하려다 말고 권총수의 손을 발견하고 멈칫한다.

“오백달러, 잠시 핸들을 내게 맡겨주시오.”

“오케이!”

기사는 재빨리 오백달러를 받으며 조수석으로 앉았다.

부우웅!

권총수가 핸들을 잡자 택시는 속도를 냈다.

속도계가 순식간에 100킬로를 넘어서더니 바늘이 멈출지를 모른다.

철칵!

조수석 사내의 안전벨트 매는 소리가 들렸고 속도계는 200킬로에 올라섰다.

쿠우우우!

도로의 모든 차량이 뒤로 후퇴를 한다.

바늘은 250킬로에 섰다.

운전사는 안전벨트를 맨 것으로도 부족해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있는 힘껏 쥐었다.

250킬로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죽는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안전벨트를 매고 손잡이를 쥐는 것 말고는 다른 대비는 없었다.

그렇다고 500달러 받는 걸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큰 돈을 버는 데는 그 만큼 위험이 따른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다.

‘주님’

불현듯 어린시절 주일학교 갔던 기억이 용솟음치듯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신호등도 무시하고 달리는 시속 250킬로미터의 속도는 순식간에 권총수가 찍었던 승용차를 시선 속에 들여놨다.

권총수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앞 차와 속도를 맞추자 120킬로미터이다.

앞차도 빠른 편이었다.

부웅!

권총수의 택시가 옆 차선에서 달리는 검정색 승용차를 지나치는데 슬쩍 고개를 돌렸다.

썬팅이 되었지만 권총수의 시선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둘!’

운전사와 조수석에 나란히 앉았고 뒷좌석은 비었다.

‘그런데 호흡은 셋’

권총수는 트렁크에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걸 특정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뒤부아 사진을 슬쩍 확인한다.

조수석 인물과 닮았다.

부웅!

택시는 벤츠 승용차를 추월했다가 신호등이 나타나자 속도를 늦춘다.

적색 신호등이어서 속도를 늦추고 멈췄는데 벤츠도 옆으로 다가와 섰다.

조수석 사내가 택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는 앞 만보고 있었으며 얼굴 또한 변체환용으로 바꾸었기에 전혀 딴 사람이다.

권총수는 지금 당장 일을 처리해 버리고 싶었지만 왕복 6차선의 넓은 도로이다.

일을 벌이면 당연히 많은 차량들이 몰려 들것이고 경찰이 출동한다.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불편한 장소다.

소란을 피워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아직은 아니다.

부우웅!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는데 일부러 검정 벤츠보다 늦게 나섰다.

계속 1차선으로만 달리는 벤츠가 어느 한순간 방향을 틀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는데 권총수의 짐작이 맞았다.

벤츠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돌았다.

권총수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좌회전을 했는데 1킬로쯤 달리면서 벤츠가 골목으로 들어섰다.

‘좋군’

권총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앞 차가 멈추었고 택시는 지나갔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자마자 차를 세우고 문을 열었다.

“뱅 숑스(Bonne chance: 행운을 빈다)”

기사는 식은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온 40년 세월보다 오늘밤 10분이 더 길다.

택시가 떠났고 권총수는 왔던 길로 재빨리 코너를 돌았다.

차에서 두 사내가 내렸는데 트렁크 문이 열리고 있었다.

운전을 했던 사내가 축 늘어진 오민철을 끌어 내리고 있었다.

딸칵!

그때 길가 벽으로 붙은 검정색 철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나왔다.

재빨리 오민철을 같이 부축해 데리고 들어갔고 뒤부아는 느긋하게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사라졌다.

스으으!

권총수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통로!”

발자국 소리가 안쪽으로 멀어져 간다.

손잡이를 돌렸는데 꼼짝하지 않았다.

척!

손잡이에 손바닥을 붙이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손잡이는 녹아 버리자 문은 쉽게 열린다.

슥!

품속에 있던 칼을 꺼냈다.

스으으!

허공에 뜬 채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기름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무슨 공장 같은데’

녹슨 쇠 냄새와 기름이 섞인 노릿한 냄새였다.

‘바이크 수리점’

안쪽으로 들어서자 오토바이 헌 타이어가 쌓여있고 오른쪽으로 대여섯 대의 바이크가 있었다.

그 너머 사무실로 보이는 조그만 공간에 불이 켜져 있는데 모두 세 명이 있었다.

뒤부아를 포함해 운전을 했던 사내와 조금 전 마중을 나온 이곳 주인으로 추측되는 사내다.

‘형!’

사무실 입구 바닥에 묵직한 물체가 구부정하게 엎드려 있었다.

오민철이었다.

권총수는 조용히 다가갔다.

재빨리 쭈그리고 앉아 맥을 살폈는데 표정이 굳었다.

맥이 약하다.

그리고 몸이 불덩이다.

‘과다출혈’

입이 퉁퉁 부었는데 두들겨 맞은 듯 보이고 아랫배 근처 옷이 피로 흥건하다.

열이 오르고 맥이 약해지는 건 출혈이 많기 때문이었다.

당장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안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파파팍!

소리없이 몇 곳의 혈도를 찔러 더 이상 악화되는 걸 막았다.

아직까지 오민철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보았지만 지금처럼 많이 우그러진 적은 없었다.

질근!

어금니를 문 권총수는 사무실 문을 가만 열었다.

문은 잠기지 않았고 소리가 날것을 대비해 주위를 무형의 경기로 이중 삼중 에워쌌다.

세 사내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에 유령처럼 나타난 권총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오른쪽 사내가 권총을 쥐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지만 번쩍하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팍!

서랍을 열었던 사내의 오른손목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사내는 죽는다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었고 두 번째 사내가 옆구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으려다 움찔했다.

충분히 옆구리에 차고 있는 권총을 뽑아 권총수를 향해 발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온 몸이 굳어 버렸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직 살았기에 사내는 왜 자신이 이렇게 답답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주르륵!

목에 구멍이 뚫렸고 피가 물처럼 흘러 내렸다.

뒤부아는 문 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즉 들어서는 권총수와 가장 정면으로 앉아 있었지만 어떤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살기 싫다는 건가.”

권총수의 칼이 길다란 대각선으로 광채를 만들었다.

싹!

오른손이 잘려나간 사내가 왼손으로 기어이 권총을 쥐려다 들통 난 것이다.

쿵!

육중한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좁은 사무실에 피 냄새가 넘쳤다.

드륵!

권총수는 죽은 사내의 상의 옷자락을 한쪽 잘라 의자에 묻은 피를 닦았다.

드르륵!

이어 의자를 끌어 당겨 앉는다.

2미터 정도 떨어져 뒤부아와 마주 앉았다.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를 꺼내 입에 물었다.

딸칵!

붉은색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더니 길게 빨아 들였다.

뿜어낸 연기가 뒤부아의 얼굴을 덮는다.

권총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내 켰다.

“뷰뜨 공원가 009번지, 검정색 철문이오. 손잡이가 녹아 흘러 있을 것이오.”

CIA 프랭크에게 자신이 있는 이곳의 위치를 무전으로 보낸 것이다.

“뒤부아?”

권총수 질문에 대답이 없자 칼이 번쩍했다.

툭!

오른쪽 귀가 떨어졌고 뒤부아가 움찔하며 손으로 잘린 부위를 만졌는데 피가 흥건히 묻어 나온다.

“뒤부아씨?”

권총수는 다시 물으며 히죽 웃는다.

하대를 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면 존칭을 해주겠다는 뜻이다.

“우리 아버지에게 내 연락처를 받아간 사람인가?”

푸욱!

권총수는 번개처럼 뒤부아 입안으로 칼을 쑤셔 넣더니 한 바퀴 돌려 버린다.

뿌두둑!

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피와 함께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을 하면 맞아 죽기 십상이죠.”

뒤부아는 눈을 깜빡 거렸다.

도무지 아직까지 한 번도 당해보거나 구경도 해보지 못한 수법이다.

오래전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가 일본 기자의 목을 자르는 걸 텔레비전 뉴스로 본적은 있으나 파리라는 대도시 생활 속에서는 처음이다.

더욱이 귀를 자르는 건 또 뭔가.

자신도 살인 경험은 있다.

고문을 하고 마지막에는 총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지금까지 자신의 수법이었다.

즉 이런 수법은 경험도 없고 구경도 한 적이 없기에 더욱 당혹스럽다.

상대의 수법이 어떤 일관성이나 대중성을 가지면 협상하기도 수월한데 권총수는 종잡을 수가 없다.

“뒤부아씨, 형수님은 어딨소? 민철이 형의 아내 말입니다?”

유창한 불어다.

뒤부아는 어떤 대답을 해야 자신이 좀 더 유리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권총수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대답이 더디자 다시 칼이 번쩍였고 이번에는 코가 따끔하다.

흠칫!

화악!

뒤부아의 눈이 커졌는데 코가 없다.

잘려나간 것이다

“우리 형수님 어딨죠?”

권총수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늦었소.”

뒤부아는 일단 입을 열고 보자고 생각했다.

“늦었다니?”

“지금쯤 무랑루즈에 있을 거요.”

흠칫!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무랑루즈는 파리 최대 사창가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이오?

권총수의 눈이 이글거린다.

분노보다는 뒤부아의 눈에서 뭔가를 찾겠다는 의미다.

뒤부아 정도 되는 갱단의 중간보스라면 자신을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은 지소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거래를 시도하기 위해 거짓말을 뱉을 가능성이 높았다.

노련한 갱답게 얼굴 표정과 눈빛에서 그가 뱉어낸 말의 진위를 읽는다는 건 간단하지는 않았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려 상대를 압박했다.

그러더니 한순간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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