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4화: 나시리아 공동 묘지(1)
유학발은 곧장 침대에 누워 있는 염우 소위에게 다가왔는데 굳은 표정이다.
염우 소위는 일어날 수가 없어 누워 있었다.
염우는 유학발 중령의 시선을 제대로 받지를 못하고 피한다.
“어떤가?”
“인민해방군의 명예를 지키지 못한 죄 달게 받겠습니다. 저를 군법에 회부해 주십시오.”
염우 소위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물론 합당한 처벌은 받아야겠지.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그게 뭐냐는 듯 염우 소위의 눈이 빛난다.
유학발 중령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나?”
“당연히 할 것입니다. 놈의 심장을 내 손으로 기어이 꺼내고 말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복수를 하고 싶다면 신속하게 몸을 회복해라. 그것이 너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지금이라도 전투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염우는 비명지르듯 외치며 몸을 반쯤 세웠는데 유학발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아직은 무리다.”
염우는 이를 갈며 다시 누웠다.
조립식 막사로 지어진 군부대였다.
외곽은 접근이나 침입을 막기 위해 기둥을 2미터 폭으로 두 개씩 세워 철조망을 올렸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만들어진 2미터 폭의 길바닥에는 군데군데 지뢰를 깔아 멋모르고 들어오면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군데군데 경비초소까지 세워 무장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병원에 나타났던 지프는 차량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여러 가지 바리케이트 사이를 천천히 돌아 빠져나가며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대위 한 명이 막사 앞에 나와 지프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끼익!
지프가 멈추고 대대장 유학발이 내렸다.
“준비는 됐나?”
“명령만 주시면 출발 할 것입니다.”
“들어가지!”
유학발은 대위 오자서와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오자서 대위가 지도를 걸어 놓고 설명하고 있었다.
“나시리아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모두 세 곳입니다. 7번 국도와 31번 국도, 중간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 나시리아 시청으로 들어가는 101번 도로가 있죠.”
유학발 중령을 포함한 10여명의 군인들이 의자에 앉아 작전지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여기 101번 도로를 이용할 것입니다.”
“왜 101번 도로지?”
유학발이 물었다.
“우선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시리아까지 전체 365킬로미터에서 고속도로 구간만 250킬로 입니다. 신속한 이동이 생명인 작전차량에게 이보다 더 좋은 도로망은 없습니다.”
오자서는 단호히 말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101번 지방도로를 이용하면 넉넉잡고 1시간이면 나시리아에 진입 가능합니다.”
“250킬로미터면 우리 작전트럭으로 몇 시간 정도 소요되나?”
“4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분기점에서 나시리아 시청까지 한 시간, 그럼 모두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것인가?”
“맞습니다.”
벌떡!
유학발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신을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준비들 됐나?”
“중화!”
일제히 일어나 외친다.
*중화(中華),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 또한 주변국에서 중국을 극진이 받들고 대접했다는 의미로도 사용됨.
이어 유학발이 열기 띈 눈으로 선언한다.
“블랙잭의 씨를 말릴 것이다. 단 한 놈도 살려둬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길까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중화인민 공화국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 더욱이 블랙잭은 한국 보안기업이다. 직원 모두가 한국 군부대 출신들이지. 중화군대 최강이라는 우리 설표돌격대의 위엄을 기필코 보여줘야 한다.”
“중화!”
“특히 기억할 건 사막의 흑새라는 놈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뭔가?”
“소문입니다.”
“그렇다. 소문은 원래 진실에서 한없이 불어나는 성질이 있다. 놈에 대한 얘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상대를 주눅들게 하려는 심리작전으로 하늘을 날아가고, 좁은 창살을 빠져나간다는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시리아를 시작으로 이곳 바그다드와 모술에 있는 블랙잭 용병 전원을 몰살해 버리겠다.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내 말 알겠나?”
“중화 충성!”
“출동 시간은 내일 새벽 한 시다. 정확히 아침 다섯 시에 여기.”
유학발의 손가락이 지도 한 곳을 짚었다.
“케오 마을에 모인다.”
케오 마을은 나시리아에서 4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로 주민들은 양을 치며 살아간다.
“이상 질문?”
“없습니다.”
모두가 큰 소리로 합창했다.
“한국인은 모조리 죽여라. 용병이건 민간 기업이건 보이는 대로 사살하라.”
유학발의 눈에 핏기가 감돈다.
살기가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 각자 위치로!”
대위 한 명이 거수 경례를 하고 회의는 끝났다.
모두가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작전장교인 대위 오자서와 유학발 중령만 남았다.
“염우 소위의 참여 의지가 아주 강하던데.”
“병신 같은 놈!”
유학발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놈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
오자서의 눈이 좁혀졌다.
“그 놈은 설표돌격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망신을 주었다. 그런 자들은 중화 인민해방군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오자서는 침을 삼켰다.
자신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오자서는 염우 소위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그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살할 인물이 아니다.
기어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악착같이 발버둥 치는 군인이었다.
2차대전 때 가미카제로 불리는 일본의 자살 특공대가 미 전함을 향해 비행기를 몰고 처박혔다.
그건 전쟁을 이기겠다는 의미보다는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염우가 자살하면 그나마 땅에 떨어진 설표돌격대의 명예가 어느 정도는 회복될 것이다.
목숨을 끊어 명예를 지키려한 소대장의 모습은 다른 동료들에게 결코 평범하게 보일리 없기 때문이다.
군인은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는다.
설표돌격대가 서방의 특수부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몰살을 당하는 처참한 패배를 했지만 지휘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21세기 전쟁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비장한 풍경이다.
염우의 죽음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추락한 설표돌격대의 명예를 조금이나마 세우려는 중국인민해방군 상층부의 생각인 것이다.
작전은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겉모양은 일반 화물차였다.
하지만 화물에서 내려지는 물건들은 국방색 나무 상자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박격포와 155밀리 야포에 사용하는 고폭탄 상자들이다.
미군 제식 수류탄을 가득 담은 박스도 가득했다.
“조심해!”
대전자 지뢰 20여개가 담긴 상자가 옮겨지고 있었다.
사실 권총수의 고민은 많았다.
나시리아로 들어오는 길은 모두 세 곳이다.
도보로 올 수 있는 길까지 합치면 다섯 곳이지만 그 두 곳은 가능성 제로에 놓았다.
차가 들어 올 수 있는 세 곳의 도로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7번 31번 101번 도로였다.
3개 중대병력이 이동하면 반드시 수송차량이 동원될 것이다.
또한 400여명 가까운 대규모 병력을 싣는다면 최소한 20대 이상의 트럭이 필요하다.
어딘가를 공격하기 위한 차량 이동은 훈련때와는 다르다.
훈련때는 30미터에서 40미터의 거리를 두지만 실전에는 80미터에서 100미터를 기본 거리로 유지한다.
그 이유는 어느 한 차량이 폭격을 당하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로 인한 피해가 다른 차량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고속도로가 아닌 이상 백 미터 거리를 유지하며 달릴 수 없다.
고속도로와 달리 국도는 급 커브길이 많고 자칫 뒤를 따르는 차에 어떤 매복 공격이 벌어져도 모를 수가 있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국도기 때문에 최대한 줄여 30미터 거리를 유지한다고 해도 총 길이는 600미터를 넘는다.
사막이기 때문에 600미터 정도의 직선도로가 흔하다.
그러나 한번 커브길에 들어서면 엄청 위험한 거리다.
그것뿐이 아니다.
선탑차량은 기관총을 거치하고 첨병 역할을 해야한다.
선두 차량과 좀 더 떨어져야하기 때문에 1킬로는 훌쩍 넘길 수가 있다.
사실 지난 며칠 세 도로중 어느 것을 이용하여 들어올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 오래 이어졌다.
그 결과 어느 도로로 지정된 건 없었다.
십인십색.
모두가 의견을 달리했다.
각자 현역시절 전술 전략에 대해 배운 지식을 꺼내 놓다 보니 의견 차이가 좁혀질 리 없었다.
일부는 세 곳의 도로를 이용한 분산 진입을 예상했지만 권총수는 그럴 가능성은 백분의 일도 안 된다며 단호하게 잘라 버려야 했다.
“무조건 함께 온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 용병들 질문에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속도다!”
권총수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용병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부대이동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있다.
탱크와 장갑차, 포병차량들의 속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현대전은 속도전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많은 차량이 움직이다 보면 주의를 끌것이고 당연히 목격자들에 의해 소문은 퍼져 나갈 것이다.
그쪽에서 볼 때 그 많은 목격자들중 블랙잭 쪽 사람이 있지 말란 법은 없다.
빨리 이동하여 적이 예상하고 준비하기 이전에 기습을 하는 것이 현대전의 정석이다.
“그럼 그들이 이토록 즉시 보복으로 나온다는 건 어디서 근거한 것입니까?”
일개 중대병력이 몰살을 당했으므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다.
최소한 한 달 정도의 시간적 여유는 갖지 않겠느냐.
우리에 대한 정보와 움직임을 좀 더 정확히 살피자면 그들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권총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바로 온다.”
“어떻게 장담 하십니까?”
“그들은 정상적인 군대이고 우린 민간 용병들이다. 치열한 작전이 끝나고 정비를 하는데 그들은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소속되어 있어 소모된 장비 보충이 빠르게 이뤄진다. 하지만 용병들은 장비를 쌓아 놓고 전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체력(장비)보충을 하기 전에 칠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난 그렇게 본다.”
권총수는 오랜 전장에서 겪은 경험을 내세워 설득했다.
인생에서 경험만큼 뛰어난 지식이 없듯 전쟁도 그렇다.
경험은 어떤 첨단 장비보다 앞선다는 것이 권총수의 지론이었다.
권총수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다면 속도전이므로 적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101번 지방도로에 함정을 파야한다.
“음!”
정윤수 표정은 여전히 밝지 못했다.
권총수의 의견에 가장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중 한 명이었다.
이거야 말로 몰빵이다.
몰빵은 성공하면 판을 통째 쓸어 오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끝이다.
정윤수는 한곳에 집중하는 함정설치가 위험을 넘어 무모하다고 했다.
그러자 권총수는 전쟁은 낚시가 아니라는 말로 대답했다.
낚시란 밑밥을 던져 고기가 걸리면 낚고 그렇지 않으면 꽝을 친다.
어쩌면 어복(魚福)이라는 운에 의해 결과가 좌우된다.
그러나 전쟁은 분명히 한 지점을 정해놓고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예측이 빗나가면 궤멸이다.
그렇다고 가능성 있는 몇 곳에 분산 배치하면 가뜩이나 인원과 장비열세에 있는 블랙잭으로서는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