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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76화 (476/651)

제476화: 나시리아 공동묘지(3)

일부러 내공을 끌어 올려 눈에서 야수와 같은 광채를 쏟아 낸 것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여기저기서 놀라고 침을 삼켰다.

눈이 아닌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두 눈이다.

“하늘이 우리 편에 힘을 실어줄 모양입니다. 우리 작전대로 적은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추격 조를 편성하겠습니다.”

폭탄이 제대로 폭발해 준다면 거의 치명타를 먹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종종 허점이 생긴다.

즉 그 와중에도 죽지 않고 살아 도망치는 병사가 반드시 있다.

블랙잭의 집요함과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겨서는 안된다.

인간처럼 기회주의적이고 간사한 동물은 없다.

강한 놈 앞에서 찍소리를 못 한다.

하지만 나보다 약하다 싶으면 무자비한 횡포를 부리는데 전쟁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죽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쫓아가 완전히 청소를 해버려야 블랙잭을 다시 본다.

또한 잔인한 소문이 적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함부로 건들일 생각을 않는 것이다.

테러범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함부로 사건을 만들지 못한 것도 이유가 있다.

진압작전이라는 미명하에 그냥 밀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국 인민해방군이 강해졌다고 해도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전쟁을 일으킬 명분도 없다.

민간기업들 사이에 있었던 유전개발 싸움에서 졌다고 뒤를 봐준 블랙잭을 공격한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국제 여론을 설득 시킬 수 없다.

오사마 빈라덴처럼 권총수가 상하이나 베이징에서 수천 명이 죽는 테러를 자행한 것도 아니다.

특정 국가를 상대로도 아닌 용병회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군을 보낸다는 건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나시리아로 들어오는 통제1지역을 맡고 있는 표창돈은 계속 북쪽을 바라보았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도로의 차량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팟!

어둠속에 숨어 있던 표창돈의 눈이 빛났다.

저 멀리 커브길에 자동차 라이트가 나타났다.

빛은 점점 환해지더니 자동차가 나타났는데 한두 개가 아니다.

설표돌격대 제22대대 병력을 실은 트럭임을 간파한 표창돈은 재빨리 우회표시를 알리는 야광 화살표를 떼었다.

또한 우회도로를 가리키며 이어지는 50여 미터 가량의 조명선까지 파괴한 뒤 사라졌다.

“적 출현, 800미터 앞!”

표창돈은 정해진 장소에 몸을 숨기고 재빨리 무전을 보냈다.

“대기!”

권총수의 지시가 들려온다.

“통제2 보고.”

“이상무. 차량 접근 보이지 않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민간 차량이 갑자기 온다면 강제로 세워 비상 조치한다.”

사막이다 보니 어디서 예상치 못한 차량이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케이. 팀원 모두 주어진 임무대로, 우리가 세운 시나리오를 따라 움직이면 된다. 건투를 빈다.”

권총수는 무전기를 내리고 HK-416을 쥐었다.

도로에서 30미터 가까이 떨어진 바위 뒤에 있었다.

오민철은 야간 투시경을 이용해 차량 불빛이 오는지 계속 살피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오는데!”

권총수는 안력을 돋우었다.

어둠을 밀어내는 강력한 불빛이 나타났다.

길고 넓게 퍼진 라이트는 분명 자동차의 것이다.

쿠쿠쿵!

빛도 더욱 강하게 퍼지고 들리지 않던 자동차 엔진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차량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셀 수 없다는 말이 적당할 만큼이나 차량이 오고 있었다.

권총수는 달려오는 차량을 보며 중얼 거렸다.

“총 출동했군.”

권총수는 윗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바닥 만한 크기의 납작한 리모컨을 꺼냈다.

차량행렬은 더욱 가까워졌고 선도하는 지프는 이미 폭탄을 매설해 놓은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차량이 폭탄이 매설된 도로에 완전하게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무전기를 통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의 심박동이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잘 터져줘야 하는데.”

오민철이 중얼거렸다.

불발탄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제대로 터져 주기만 한다면 피해는 치명적일 것이다.

오민철은 무전기를 통해 팀원들을 다독거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렵게 생각하지마. 사람들에게는 전쟁이지만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라고.”

특수부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형태의 실전은 처음 경험할 것이다.

용병 선발 때 해외 파병에서 직접 적과 교전 경험이 있는지 유무를 묻는데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겨본 건 용병이 되어서였지만 아직 까지는 능숙하지는 않았다.

쿠쿠쿠쿵!

병력을 태운 트럭의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더 이상 따라오는 차량이 없다고 판단이 들었지만 권총수는 기다렸다.

마지막 차량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통제1의 표창돈으로부터 무전이 날아와야 된다.

“통제1 모든 차량 작전지역으로 진입 이상.”

“수고했다 통제1.”

권총수는 무전을 끊은 뒤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볼 것이고 누군가는 오늘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비다 보면 모두가 철학자가 되고 사상가에 이른다.

산다는 것이 그다지 화려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어차피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는 걸 더욱 절실하게 깨닫는다.

좀 일찍 죽고 나중에 죽는다는 시간의 차이가 있으나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흘긋!

찬란하게 피어난 하늘의 별들을 한 번 본 뒤 권총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슥!

리모컨을 눌렀다.

쿠쿠쿵!

하는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렸다.

이어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사막을 들쑤셨다.

쾅!

콰카캉!

쿠우우우우!

미사일이 발사 되듯이 거친 폭음과 함께 트럭 한 대가 허공으로 퉁겨 올라갔고 타고 있던 이십여 명의 병사들이 파편처럼 사방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폭발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대대장 유학발 중령은 타고 있던 지프에서 튕겨 나와 50여 미터 가까이 날아 가버렸다.

온 몸이 피다.

이마가 깨진 듯 피가 얼굴을 덮어 흘러내렸고 고통과 함께 너무 허전한 느낌에 고개를 돌린 유학발 중령은 흠칫했다.

자신의 왼쪽 팔이 팔꿈치 부분에서부터 잘려나가고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파괴된 차량들이 불길에 타올랐고 어디선가 나 좀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려왔다.

“음!”

이를 악물고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탕!

타타탕!

그때 총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귀에 익은 QTS-11소리가 아니다.

처음 듣는 총소리인데 권총은 아니다.

권총과 소총의 총소리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권총의 소리는 조금 둔탁하고 소총은 매끄러우면서 끊어지는 형태를 보인다.

드르륵!

미군의 제식 소총 M4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설표돌격대 정도 되면 가장 강력한 적인 미군의 제식 소총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타아앙!

이번 소리는 지척에서 들렸다.

유학발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대대장님!”

그때 누군가 다가왔는데 통신병 오이동이었다.

“오하사!”

그 역시 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신병답게 무전기는 등에 붙어 있다.

어쩌면 소총보다 그에게 무전기는 더욱 소중한 병기이다.

“이...일단 여길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다.

그건 지금 살아 있거나 부상당한 제22대대 병사들이 사냥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지휘관이다.

전쟁에서 지휘관은 결코 포로로 남지 않는다.

그 이유는 지휘관이 갖고 있는 많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을 하다보면 거의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살려두면 고문의 흔적이 남고, 포로를 고문했다는 건 엄연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학발은 통신병 오이동의 부축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최대한 멀리 가야한다.

멀리 갈수록 생존율이 높아지는데 둘 모두 중상을 입은 몸이어서 그다지 빠를 수는 없었다.

부드득!

유학발은 이를 갈고 또 갈았다.

“사막의 흑새, 사막의 흑새 이 개자식!”

유학발은 쉬지 않고 권총수를 들먹거렸다.

“네놈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내고 두 눈을 뽑아 독수리 먹이로 줄 것이다. 으으으!”

유학발은 온 몸을 떨면서까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총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거의 죽은 모양이다.

우욱!

유학발은 급기야 피를 토했다.

어둠이지만 자신이 토해 낸 검붉은 핏덩이가 보인다.

온다.

반드시 돌아온다.

꼭 올 것이다.

와서 사막의 흑새를 오체분시 할 것이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몇 번을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나길 반복했고 해는 이미 떠올라 대지는 불구덩이처럼 뜨겁다.

퍼억!

다시 유학발이 엎어졌다.

“대대장님 일어나십시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비린내가 실렸다.

유프라테스강이 멀지 않다는 뜻이었다.

“물...물!”

유학발의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바짝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물을 찾는다.

물이 없다.

좀 더 가야 강물이 있다.

“대대장님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오이동은 흔들거리는 유학발을 악착같이 세우며 언덕을 넘었다.

있다 숲이 우거지고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젖과 꿀이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이다.

사람이 태어났고 사람이 살아가는 인류의 강이다.

데구르르!

중심을 잃으며 두 사람은 굴러갔다.

중심을 잃었다기 보다는 유프라데스강에서 오는 물 냄새에 취해 서두르다 보니 나동그라진 것이다.

하지만 뒹구는 걸 멈추려 들지 않는다.

어쩌면 걷는 것보다 비탈길을 굴러가는 것이 더 빠르고 체력이 소진된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복이다.

퍼억!

커다란 바위에 막혀 멈췄다.

“대대장님!”

오이동은 유학발을 세웠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저기 보이십니까? 물입니다.”

두 사람은 언덕을 내려갔고 몇 번을 다시 구르고 넘어지면서 기어이 강가에 도착하고 말았다.

쏴아아!

갈대가 바람에 흔들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갈대를 헤치고 강물로 뛰어 들었다.

풍덩!

그들에게 강물은 어떤 것보다 넘치는 축복이고 달콤한 꿀이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처박고 한참동안 물을 마시더니 푸후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살 것 같다.

비로소 세상이 보이고 생각이 나고 판단이 선다.

자신은 군인이고 지휘관이었다.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면서 유학발의 눈이 가라 앉기 시작했다.

비록 팔은 잘렸지만 아직 얼마든지 군인으로서 전쟁을 할 수 있다.

멈칫!

유학발이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갈대 사이로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떠 있는데 노인 하나가 그물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그물은 햇빛을 받아 반짝 거렸는데 고기는 전혀 걸려 올라오지 않았다.

“쯧쯧!”

노인은 아쉬운 듯 혀를 차며 빈 그물만 뱃전으로 끌어 올린다.

“이보시오 영감.”

유학발이 갈대를 헤치며 노인을 불렀다.

노인이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우릴 강 건너까지 태워다 주시오.”

강만 건너면 추격자들을 확실히 따돌릴 수 있다.

노인은 두 사람을 보며 이마를 찡그렸는데 한눈에 부상자들임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안타까운 표정을 했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다친 손자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었는데 천천히 노를 저어 배를 두 사람 가까이 붙였다.

끼익!

끽!

낡은 노가 움직이며 배는 조금씩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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