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1화: 설표의 눈물(1)
사내는 빈손이었는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여유있는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등철휘 오른손에 QTS-11이 들려 있었다.
총구가 지면으로 약간 숙여져 있는데 들어 올려 방아쇠를 당기면 끝난다.
그런데 이상했다.
총을 들어 올릴 수가 없다.
무거워서도 아니고 사격에 자신이 없어서는 더욱 아니었다.
10여 미터 거리이니 눈감고 방아쇠를 당겨도 얼마든지 맞출 수 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있다.
살인 기술이다.
무전병을 상상 이상의 기술로 죽였다.
절벽을 폭파시켜 동굴입구를 막아 버린 것 또한 사내의 행위로 판단한다면 좀 더 냉정해 질 필요가 있었다.
“제대로 걸린 것 분명합니까?”
“그렇다니까.”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두 사내가 나타났는데 HK-416을 들고 있었다.
‘블랙잭’
등철휘는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뭔지 한 번에 알아보았다.
‘아아!’
이제야 상황이 훤히 그려진다.
블랙잭이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설계한 블랙잭의 작전에 자신이 말려든 것이었다.
“숫자는 적고 장비까지 밀리더군요. 적은 인원으로 승부를 볼만한 건 악천후를 이용한 게릴라전뿐인데 그것 또한 이미 선수를 빼앗겼고.”
모래폭풍을 이용한 방송국 기습을 얘기하는 것이다.
“남은 건 정면충돌인데 아무리 뛰어난 용병도 현역에게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사내는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어느 한 쪽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 전쟁이라는 게임인데 죽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덫을 놓기로 했죠. 걸려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표적은 배설을 위해 훈련장을 이탈한 섭문철이었다.
섭문철을 죽이면 피가 굳지 않았으니 멀리 가지 못했다고 곧바로 추적을 시작할 것이다.
“피는...어떻게 된 것이오?”
사내는 기대고 있던 나무 뒤로 손을 뻗어 털이 수북한 여우 한 마리를 들어 보였다.
여우의 목 부위가 시뻘건 것이 자신들이 추적했던 핏방울이 바로 여우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등철휘 눈동자가 흔들린다.
완벽하게 당했다.
핏방울을 동굴 안으로 흘린 것은 가둬 놓고 한 번에 몰살하기 위한 것이다.
미끼를 물어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단단히 물고 말았다.
무전병을 죽인 것은 이곳 사정을 본대에 알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막힌 느낌이다.
“당신이 사막의 흑새인가?”
사내는 빙긋 웃었다.
치치칙!
갑자기 무전기 소리가 들린다.
나무에 목이 꿰인 채 죽어 있는 무전병 등에 매달린 무전기가 지직 거린다.
“흑룡3 응답하라. 여긴 흑룡본부.”
대대 무전병이 귀대할 시간이 넘었는데 돌아오지 않자 무전을 보내고 있었다.
“흑룡3, 흑룡3 지금 어딘가?”
무전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오민철이 히죽 웃는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철휘 소위(소대장), 내 부하직원 넷을 옷 벗겨 절벽에 매달아 죽인 자가 누구요?”
등철휘는 입을 열어 대답하지 않았다.
“군인은 오직 총으로만 죽이는 것이오. 그런 식의 살인은 성전(聖戰)이라는 궤변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채우려는 테러집단이나 하는 짓이오. 이제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강대국이 된 중국인데 대국의 병사답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앙!
권총수의 손에 글록19가 쥐어져 있었다.
퍽!
바닥으로 쓰러진 등철휘는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무전 교신이 되지 않으니 나머지 모든 부대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겠죠. 누가 그랬죠? 제대로 된 사냥꾼은 사냥감을 불러들인다고 말입니다.”
타앙!
한 발을 더 쏘아 완전히 숨을 끊었다.
“정 팀장!”
“예 대표님!”
“전투 준비 하세요. 늦어도 30분 이내에 흑룡중대 남은 병력들이 올 것입니다.”
이미 공격지점과 적의 퇴로가 예상되는 곳까지 완전한 덫을 설치해 놨다.
정윤수 팀장이 돌아갔다.
딸칵!
오민철이 담배에 불을 붙여 물며 말했다.
“개자식들!”
오민철이 이를 갈아 붙이고 권총수는 휴대용 무전기를 꺼내 지시했다.
“기관총!”
“이상 무!”
나흘 전 차량 덮개를 씌운 지프 한 대가 권총수 앞에 나타났다.
맥보란이 이라크 주둔 미군의 협조를 받아 GAU-19를 보내 온 것이다.
차량에 싣고 이동하며 공격하도록 되어 있지만 이곳은 산이고 길이 없어 48킬로짜리 무거운 총을 인력으로 옮겨 설치해 놓았다.
“전원 전투 위치로.”
무전기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고 오민철도 산 아래로 사라진다.
모두가 숲속 곳곳에 숨어 있다.
QJG-02 중 기관총을 거치한 두 대의 지프와 그 뒤를 여섯 대의 트럭이 달린다.
트럭에는 완전무장한 흑룡중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훈련을 나간 3소대와 연락이 끊겼다.
유무선 전화 모두가 불통이다.
선두 트럭에 선탑한 대대장 중교(중령)개소평이 앉아 있었는데 철모를 깊숙하게 눌러쓰고 이를 깨물고 있다.
30여명의 특수부대원이 감쪽같이 연락이 두절된다는 건 무척 절망스런 일이다.
좋지 않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IS 잔당들이나 시아파 테러조직 헤즈볼라, 반미 민병대 모두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심지어 이동하는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매복하고 있던 근처를 지나갔는데도 건드리지 않았다.
원래 표적이 미군이기 때문이지만 정말로 중국이란 나라에 분노한다면 가만 놔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을 보면 그들은 이 불길함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한 곳이 떠오른다.
‘블랙잭’
하지만 개소평은 고개를 저었다.
블랙잭의 전력은 자신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되지 않는 병력인데 전번 기습으로 적지 않은 인원이 사살되었다.
더욱이 요즘 그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용의선상에서 제외한다.
‘그렇다면’
한 순간 개소평의 눈이 빛났다.
‘설마 그들’
자신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설표돌격대는 중국판 네이비 씰이다.
그렇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설표돌격대의 훈련수준이 어느 정도에 있는지 공격을 해 볼 수도 있다.
개소평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미군 병력이 이곳 나시리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는 아직 받지 못했다.
바그다드 근처에 몰려 있을 뿐 여긴 활동하지 않는 지역이다.
중국의 첨단 첩보위성이 미군의 이동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덜컹!
그때 차가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면서 생각에서 깨어났다.
“전대원 전투준비!”
개소평은 헤드셋을 무전기에 대고 명령했다.
2킬로 정도 더 들어가면 흑룡중대 훈련장이 나타난다.
“통신병 계속 교신하고 있나?”
“네 그렇습니다. 교신을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응답하지 않습니다.”
통신병의 목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개소평은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훈련장이 가까워 올수록 가슴이 뛴다.
자신의 가슴은 불길할 때 뛰는 습성을 갖고 있었다.
터질 듯 뛴다.
여지껏 경험하지 않았을 정도로 세게 뛴다.
트럭이 도착하고 군인들이 재빨리 차에서 내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각자 공격과 방어가 적절한 엄폐물을 찾아 숨는 것이다.
언덕너머 사격장은 조용했다.
“1소대 사격장, 2소대는 시가지 전투 훈련장을 수색한다. 실시.”
개소평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개 소대 병력들이 재빨리 언덕을 올라 주어진 지역으로 사라졌다.
2소대장 단잠풍 소위의 눈이 번득인다.
시가지 전투장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했고 어디에서도 동료들의 모습은 없었다.
“보고! 동쪽 이상 무.”
“북쪽 이상무.”
“없습니다.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단장풍은 헤드셋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철수!”
사방으로 흩어졌던 소대원들이 돌아올 때였다.
“시체 발견, 시체 발견, 전원 A지점으로 이동한다.”
중대장 개소평의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들려왔다.
“소대 A지점으로 이동.”
일제히 왼쪽11시 방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을 벗어난 숲속에 시신 한 구가 있었다.
모든 병사들은 사주 경계를 했고 중대장 개소평이 도착하여 엎어져 있는 시신을 보았다.
시신은 부패가 시작되어 악취가 풍겼고 구더기들이 끓기 시작했다.
“3소대 섭문천 중사입니다.”
시신을 하늘을 보도록 엎었는데 이름표가 드러났다.
4소대장 염무 소위가 악취가 나는데도 쭈그리고 앉아 시신을 살폈다.
“총에 맞았습니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당긴 모양입니다.”
권총수는 총이 아닌 나뭇가지를 적엽비화 수법으로 날려 섭문천을 죽였었다.
역시 이들도 권총수의 솜씨에 속는다.
“소대장님 핏자국입니다.”
그때 무전이 날아왔다.
“5부 능선 중턱 붉은 바위가 몰려 있는 곳입니다.”
“뭣들 해 출동해.”
개소평이 소리쳤고 4소대장 염우 소위가 병력을 이끌고 산을 올랐다.
“1소대 2소대 모두 거리를 유지하여 수색에 나선다.”
소대병력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롬산 정상은 절벽이다.
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라간 사람이 있는데 두 명의 블랙잭 요원이 미군 중기관총 GAU-19를 거치하고 있었다.
보인다.
백여 명 가까운 설표돌격대 병사들이 산을 올라오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고 있었다.
총을 잡은 사람은 백두건이다.
해병 수색대 출신이며 한미 연합훈련때 GAU-19 사격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여 사수로 맡긴 것이다.
그리고 보조사수로 팀장 정윤수가 엎드려 있었다.
정윤수는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공격과 작전지시를 수시로 하달할 것이다.
“사격준비!”
절벽 아래 울퉁불퉁한 바위 뒤에 몸을 숨긴 블랙잭 요원들이다.
그 속에는 권총수도 있었는데 샤이텍 200을 거치해놓았다.
조준경을 통해 올라오는 적을 살피던 권총수의 총구가 한 곳에서 멈췄다.
무전기를 맨 통신병을 데리고 올라오는 인물은 이미 맥보란이 건네준 사진으로 한 번 본 흑룡중대장 개소평이다.
공격은 권총수의 저격총이 신호다.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지은 조준경을 조종하는가 싶더니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탕!
퍼어억!
조준경속으로 머리통이 날아가면서 쓰러지는 개소평의 모습이 들어왔다.
두두두두!
총소리를 시작으로 HK-416 이 불을 뿜었다.
뿐만 아니었다.
절벽위에서 내려다보며 쏟아내는 GAU-19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같았다.
웬만한 바위와 나무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설표 돌격대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컥!
허억!
신체를 찢어 버리는 파괴력에 모두가 즉사를 피하지 못했다.
지리적으로 월등히 우세한 곳을 선점했고 정확한 요소요소에 숨어 공격하는 블랙잭 팀원들은 매우 차갑고 안정을 유지했다.
또한 권총수의 사격은 정확히 소대장들과 분대장 등 간부를 향해 조준되었다.
1,2,4 소대장중 살아남은 사람은 4소대장 염우뿐이었다.
중대장 개소평을 따라다니던 무전병도 이미 나동그라져 있었다.
두두두두!
육중한 GAU-19 소리가 산을 울린다.
일방적이다.
무자비한 공격에 도무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여보세요.”
바위 뒤에 몸을 숨긴 4소대장 염우 소위는 핸드폰에 대고 소릴 높였지만 반응이 없다.
산속인데다 하필 커다란 바위와 나무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통화권을 벗어 난 것이다.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멈칫!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염우의 눈이 반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