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8화: 호사다마(好事多魔)2
사설은 자극적이면서 중국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이다.
어쨌든 중국 인민해방군이 자랑하는 최정예부대가 용병들의 공격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나지 못했다는 건 엄청난 뉴스였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블랙잭이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이 되었다.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쳤다.
그리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한 주당 오백달러를 돌파하고 말았다.
다음해 5월 블랙잭의 시가총액이 다인코프와 아카데미를 훌쩍 뛰어 넘으면서 용병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 * *
아카시아 꽃이 만발했다.
계절은 꽃으로 뒤덮였고 모두가 꽃을 찾아 떠났다.
오민철은 바빴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아내 될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둘의 결혼은 오랫동안 미루고 자주 부딪친 끝에 힘들게 이뤄진 것이다.
여자 쪽에서 용병바닥을 떠나지 않으면 절대 혼인 할 수 없다고 단호했지만, 블랙잭이란 회사가 만들어지고 오민철이 이사가 되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더욱이 회사가 미국시장에 상장이 되면서 갈수록 덩치는 커졌다.
그에 따라 오민철의 역할도 많아졌으므로 결국 전장을 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하는 것이다.
쨍!
권총수는 오민철과 채명천 세 사람이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틀 후면 결혼식이다.
이제 결혼을 하게 되면 예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만나 술을 마시는 자유를 맛볼 수 없을 것이라면서 채명천이 만든 자리였다.
탁자위에는 빈 소주병이 수두룩 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술을 마시고 있다.
“오 이사님 고향이 어디라고 했죠?”
채명천이 물었다
“벌교입니다.”
“아 맞아 벌교라고 했죠. 며칠전 아홉 시 뉴스를 보는데 이상한 걸 봤습니다.”
“이상한 것?”
“벌교파가 부산 칠성파와 손을 잡고 야마구치구미와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벌교파?”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그 좁은 읍내 바닥에서 무슨 건달 조직이 만들어졌단 말이야?”
“말도 마 내 고향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곳이야. 우리 학교 다닐 때도 홍교파와 역전파가 있었어. 그때 갈라진 놈들은 어른이 된 지금도 동창회에서 만나면 서로 말을 안 해. 한심한 놈들.”
“벌교가서 주먹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왜 나왔습니까?”
채명천이 불콰한 얼굴로 물었다.
오민철이 씨익 웃는다.
마치 자신의 전공분야에 대해 누군가 물어 올 때의 자신감 넘치는 그런 얼굴이었다.
“여러 썰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만 추리면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일제 강점기로 올라가. 호남 서남부지역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야 하는데 마땅한 항구가 없어. 여수는 멀고 목포는 더 멀고, 그러다 보니 결국 벌교에 억지로 항구를 만들지. 고기 냄새가 나면 누가 옵니까?”
“그야 당연히 야수들이 들끓죠.”
“돈이 흘러다니니 당연히 주먹들이 몰려들고 이권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죠. 벌교가서 주먹 자랑 하지 말란 말이 그렇게 탄생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지금은 타계했는데 영화배우 방노식이야.”
“그 사람 아들도 배우 아냐?”
“배우지. 액션배우로 인기 절정을 치닫던 방노식이 벌교 극장에 공연을 왔어. 거기서 술 한 잔 하면서 까불었던거야. 벌교 주먹들이 네가 배우면 배우지 여기가 어디라고 까부냐면서 두들겨 맞았고 그 얘기를 텔레비전에 출연해 얘길 했다는 거야.”
“전자는 모르겠고 후자는 나도 들어본 것 같은데.”
술이 취하기 전에는 살아가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정치가 어떻고 우리 경제가 잘못 굴러가니 마니 하면서 언성을 높이지만 취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잡설이 등장한다.
권총수는 내공으로 알콜 기운을 수시로 한곳에 모아 삼매진화로 녹여 버리기 때문에 취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오민철과 채명천은 틀리다.
두 사람은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를 반복해가면서 떠들었는데 갈수록 목소리도 높아졌다.
너무나 큰 목소리에 주위 다른 손님들이 불편한 시선으로 흘긋 거렸으므로 권총수는 자리를 마무리하기로 하고 일어섰다.
앞서 일어나 술값을 계산하고 두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세워 두 사람을 태워 집으로 돌려보낸 권총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평화로운 시간이다.
“구기동 갑시다!”
택시에 올랐다.
부우웅!
차는 어둠을 뚫고 구기동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권총수는 운전사가 건네주는 카드를 받아 지갑에 넣었다.
부우웅!
택시가 길을 내려가고 잠시 서 있던 권총수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은 조용했다.
핸드폰 시계는 12시를 넘어서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선 권총수는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더니 마당 가운데 있는 바위에 결가부좌했다.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고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운기조식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완전 숙면상태처럼 깊숙이 빠져들었다.
호흡이 고르고 자세가 부드러우며 전신에서 현현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꿈틀!
권총수의 눈동자가 미세한 파장을 일으켰는데 내공이 전과 조금 틀리다.
등봉조극을 넘어서고 있다.
그 다음이면 육식귀원(六息歸元)이다.
여섯 호흡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몸과 마음이 모든 걸 초월하여 다시 평범해 진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 흰머리가 빠지고 치아가 다시 난다는 반로환동(返老還童)이고, 더욱 노력하면 음신(陰神)과 양신(陽神)을 만들 수 있는 출신입화지경(出神入化之境: 또는 化境으로도 불림), 그리고 마침내 우화등선(羽化登仙)에 이른다.
육식귀원에 들어서면 이때부터 심살(心殺)의 기운이 생성된다.
즉 마음만으로 상처를 입히고 더 나아가 죽일 수 있는 경지가 시작되는 것이다.
권총수는 눈을 떴다.
어둠은 여전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걸려있다.
‘육식귀원’
혼자 중얼거리는 권총수는 만족스러워 했다.
‘이러다 우화등선 할지도 모르겠군’
권총수는 결가부좌를 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앞은 차량으로 가득했다.
오민철의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손님 거의가 블랙잭과 관계된 거래처 사람들이다.
오민철은 정장차림으로 오는 손님들을 맞이했다.
축의금을 받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채명천이다.
오민철은 누굴 찾는지 자꾸 두리번거렸는데 큰 누나가 다가와 묻는다.
“누굴 찾니?”
“총수가 안보여.”
“오겠지.”
바로 그때 권총수가 정장차림으로 나타났다.
“축하해 형!”
권총수는 오민철의 손을 굳게 잡았다.
“누님도 기쁘시죠. 동생 장가보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냐. 진짜 고생은 총수 네가 했지 우리가 뭘.”
오민철의 큰 누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님 왜 울어요.”
“총수 너만 보면 너무 고마워. 정말 고맙다.”
“흐흐흐!”
권총수는 눈물을 흘리는 오민철의 누님에게 다가갔다.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린다.
“좋은 날입니다. 누님!”
권총수는 환하게 웃었다.
그때 회사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권총수를 향해 인사를 했다.
권총수는 직원들과 악수를 하며 다시 한 번 오민철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신부는 양가 부모에게 폐백을 올렸다.
친척도 떠나고 찾아온 손님도 돌아간 호텔의 식장은 텅 비었다.
부르릉!
벤츠 한 대가 지하 주차장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운전석에 채명천이 앉아 있었다.
오민철이 신혼여행을 가는데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 것이다.
“형 잘 다녀와!”
뒷 유리가 내려가고 오민철이 미소를 지었다.
권총수는 안쪽에 앉은 오민철의 아내 지소현을 향해서도 환하게 웃어주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형수님!”
“감사해요. 총수씨!”
유리가 다시 올라가고 차는 떠났다.
권총수는 차가 호텔을 떠나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 않고 서서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권총수는 고개를 돌렸다.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어군의 사장 마석춘이다.
“아직 안가셨습니까?”
“시간 있으시죠?”
권총수는 왜 그러느냐는 눈빛으로 보았다.
“저희 가게로 가시죠. 오랜만인데 참치 스시 어떻습니까? 오오마에서 잡힌 올해 마지막 참치가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참치를 먹긴 하지만 미식가 수준은 아니다.
다만 오오마산 참치가 가장 인기가 좋다는 얘기 정도는 들었다.
“그럴까요.”
마석춘은 함부로 사람을 부르지 않는다.
첫 째는 젊어 무자비한 칼잡이 노릇을 한 까닭에 아직도 그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즉 어떤 사람으로 변장하여 다가와 칼을 놓을지 모르니 자신의 동행자가 피를 볼 수도 있다.
두 번째 사람을 멀리하는 이유는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가게를 드나들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된다.
마석춘은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입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을 자주 불러들이고 찾아가 만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입은 열린다.
비밀이 지켜질수록 어군의 손님은 늘 것이다.
하지만 권총수라면 얼마든지 가까이해도 괜찮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석춘의 벤츠를 타고 권총수는 어군을 향해 갔다.
어군은 여전히 화려했다.
권총수는 마석춘과 앉아 오오마에서 가져온 올해 마지막 참치스시를 맛보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마석춘이 정색했다.
권총수는 술잔을 들다 말고 멈칫했다.
딱히 축하받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장 말입니다. 어마어마 하더군요.”
주식 상장에 대한 얘기였다.
권총수는 잔을 비우며 빙긋 웃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대표님께서는 항상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리는군요.”
“정말입니다. 그런 말 있잖습니까? 노력은 사람이 하지만 결과는 하늘이 정한다는.”
“교회 다니십니까? 그것 성경에 있는 말 같은데.”
권총수는 교회 다니냐는 말에 멈칫했다.
다니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보육원 출신이니 성당을 다녔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교회나 성당이나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성경 속 말이 나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보육원 영향 탓일까.
세상에서 가장 지겹고 건조한 것이 미사 시간이었다.
신부님 강론도 재미없고 수녀님이 주는 사탕도 맛없는 것만 준다.
하루는 수녀님이 주는 사탕을 받아 던졌다가 들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운이 자꾸 이어지면 그건 실력이라고 합니다. 혹시 대표님께서는 투자 능력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앞만 보고 산다는 것이었다.
삶을 골치 아프게 성찰하고 복기하는 일은 딱 질색이다.
이미 지나간 어제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오로지 앞만 보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운도 이어지면 실력이라는 말 그럴 듯 해 보이는데요.”
권총수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벗어 놓은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운데 복도를 쭈욱 따라가면 화장실이 나온다.
이곳 별채는 가게에 손님이 늘어나면서 새로 지은 한옥식 건물로 거의가 사회적 지위가 조금 있는 사람들 예약실로 많이 사용된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담배 냄새가 약간 맡아졌다.
화장실을 나와 왼쪽으로 작은 문이 나오는데 별채 후원으로 흡연자들을 위한 조그만 공간이 있었다.
권총수는 주머니를 뒤졌는데 다행히도 아랫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있어 복도 밖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