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469화 (469/651)

제469화: 사냥(3)

샤이란의 모습으로 변장한 사람은 권총수였다.

남편이 아닌 권총수의 얼굴로 돌아왔는데도 아내 사파는 그다지 놀라지 않고 있었다.

권총수가 칸테랄 마을을 찾아 온 건 사흘 전이었다.

방문 목적은 간단했다.

주민으로 위장하여 진료를 받는 방법으로 설표돌격대 흑룡중대를 찾아가보는 것이다.

때마침 사파의 남편 샤이란은 폐렴증세가 악화되어 힘들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권총수는 샤이란을 바그다드의 큰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게 해주는 댓가로 잠시 신분을 임대 한 것이다.

처음 사파는 거절했다.

이슬람 율법에서 외간 남자와 얼굴을 마주한다는 건 돌멩이에 맞아 죽을 중죄이다.

권총수는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신분만 빌린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고 설득했다.

그리고 오민철이 샤이란을 바그다드 대학병원에 입원시켰고 통화를 시켜준 다음에서야 오케이 했던 것이다.

물론 권총수는 신분만 샤이란이었을 뿐 집에서 생활하지는 않았다.

동네 사람들의 이름과 습관에 관해서는 사파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강호의 초절정 고수가 폐렴증세 하나 만들어 내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직까지 일은 순조롭다.

부르릉!

그때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린다.

나가보지 않아도 누가 왔는지 알고 있다.

여길 아는 사람은 오민철 뿐이다.

주위 사람들 눈에 이상한 차량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폐차 직전인 혼다 SUV를 끌고 다닌다.

혼다 SUV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는 이 지역 바라일에서 가장 흔한 자동차이다.

오민철이 들어섰다.

한손에 검정색 포대를 들고 있었는데 보나마나 사파에게 전달할 밀가루와 계란일 것이다.

빵은 이들의 주식이고, 계란은 이들이 만드는 빵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이다.

“앗쌀라 말라이 쿰.”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사파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권총수와 오민철이 진심을 다해 자신을 돕고 있다는 걸 알고 자신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어때?”

사파에게 밀가루와 계란을 건네준 오민철이 권총수에게 다가왔다.

권총수는 마당가에 서 있는 아까시아 그늘아래 앉아 있었다.

딸칵!

오민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스윽!

권총수와 2미터 정도 떨어져 쭈그리고 앉았다.

“무장상태는 전형적인 보병이야. 기관총이 가장 큰 위력일 것 같고.”

“수류탄이나 크레모아 이런 건 있겠지.”

“당연하겠지. 보병들의 매복 기습에 핵심 물건들인데, 문제는 머릿수야. 140여명이 약간 넘어.”

“허걱!”

마음속으로 제발 100명이 넘지 않길 빌었다.

어떻게든 23명으로 붙어 보려면 한 명이라도 적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에 할 말이 없다.

“확실해?”

오민철의 눈이 흔들린다.

“방법은 딱 하나야.”

그게 뭐냐는 듯 오민철이 숨을 죽였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국지전으로 일어나는 작은 교전에서 의외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양쪽 모두 연대나 사단 병력이 움직이는 대규모 전투가 아니다 보니 약간은 긴장을 풀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운 따위는 없다.

전장은 죽은 자와 살아난 자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끌어내는 것.”

“끌어내다니?”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인원을 잡으려면 밖으로 끌어내야 할 것 아냐. 장애물도 없는 넓은 공터 같은 곳으로 불러 낼 수만 있다면 한 번에 뒤집어 버릴 수 있겠는데.”

공터로 끌려나올 두더지는 없다.

밖으로 끌려나가는 순간 위험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두더지 입장에서는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천만다행으로 자기들이 나와 있더라고.”

툭!

오민철이 너무 놀라며 담배를 떨어뜨렸다.

“어딘데?”

“오늘 훈련을 받고 오는 걸 봤어.”

“훈련장!”

불끈!

오민철이 주먹을 쥐었다.

“장소가 어디야?”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일단 부대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했으니까 이제 뒤를 밟아 봐야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곳에 와서 보기 드물게 보는 웃음이 있다.

그렇다고 짓는 웃음이 즐거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가끔 한 번씩 누군가를 사냥하기에 앞서 권총수는 지금과 같은 웃음을 짓는다.

살소(殺笑)였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감정이 극도로 팽창하면 얼굴에 지금과 같은 웃음이 떠오른다.

분노의 웃음인 것이다.

지잉!

권총수가 핸드폰을 보는데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M200 샤이텍 도착!’

리야드에 있는 지사장 박호명으로부터 온 문자였다.

“형이 M2시켰어?”

“M2라니 샤이텍이 왔단 말이야? 난 몰라.”

그때 전동으로 해놓은 전화기가 울렸다.

맥보란이다.

“맥이 보낸 것입니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권총수는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뛰어난 저격총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저격총에 서열을 매긴다면 두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총이다.

보통의 대인 저격소총들이 1,500미터 내외를 노린다면 M200는 2,500미터 전후를 관통한다.

더욱이 권총수처럼 내공이 출신입화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면 안력이 강하므로 거리는 훨씬 늘어난다.

그래서 저격수 잡는 저격 총으로도 불리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장비 도착에 권총수가 놀란 것이다.

사실 권총수는 설표돌격대의 숫적 우위에 대항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장비중 하나가 저격총라고 생각했다.

구하려고 마음먹으면 구하지 못할 것도 없으나 단시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고가의 총기다.

M200을 보냈다는 건 맥보란이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다.

맥보란이 잘못한 건 없지만 CIA가 관여했기 때문에 일말의 책임을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좋은데 쓰죠. 그런데 팀장님.”

“말씀 하십시오.”

“알발라드 기지에 GAU-19가 있습니까?”

바그다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미군 기지를 말하는 것이다.

“예?”

맥보란이 움찔했다.

“GAU-19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갑자기, 글쎄요.”

대답이 밋밋했다.

그건 있다 없다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지 않는 애매한 것으로 권총수의 의중을 파악해 보려는 속셈이 있는 대꾸였다.

“필요합니다.”

권총수는 노골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사막의 흑새는 아직까지 공짜로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GAU-19를 구해주면 그에 상응하는 도움을 CIA에 주겠다는 의미였다.

부탁이면서 거래를 제의한 셈이다.

“빠를수록 좋습니다.”

권총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쉬운 부탁이 아닌 이런 일은 많은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대의 변명이나 도망갈 구멍만 더 듣게 될 가능성이 있다.

조금은 단호하게 끊어버림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도와주지 않으면 이 또한 약간의 불쾌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으름장이기도 했다.

“줄까?”

오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모르지!”

권총수는 피식 웃어 버렸다.

오민철은 담배를 피워 무는 권총수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CIA의 일이라는 건 항상 위태롭고 위험하다.

아무리 권총수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자칫하면 목숨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거래를 제안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권총수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거래를 시도한 것이다.

GAU-19는 미군에서 가장 강력한 중기관총이다.

세 개의 총열이 벌컨처럼 돌아가며 총알을 쏟아내는데 1분에 2,000발을 퍼붓는다.

단점은 무게였다.

구형은 60킬로그램을 넘었지만 신형은 48킬로그램이다.

그래도 사람의 힘으로 운반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어서 지프에 장착하거나 아니면 헬기, 선박등 다양한 시설에 실려 운영되고 있었다.

워낙 화력이 좋고 살상력이 뛰어나 지금처럼 숫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사용하면 놀라운 효과를 보여줄 건 뻔했다.

“형 오늘은 이만 돌아갑시다.”

권총수는 샤이란의 아내 사파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돌아섰다.

“또 봐요.”

오민철은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다.

권총수는 바라일에 들어온 설표돌격대 흑룡중대를 놓치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몇 차례 흑룡중대는 훈련을 나갔다.

훈련장은 바라일 시에서 서북쪽에 있는 웅자르 산 초입에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가롬산과 달리 유프라데스강과 가까워 산에는 숲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 사격장을 만들었고 소규모지만 시가지 전투장도 구축해 놓았다.

훈련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아 30여명 정도 되는 소대 병력이 돌아가면서 훈련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에서 4개 소대가 돌아가며 훈련을 하고 훈련이 없는 소대들은 의료 및 시설복구등 대민 지원사업에 나선다.

그리고 일요일은 쉬는 것이다.

“음!”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온 권총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주위는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거리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무법천지가 되고 살인이 예사로 일어난다.

단순 범죄자도 정치적 종교적 전사로 신분을 숨겨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걸리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안 되겠어!”

두 사람은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언제가지 기다릴 수는 없어. 미끼를 던져야 할 것 같아.”

“미끼?”

오민철이 돌아본다.

“소대별로 하루씩 훈련을 하고 나머지는 대민 지원이야. 이런 패턴으로 계속 나갈텐데 언제까지 한자리에 모두가 모이기를 기다릴 수는 없잖아.”

지금까지 중대병력이 모두 훈련에 나설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일은 거의 없을 듯싶다.

이쪽은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다.

저들은 현역이고 이쪽은 예전에는 잘 훈련된 군인들이었지만 지금은 나이 먹은 용병일 뿐이다.

현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흑룡중대가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 공격해야 효과가 크지만 기지인 학교를 칠 수는 없다.

그곳은 둥지이고 우리이다.

방어가 잘되어 있을 것이 뻔한데 당할 확률이 높다.

무조건 둥지 밖으로 모두를 끌어 낸 뒤 쳐야 하는데 그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이다.

“좋은 방법 있어?”

오민철이 눈을 빛내며 묻는다.

3소대 병력이 트럭 두 대에 나눠 타고 기지를 떠났다.

그리고 40여분을 달려 웅자르산 초입에 세워진 사격장에 도착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모두가 탄창을 지급 받고 서서쏴와 쭈그려 쏴 자세로 백 미터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타탕탕!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났는데 사격들이 몹시 절제 되어 있고 집중력이 탁월하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 부대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백 미터 표적 사격이 끝나고 이번에는 시가지 전투에 돌입했다.

엉성하긴 해도 집과 건물의 모형을 나름대로 지어 놓고 실전처럼 진압하듯 몰아치는 공격력이 매우 빠르다.

훈련과 실전의 차이가 크다지만 일산분란하고 지원과 엄호사격이 잘 이뤄지고 있었다.

두두두두!

탕탕탕!

자동사격과 점사, 또는 단발사격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흑룡중대 제 3소대장 섭문천의 입에서 휴식이라는 말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각자 자신이 훈련하고 있는 그 지역에서 그대로 휴식에 들어갔다.

담배를 피우는 이도 있고, 동료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일부는 화장실을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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