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8화: 사냥(2)
하지만 정윤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는데 QJG-02가 어떤 무기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라크 모술 탈환작전 때 처음 마주쳤지.”
오민철이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린 처음에 M2 브라우닝 인줄 알았어. 어마어마한 위력에 무척 당황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릴 정도였다.
“그럼 당시 설표돌격부대가 참전했단 말입니까?”
“중국 인민해방군이 자랑하는 QTS-11 소총과 QJG-02중 기관총이 적지 않게 IS의 수중에 넘어갔지. 그런데 말이야 중국은 러시아와 틀려서 첨단 장비는 외부로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 CIA 주장이라고.”
“허면 IS의 수중에 있었지만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넘어갔다?”
“사망한 IS대원중 아시아계가 적지 않았지. 그게 뭐겠나?”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실전 경험, 즉 미 해병을 포함한 네이비 씰과 한 번 붙어보기 위해 여러 신분으로 위장하여 중국 정부에서 현역을 밀파했다는 것이 맥보란의 분석이야.”
그렇게 하여 경험했던 중기관총 QJG-02와 제식 소총 QTS-11은 놀라웠다는 결론이었다.
권총수의 이마가 사흘째 펴지지 않는다.
게릴라전의 형태, 즉 소규모 전투로는 블랙잭이 불리하다.
한 번에 정면충돌로 이기든 지든 끝내는 일전(一戰)이 필요할 때다.
이쪽은 스물셋, 리야드에 있는 박호명까지 불러들인다고 해도 스물네 명이 전부였다.
반면 바라일에 있는 평화유지군 소속의 설표돌격대는 중대병력 약 130여명으로 추정한다.
23대 130.
숫자적으로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화력도 이쪽이 절대 불리하다.
경비 초소에 중기관총 두 정을 설치할 정도면 본대의 화력은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었다.
“기습이 어때?”
오민철 역시도 날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전술 전략을 세우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숫자가 많다는 건 칼과 활로 싸우던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절대적 승리의 요소였다.
물론 장비의 발달로 때로는 소수가 다수를 이기는 경우가 적지는 않지만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기습?”
“물론 상대의 병력 배치도와 화력을 90퍼센트 이상 확인하는 전제로 말이야.”
적의 화력과 인원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한 뒤 기습으로 승부로 보자는 오민철의 말이다.
사실 적은 인원임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소극적인 작전으로 나갔다가는 완전히 뭉개질 수가 있다.
기습은 전력의 열세를 지닌 쪽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단이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공격은 확실히 적을 몰아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했다.
‘10분’
외인부대 전술교리에 나와 있는 말로써 기습공격에서 초반 10분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칼과 활로 싸우는 시대와 달리 거리를 두고 방아쇠를 당기는 원거리 전쟁에서 10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10분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한다는 건 그 만큼 기습 공격을 성공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권총수는 기습이라는 말을 한참동안 중얼 거렸다.
오민철이 생각없이 뱉지는 않았다.
전쟁에 관한 백전노장이고 수많은 작전에 투입되어 완벽한 승리를 맛본 전쟁의 고수라고 할만하다.
그런 오민철이 기습공격이 최선이라고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이길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바라일 시의 인구는 8000명을 약간 웃돈다.
8,000명은 시내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고 바라일시 권역이라고 할 수 있는 20킬로 이내에 사는 시골 마을 사람들까지 합치면 일만 여명이 넘는다.
시내를 관통하는 유프라테스강의 지천이 바라일 시민들의 생명수다.
사막이 국토의 대부분인 중동지역에서 마을을 이루는 집단생활을 한다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 첫 번째 원인은 식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운 좋게 샘을 팠는데 물이 나온다고 해도 수십 가구가 사용할 만큼의 양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아야 한 마을이 십여 가구를 넘지 않는 이유다.
차량 한 대가 덜컹 거리며 산길을 가고 있었다.
사막색 군용트럭인데 화물칸에는 이십 여명의 남녀노소가 앉아 있었다.
등받이가 있는 군용트럭은 지붕만 천막으로 가려 햇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트럭 옆면에는 유엔(UN)이라는 영문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는데 히잡을 쓴 여자 한 명이 말했다.
“샤이란.”
옆에 앉아 있는 구레나룻 가득한 사내를 불렀다.
남편 샤이란이다.
“제발 당신 병이 나았으면 좋겠어요.”
남편 샤이란의 눈동자에 힘이 없다.
3년 전 남편 샤이란은 바라일에 있는 개인 병원을 찾아가 폐렴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약이 너무 비싸 십 일치만 받아 온 것이 전부였고 그동안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약초를 이용한 치료를 해왔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으로 온 중국군이 공짜로 진료를 해준다기에 이렇게 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남편 샤이란이 신은 위대하다고 중얼 거렸다.
거기에는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는데 아내 사파 역시도 두 손을 모으며 간절하게 잡았다.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산길을 달려 사라졌다.
학교였지만 전쟁으로 폐쇄되고 연이어 IS가 장악하면서 그들은 나시리아 일대를 본부로 사용했다.
학교는 전쟁은 끝났으나 더 이상 학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미군의 공중공격에 거의 반파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유엔 평화 유지군이 들어오며 가건물 한 채를 세우고 부서진 학교 건물 일부를 수리하여 숙소로 쓰고 있었다.
트럭이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단층 건물 앞에 트럭이 멈추고 조수석에서 팔에 UN이라고 쓰인 흰색의 완장을 찬 군인이 내렸다.
“조심해서 내리세요.”
차에 사다리가 설치되고 타고 있던 이십 여명의 주민들이 내렸다.
그들은 군인을 따라 단층 막사로 들어섰는데 깜짝 놀란 표정들이었다.
밖은 불볕더위인데 에어컨이 틀어진 실내가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군복 위에 가운을 걸친 두 명의 의사와 역시 군복위에 흰색 가운을 입은 간호사가 들어서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일단 여기 의자에 앉으세요.”
인솔해온 군인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앉고 군인은 말을 이었다.
“이쪽 의사분들에게 아픈 곳을 설명하면 진찰을 받고 약을 처방받거나 주사를 맞게 될 것입니다. 약 처방과 주사는 저기 있는 간호사 두 분에게 맞습니다. 잘 아셨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씩 일어나 의사와 마주 앉았다.
샤이란이란 남자는 세 번째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옷을 올리고 샤이란의 앞가슴에 청진기를 댔다.
숨소리가 거칠고 시끄러운 소음이 같이 들리는데 전형적인 폐렴환자의 증상이었다.
“폐렴 맞습니다.”
의사는 볼펜으로 처방전을 작성했다.
처방 내용이 적힌 흰색의 종이를 들고 두 명의 간호사중 한 명에게 내밀었다.
군인 간호사는 선반에 진열된 약의 뚜껑들을 열고 조제를 시작했다.
“보름치입니다. 식사 후 30분에 약을 드시고 식사를 잘해야 합니다.”
샤이란은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봉지를 받아든 샤이란은 순서를 기다리는 아내 사파를 바라보았다.
사파의 순서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약봉지를 헐렁한 의복 주머니에 넣고 인솔해온 군인을 향해 다가갔다.
“화장실이 어디입니까?”
“문 열고 밖으로 나가면 건물 끝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샤이란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자신들을 태우고 왔던 트럭은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 다른 마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해 떠났을 것이다.
건물을 따라 쭈욱 걸어갔다.
막사 끝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역시 판넬로 지어진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뒤쪽으로 군인들 숙소로 쓰는 학교 건물이 보인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갈 것 같던 샤이란이 그대로 지나쳐 학교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민간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었으나 샤이란은 그냥 통과했다.
학교 건물로 바짝 다가갔다.
학교는 지면에서 1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시멘트로 쌓고 그 위에 창문을 세웠다.
그런데 지금 창문 말고 또 하나의 가림막이 있었다.
두꺼운 철판이 창문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아마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가림막이면서 외부 공격에 허술한 창문을 대신해 방호벽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입구로 다가갔는데 문이 닫혔다.
출입문도 두꺼운 철판을 덧대 놓았는데 슬쩍 잡아 당겨도 꼼짝하지 않는다.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도 있었으나 샤이란은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운동장으로 차량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맨 선두에는 육중한 기관총을 거치한 지프 두 대를 보며 샤이란의 눈이 빛난다.
‘QJG-02’
거치된 총은 바로 인민해방군 보병의 중기관총이었다.
샤이란은 걸음을 세웠다.
두 대의 지프가 선도하는 그 뒤로 자신들이 타고 왔던 트럭과 달리 사람을 태우는 수송 칸이 천막으로 완전히 덮였는데 투명한 플라스틱 창문을 붙였다.
안에서 밖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들어온 트럭은 여섯 대였다.
트럭들은 병원으로 사용하는 막사 앞에 일렬로 섰고 뒷문이 열리며 군인들이 뛰어내렸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 복장들이 지저분했다.
샤이란의 눈이 빛난다.
군인들의 어깨에 메어 있는 소총은 QTS-11 이었다.
군인들은 하나둘 흩어지면서 생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학교 건물로 사라졌다.
‘정확히 131명이다’
운전병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다른 중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샤이란은 조용히 병원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에 앉았는데 아내 사파가 의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지인인 남자 통역사가 중국어로 번역하여 전달했는데 많이 서툴러 대화가 끊기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경비초소까지 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밤에 확인했던 바라일로 들어오는 동북쪽 진입로에서는 다섯 명이 있었고 반대인 남쪽으로 들어가는 72번 도로에도 다섯 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주간 근무보다 야간근무에 경계 병력의 숫자는 많다.
반대로 야간보다 주간 근무자가 적다.
두 초소에 몇 명이나 근무를 세웠을까.
지금 이들의 총인원을 계산해 보려는 것이다.
두 곳의 초소에 두 명씩 주간 근무를 세웠다면 135명이 된다.
만약 야간과 똑같이 다섯씩 그대로 있다면 141명이다.
또한 의사 둘과 간호사 둘, 그리고 자신들을 인솔한 의무병과 운전사를 포함하면 모두 147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샤이란은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군인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설표돌격대원들에게는 특유의 기세가 있었는데 저들에게는 전혀 경계할 만한 기세가 나오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 둘을 제외하면 143명’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더욱 마음이 무거워진다.
트럭에 타고 사람들이 돌아왔다.
모두 일곱 가구가 모여사는 이곳 마을 이름은 칸데랄이다.
바라일 시내에서 18킬로 떨어진 산속 동네로 밀 농사와 양을 키워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양 털을 이용해 양탄자도 만들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선 샤이란의 얼굴에서 소리가 들린다.
우두둑!
변체환용이 펼쳐진 것이다.