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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84화 (484/651)

제484화: 몽마르뜨의 눈물(2)

노인 사바니에는 눈을 깜빡 거렸다.

“고등학교 때 친구였습니다. 사업하느라 바빠 한 번도 찾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 선물이니 즐겁게 받아 주십시오.”

권총수의 불어는 능숙했다.

“토뱅 고마워요? 정말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하군요.”

“건강하세요. 오래 사십시오.”

“마치 성탄절 같아요.”

밤 깊은 시간이다.

아마 한밤중에 자고 있는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사라지는 산타클로스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아참 뒤부아 전화번호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적어 놓은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잠깐 기다려요.”

사바니에는 권총수가 새로 선물해준 지팡이를 짚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뭔가를 찾는 듯 5분 후에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는 코팅이 된 A4용지 하나가 들렸다.

“여기 있어요.”

그가 내민 코팅이 된 종이에는 10여개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눈이 어둡고 기억력이 약해진 아버지를 위해 자녀들과 가까운 이웃 전화번호를 매직으로 써서 보관해 놓았다.

뒤부아 번호는 맨 위에서 두 번째 있었다.

권총수는 번호를 받아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하고 번호부를 넘겨주었다.

“건강하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토뱅,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그리고 권총수의 이마에 성호경을 그려주었다.

권총수는 다시 한 번 환한 웃음을 지은 후 문을 닫고 물러나왔다.

모르간의 눈이 빛났다.

사라졌던 권총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의 상점이 거의 문을 닫았고 행인들 발걸음은 거의 사라졌다.

“어찌 됐나?”

모르간은 이 근처에서 누굴 만날 일이 있다고 하여 길 안내만 해주었을 뿐 속 내용은 전혀 모른다.

권총수는 밝게 웃었다.

그건 일이 생각보다 잘됐다는 뜻이었는데 권총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번호 하나 보내겠소. 피싱처럼 하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하든 수신자 위치를 가장 빨리 파악해 주시 바랍니다. 가급적 서둘러 주시죠.”

상대는 파리 주재 미국 대사관 2등 서기관 프랭크였다.

사실 이라크에서의 블랙잭과 설표돌격대의 전투는 국제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특히 CIA에서는 결과를 면밀히 살피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 해방군의 전투력을 가장 가까이서 분명하고도 정확히 보고 겪은 이는 권총수 뿐이다.

그러다 보니 블랙잭과 여러 정보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몇 번 접촉을 시도했지만 의외로 권총수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블랙잭은 민간 보안 기업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 어떤 외교적 관심이나 정치적 노림수는 전혀 없다’

장삿속이라는 것이 있다.

이익을 목적으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이나 과거의 이력을 슬며시 꺼내 이용하는 것인데 자칫 비즈니스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업에도 겸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굳이 떠들지 않아도 언론 보도로 소문은 증폭되고 커지면서 블랙잭 용병들이 무슨 신비의 인물들이나 되는 듯 칭송되고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 인터뷰에 일체 응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CIA가 끼어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정치적 행위로 본다.

용병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어떤 고객도 망설이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이념적 종교적 쏠림을 보인다면 고객의 발길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회사는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민철 신혼여행 납치사건이 발생했고 CIA도움이 필요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맥보란이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나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맥보란은 상부에 오민철의 피습 사건을 초특급으로 상부에 전달했고 극비 지시가 떨어졌다.

‘무조건 지원할 것’

어제 맥보란으로부터 이곳 2등 서기관 프랭크가 화이트 요원이라는 얘길 들었고 그와 인사겸 짧은 통화를 했었다.

새벽2시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차량이 몰려들었는데 그곳은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 이름을 붙인 거리였다.

도착한 승용차는 모두 3대였는데 내린 사람들은 5명이다.

하나같이 정장이었고 말이 없다.

그때 어둠 속에서 또 한 대의 승용차가 라이트도 켜지 않고 다가와 멈춰섰다.

라이트 없이 다가오는 승용차를 바라보는 사내들 눈이 커졌다.

가로등이 있긴 있다.

그러나 라이트를 끄고 달릴 만큼 밝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내린 사람은 권총수다.

권총수는 5명의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캡틴이오!”

“프랭크입니다.”

맨 오른쪽에 서 있던 검정색 싱글 차림의 곱슬머리 백인이 손을 내밀었다.

파리 주재 미국대사관 2등 서기관이자 CIA 화이트 요원이다.

프랭크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핸드폰 안에 위치추적 시스템 장치가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발신 지점이 여깁니다.”

붉은 점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화면상 하나의 지점을 찍었다고 하여 어느 주택이라고 콕 찍을 만큼 정확할 수는 없다.

아무리 빠르고 과학적인 시스템이라고 해도 100미터 이상 접근은 쉽지 않다.

즉 붉은 점을 중심으로 100미터를 샅샅이 뒤져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상대가 계속 전화를 받아주고 응답한다면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지만 그럴경우 백퍼센트 눈치를 챌 것이다.

테러범이나 수배자들이 오랫동안 통화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저기 길 건너부터 수색이 이뤄질 것입니다.”

권총수는 사내들을 보며 말했다.

“의심스러운 장소가 발견되면 신호를 해주세요. 가급적 내가 가기 전까지는 공격하면 안 됩니다.”

평소의 CIA라면 불쾌한 표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눈 앞에 있는 사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촬영된 동영상을 통해 이미 보았다.

그는 절대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길을 건너 주택가 안으로 사라졌다.

권총수는 빅로트 위고의 거리 안쪽 20번지 골목으로 진입했다.

모두가 잠든 주택가 골목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권총수는 모든 감각을 끌어 올렸다.

숨소리들이 들린다.

수면중인 호흡인지 아니면 깨어난 상태의 숨소리인지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는 남녀의 열정적인 열기가 느껴지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우유병을 물리는 엄마의 자장가 소리도 들린다.

워낙 모양과 강도가 다른 여러 소리들이 많이 들려오다 보니 순간순간 판단과 구별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살기가 없다’

적은 반드시 살기를 내 뿜는다.

그리고 육식귀원에 이르는 고수는 그런 살기를 간파할 능력을 지닌다.

살기가 감지되지 않는다는 건 이 근처에 뒤부아 일행이 없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스으으!

움직임이 빨라졌다.

불영보가 펼쳐지면서 수색범위가 넓고 방대해졌다.

캐빈의 발걸음이 멈췄다.

재빨리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긴 캐빈의 시선이 한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필로티 구조물로 된 조그만 주차장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있었다.

두 대의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는데 그중 한 대의 차량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내는 운전석에 앉아 유리를 조금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캐빈은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새벽 2시다.

이 깊은 시간에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건 분명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 했다.

캐빈은 오른손 팔목에 시계처럼 차고 있는 무전기에 대고 수상한 낌새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하려다 멈췄다.

혼자 할 수 있다.

네이비 씰 팀에서 활동하다 CIA로 특채되어 들어왔고 여러 위험작전을 완벽히 성공해냈다.

더욱이 이제는 한 건 올려 진급을 고려할 나이다.

캐빈은 골목의 담벼락에 등을 붙여 섰다.

바짝 붙자 사내가 타고 있는 차량 앞부분만 보인다.

캐빈은 주차장이 있는 필로티 건물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사내는 담배를 피우고 유리 밖으로 재를 털어 낸 다음 꽁초까지 주차장 바닥에 버렸다.

탁!

유리를 다시 올리려는데 번개처럼 뭔가가 창문사이에 낀다.

흠칫!

사내는 소스라쳤다.

총이다.

시커먼 총구가 자신을 겨누며 유리사이에 끼어 있었다.

쉿!

캐빈은 떠들면 죽는다며 검지를 들어 입술에 댄다.

“패스포드.”

사내는 주춤했다.

씨익!

캐빈이 웃으며 방아쇠를 당기려 하자 그제서야 품속에서 신분증을 꺼내 주었다.

딸칵!

캐빈이 신분증을 쥔 왼손으로 자동차 문을 열자 실내에 불이 켜졌다.

유리사이에 끼었던 권총을 꺼내 문안으로 겨누고 신분증을 보는 캐빈의 눈이 빛난다.

“지알! 여기서 누굴 기다리지?”

“기다리는 사람 없소.”

“그럼 뭣 하는가? 혼자서 말이야. 마누라와 싸운 것 같지는 않은데?”

마누라와 싸우고 밖으로 쫓겨난 사람이 유유자적 담배를 피울리 없다

뻐억!

그런데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캐빈이 나동그라졌다.

사내 한 명이 벽돌을 들고 서 있었다.

한 번 더 찍으려는 듯 캐빈을 보다 일체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피식 웃는다.

그때 건물 입구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뭐야?”

뒤부아가 나타나 물었다.

“한 발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벽돌로 찍은 사내가 허리를 구부리고 캐빈의 품속을 뒤지더니 작은 동전 한 개를 찾아 들었다.

“랭글리 표식이죠.”

독수리가 선명하다.

“뭐야? 그럼 이번 일에 CIA가 끼어들었단 말이야?”

“사막의 흑새를 지원하는 모양입니다.”

“으윽!”

잠시 후 신음 소리가 들리며 두 사내가 피로 범벅이 된 오민철을 부축하고 나타났다.

“빨리 태워!”

사내들은 오민철을 트렁크에 집어넣었고 두 대의 승용차가 동시에 시동을 걸었다.

“죽여!”

먼저 차에 탄 뒤부아가 명령했다.

벽돌로 캐빈을 찍었던 사내가 재빨리 소음기를 꺼내 끼우더니 방아쇠를 당긴다.

푸슉!

폐쇄된 공간인 탓인지 아니면 조용해서인지 소음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탁!

사내가 올라타고 차는 떠났다.

이상했다.

알지 못하는 전화가 연거푸 두 번 걸려 온 것이다.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다.

하지만 뭔가 의심스러워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낯선 여자가 받았다.

그러면서 잘못 걸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또 한 곳은 어린아이가 받았는데 아빠 핸드폰으로 장난 전화를 걸었다.

걸려 온 두 번의 전화는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의심할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느낌이 불편했다.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탓일까

‘뭔가 마음에 걸리면 움직여라’

자신이 오늘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경험 많은 조직 수뇌부들을 따라다닐 때 보면 어떤 일을 진행하다 털끝만큼의 불편한 마음이 생기면 포기하거나 미련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그때마다 떠난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아슬아슬하게 한 끗발 차이로 살아난 것인데 오늘도 그러했다.

“음!”

뒤부아는 이를 물었다.

CIA개입은 전혀 계산 못한 일이다.

지금까지 CIA와 맞서 온전한 테러집단이나 갱 조직은 없다.

마음에 걸린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유리를 내렸다.

어쨌든 간발의 차이로 위험을 피했다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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