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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77화 (477/651)

제477화: 호사다마(好事多魔)1

허리까지 차오르는 강속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배 위로 기어 올랐다.

노인은 두 사람의 행색을 보고 흠칫했다.

조금 떨어져서는 보지 못한 듯 했는데 팔이 잘리고 팔꿈치 아래가 없는 유학발의 몰골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괜찮겠소.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우린 걱정 마시오.”

유학발이 차갑게 말했다.

노인은 약간 머쓱한 얼굴로 노를 저어 맞은편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끼익끼익!

낡은 노는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오?”

노인은 무료했던지 입을 열었다.

“알 것 없소!”

오이동이 단호히 말했다.

노인은 머쓱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작은 파도가 밀려왔고 뱃전을 때린 물살이 얼굴에 튀어 묻는다.

다행히 밤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탓인지 강물은 시원했다.

노인은 앞만 보고 노를 저었고 10여분 이상 노를 저어 마침내 건너편에 닿았다.

사람들이 자주 건너다니는 길목이라는 걸 말해주듯 갈대나 잡초가 없는 맨 땅이었는데 바위 몇 개가 물살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했다.

바위는 사람들이 내리고 탈 때 물에 신발이 젖지 않도록 가져다 놓은 걸로 보였다.

배가 도착하고 오이동의 부축을 받으며 유학발이 내렸다.

멈칫!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유학발의 오른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너의 입이 문제다.”

즉 추격대에게 자신들을 태워다 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죽여야겠다는 뜻이었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물에 빠진 놈 살려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말은 들었어도 도와준 사람을 죽이겠다는 경우는 처음이오.”

유학발이 미소를 지었다.

“잘가시오 영감!”

“뒤를 한번 돌아보시오.”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두 사람이 노인을 주시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기겁했다.

일상복 차림의 사내들 다섯 명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유학발과 오이동은 몹시 놀라면서 노인과 사내들을 번갈아 보았다.

드르륵!

총소리가 울렸는데 맨 오른쪽에 서 있던 오민철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파파팍!

통신병 오이동의 머리가 십여발을 얻어맞으며 시뻘건 피에 뒤덮였다.

풍덩!

얼굴이 사라진 시신이 강물에 빠졌다.

무전기의 무게까지 더해지며 시신은 거품을 만들면서 가라앉았다.

훌쩍!

노를 저었던 노인이 땅으로 내려섰다.

“선한 마음이 선한 일을 한다는 공자의 말씀도 모르시나 보군요.”

노인이 빙긋 웃었다.

유학발은 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딸칵!

노인은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말보로 레드였다.

노인은 강둑에 있는 조그만 바위에 앉더니 흘러가는 유프라테스강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사내들의 총구는 유학발에게 겨누어져 있었다.

“당신이 사막의 흑새요?”

유학발은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노인은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얼굴이 흔들거렸다.

밀가루 반죽하듯 얼굴이 수시로 변했고 마침내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권총수를 보며 유학발은 신음을 흘렸다.

두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사람들의 소문을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두 눈으로 본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자신도 한때 무공에 뜻을 두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권총수가 보여준 변장술은 변체환용이라는 것으로 강호에서 최고급 기술에 있는 변장술이다.

얼굴에 색을 입혀 바꾸거나 아니면 인피면구로 변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변체환용은 순전히 내공을 이용해 얼굴을 변형하기 때문에 절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중령님!”

권총수는 강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죽고 죽이는 전장에도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포로에게는 절대 어떤 물리적 고문이나 고통을 가해서는 안됩니다. 잡히기 전까지는 분명히 적이지만 총을 빼앗기고 무릎을 꿇으면 군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네바 협약에서는 포로에 대한 어떤 학대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툭!

권총수는 담배꽁초를 물에 던지고 일어났다.

“살아 있는 네 사람의 옷을 벗긴 다음 절벽에 매달아 말려 죽이는 것이 제네바 협정이 요구한 포로에 대한 대우입니까? 중국 인민해방군은 포로고 뭐고 잡으면 절벽에 매달아 죽이라고 가르친 모양이군요.”

“난 모르는 일이네.”

씨익!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휘관이라면 당당해야 하는 것이오. 부하의 잘못에 대해 한 번쯤은 내 탓이니 날 죽이라는 태도 정도는 보여주는 것이 품위 있는 것 아닙니까? 군인이 직속상관의 지시도 없이 산 사람을, 그것도 한 명도 아닌 네 명을 그렇게 말려죽입니까? 더욱이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는 선한 얼굴을 하고서 말입니다.”

그때 오민철이 다가오더니 권총수에게 HK-416을 내밀었다.

타탁!

노리쇠를 당기며 총 상태를 살피듯 하더니 유학발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당신들 너무 건방져.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드르르륵!

권총수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한참을 쏟아진 총알이 딱 하는 소리가 들리며 멈췄다.

30발 모두를 유학발의 몸에 박아 버린 것이다.

***

평화유지군으로 이라크에 파견된 중국군의 몰살 소식은 지구촌을 충격에 빠뜨렸다.

‘대대병력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했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모래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중국 인민해방군’

신문 제목도 직설적이었고 뉴스 앵커의 멘트 역시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땅속으로 꺼졌나? 아니 하늘로 올라갔나? 분명한 건 어디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CNN 메인 앵커 심슨은 한술 더 떴다.

‘태산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오늘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습니다. 태산(중국)은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습니다’

노골적으로 중국을 모욕한 멘트다.

이번에 궤멸한 중국군은 겉으로는 평화유지군이지만 그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최정예인 설표돌격대였다. 그런 22대대가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궤멸되었다고 말했다.

누가 그들을 궤멸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외주둔군 총사령관인 장우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현재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였다.

전면벽에는 중국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시진핑 사진이 걸려 있고 바로 위에 붉은 오성홍기가 보인다.

이곳 ‘장비(張飛:삼국지 촉의 무장)기지’에는 지금 일급 전투태세가 내려져 있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설표 돌격대는 중국의 야심작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패할 수도 있고 몰살당하지 말란 법은 없다.

미국의 네이비 씰을 보면 참혹한 역사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있었던 레드윙 작전에서 몰살당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테헤란 미대사관 사태 때에도 엄청난 인원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 이외에 크고 작은 궤멸한 작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문제는 상대였다.

특정국가나 전쟁이 일상화된 알카에다나 탈레반 정도의 숙련된 싸움 집단도 아닌 용병들에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유명한 아카데미 또는 다인코프도 아닌 이제 막 등장한 한국업체라는 것이 장우사의 마음을 할퀴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벌컹 열리더니 두 명의 중령이 들어섰다.

척!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거수경례를 했다.

인사를 받은 장우사가 물었다.

“무슨 일들인가. 자네들이.”

두 사람은 77대대와 18대대의 대대장들이었다.

“우리 대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사막의 흑새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18대대가 가야 합니다. 놈의 사지를 잘라 유중령의 무덤 앞에 바칠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은 딱딱한 나무 의자에 허리를 곧게 세우며 앉았다.

“나도 당장이라도 쫓아가 놈의 몸을 찢어버리고 싶다. 놈뿐만 아니라 블랙잭 용병들의 모가지를 잘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 걸어 놔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장우사의 안면 근육이 떨렸다.

분노가 복받친 것이다.

“아직은 기다린다. 본국에서 어떤 전령이 도착할 때가지는 분을 삭히며 자제하라.”

그때였다.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이 벌컹 열리더니 다섯 명의 군인들이 들어섰다.

그런데 모두가 QTS-11소총을 들었고 한 사내만 옆구리에 권총을 차고 있다.

“섭대위 아닌가?”

헌병대장 섭마도였다.

척!

거수경례를 한 헌병대장 섭마도 대위가 말했다.

“중앙군사위원회 징계검사위원회로부터 내려온 긴급명령입니다. 사령관님을 즉시 체포하고 이 시간부터 직위와 계급을 박탈하여 압송하라는 지시입니다. 체포해.”

벌떡!

의자에 앉아 있던 두 명의 대대장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척!

철컥!

그러자 헌병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저항하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당에 대한 모욕이자 반역입니다.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는 걸 모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말에 두 대대장 모두 멈칫했다.

“물러서게!”

두 대대장은 권총을 내렸는데 작은 철제 책상 앞에 앉은 사령관 장우사를 바라보았다.

스르륵!

장우사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러더니 권총을 꺼냈는데 누가 말릴 틈도 없었다.

헌병들은 물론 두 대대장도 깜짝 놀라기만 했을 뿐이었고 장우사는 목에 총구를 대더니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타아앙!

“사령관님!”

두 대대장이 달려가 옆으로 쓰러지려는 장우사를 부축했다.

장우사의 얼굴은 이미 피로 물들었고 의식은 사라진 듯 몸을 가누지 못했다.

“뭣들 하는거야. 군의관 불러. 군의관.”

18대대장이 소릴 질렀으나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도로는 감쪽같이 복구 되었다.

물론 복구비용은 블랙잭에서 전액 지불했다.

바그다드 인근에서 머물던 평화유지군 소속의 중국군 부대가 어떻게 이 먼 나시리아까지 이동해 왔는지, 이들을 노렸던 세력이 누구였는지 이라크 군당국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지만 최소한 블랙잭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다.

시장의 소문은 은밀할수록 위력이 크다.

‘이라크인의 희생이나 재산 피해도 전혀 없는데 굳이 조사할 필요 있나’

미군 고위 관계자가 이라크 국방부를 찾아와 한마디 던지고 돌아간 뒤 적당히 마무리 되어 버린 것이다.

맥보란이 CIA 스티브 국장을 움직였고 이어 곧바로 미 국방부를 통해 이라크 현지 주둔군 사령관에게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의 설표 돌격대에 대한 정보가 궁금했는데 이번 사건으로 환히 들려다 볼 수가 있었다.

‘결론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이었다.

훈련과 전쟁은 다르다.

미국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중국군의 제식 총기와 보병의 여러 장비들이었다.

한마디로 핵전쟁만 아니라면 중국은 상대가 안 된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중국은 갑작스런 경제성장으로 군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핵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미국을 위협할 만한 획기적인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맥아더는 전쟁은 보병의 몫이라고 했다.

아무리 공중에서 퍼붓고 미사일이 날아가도 어느 지역을 장악하고 점령하는 건 보병의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좋은 제식총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것이다.

중국 인민 해방군은 겉만 화려했지 속은 비었다.

또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해외 파병 군을 총괄 지휘하는 사령관이 권총으로 자살을 한단 말인가.

그건 책임감의 발로가 아니라 처벌이 무서워 스스로 죽은 것이다.

전쟁은 승패를 반드시 규정짓고 끝나는 경기다.

그런데 그런 식이라면 패배한 지휘관은 모두 죽거나 아니면 계급 강등을 당해야 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누가 얼마만큼 소신을 가지고 부대를 지휘한단 말인가’

워싱턴 포스트지의 사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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