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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73화 (473/651)

제473화: 설표의 눈물(3)

권총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음성 속에는 서늘한 살기가 담겨 있음을 오민철은 알 수 있었다.

“전쟁은 경험이야. 미군이 왜 강한 줄 알아? 전쟁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야. 경험 없는 병사들은 노련한 고참들로부터 자세한 교육을 받고 설명을 듣지. 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 병사들의 심리를 이야기하며 훈련과 실전은 어떤 차이가 가장 큰 것인지. 경험자의 말은 절반의 실전이지.”

프랑스 외인부대 전술교관중 한 명이었던 요리스의 말이다.

장비도 앞서는데다 경험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미국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군대는 지구상에 없다고 했다.

“앞서 내가 우릴 공격해 온다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군인이라고 했는데 왜인 줄 알아? 이라크는 지금 전면전이 벌어졌던 자유작전(작전명 이라크 자유작전, 부시정부) 때가 아냐. 마음대로 헬기를 띄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병을 동원하여 뒤통수를 때릴 수도 없잖아.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전쟁처럼 병력 이동이나 장비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거지. 거기에 평화유지군이라는 신분으로 와있어.”

“위력이 제한적이다?”

“설표돌격대가 훈련이 잘된 부대인건 분명하지만 어차피 소총 말고는 다른 수단으로 싸울수는 없지. 양쪽 모두 총 한 자루로 승부를 겨룬다면 결판은 지휘관의 전략이 승패를 결정해!”

“지금쯤 연락을 받고 잔뜩 흥분해 있을텐데.”

권총수는 미소를 지었다.

이라크 정부가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줄 건 자명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으로부터 오는 지원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눈에 드러날 만큼 못 본 체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언제든지 이라크를 다시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니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라크에 가장 영향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이 가로막거나 그만 멈추라고 한다면 아무리 중국이라도 평화유지군으로 온 이상은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덜컹!

거리며 차는 빠르게 달려 사라졌다.

권총수로부터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블랙잭 용병이 머물었던 숙소는 나시리아 방송국에서 지원하고 있는 기숙사였다.

그런데 조금전 권총수는 기숙사를 일제히 비우라는 지시를 하달했다.

중국이 기숙사를 칠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기숙사를 공격하게 되면 뉴스에 나오면서 국제적으로 시끄러워지겠지만 그 정도 사태쯤은 지금 중국이 가진 영향력으로 덮기는 식은 죽 먹기다.

어쩌면 그 보다 더 험한 결과가 나와도 그들은 일을 벌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공격은 할 것이다?”

오민철이 묻는다.

권총수는 눈을 좁혀 뜨고 오민철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몇 퍼센트?”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권총수는 망설이지 않았다.

“백!”

“무조건 오는군.”

오민철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들더니 벤치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끝낸 뒤 잠시 호텔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온다면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냐?”

“세워야지.”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는 권총수를 바라보는 오민철의 이마가 찌푸려져 있었다.

아주 심각하게 묻는데 권총수의 대답이 너무 쉽게 나왔기 때문이다.

대대 규모이기 때문에 바그다드 인근에 아직 3개 중대병력이 있다.

만약 그들이 전부 나시리아로 들이닥친다면 막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더욱이 복수에 눈이 뒤집혀 있을 것이기에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여기 계셨군요.”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는데 정윤수였다.

그는 지금 권총수의 지시를 받고 방송국 기숙사에 있는 팀원들을 전부 제3의 장소로 이동시키고 있다.

“부대 이동 마무리 됐습니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폭탄이 어느 정도 됩니까?”

권총수가 물었다.

정윤수는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많지 않습니다. 정확한 건 병기고를 살펴봐야겠지만 크레모아와 수류탄 컴포지션 4계열의 폭약이 있고.”

권총수는 입술을 좌우로 움직이며 뭔가 계산하는 듯 했다.

이마까지 약간 찡그려진 걸 보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핸드폰을 꺼내 번호 하나를 눌렀다.

“캡틴입니다. 맥과 통화를 원합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CIA요원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다.

직접 통화도 가능하지만 맥보란이 지금 회의 중이거나 아니면 신중한 작전을 진행 중이라면 자신의 전화가 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윽!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담배나 한 개비 피우자는 듯 정윤수에게 내밀었다.

정윤수가 한 개지 뽑아 물자 자신도 꺼내 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잠시 세 사람은 담배연기에 휩싸였다.

“대표님!”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정윤수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왜 이러십니까? 우리사이에 뭘.”

그러자 정윤수는 씨익 웃었다.

약간은 어색한 듯 했는데 권총수가 아무리 편하게 대해줘도 회사 대표다.

즉 어려운 것이다.

“음!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정중사, 뭘 물어보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갑자기 내가 부담스러워지잖아.”

오민철이 눈을 크게 뜨며 빨리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별 것 아닙니다. 낮에 염우 소위 말입니다. 중국 친구.”

“그냥 짱개라고 그래. 무슨 중국 친구야.”

오민철이 버럭 짜증을 냈다.

“네 짱깨요.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팟!

권총수의 눈이 살짝 빛난다.

“일부러 살려 주셨습니까?”

“정 팀장.”

“내 예상이 맞군요. 어쩐지.”

“뭔 소리야. 일부러 살려주다니 그 놈 죽은 것 아냐. 그런 상처를 입고 무슨 수로 살아난단 말이야. 더욱이 45도의 땡볕 아래서.”

“정 팀장 예리합니다. 일부러 살려 주었습니다. 제대로 보았습니다.”

“진짜? 일부러 놔둔지 알았는데, 그런 것 있잖아. 모가지를 잘라주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직원들도 햇볕에 말라 죽었으니 그놈도 그렇게 죽으라고 오기로 내버려 둔줄 알았어.”

“내가 그놈을 두들겨 팰 때 우리 근처를 에워싸고 있는 블랙잭 직원들과 전혀 색깔이 다른 호흡을 하는 두 사람을 찾아냈지.”

“누군데?”

“내 짐작인데 의무병일거야. 중대와 연락이 끊어지자 은밀하게 찾아와 본거지. 워낙 우리 기세가 험악했고 자신들이 몰살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숨어 지켜보기만 했어.”

“그럼 없애 버려야지.”

“형!”

오민철을 보며 웃는다.

“형이 어떤 사람에게 맞았어.”

“내가 왜 맞아. 대한민국, 아니 지구상에서 다이다이 붙어 날 이길 놈 없어.”

오민철은 싸움 얘기만 나오면 흥분한다.

“아니 그냥 맞았다고 쳐.”

“내가 깨졌다 이거야?”

“형이 어느 놈한테 개박살이 났어. 완전 걸레조각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거야. 그런 내용을 전화로 듣는 편이 화날까 아니면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열불 터질까?”

“당연히 깨진걸 직접 보는 것이 더 미치지. 707시절에 두 놈이 외박 나갔다가 민간인들과 싸움이 붙어 깨져 왔더라고, 피가 거꾸로 솟더만, 위병소에서 당직사관 허락없이 나가면 탈영처리 된다고 막았지만 쫄따구가 맞고 왔는데 탈영이 문제야. 기어이 쫓아가 아작을 내버렸지.”

“바로 그거야.”

“뭘?”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오민철의 눈빛이다.

“염우 소위의 처참한 몰골을 바그다드에 있는 대대장 유학발 중령이 두 눈으로 직접 봤다고 쳐. 아마 사진을 찍어 전송했을 가능성이 높거든.”

“돌지! 돌아버리지.”

오민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끼는 부하 장교가 처참히 깨졌다. 아 생각만 해도 피가 끓는다.”

자신의 일인듯 부르르 몸까지 떨었다.

“누구든 돌면 눈에 보이는 게 없지.”

권총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오민철이 눈을 좁히더니 뭔가 떠올리는 듯 했다.

그리고 생각이 난 듯 눈에 힘을 준다.

“혹시 언젠가 말했던...그것 뭐지...격...격...거 뭐냐 성질을 건드려서 의도하는 방향으로 유인하는.”

“격장지계(激奬之計)”

“그러니까 격장지계를 쓰기 위해 염우 그 놈을 걸레로 만들어 놨다는 것 아냐. 또한 학교에서 살피러 온 놈들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고서도 모른 체 했고.”

권총수가 그렇다는 듯 웃음을 지을 때 전화가 울렸다.

맥보란이다.

“전화가 조금 늦었습니다. 갑자기 골치 아픈 사건이 생겨서 말입니다. 어쩐 일이죠?”

“요즘 들어 자꾸 부탁만 하는 것 같습니다.”

“캡틴답지 않게 무슨 그런 말씀을.”

“폭탄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하기도 하고 가지고 있는 양이 조금 부족합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고폭탄과 대전차지뢰, 부비트랩이나 수류탄은 많을수록 좋죠. 볼탄(ball bomb)도 가능하다면 더욱 좋구요.”

“캡틴!”

맥보란이 놀란다.

볼탄은 항공기로 투하하는 폭탄이다.

커다란 폭탄 속에 또 다른 작은 폭탄이 들어있다.

큰 것을 모폭탄(母爆彈)이라 부르고 속에 탁구공 모양의 폭탄을 자폭탄(子爆彈)이라고 한다.

모폭탄 속에는 보통 자폭탄 300~600개가 들어있고, 자폭탄 속에는 또다시 지름 5.6mm의 소형 강구(鋼球)가 이삼백 개 내장되어 있다.

하나의 볼탄 안에는 소형강구 10만개 이상이 들어있는 셈이다.

시한장치에 의해 폭표지점 상공에서 가장 먼저 모폭탄이 터지고 쏟아져 나온 자폭탄이 또 터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들 머리 위에서 손자폭탄이 터져 주위를 몰살한다.

“볼탄은 전략무기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해보겠지만.”

“감사합니다.”

볼탄을 얻을 수 없다.

솔직히 그건 말이 안 된다.

도저히 불가능한 부탁을 한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목적이었다.

전투기 투하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볼탄을 요구할 정도면 얼마만큼 중요한 작전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볼탄은 주지 못해도 나머지 요구한 여러 폭탄은 충분히 보내주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서로 총구를 겨누는 교전으로는 승산이 없다.

일단 여러 가지 전략 전술을 동원해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복싱으로 말하면 잽을 이용해 상대를 계속 때리는 것이다.

당연히 가벼운 주먹이기 때문에 상대는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누적이 되고 피로도가 쌓인다.

그런 몸에 강력한 카운터가 들어가면 절대 견디지 못한다.

폭탄을 이용해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바그다드 대학병원으로 군용지프 한 대가 들어섰다.

지프는 다른 차와 달리 본관 앞까지 들어왔고 멈추더니 군복을 입은 사내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어깨 견장에는 노란 두 줄 사이로 별 두 개가 박혀 있다.

중교(中校: 중령)이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파견대장 유학발 중령인 것이다.

오른쪽 옆구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는데 운전병의 호위를 받으며 병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내는 온 몸을 붕대로 감고 있었는데 꼭 미이라 같았다.

밖으로 드러난 건 보기 위한 눈과 호흡을 위한 코와 입이 전부였다.

나시리아에서 급히 실려와 입원한 염우 소위였는데 가만 누워있지 못하고 계속 끙끙 앓는 소리를 했다.

딸칵!

문이 열리고 유학발 중령이 들어서자 병실을 지키고 있던 군인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 경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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