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5화: 나시리아 공동묘지(2)
어쨌든 권총수의 강력한 주장에 의견이 다른 용병들도 뜻을 굽혔지만 마음 속으로는 여전히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후우!
담배를 피우는 권총수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었다.
도로에 폭탄을 매설해야 하는데 차량들이 다닌다는 것이다.
최소 일 킬로미터라는 넓은 거리에 폭탄을 매설하자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찌하여 매설을 했다고 쳐도 병력을 싣고 오는 트럭들이 나타날 때까지 일반 차량의 통행을 막아야 한다.
차량통행에 이상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주 깊게 묻어야 하는데 폭탄을 매설하는 건 그 위를 지나는 탱크나 장갑차 같은 기갑차량에 피해를 입힐 목적이다.
그런데 차가 다녀도 터지지 않을 만큼 깊이 묻다 보면 묻으나 마나일 수가 있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큰 난제가 폭탄 매설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이냐였다.
“좋은 얘기들 있으면 해봐”
침묵이다.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헌데 오민철이 말했다.
“매설할 동안 차량들을 우회시키면 되지”
도로 보수공사 중이라면서 1킬로 정도의 구간을 우회하는데 굳이 어려울 일은 없다고 했다.
일대가 자갈 사막 지형인 탓에 바닥도 단단하다.
또한 도로와 높낮이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잠깐 우회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민철의 제안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적절했지만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오민철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나 어디갔다 왔는지 궁금하지 않냐?’
혼자 볼일이 있다면서 30여분전 차를 몰고 사라졌다가 지금 돌아왔다.
‘흐흐흐!’
오민철이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나시리아 시청관계자와 경찰 수뇌급에 거액을 뿌려 놓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물론 나중 도로를 다시 복구해준다는 약속도 했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예상 못한 오민철의 한 수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 오민철의 눈에는 이미 그 방법 말고는 길이 없다는 걸 단정했을 것이다.
작전이 끝나고 나면 그 구간은 포장까지 해준다고 약속했다는 말에 권총수는 미소를 짓고 말았다.
커다란 이정표 하나가 세워졌다.
도로 공사 중이므로 잠시 우회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군데군데 말뚝을 박고 붉은 비닐 테잎을 이용해 왕복 2차선 도로를 만들었다.
차량들은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무슨 공사인지는 물어보지 않았고 화살표를 따라 자연스런 우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팀원은 차량 우회하는데 동원됐고 남은 사람들은 각종 도구를 이용해 도로를 파고 구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수류탄과 고폭탄을 묻었다.
또한 대전차지뢰를 30미터 간격으로 묻었다.
폭파 방식은 무선 리모컨을 작동하는 것이었다.
작업은 순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어둡다.
순식간에 태양이 사라지면서 대지는 캄캄해졌다.
불빛이 깜빡거리며 차량들의 우회는 계속 이어졌고 블랙잭 용병들의 폭탄 매설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권총수는 매설을 하는 1킬로미터의 구간을 수시로 다니면서 잘못 된건 지적을 하며 잡아 주었다.
‘도대체 모르는게 뭐야’
특전사 근무 시 폭파주특기를 갖고 있었던 배남정은 지나가는 권총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폭탄 매설에 관해서만은 자신이 있었다.
주특기 자체가 매우 위험하여 한 번씩 매설 훈련에 나갈 땐 두껍고 무거운 방호복을 입지만 금방이라도 심장이 밖으로 튕겨 나올 듯 뛴다.
아차하며 선 하나 잘못 연결하면 오발이 생기고 현장에서 즉사한 동기도 있었다.
그런 어렵고 난해한 일을 권총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범을 보여주며 매설하고 가르쳤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기 시작했다.
이충열과 변철완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고 고속도로에서 101번 도로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살피고 있었다.
나시리아로 들어서려는 차량들은 눈 앞에 보이는 분기점을 빠져나와 101번 도로로 진입해야 한다.
자정을 넘은지 한참이다.
그러나 아직 바그다드에 진주하고 있던 설표돌격대 제22대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것 아닐까?”
권총수의 설명과 논리에는 문제가 없었다.
맞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새벽이 깊어 가는데도 군용트럭이나 군부대 병력이 보이지 않으므로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군용 무전기를 한쪽에 세워 놓은 채 고속도로를 바라보았다.
“저기 봐.”
변철완이 말했다.
소변을 보고 돌아서던 이충열이 재빨리 변철완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차량들이 있었다.
한두 대가 아니다.
맨 선두에 국방색 포장을 씌운 지프 한 대가 있었고 그 뒤로 천막을 둘러씌운 트럭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저거 22대대 아냐?”
변철완이 재빨리 야간투시경을 이용해 살폈다.
“맞아! 군부대 이동이야. 지프 지붕에 덮어 씌워진 것은 틀림없는 기관총일거야.”
이번에는 이충열도 야간 투시경을 이용해 살피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로 101번 도로를 이용할 줄이야.”
“중국군 22대대 맞지?”
“빙고!”
이충열은 재빨리 무전 송신기를 들고 교신을 시작했다.
“백두산, 여긴 한라산 응답하라.”
반응이 없자 다시 한번 호출했다.
“백두산 여긴 한라산 응답하라!”
“한라산 여긴 백두산이다 이상.”
“보인다. 눈 표범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고 있다. 이상.”
“천천히 말하라. 눈표범은 몇 마리인가?”
눈 표범은 설표 돌격대를 태운 트럭을 말한다.
이충열은 지나가는 차량들을 보며 자세히 설명했다.
“많아. 아주 많다 이상.”
“고맙다. 한라산. 즉시 본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다.”
두 사람은 곧바로 현장을 빠져 나갔다.
이어 숨겨 놓은 혼다 지프를 시동걸어 101번 도로로 올라섰다.
부우웅!
차량의 속도를 높인다.
앞에는 설표 돌격대원들을 실은 트럭이 가고 있었다.
둘의 차는 혼다 SUV다.
누가 봐도 일반인의 차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속도를 높였고 순식간에 앞서 가는 중국군의 수송트럭의 꽁무니에 붙었다.
그리고 기회를 봐가면서 사이 사이로 끼어들며 추월을 했는데 그때마다 일부 군용트럭 운전사가 끼어들지 말라는 듯 라이트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계속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해가며 기어이 이동차량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부우웅!
멀리 사라지는 혼다 지프를 보며 선탑차량 지프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학발 중령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건방진 놈들.”
도로에서 다른 차량이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흔하다.
그런데 한두 대도 아닌 이십여 대가 줄지어 가는데 쥐새끼처럼 끼어들었다가 빠져나가고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다시 들어왔다가 나간다.
마치 나 잡아 봐라 하며 약 올리는 것 같은 뜨거운 불쾌감이 아랫배를 채운다.
“총 이리줘!”
뒷좌석에 앉은 통신병의 소총을 받아 창밖으로 내민다.
미등을 켜고 달려가는 혼다 SUV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30발들이 탄창을 모두 쏟아냈지만 사라지는 차를 잡지는 못했다.
“빌어먹을!”
유학발 중령은 더욱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왜 자신이 이렇게 흥분해 있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흠칫했다.
지휘관은 차가운 가슴을 지녀야 한다.
오는 내내 복수할 생각만 하다보니 분기탱천 해버린 것이다.
유학발은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길게 심호흡을 했다.
통신병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권총수는 송이 버섯처럼 생긴 바위틈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팀원들 앞에 조금이라도 모자라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뭔가를 보여야 했다.
비록 흑룡3중대를 몰살시켰지만 이번은 다르다.
솔직히 일부에서는 중과부적도 적당해야지 이건 일방적이라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돈을 벌기위해 왔지 자살하기 위해 온 것 아니라는 극언을 뱉은 직원도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
모두가 특수부대 출신의 전문가들이니 아무리 봐도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전쟁터를 오래 경험한 권총수 또한 기적과 이변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려울 땐 단순하게 나가야 한다.
설혹 무모하더라도 단순해야지 복잡하고 다변화하면 진짜 몰살당할 수 있다.
가끔은 일개 소대병력이 2개 대대병력을 상대로 하룻밤 싸움을 벌여 이겼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돈다.
물론 직접 그렇게 싸워 이긴 네이비 씰 팀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하늘이 주는 선물, 곧 운(運)이 있어야 한다.
운은 자주 오지 않고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의 삶은 상식과 보편성으로 판가름 난다.
보편적으로 보면 무조건 궤멸당할 상황이니 좋아할 용병들은 없다.
더욱이 군대가 아니다 보니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걱정하지마라.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정중사.”
권총수는 정윤수의 어깨를 쳤다.
“걱정 안 합니다.”
정윤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도 이 작전을 위험스럽게 보는 쪽이었다.
“맞습니다. 떠나버린 화살을 무슨 수로 잡습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 가는 수밖에 없죠.”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권총수는 다지고 있는 것이 있다.
군대에서 전술전략이 얼마만큼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쟁에서 변하지 않는 룰이 있는데 그건 바로 꾀(謨), 즉 작전인 것이다.
장비와 병력이 우월하면 사기는 올라가고 결과는 긍정적으로 나타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항상 나 좋을 상황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처럼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다.
만약 이기면 누군가 운이 좋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막의 흑새는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살았고 살아 갈 것이다.
툭!
담배 꽁초를 발로 밟아 끈 권총수가 손바닥만한 무전기를 들었다.
“통제조!”
폭탄을 매설한 도로 좌우 끝에서 차량들을 우회시키는 병력을 말하는 것이다.
“통제조1 감도 양호!”
“통제조2 잘 들립니다!”
권총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적 출현, 적 출현, 거리는 30킬로 후방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40분 가까이 소모될 것으로 판단된다. 알아 들었나?”
“예!”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무전기 오픈하고 긴장할 것, 무전기를 절대 손에서 떼지 말 것. 이상.”
“양호!”
“알겠습니다!”
오민철이 다가왔다.
“집합 끝!”
오민철은 주위 눈을 의식해 일부러 정확한 보고를 했다.
그건 조금 떨어진 곳에 3열 종대로 모여 있는 팀원들을 긴장 시키기에 충분했다.
권총수와 오민철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민철이 나이가 더 많고 사석에 서는 형 동생으로 지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한 군대다.
상명하복의 행동과 태도에 어둠이 흔들리며 조용해졌다.
권총수는 모여 있는 팀원들을 향해 걸어갔다.
권총수까지 포함하여 스물여섯이다.
“주목!”
권총수의 두 눈이 푸르게 번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